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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아내가 될 수 없다면 (72)화 (72/110)

72화

유모에게서 아이를 안아 든 그가 상태를 살피는 사이 캐슬린은 휘청하며 일어나 급하게 가까이 다가갔다. 미약하게 경련하는 루치의 모습은 저번과 같은 증상이었다.

‘독 때문이야.’

카벨 선생은 영아에게 자주 나타날 수 있는 일이라고 했지만, 직감이 그리 말하고 있었다.

“황궁의를 데려와라!”

페터가 소리치자 시종들이 허둥지둥 뛰어나갔다. 순식간에 오찬 자리가 엉망이 되었다. 캐슬린은 떨리는 손으로 루치가 걸친 예복의 단추를 모두 풀면서 알렉시스에게 말했다.

“소파에 눕혀 주세요.”

알렉시스는 그녀의 말을 따라 소파에 아이를 뉘었다. 그리고 재빨리 손수건을 물 잔에 적셔 혀를 깨물지 않도록 입 안에 넣어 주었다.

아이의 경련은 처음 보았을 텐데, 육아 지식도 없는 그가 익숙하게 움직일 수 있는 이유는 전장에서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처럼 보였다.

황궁의가 헐레벌떡 오찬장으로 뛰어 들어왔다. 황급히 응급 처치하는 동안에도 알렉시스의 눈은 루치에게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그녀와 같은 생각을 했는지 페터가 경악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캐슬린은 울음이 터져 나올 것 같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페터도 고개를 떨어뜨렸다.

경련은 오래가지 않았다. 황제를 시해하는 데 가담한 황궁의는 처형되어 새로이 임명한 황궁의가 진찰한 후, 얼마 안 있어서 평온한 상태를 되찾은 루치가 잠들었다. 아이의 뺨은 온통 눈물로 젖어 있어 그 모습을 내려다보고 있으니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다.

즉위하면서 급하게 뽑은 황궁의는 자신이 신생아에 관해서는 해박하지 못하다고 송구스러워하며 고개를 숙였다.

“신생아의 경우에는 명확한 이유를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고열이 수반되었으니, 유아에 대해 잘 아는 의사나 약제사를 불러 약을 써야 할 것 같습니다.”

캐슬린의 품에 안겨 있는 아이의 여린 살결이 뜨끈했다.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걱정할 것 없다는 진찰이 내려지기를 얼마나 기대했나.

‘내가 대신 아팠으면 좋겠어.’

수백, 수만 배의 고통이라도 대신 겪을 수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었다. 캐슬린은 작은 몸을 꼭 껴안고 페터를 향해 조심스레 말했다.

“폐하, 죄송하지만 돌아가 봐야겠어요.”

“루치가 아픈데 죄송하다니, 당치도 않은 말입니다.”

페터가 일단 황궁의에게 동행을 명하며 귀환을 허락하자, 알렉시스가 말했다.

“황실의 말을 내어 주십시오, 폐하. 먼저 가서 공작저의 의사를 불러야겠습니다.”

“그러십시오.”

마차를 끄는 짐말은 황실의 말이라 불리지 않았다. 알렉시스가 요청한 것은 제국의 어느 말보다도 날쌘 말들만 가려 뽑은 군마였다. 그 말을 사용하려면 황제의 허락이 있어야 했는데, 유사시를 제외하고는 일반 귀족들에게 허락된 적은 없었다.

그러나 페터는 망설이지 않고 허락했다. 파격적인 절차에 부관인 셴베르크 백작과 라일런트 자작 또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먼저 가서 카벨을 대기시킬게.”

알렉시스는 캐슬린에게 속삭이고 빠른 걸음으로 오찬장을 뛰쳐나갔다.

“얼른 가시지요.”

페터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캐슬린의 어깨를 토닥이며 이끌었다. 그녀는 아이를 더 보듬어 안았다.

‘루치가 독 때문에 아픈 거라면, 의사의 진찰로는 해결할 수 없어.’

해결책은 두 가지였다. 캐슬린은 무슨 일이 있어도 아이를 지킬 생각이었다.

“폐하께는 발텐 대공가의 사람들이 정말 중요하신가 봅니다.”

발텐 대공비와 공자를 배웅까지 하고 다시 올라온 이후, 셴베르크 백작은 떠나는 마차를 내려다보는 페터의 낯빛을 살피며 말을 건넸다.

“대관식과 작위 수여식을 함께하시고, 발텐 공자에게 상시 황궁 방문을 허하신 데다가, 새로 뽑은 지 얼마 안 된 귀한 황궁의까지 손수 출장을 보내시다니요.”

“발텐 대공은 내 형님이고 공자는 내 조카야. 가족에게 그리 대하지 않을 이유가 없지.”

멀어져 가는 마차에서 아직도 시선을 떼지 못한 새 황제의 얼굴은 씁쓸해 보였다.

‘황제치고는 확실히 특이하군.’

여자의 몸으로 황위에 올랐으니 발텐 대공을 더 경계할 줄 알았는데 의외였다.

“자네도 여동생에게 각별했다면 이해할 텐데. 안 그런가?”

“……저는 키아나에게 좋은 오라비이지 못했습니다.”

불시에 짓쳐들어온 질문에 저도 모르게 진심이 나가 버렸다. 돌아보는 페터의 눈빛에 의아함이 담긴 것을 보자 아차 하는 기분이 들었다.

‘사적인 이야기는 하지 말아야 하는데.’

그는 대충 얼버무렸다.

“폐하처럼 우애 도타운 남매였다면 좋았을 것을요.”

“발텐 대공과 내가 우애가 도탑다고?”

페터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아니지. 대공이 나를 봐주고 있는 거야. 그가 용서해 줄 때까지 난 사과해야 하고.”

“그럼 차라리 제가 더 나은지도 모르겠군요. 사과는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니 말입니다.”

“……그럴지도 모르지.”

페터는 더 이상 그의 여동생에 대해 질문을 하지 않았다. 셴베르크 백작은 조용히 그의 뒤를 따르며 다시금 다짐했다.

새로운 황제가 여자라 하여 쓸데없는 감상에 빠져선 안 되며, 앞으로 달라질 것은 없어야 한다고.

* * *

공작저에 도착하자, 알렉시스가 본관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바로 마차 문을 열어 주었다.

“카벨이 대기하고 있어. 침실로 올라가자.”

이리저리 뛰어다니기라도 한 듯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알렉시스가 조심스러운 손길로 이끌었다. 캐슬린은 아이를 안은 채 걸음을 옮겼으나, 자꾸만 다리에 힘이 풀려서 계단에 올라서려는 순간 휘청했다.

“캐슬린!”

“……루치를 데리고 가세요.”

지금 선택해야 했다. 캐슬린은 이를 악물고 그에게 아이를 넘겨주었다.

“루치는 지금 괜찮아요. 잠든 것뿐이에요. 마차 안에서 황궁의도 그렇게 말했고요.”

뒤늦게 마차에서 내린 황궁의가 왕진 가방을 들고 현관으로 서둘러 들어서고 있었다. 캐슬린은 그에게 손짓하며 알렉시스에게 말했다.

“발목을 조금 삔 것 같아서 1층에서 치료를 받고 올라갈게요. 얼른 루치를 데리고 가세요.”

“금방 다시 올게.”

알렉시스가 황급히 아이를 안은 채로 3층의 침실로 올라갔다. 유모와 뒤늦게 뛰어나온 에밀리도 알렉시스를 따라갔다. 그가 멀리 떨어지자 캐슬린은 몸을 일으켰다.

“대공비 전하! 움직이지 마십시오. 발목을 다치셨다면서요.”

“괜찮네. 알스도프!”

시큰거리는 통증은 무시한 채 그녀는 노집사를 불렀다. 그가 가까이 다가와 조심스럽게 물었다.

“예, 마님. 부축해 드릴까요?”

“아니, 필요 없네. 그보다 사람을 불러 줘야겠어.”

“누구를 말이십니까?”

“에디스.”

주변의 사용인들이 듣지 못하도록 작게 말했지만, 분명하게 캐슬린의 입에서 나온 이름에 알스도프의 얼굴이 굳었다. 캐슬린은 확실히 다시 말했다.

“최대한 빨리 에디스 양을 별관으로 불러오게. 신속하되 대공 전하께서는 몰라야 해.”

알스도프는 두 번째로 경련을 일으켜 탈진했다는 어린아이와, 의사가 아닌 약제사를 찾는 어머니를 보고 비로소 깨달았다.

“……알겠습니다.”

그는 깊숙이 고개를 숙였다. 그 후에야 캐슬린은 절뚝거리며 계단을 올라갔고, 황궁의가 서둘러 그녀를 뒤따랐다.

침실 문은 채 닫히지 못하고 열려 있었다. 침대에 누운 아이는 다시 간헐적으로 경련하고 있었고, 카벨 선생이 난처한 얼굴로 알렉시스를 설득하고 있었다.

“공자님의 상태는 보통 아이들과 다릅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증상이 비슷해요. 시도는 해 보심이 어떠십니까?”

그 말에 알렉시스는 오래 고민할 것도 없이 품에 손을 넣어 작은 유리병을 꺼냈다. 그는 마개를 열고 진녹색의 약물을 아이의 입에 조금 떨어뜨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의 얼굴이 눈에 띄게 편안해졌다. 카벨 선생이 다시 아이를 살피기 시작하자, 캐슬린은 침실로 들어섰다.

“대공비를 치료하지 않았나?”

절뚝거리는 그녀를 본 알렉시스가 날카로운 눈으로 황궁의를 노려보았다.

“제가 올라가서 치료받겠다고 고집을 부렸어요.”

캐슬린은 루치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로 카벨 선생을 향해 말했다.

“이젠 괜찮아졌나요?”

“예, 마님. 그런 것 같습니다.”

그가 확신하며 에밀리에게 아이의 옷을 갈아입힐 것을 지시했다. 몸을 닦을 천과 뜨거운 물을 가져오는 사용인들로 침실이 어수선해졌다.

“발목부터 보자.”

알렉시스가 억지로 아기 침대에서 캐슬린을 떼어 내 소파에 앉혔다. 그제야 치마 아래로 퉁퉁 부은 발목이 보였다.

“심하지는 않으나 발목이 접질리면서 염좌가 발생했습니다, 대공비 전하. 최대한 움직이지 않으셔야 합니다.”

황궁의가 진단하자, 알렉시스가 시녀를 불러 얼음주머니를 가져오도록 했다.

“붕대는 내가 감을 테니 황궁으로 돌아가게. 폐하께 큰일이 없을 거라고도 전하고.”

“예, 전하.”

황궁의가 물러가고, 알렉시스가 옆자리에 앉아 치맛자락을 걷어 올렸다. 차가운 얼음이 부은 발목에 닿자 오한이 들었다.

“루치는 괜찮을 거야.”

부드럽게 발목을 문지르며 들려오는 목소리에는 확신이 어려 있었다.

‘왜 아픈지도 모르면서…….’

저를 안심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태도에 울컥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의 위로에 어쩔 수 없이 마음이 녹으면서도 원망이 차올랐다.

“내가 그렇게 할 테니까. 걱정하지 마.”

알렉시스가 그녀의 뺨에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몇 번이나 약속했다.

‘하지만 당신은 루치를 낫게 해 줄 수 없어.’

캐슬린은 강해지려고 마음먹으려 애썼다. 아이를 지키려면 누구도 아닌 자신이 움직여야 했다.

발목의 부기가 가라앉고 나자 알렉시스는 붕대를 감아 주었다. 루치도 약을 먹고 나서 고른 숨소리를 내며 잠들어 있었다.

“우선 대공 전하께서 가지고 계시던 상비약이 효과가 있는 것 같습니다. 경과를 두고 공자님의 상태를 살펴야겠지만, 우선은 그쪽으로 치료를 해 볼까 합니다.”

“그 상비약이란 건 어떤 건가?”

남부 전갈의 독을 치료하는 약이겠지. 어림짐작하면서도 캐슬린은 부러 물었다. 예상처럼 카벨 선생은 난처해하며 어물어물 대답했다.

“그게, 전하께서 출정하실 때 만약을 대비하여 제조한 약입니다. 극심한 통증을 겪을 때 주로 복용하는 것인데…… 제가 만든 것은 아니라 자세히 답변해 드릴 수는 없을 듯합니다.”

“내가 설명하지.”

알렉시스가 막 나서려던 찰나였다. 노크 소리가 들리고 알스도프가 들어왔다.

“마님, 부르신 손님이 도착하셨습니다.”

“내려가겠네.”

캐슬린은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손님을 불렀다고?”

알렉시스가 의아한 얼굴로 따라 일어섰다. 캐슬린은 문 쪽으로 향하며 그를 돌아보고 말했다.

“네, 제가 불렀어요.”

“누구인데?”

“약에 대한 설명을 제일 잘해 줄 수 있는 사람이요.”

그녀는 바로 이해하지 못한 알렉시스에게 기꺼이 설명을 덧붙였다.

“에디스 양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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