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신의 아내가 될 수 없다면 (108)화 (108/110)
  • 에필로그. 공작저에서 연애가 금지된 이유 (3)

    “그, 그런 거였습니까? 전 그냥 잠겨 있길래 열어도 되는 건 줄 알고…….”

    브래디는 당황한 낯으로 문 쪽을 곁눈질했다. 캐슬린은 또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이건 사용인들이 처음 들어오면 반드시 교육하는 내용인데, 잊은 게 분명했다.

    ‘힘 하나는 굉장히 센가 보다.’

    누가 보면 은밀하게 만나 계약 기간도 어기고 사랑의 도피를 실천하려는 걸로 오해할 수도 있을 법했다. 캐슬린은 이 우스운 연극의 주인공이 되고 싶은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브래디 씨. 저를 좋게 보아 주신 건 감사하지만 이건 아닌 것 같아요.”

    “예?”

    아직 그는 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차리지 못한 듯했다. 캐슬린은 한숨을 길게 내쉬곤 입을 열었다.

    “케이크는 정말 감사드려요. 어제도 저를 대신해 예약해 주시고, 오늘도 새벽부터 일어나서 애써 주셨으니까요. 그런 부지런함과 자상함에는 정말 감동했지만…….”

    착한 건 죄가 아니니까, 상처받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던 중이었다. 누군가 뒤에서 저벅저벅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불안한 기분에 캐슬린이 번개처럼 뒤를 돌았다.

    이번에도 발텐 공작이었다.

    “주, 주인님.”

    브래디가 놀란 나머지 큰소리를 냈다. 황금색 눈이 또다시 그녀와 브래디를 훑으려기에 캐슬린은 얼른 고개를 아래로 내렸다. 이번에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심기가 불편하신 것 같아.’

    상자 끈을 쥔 손에서 식은땀이 났다. 할 수만 있다면 케이크를 브래디에게 넘기고 도망치고 싶었다.

    발텐 공작이 천천히 걸음을 옮길 때마다 붉은 망토가 나부꼈다. 분명 무감한 낯을 하고 있을 그에게서 풍겨 나오는 분위기가 심각해, 시선을 마주치지 않았음에도 목이 탔다.

    그는 캐슬린을 스치고 지나가더니 브래디 앞에 섰다. 이윽고 그의 시선이 문 쪽으로 향했다.

    저를 등지고 선 발텐 공작이 천천히 말했다.

    “가서 알스도프를 불러와라.”

    그는 이제 브래디 앞에 서서 위압감을 뿜어내고 있었다. 브래디가 덜덜 떨며 맥을 못 추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내 말 안 들리나?”

    “네, 주인님.”

    캐슬린은 하는 수 없이 얼른 대답한 후 뒤를 돌았다. 아무래도 집사님뿐 아니라 정원사 아저씨한테도 말을 전해야 할 것 같았다.

    * * *

    주홍 머리 주방 하녀가 사라지자, 알렉시스는 제 앞에서 고개를 떨군 견습 정원사라는 남자를 내려다보았다.

    “공작저에는 왜 들어왔지?”

    “저, 정원사 일을 배우려고…….”

    “정원사? 사용인이 되겠다는 자가 감히 멋대로 보안 규칙을 어겨? 네가 다른 이와 내통하였는지 내가 어찌 알지?”

    “아, 아닙니다, 주인님!”

    갈색 머리 남자가 화들짝 놀라 무릎을 꿇고 빌었다.

    “저는 방금 그 여자가 기뻐했으면 하는 마음에 그랬을 뿐입니다. 정말이에요! 그 외에는 어떠한 의도도 없었습니다.”

    그는 시답잖은 변명을 마구 떠들었지만 같잖았다. 알렉시스는 사나운 눈으로 그를 내려다보았다.

    “각하!”

    얼마 안 있어 알스도프가 도착했다. 알렉시스는 집사를 돌아보며 쏘아붙였다.

    “이리 경솔한 놈을 공작저에 들이다니 제정신인가?”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이자가 견습이다 보니 미숙했나 봅니다.”

    “그동안 사용인들의 편의를 너무 봐준 모양이군.”

    알렉시스는 짜증스럽게 대꾸했다. 멀리서 정원사도 허둥지둥 뛰어오고 있었다.

    “알스도프.”

    “예, 각하.”

    긴장한 얼굴로 노집사가 대답했다. 알렉시스는 아까 보았던 여자를 떠올려 보았다. 주방 하녀라고 했었던 것 같았다. 그녀가 손에 들고 있던 상자를 떠올리자 짜증스러움이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앞으로는 사용인들이 사사로이 만나는 것을 금지하도록.”

    “예?”

    “지금처럼 기강이 해이해지는 꼴은 못 봐. 근무 시간이건 아니건 남녀가 따로 만나 시시덕거리지 못하게 하란 소리다.”

    알렉시스는 턱짓으로 망가진 자물쇠를 가리켰다. 처음 말을 듣고 당황한 듯하던 알스도프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예. 그리하겠습니다.”

    “그리고 이 새끼는 당장 해고해.”

    그는 제일 먼저 하고 싶었던 말을 내뱉으며 빠르게 돌아섰다. 뒤에서 브래드인지 브래디인지 하는 사내놈이 엉엉 우는 소리가 들렸다.

    알렉시스는 그제야 기분이 좀 나아졌지만 그렇다고 해서 영 상쾌한 느낌은 아니었다.

    궁정 회의에 참석하기 전에 머리나 식힐 겸 아침 일찍 연무장으로 향하는 지름길을 찾은 것인데, 얼간이 하나를 상대하는 바람에 시간을 지체한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 케이크는 정말 감사드려요.

    - 그런 부지런함과 자상함에는 정말 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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