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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아내가 될 수 없다면 (39)화 (39/110)
  • 39화

    “……놔주세요.”

    한참 만에 캐슬린이 조용히 말했다. 아까 전의 당황스러움은 사라진 무감한 어투였다.

    “공작님, 못 들으셨나요?”

    그녀가 다시 한번 말했다. 알렉시스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그녀를 놓아주었다.

    품에서 벗어난 그녀는 담담한 눈으로 알렉시스를 올려다보았다.

    “무언가 착각하신 것 같아요.”

    그녀는 창문 바깥을 가리켜 보였다.

    “전 밖에 비가 오는지 살펴보려고 했을 뿐이에요.”

    “비?”

    “네. 뛰어내리려던 게 아니고요.”

    캐슬린은 창가로 다가가 열린 창문을 닫았다. 침착하기 그지없는 태도에 알렉시스는 멍한 기분이 되었다.

    “방문은 왜 열어 놨지?”

    “환기를 시키려고요. 더워서.”

    “밤이잖아.”

    감기라도 걸리고 싶은 거냐고 튀어나오려던 말을 삼켰다. 그랬다가 들려오는 대답이 긍정일까 봐 두려워져서.

    자신과 얼굴을 맞대느니 차라리 앓아누워 버리고 싶다는 말이 저 입술에서 흘러나올까 무서워졌다.

    “애는 어디 있어?”

    알렉시스는 성급하게 말을 돌렸다. 생각난 핑계가 그것밖에 없어서였다. 그러나 캐슬린의 표정은 변화가 없었다.

    “루치는 다른 방에서 따로 재워요. 공작님이 제게서 아이를 떼어 놨던 동안 머물렀던 방에서 자겠다고 고집을 부려서.”

    아이를 그 어느 것보다도 소중히 여기는 그녀였다. 시녀장에게 전해 듣기론 한시도 품에서 떼어놓지 않고 늘 눈길 닿는 곳에서 함께한다고 했는데, 다른 방에서 재운다니.

    ‘공작저를 자유롭게 다니게 해 주는 대신 밤에는 정해진 침실을 벗어나지 말라고 했었지.’

    그제야 알렉시스는 제가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달았다. 죄책감이 가슴을 짓눌렀다.

    “이제 궁금하신 건 끝나셨나요?”

    그러나 가만히 묻는 그녀의 눈에는 원망이나 슬픔 같은, 어떤 감정도 담겨 있지 않았다. 심지어는 그가 미친놈처럼 지껄였던 애원에도 별말이 없었다.

    “……그래.”

    “그렇다면 돌아가 주셨으면 좋겠어요. 이제 잠자리에 들 생각이라.”

    그를 지나쳐 침대 쪽으로 향하는 발걸음에는 전혀 망설임이 없었다. 알렉시스는 멍하니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흰 발이 슬리퍼를 벗고 침대 위로 올라가자 충동적으로 물었다.

    “내가 왜 왔는지는 안 묻나?”

    대답은 한참 만에 들려왔다.

    “제가 궁금해해야 하나요?”

    마찬가지로 감정이 담기지 않은 물음이었다. 흰 깃털 이불 너머로 사라진 그녀는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지 짐작도 되지 않았다.

    차라리 화를 내거나 울음을 터뜨리면 좋을 텐데. 그럼 적어도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으니.

    그녀는 저에 대한 모든 일에 관심을 거두기로 마음먹은 사람처럼 보였다.

    - ?오늘은 돌아오실 건가요?

    - ?그게 왜 궁금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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