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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위한 이혼은 없습니다 (120)화 (120/120)
  • 당신을 위한 이혼은 없습니다 120화

    테오도르의 팔이 허리를 감쌌다. 나는 그의 뜨거운 품에 안겨 한참 동안 움직일 수 없었다. 아니, 우리는 서로의 영혼이 하나가 될 정도로 엉겨 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하아…….”

    간신히 숨을 쉬기 위해 입술을 떨어트렸을 때도 우리는 그 순간이 못내 아쉬웠다. 말로 꺼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는 나를 간절히 원하고 있었다.

    그의 눈동자 속에는 오롯이 나만이 비쳤다. 보지 않아도 나 역시 그럴 것이 분명했다. 우리는 다시 입술을 겹쳤고, 그의 손은 내 허리와 등을 단단히 끌어안았다.

    뜨거운 혀가 입천장의 오돌토돌한 부분을 훑으면 나도 모르게 그의 목에 매달려 울음 같은 신음을 흘렸다. 테오도르의 숨은 뜨거워서 뺨이 그대로 녹아 버릴 것 같았다.

    기울어진 햇빛이 뺨을 찌를 때까지 우리는 멈추지 않았다. 내 드레스는 멋대로 말려 올라가 종아리를 드러내고, 그의 셔츠는 엉망으로 구겨졌다. 누가 본다면 망측하다고 할 법한 상태였다.

    그의 손이 조심스럽게 배를 쓸어내렸다. 그의 굵은 손가락이 천 너머로 느껴지자 쾌감이 척추를 타고 짜릿하게 올랐다. 몸에 힘이 더 풀리고, 목에서 앓는 소리가 튀어나왔다. 뜨거워진 숨에 녹아내릴 것 같았다. 그러나 테오도르의 손은 그 이상 내려가지 않았다. 그는 입술을 떨어트리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카를라 님은 저를 욕심쟁이로 만듭니다.”

    그는 투정을 부리듯 웃었다. 그는 내 손을 끌어당겨 입을 맞췄다. 나는 그의 뺨과 입술을 천천히 손가락으로 쓸어내렸다. 손가락 끝을 더운 숨이 간지럽혔다.

    “눈을 떴을 때, 카를라 님이 가장 먼저 보는 사람이 저이기를 바랍니다. 함께 아침을 맞이하고 싶습니다.”

    그 말의 뜻을 모를 정도로 어리지는 않았다. 테오도르의 속눈썹 위로 햇빛이 내려앉았다. 뺨 위로 긴 속눈썹 그림자가 파르르 떨렸다. 타액에 젖은 입술 사이로 빨간 혀가 보였다.

    목이 꽉 막힌 것처럼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나는 대답 대신 그에게 다시 입을 맞췄다.

    * * *

    벨에게 내일 아침은 아주 늦게 들어와도 된다고 언질을 주자, 그녀는 눈치껏 목욕물에 향유를 풀어 놓았다. 그녀는 부은 입술과 구겨진 옷차림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으나, 늦은 밤인데도 불구하고 치장에 열중했다. 한껏 빗은 머리카락은 날개뼈 위를 간지럽혔고, 큰마음을 먹고 입은 얇은 드레스가 허벅지에 달라붙어 묘한 기분이 들었다.

    “백작님, 아름다우세요.”

    “아부가 늘었구나.”

    “정말이에요. 행복해 보이셔요.”

    벨은 히죽 웃으며 농담을 던졌다. 그녀는 저택의 하녀들은 일찍 일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갔으니, 필요한 것이 있으면 종소리를 크게 내 달라고 당부했다.

    얼굴이 화끈거렸으나 아무렇지도 않은 척 그녀를 내보냈다. 침대 가까이에 있는 테이블 위에는 도수가 낮은 샴페인이 놓여 있었다.

    너무 취하면 못 보일 꼴을 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나는 마른침을 몇 번이나 삼키고 의자에 앉아 테오도르를 기다렸다.

    문을 가볍게 두드리는 소리에 일어나 문을 여니, 테오도르가 외출할 때와 전혀 다른 옷을 입고 서 있었다.

    “아…….”

    그는 단단히 긴장한 모양이었다. 그의 손가락이 가볍게 까딱이고 있었다.

    “들어와요.”

    긴장한 것은 나 또한 마찬가지라 뭐라고 말문을 열어야 할지 몰랐다. 우리는 머뭇거리며 테이블로 향했다.

    “마실래요?”

    술이 들어가면 좀 다를까 하는 생각에 샴페인을 따라 그에게 건넸다.

    ‘이게 뭐야.’

    내가 바보같이 느껴졌다. 우아하게 그를 이끌고 싶었는데, 영 어설펐다. 나는 내 몫의 샴페인을 따르고 어색하게 홀짝였다. 테오도르는 단번에 잔을 비웠다.

    “아름다우십니다.”

    뜬금없는 말이었다. 테오도르는 잔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내게 바짝 다가왔다.

    “보자마자 말씀드렸어야 했는데, 너무 아름다워서 그만 말문이 막혔습니다.”

    그는 내 손에 아슬하게 들려 있던 잔을 받아 내려놓고, 내 머리카락을 손에 쥐었다. 손가락 사이로 새카만 머리카락이 흘러내리듯 흐트러졌다. 테오도르가 고개를 숙여 그 위에 입을 맞췄다.

    나는 테오도르의 목에 팔을 둘렀다. 머리카락을 놓은 손이 내 허리를 움켜쥐고, 입술 위로 뜨거운 입술이 내려앉았다. 샴페인의 달콤함이 혀 위에 퍼졌다.

    굵은 손가락이 가는 끈 사이로 파고들었다. 손이 닿은 곳마다 뜨거워 자국이 남을 것만 같았다. 우리는 비틀거리며 자리를 옮겨 침대 위로 쓰러졌다.

    올려다본 테오도르의 얼굴은 욕망에 사로잡혀 있는데도 불구하고 조금도 두렵지 않았다.

    “허락을…….”

    “허락받을 필요 없어요.”

    나는 테오도르의 셔츠 단추를 풀며 말했다.

    “원하는 대로 해요. 나도 그럴 테니까.”

    허벅지 아래로 얇은 천이 떨어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 * *

    일어나자마자 느낀 것은, 눈꺼풀 위가 간지럽다는 감각과 몸이 무겁다는 감각 두 가지였다. 손으로 눈을 비비려고 하자 낮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제야 밤새 테오도르와 함께 있었다는 것을 상기해 낼 수 있었다. 나는 부스스 눈을 떴다. 눈앞에 테오도르의 얼굴이 보였다. 그는 나를 다정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좋은, 콜록……. 좋은 아침이에요.”

    목이 잠겨 기침하자 그가 서둘러 물을 건넸다. 샴페인을 담았던 잔이라 그런지 묘한 단맛이 입에 달라붙었다.

    ‘아침인데도 되게 번듯하네…….’

    멀끔한 차림의 테오도르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나는 아직 옷을 입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고 화들짝 놀라 이불을 끌어당겨 몸을 가렸다.

    “왜, 왜 보고만 있었어요?”

    테오도르는 내가 왜 놀라는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기울였다. 우리가 밤새 서로의 몸을 확인했다고 하더라도, 아침 해가 뜨기도 전에 혼자 알몸으로 있는 건 부끄러웠다.

    “부끄러워요. 거기다가, 테오도르 경은 옷을 입고 있는데 나만 알몸이잖아요.”

    테오도르는 그제야 알았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나는 침대 가장자리에 널브러진 드레스를 꿰입었다. 옷은 구겨져 있었지만, 아무것도 입지 않는 것보다는 나았다.

    나는 겨우 몸을 일으켰다. 등이 욱신거리고 허벅지가 얼얼했다. 목은 다 잠겨서 따끔거렸다. 이 몰골을 벨에게 보인다고 생각하니 오싹해졌다. 눈치가 빠른 그녀는 어젯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순식간에 눈치채고 말 것이다.

    나쁜 짓을 한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부끄러운지 모를 일이었다. 투덜거리며 침대에서 내려오려고 하자, 테오도르가 나를 만류했다.

    “필요한 게 있으십니까?”

    “물을 더 마시려고요.”

    “누워 있으시면 제가 가져오겠습니다. 배가 고프지는 않으십니까?”

    테오도르는 내게 수프를 가져다주었다. 수프는 조금 식기는 했으나 여전히 따뜻했다. 물도 그렇고 수프도 그렇고 언제 이런 걸 준비했나 싶어 의아해 물어보자, 테오도르는 태연하게 말했다.

    “일어나시면 찾으실 것 같아 준비했습니다.”

    그렇게 말하곤 그는 필요하면 뜨거운 물주머니를 가져오겠다고 덧붙이기까지 했다.

    ‘왜 이렇게 잘하지?’

    가만히 수프를 떠먹다가 문득 의문이 들었다. 테오도르는 평생 수발을 들어온 사람처럼 너무나 능숙한 모습이었다.

    ‘쑥맥처럼 굴더니 사실은 경험이 많나?’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테오도르를 노려보았다. 그는 내 생각도 모르고 태연하게 내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 주었다.

    ‘어쩐지 어젯밤에도 묘하게 능숙한 것 같았어.’

    어렴풋한 기억 사이로 힘들다고 애원하는 나를 연신 미안하다고 달래던 테오도르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밑도 끝도 없는 의심을 하다 테오도르와 눈이 마주쳐 피식 웃었다. 그는 순박한 얼굴로 나를 살피고 있었다.

    “드시기 힘드십니까?”

    그래, 테오도르가 경험이 많으면 어떻단 말인가. 지금은 이렇게 나만 보고 있는데.

    “아뇨, 수프는 괜찮아요. 궁금한 게 생겨서요.”

    “예, 뭐든 말씀하십시오.”

    테오도르는 빈 수프 그릇을 받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나를 바라보았다. 순박한 얼굴에는 조금의 의심도 없었다. 나는 그의 새카만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헤집으며 물었다.

    “왜 이렇게 잘해요?”

    “예?”

    테오도르는 예상하지 못한 질문에 입을 벙긋거렸다. 나는 킬킬거리며 그를 놀렸다.

    “경험이 많아요? 나는 힘들어서 죽을 뻔했는데, 테오도르는 혼자 쌩쌩하고…….”

    “아니, 아닙니다. 힘드셨, 아니 힘드셨다고 말씀하시기는 했지만, 제가 자제를 못 해서…….”

    그는 눈에 띄게 버벅거리며 사과를 늘어놓았다. 그는 수줍게 아랫입술을 깨물었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처음이라, 최대한 열심히 했습니다.”

    그는 나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 자신이 귀동냥으로 들었던 것들을 최대한 활용했다고 털어놓았다. 겨우 들은 것으로 이렇게까지 할 수 있다는 말을 믿어야 할지, 아니면 천재라고 손뼉을 쳐야 할지 몰랐다.

    그러나 발그레한 뺨을 보면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었다. 나를 위해 열심히 했다는 말이 기꺼웠다. 나는 그의 팔을 쥐고 끌어당겼다. 내 몸의 배는 되는 몸인데도 쉽게 끌려왔다. 가슴 위로 테오도르의 머리를 꽉 끌어안았다.

    “있죠, 말해 준 적 없는 것 같아서 지금 말하는데요.”

    나는 테오도르를 끌어안고 키득키득 웃었다. 그래, 이게 행복이라는 거겠지.

    “사랑해요.”

    나는 그의 눈가에 입을 맞췄다. 테오도르가 환하게 미소 지었다.

    ― <당신을 위한 이혼은 없습니다>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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