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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위한 이혼은 없습니다 (90)화 (90/120)
  • 당신을 위한 이혼은 없습니다 90화

    무슨 소원이길래 이뤄지면 말해 준다는 건지 궁금했지만 더 캐묻지는 않았다. 고개를 끄덕이자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도 따라 일어서 주인에게 눈인사했다. 그녀는 팔찌를 두 개나 팔아서 기분이 좋은지 흐뭇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바가지를 씌운 것 같은데.’

    카지노를 짓는 비용은 알아도 세세한 시장 물가는 알 수 없으니 캐물어 봤자 별수 없을 것 같았다.

    나는 다시 거리를 구경하기 시작했다. 오만 잡동사니를 다 늘어놓으면 이런 모양이 될 것 같았다. 대나무로 만든 바람개비부터 무엇이 들었는지 알 수 없는 술통, 돌을 깎아 만든 펜촉 같은 것들이 늘어져 있었다.

    오가는 아이들의 손에는 넓적한 빵처럼 보이는 군것질거리가 들려 있었는데, 지나가면서 풍기는 냄새가 침샘을 자극했다.

    아이들이 나오는 곳을 되감듯 훑어보자, 시선 끝에 가게 하나가 걸렸다. 가게라고 부르기에는 허름한 곳이었다. 좌판에 빵을 늘어놓고 손님이 원하는 소스를 발라 주는 모습이 길거리 와플을 보는 것 같았다. 그곳으로 향하자 테오도르가 물었다.

    “드시고 싶으십니까?”

    “네, 맛있어 보여서요.”

    그는 잠시 입을 다물고 가게를 훑어보더니,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카를라 님, 저것은 식사 대용으로 먹는 것이라 여기서 먹기는 부적절할 것 같습니다.”

    “그런가요?”

    “예, 생각보다 더 포만감이 있어 드시기엔 힘드실 겁니다.”

    와플과 비슷해 보여서 간단히 먹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식사 대용품이라는 말에 아쉽게 발걸음을 돌렸다. 다 먹지 못할 음식을 들고 다니는 건 거추장스러웠기 때문이었다.

    대신 나는 다른 음식을 찾아보기로 했다. 수확 철 이후라 그런지, 아니면 원래 풍요로운 나라인지 다양한 음식이 있어 구경하는 것이 즐거웠다. 두꺼운 베이컨을 굽거나 큼직한 채소를 쪄서 얇은 빵에 싸 주기도 하고, 과일을 썩둑썩둑 썰어서 팔기도 했다. 삶은 달걀 껍데기에 그림을 그려서 파는 가게를 흥미롭게 바라보자 테오도르가 나를 만류했다.

    “신선하지 않은 달걀의 껍데기에 염색한 것뿐입니다. 상한 것이 들어 있을 때도 있어 조심해야 합니다.”

    신기하게 음식을 구경할 때마다 테오도르는 이런 식으로 그 음식을 깎아내렸는데, 그 같은 일이 세 번째 반복되자 그가 일부러 나를 방해한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길 가장자리에 서서 팔짱을 끼고 그를 노려보았다.

    “테오도르 경, 왜 자꾸 방해하세요?”

    “무, 무슨 말씀이신지.”

    내가 퉁명스럽게 쏘아붙이자 테오도르는 말을 더듬으며 시선을 피했다.

    “그렇잖아요. 자꾸 못되게 말씀하시는 걸 보니, 제가 음식을 사는 게 못마땅하신 거죠?”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정곡을 찌른 것 같았다. 그러나 테오도르가 백작도 아니고, 일부러 굶길 리는 없었다. 심술을 부리는 것이 아니라면 저렇게 쩔쩔매지도 않을 것 같았다.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돈이 부족해서 그러는 건가요? 아니면 잃어버렸어요?”

    소매치기를 당했나 싶어 물어보자, 테오도르는 크게 당황하며 손을 내저었다.

    “아닙니다!”

    그렇다면 더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는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사실은, 위생이 좋지 않은 곳으로 모시지 말라는 주의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아.”

    나는 마차에서 내린 후, 벨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얼마나 무섭게 주의를 시킨 건지, 그는 내가 조금이라도 깨끗하지 않은 곳에서 식사했다간 감염되어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괜히 무섭게 쏘아붙인 기분이었다. 김이 빠져서 팔짱을 낀 손을 내렸다.

    “난 또 뭐라고요. 그럼 앞으론 테오도르 경이 보기에 괜찮은 가게를 가르쳐 주세요.”

    내가 아무렇지 않게 대꾸하자 테오도르는 당황한 표정 그대로 입만 뻐끔거렸다.

    “왜 그러세요?”

    “아닙니다.”

    “아니라는 표정이 아닌데요.”

    테오도르가 내 표정을 살피며 역으로 물었다.

    “화를 내지 않으십니까?”

    “왜 화를 내겠어요? 날 걱정해서 해 준 말인데요.”

    나는 피식 웃으며 그의 팔을 가볍게 두드렸다. 이유를 알았으니 이제 정말로 요깃거리를 찾아볼 생각이었다.

    거리 끄트머리에 줄지어 있는 노점상을 지나자 넓은 광장이 나왔다. 광장 중앙에는 말을 탄 기사의 동상이 서 있었는데, 아이들이 올라타고 노는 탓인지 말 다리며 기사의 무릎이 반질반질해져 있었다.

    그 주변으로는 가게들이 줄지어 서 있었는데, 음식을 팔던 밖과는 달리 안쪽의 가게들은 사탕이며 과자를 팔고 있었다. 외관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어 얼핏 보면 고급품을 파는 가게처럼 보였다. 색을 입힌 각설탕과 꿀에 절인 꽃을 흥미롭게 바라보자 테오도르가 물었다.

    “구매하시겠습니까?”

    “그래도 괜찮을까요?”

    또 위생이 좋지 않다고 거절할까 봐 되묻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백화점이나 큰 가게에서 유통하는 것 중 외관에 하자가 있는 것을 싸게 매입한 것으로 보입니다. 거리에서 만든 것이 아니니 위생상 큰 문제는 없겠지요.”

    “백화점에서요? 이런 것들은 못 본 것 같은데요.”

    얼핏 예쁘게 보이기는 했지만, 백화점에서 파는 것처럼 고급스러워 보이지는 않았다. 꿀을 넣은 통이나 각설탕을 싼 종이는 아무래도 허술한 데가 있었다.

    “포장지까지 구해 올 수는 없었을 겁니다. 그대로 팔면 눈에 띄기도 하고요.”

    그는 설명을 퍽 잘했다. 신전에서 살다 온 게 아니라 한평생 축제 거리에서 살았다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나는 주변을 훑어보며 테오도르에게 말했다.

    “그럼 간단히 식사할 곳이 있을까요?”

    “조금 더 들어가시면 식당 거리가 있을 겁니다.”

    “여기서 고르고 싶어요. 신기한 게 이렇게 많은데 경험하지 못하면 속상할 것 같아요.”

    이왕 축제에 왔으니 맛이 없더라도 이 거리의 음식으로 배를 채우고 싶었다. 테오도르를 슬며시 올려다보자 그가 간신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상한 느낌이 들면 즉시 말씀해 주십시오.”

    “네!”

    나는 보호자의 허락을 받은 아이처럼 신나게 가게들을 둘러보았다. 그중 눈에 띄는 것은 빵 위에 이런저런 소스를 발라 주는 것이었는데, 이전의 가게와는 달리 빵이 얇았다. 소스도 고작해야 두 가지로, 하나는 꿀이고 하나는 버터였다. 간단히 먹기에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각각 하나씩 주세요.”

    주문을 끝내기도 전에 주인이 빵 위에 꿀과 버터를 발라 내밀었다. 나이프로 얇게 바른 소스는 빵에 쉽게 흡수되지 않아 찰랑거렸다. 내가 빵을 받자 테오도르가 주머니를 꺼내 값을 치렀다.

    “테오도르 경, 어느 쪽이 좋으세요?”

    “카를라 님이 고르시고 남은 것을 받겠습니다.”

    나는 테오도르에게 꿀이 발린 빵을 건네주었다.

    “잘 먹겠습니다.”

    그는 빵을 덥석 베어 물었다. 방 위에 고여 있던 꿀이 떨어지며 손가락을 타고 흘렀다. 테오도르가 혀를 내밀어 손가락을 진득하게 핥아 올렸다. 새빨간 혀가 흰 손가락을 느릿하게 훑자, 나도 모르게 죄를 지은 것 같은 마음이 들어 얼굴이 화끈거렸다.

    “빵도 꿀도 신선한 것을 쓴 것 같습니다. 카를라 님? 왜 그렇게 보시는…… 혹시 이쪽을 드시고 싶으셨습니까?”

    “아니에요. 그냥, 그냥 본 거예요.”

    너무 빤히 바라봤나 싶어 고개를 푹 숙이고 얼른 빵을 입에 물었다. 빵은 조금 딱딱하기는 했으나 먹을 만했고, 버터는 허브를 섞은 것인지 풀 냄새가 났다. 나는 기계적으로 빵을 우물거리며 방금 보았던 외설적인 장면을 머릿속에서 지우기 위해 애써야 했다.

    테오도르와 나는 축제 골목을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구경했다. 물건을 파는 가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온갖 사람이 몰려들어서 볼거리가 쏠쏠했다. 외발자전거로 묘기를 부리는 사람이나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 앞에는 작은 통이 놓여 있었는데, 사람들이 오가며 잔돈을 던져 주는 것이 보였다. 카드 게임을 하거나 다트 게임을 하는 모습도 보였다.

    “카를라 님.”

    “네?”

    정신없이 구경하는 도중 이름이 불려 고개를 들었더니, 테오도르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괜찮으십니까?”

    “그럼요.”

    갑작스러운 물음에 의아해 고개를 기울이자, 테오도르가 손을 뻗었다.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그는 손등을 내 뺨에 가볍게 가져다 대었다. 순간 얼굴이 화끈거리며 열이 올랐다. 보지 않아도 내 뺨이 붉어져 있을 게 뻔했다.

    “열이 있으십니다.”

    그건 테오도르가 얼굴을 만졌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부끄러움이 입을 막았다. 테오도르가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아까 드신 빵이 잘못된 것 같습니다.”

    나는 얼른 고개를 저었다.

    “사람이 많아서 피곤해서 그런 걸 거예요.”

    테오도르의 입에서 돌아가자는 말이 나올까 봐 필사적으로 변명을 늘어놓았다.

    “잠시 앉아 있으면 될 것 같아요.”

    내가 고집을 부리자 테오도르는 난처하다는 듯 윗입술로 아랫입술을 눌렀다. 그가 꿀을 핥던 모습이 생각나려고 해 양손으로 뺨을 감싸 감췄다.

    “쉬었는데도 열이 있으면 돌아갈게요.”

    슬며시 올려다보자 그 역시도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테오도르는 축 늘어진 눈썹을 올릴 생각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쉴 만한 곳을 찾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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