소설리스트

도망 여주의 옆집에 살고 있습니다-2화 (2/179)

#2

그 꽃집에는 비밀이 있다.

기억하기론, 제목은 대충 이러했다.

여주인공을 두고 남주 후보들이 경쟁을 펼치는 그런 내용이다. 연애가 주 소재였고, 마법도 있었던 것 같다.

또렷이 기억나는 건 아마, 3화 정도 되는 분량. 대부분이 그녀의 과거에 관한 내용이다.

엘렌의 유년 시절은 꽤 암울했다.

후작 부인은 물론, 형제들, 시종들과 아버지까지. 유클레스 영지에서 그녀를 따뜻하게 대해 준 이는 아무도 없었다.

엘렌은 모든 것을 뒤로하고 도망쳤다.

그러나 도망친 후에도 과거의 기억은 끊임없이 그녀를 괴롭혔다.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는 것, 대화하는 것, 낮에 태양 아래에 서는 것조차 두려웠다.

그래서 모든 기억을 지웠다.

백치가 되어도 상관없었다. 멍청해져도 행복해지기만을 바랐다.

과거를 지운 엘렌은 이제 밝게 웃을 수 있었다. 이웃에게 먼저 다정하게 다가가기도 하고, 씩씩하게 홀로 꽃집을 운영했다.

이웃들도 모두 그녀를 좋아했다.

옆집에 사는 여자도, 아마 그랬을 것이다.

왜냐하면, 언급조차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

‘나는 엑스트라야.’

세이나는 지끈대는 관자놀이를 꾹 누르며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앞. 나란히 강을 바라보고 있는 집 2채가 보인다.

보통 먼저 시선이 닿는 쪽은 대로를 인접하고 있는 건물일 것이다. 집의 입구부터 온갖 화분들이 세워져 있다. 작은 창문 너머에는 또, 다양한 색의 꽃들이 가득했다.

하지만 세이나가 노려보고 있는 쪽은 바로 그 옆이었다.

뾰족한 지붕의 이층집.

갈색 돌벽과 긴 창문들. 2층에는 작은 테라스도 있다.

현관문 앞에는 2주간 확인하지 못한 편지들이 보였다. 수신인에는 아마, 이렇게 쓰여 있을 것이다.

세이나 로힐.

‘여주인공의 옆집에 사는 엑스트라.’

그리고 지금은…….

‘집에도 못 들어가고 있는 엑스트라지. 망할.’

편지들의 바로 앞.

푸른빛이 도는 은발의 청년이 앉아 있다.

현관으로 향하는 6걸음 남짓의 짧은 계단은 바로 그에게 점령당했다. 무릎을 세우고 그 위에 팔꿈치를 얹은 채, 양손에 얼굴을 숨겼다.

누가 봐도 좌절하고 있는 모습.

벌써 몇 분째 보고 있는 장면이기도 했다.

처음엔 그냥…… 순수한 마음이었다.

세이나는 그의 사정을 알았고, 그는 꽤 힘들어 보였으니.

곧 가겠지, 기다려 주자.

5분이 지나자 슬슬 어깨가 시리기 시작했다. 먹구름이 잔뜩 낀 하늘을 발견한 건 그 무렵이었다. 참, 아침부터 비가 올 것 같더니. 5분.

행인들의 발걸음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카페는 야외 테이블을 접었고 상인들은 밖에 둔 물건들을 하나둘 안으로 들여보냈다. 5분.

세이나는 정수리를 매만졌다. 벌써 다섯 번 정도 빗방울을 맞았다. 곧 쏟아질 게 틀림없다.

마지막 5분.

남자는 일어나지 않았다.

‘죽었니?’

혼자 이어 가는 눈싸움은 벌써 20분을 돌파하고 있었다.

그동안 세이나는 헛기침도 해 보고, 불량배처럼 다리도 떨어 보고, 앞을 얼쩡거려 보기도 했으나…….

‘아니면 돌아 버린 거니?’

그의 사정이 어떠하든, 세이나의 인내심은 이미 한계에 이르고 있었다. 신비로운 은발을 바라보는 눈빛은 이미 험상궂기 짝이 없었다.

흔치 않은 빛. 저것만으로도 ‘나, 등장인물이오.’라 쓰여 있는 것 같다.

혹시 아직 원작이 더 진행되려나. 여주인공이 나와서 그를 불쌍하다고 안아 주려나?

그런데.

그래서 뭘 어쩌라고.

결국 그녀는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이봐요!”

툭, 빗방울이 정수리를 때렸다. 동시에 또 툭. 남자의 머리 위로도 빗방울이 튀어 올랐다.

그의 어깨가 움직였다. 동시에 세이나는 마지막 경고를 준비했다.

거기서 꺼져!

“거기…….”

그때, 그가 고개를 들었다.

“서…….”

툭.

차가운 빗방울이 또 한 번 세이나의 콧등을 때렸다. 하지만 그녀는 여러 번 그랬듯이 이맛살을 만들며 코를 매만지지 않았다.

남자의 눈길이 그녀를 향했다.

그리고 다시.

뚝.

남자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어…….”

마치 끝까지 차오른 잔이 조금 넘치는 것처럼.

그의 눈물은 조용히 흘러나와 하얀 뺨을 가로질렀다. 질끈 감은 후 눈꺼풀을 들어 올리자 또다시 뚝. 뚝.

뚝.

세이나는 생각했다.

‘낭패로군.’

처음 본 남자가, 그것도 다 큰 성인이 우는데 뭐라고 할 수 있단 말인가. 꾹꾹 쌓아 두었던 온갖 경고의 말들도, 불만도 모두 버렸다.

겨우 떠오른 생각은 하나.

‘정말, 낭패야.’

제대로 마주친 그의 눈동자는 정말 예쁜 색이었다.

게다가 지금 눈물로 젖어 있기까지 하니 그 자체로 빛을 발산하는 것만 같았다. 긴 속눈썹은 눈물로 젖었고, 눈가는 매우 붉었다.

하지만 그는 찡그리고 있지 않았다. 오히려 놀랍도록 담담한 얼굴이다.

그 표정이 그를 더 가련하게 보이도록 했다. 힘들게 눈물을, 슬픔을 참는 것 같았다.

그런 모습이 너무…….

‘내 취향이네.’

까다롭다고 해도 좋을 그녀의 심미안을 딱 저격한 생김새였다. 울고 있기까지 하니 완전히 머릿속이 멍해졌다.

이건 정말, 정말 낭패였다.

그렇게 생각하자마자 발이 제멋대로 그에게 향했다.

“괜찮아요?”

어쩐지 죄책감이 일었다. 자신은 결코, 옆집 여자와 아무 관계가 없는데 말이다.

미남의 눈물은 그토록 파괴적이었다. 세이나는 어느새 그를 위로할 방법을 찾고 있었다.

디온. 그 이름을 소리 없이 속삭이며.

……그러다가 문득.

떠올렸다.

“설마, 디온 프라벨?”

그러자 드디어 남자의 표정에 변화가 생겼다. 반듯한 눈썹이 살짝 구겨지더니 젖은 눈동자가 당혹에 휩싸인다.

너, 나를 어떻게 알아?

그런 심정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세이나가 가진 의문도 그와 비슷했다.

너, 왜 여기 계세요?

직장 상사의 첫째 아드님이 물어 왔다.

“……누구십니까?”

* * *

전생의 기억은 아직 완전하지 않았다.

결정적으로 세이나는 전생에서 자신이 어떻게 죽었는지를 기억해 내지 못했다.

전생의 가족들은 얼굴도 희미하다. 직업은 아마도…… 평범한 직장인.

그녀가 떨어진 소설에 관한 기억도 불완전하다.

남들은 어떤 문장인지 어떤 표현인지 잘도 떠올리던데. 안타깝게도 자신은 그 정도로 머리가 좋진 않았다.

그래서 세이나는 최대한 이 현실을 기준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이 현실. 발 딛고 있는 이 땅. 이 세계.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

세이나 로힐. 나이 25세. 헌터. 모험가 협회 소속. 반년 전에 C급에서 D급으로 강등당하고 ‘그 사건’을 계기로 전 재산을 날렸다.

그동안 해 왔던 의뢰는 약 50여 개. 레이드 참여는 10회.

그리고 눈앞의 남자의 이름은 디온 프라벨.

나의 상사. 협회장의 첫째 아들.

‘맙소사.’

하필이면, 첫째.

‘성격이 엄청 더러워서 차마 밖으로 못 데리고 다니고 집에만 꼭꼭 숨겨 두었다던……. 바로 그 아들?’

협회장의 복잡한 가정사는 딱히 비밀도 아니었다. 전처가 둘. 최근에 결혼한 여자와는 이혼 소송 중이다.

아들이 둘. 딸이 셋.

디온 프라벨은 그 다섯 아이 중 장남이었다. 보통 장남이 아버지의 사업을 물려받을 것으로 여겨지지만, 디온은 협회에 등장한 적이 없었다.

왜 그러냐는 질문에 회장의 측근은 지나가듯 답했다.

- 어마어마한 또라이라.

바로 그 인물이, 그녀의 집 앞에 있었다.

입술은 꾹 닫은 채, 차오르는 눈물을 억지로 누르며, 처연하고 처량하게. 비에 홀딱 젖은 채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다.

‘다행이다.’

발로 찼으면 정말 큰일 날 뻔했다.

협회장은 그녀의 생계를 틀어쥐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동시에, 답답해지기도 했다. 당장 꺼지라고 윽박지를 수도 없고, 저리 가라고 발길질도 못 한다.

개차반으로 소문난 첫째 아들이지 않은가. 아빠에게 이르면 어떡해?

‘제명당한다고. 이번에야말로 잘릴지도 몰라.’

그럼 뭘, 대체 뭘 해야 할까.

고심 끝에 세이나가 입을 열었다.

“들어가서……. 쉬었다 가시겠어요?”

문득 전생의 기억이 현실과 겹쳤다.

회사 회장님의 아들이 집 앞에 있다? 그 아드님이 오열하고 계시다?

당연히 친절하게 모셔야지. 빌어먹을 직장인 본능.

“……네?”

“그…… 지금 제집 앞에 계시거든요.”

디온의 눈이 확 커졌다.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뒤를 돌아보았다. 거기에는 당연히, 낡은 현관문이 있었다.

이제야, 그걸 발견한 표정이었다.

잔뜩 잠긴 목소리로 그가 말했다.

“죄송합니다.”

“괘, 괜찮아요.”

“죄송……. 죄송하…….”

투두둑. 다시 눈물이 터졌다. 그는 급히 몸을 돌려 다시 눈가를 닦아 냈다. 몸을 돌리기 직전, 세이나는 그의 얼굴을 보았다.

스스로를 한심하게 여기는 눈이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쏴아아……. 폭우라고 해도 좋을 만큼 거센 빗줄기였다. 급작스럽게 비를 쏟아 낸 하늘을 바라보던 세이나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쉬었다 가세요.”

나 혼자 하는 아포칼립스물에, 옆집의 로맨스 판타지가 묻어 버린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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