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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위한 이혼은 없습니다 (80)화 (80/120)

당신을 위한 이혼은 없습니다 80화

유모는 의아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가씨께서 그런 말을 적으실 리가 없지요.”

그녀는 나처럼 착실한 사람이 부정적인 말을 적을 리가 없다고 몇 번이나 되풀이했다. 그러곤 모든 글은 신이 읽을 수 있으니 한 글자를 적더라도 조심히 적어야 한다고 배우지 않았냐고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듣고 있자니 이상한 점이 떠올랐다.

카를라는 일기장에 백작에 대한 부정적인 말을 적어 놓았다. 그건 과거의 일이라 괜찮았던 걸까? 저택에서 보여 준 모습과 내가 일기장으로 읽은 카를라가 다를 수 있다는 생각에 등 뒤가 오싹했다.

‘유모는 카를라를 잘 아는 사람이야. 의심받아서는 안 돼. 자칫하다간 피데스에게 말을 흘릴지도 몰라.’

카를라에게 호의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에 느슨하게 대했던 게 잘못이었다. 유모가 다시 말했다.

“그런 짓은 안 하셨지요?”

한 마디 한 마디에 힘을 준 모양새가 어린아이를 타이르는 것 같아 나는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응. 물론이지. 안 했어. 그냥 물어본 거야.”

빤히 보이는 변명에도 유모는 금방 표정을 풀었다. 그녀는 내가 그런 걱정을 하는 건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해서라며 백작 저택의 요리사를 흉보았다.

나는 뻔뻔하게 유모가 해 주는 간식이 그리웠다며 말을 돌렸다. 그녀의 음식을 처음 먹어 본 주제에 거짓말이 술술 나왔다. 유모는 감격하느라 내가 왜 그런 질문을 했는지에는 관심을 거둔 것 같았다.

‘다행이야.’

유모가 좀 더 캐물었다면 의심받을 말을 했을지도 모른다. 아니, 지금도 위험한 상황이었는데 유모가 의심하지 않은 것뿐이었다. 아무래도 카를라와 오래 지낸 사람에게 이 상황에 대해 말하는 건 위험하다는 판단이 들었다.

‘피데스에게는 절대 들키면 안 돼.’

나는 유모의 입단속을 한 뒤 서재로 돌아가 다시 책을 뒤지기 시작했다. 피데스와 테오도르, 마지막에는 벨까지 붙어 책을 훑었으나 낙서 하나도 찾을 수 없었다.

그 뒤로도 여러 곳을 뒤졌지만, 수확은 없었다. 결국, 얻은 것이라고는 카를라가 공작이 되기 싫어했다는 것뿐이었다. 공작 내외의 모임이 먼 곳에서 이루어진 탓에 만날 수 없는 게 다행이었다. 내가 언제 말실수를 할지 몰라 무서웠다.

해가 뜨자마자 움직이겠다고 하는 나를 유모가 울다시피 만류한 탓에, 아침을 먹고 나서야 움직일 수 있었다.

“점심까지는 같이 먹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급할 것도 없으면서.”

공작이 도착하기 전 저택을 나설 생각이었기 때문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나는 어설프게 웃어 보였다. 피데스는 서운해했지만, 자주 들르겠다는 말에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엔 같이 연극 보러 가자. 어머니가 좋아하는 연극이 새로 열린대.”

“그러자. 편지할게.”

그녀를 다독이곤 도망치듯 저택에서 빠져나왔다.

‘공작가가 아니면 어디에 있을까. 왕에게 편지를 보여 달라고 해야 할까?’

심각한 표정으로 고민하고 있자 테오도르와 벨도 내게 말을 걸지 않았다.

갑작스럽게 마차가 멈추어 섰다. 몸이 휘청거리며 벽에 어깨를 부딪쳤지만, 이전에 수리해 둔 덕분에 아프지는 않았다. 또 마차에 문제가 생긴 건가 싶어 자리에서 일어나자, 마부의 비명이 들렸다.

“으아악!”

동시에 문이 거칠게 열렸다. 머리에 검은 천을 뒤집어쓴 사내가 날카로운 칼을 들고 문 앞에 서 있었다.

“나와!”

나는 겨우 비명을 삼켰다.

‘강도야.’

테오도르가 곧장 나를 자신의 등 뒤로 숨겼다.

“카를라 님, 나가시면 안 됩니다.”

문을 연 강도가 칼을 들이밀며 말했다.

“그 귀족 여자만 넘겨주면 너희는 그냥 보내 주겠다.”

창문 너머를 힐끔 바라보자, 비슷한 차림의 사내들이 마차를 둘러싸고 있는 것이 보였다. 척 보아도 다섯 명은 넘어 보였다. 테오도르는 허리춤에 찬 칼에 손을 얹었다.

벨은 바들바들 떠느라 자리에서 일어날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녀는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문만 바라보고 있었다.

“벨, 이리 와.”

내가 벨의 팔을 잡는 것보다 강도가 그녀를 잡는 것이 더 빨랐다. 벨은 순식간에 강도에게 잡혀 마차 아래로 끌려 내려갔다.

“꺄악!”

“벨!”

“카를라 님!”

순간 몸이 튀어 나갈 뻔했으나 테오도르의 팔이 나를 막아 주었다.

“쉽게 사람을 해치지는 않을 겁니다. 이른 아침이라 사람을 죽이면 눈에 띌 테니까요.”

침착하게 나를 달래었으나 그 역시 바짝 긴장했다는 것이 느껴졌다. 테오도르는 목소리를 낮춰 내게 말했다.

“좁은 공간에서 싸우면 카를라 님이 다치실 수 있으니, 밖으로 나가야 할 것 같습니다.”

꿀꺽, 마른침이 넘어갔다. 여기서 싸울 수 있는 사람은 테오도르 한 명뿐이었다. 나는 싸움은커녕 도망도 제대로 갈 수 있을지 몰랐다.

“저는 어떻게 하면 될까요?”

“제가 나가자마자 마차의 문을 잡고 버티실 수 있으십니까? 최대한 빨리 끝낼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문을 잡고 버틸 수 있을까 고민할 시간도 없었다. 어떻게든 버텨야 했다.

“네, 버틸게요.”

테오도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여자를 넘길 마음이 들었나?”

“아니.”

그는 단번에 자리를 박차고 마차 문을 향해 뛰었다. 테오도르는 강도를 향해 자신의 몸을 던졌다. 마차 밖으로 강도를 밀어내며 그가 외쳤다.

“카를라 님! 문을 닫으십시오!”

나는 얼른 마차의 문을 닫고 문고리를 꽉 틀어쥐었다. 문 너머로 칼이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사내들의 신음과 욕설이 마구잡이로 얽혔다. 귀를 막고 싶었으나 양손으로 문고리를 잡은 탓에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죽고 싶지 않으면 비켜! 윽!”

“카를라 님! 여시면 안 됩니다!”

창문 밖으로 테오도르를 볼 겨를도 없었다. 나는 죽을힘을 다해 문고리를 잡아당겼다. 문은 금방이라도 뜯겨 나갈 듯 덜컹거렸다.

‘제발, 제발 살려 줘요!’

나는 간절하게 빌었다. 여기서 죽고 싶지는 않았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테오도르 경?”

덜덜 떨며 묻자 곧바로 대답이 돌아왔다.

“카를라 님, 이제 문을 여셔도 됩니다.”

나는 천천히 손을 폈다. 얼마나 문고리를 강하게 잡고 있었는지 손이 쉽게 펴지지 않았다. 간신히 손을 떼고 문을 열자마자, 테오도르가 보였다.

“테오도르 경, 괜찮으세요?”

그의 제복은 흐트러지고 칼에 베여 엉망이었으나, 다행히 핏자국은 보이지 않았다. 땀에 젖은 머리카락이 테오도르의 뺨에 달라붙어 있었다.

“저는 괜찮습니다. 카를라 님은 괜찮으십니까?”

“덕분에요. 벨, 벨과 마부는요?”

“두 사람 다 무사합니다.”

그제야 나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무서운 상황이 끝난 탓인지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머리가 멍해 제대로 인식하기도 어려웠다.

“마님!”

벨이 눈물로 엉망이 된 채로 마차에 올라탔다. 그녀의 목이며 뺨에 피가 튄 자국이 보였다. 그러나 벨은 제 상처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내가 다치지 않았는지부터 살폈다.

“다친 곳은 없으세요?”

“나는 괜찮아.”

나는 손수건을 꺼내 그녀의 뺨과 목에 튄 피를 닦아 주었다. 손이 덜덜 떨렸다.

“마님, 저택으로 가자마자 의사를 부를게요. 많이 놀라신 것 같아요.”

“으, 응. 그래. 아니, 잠시, 잠시만.”

나는 울먹이는 벨의 손에 손수건을 쥐여 주고는 테오도르를 바라보았다.

‘생각해야 해. 이건 평범한 강도가 아니야.’

공포로 제대로 머리가 돌아가지 않았지만, 필사적으로 눈을 깜빡였다.

“테오도르 경, 우리를 습격한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나요?”

“상처를 입혀 도망가지 못하게 해 놓았습니다. 처리할까요?”

테오도르가 다시 칼에 손을 얹었다. 칼 손잡이에는 갓 튄 피가 진득하게 묻어 있었다. 고개를 저었다. 죽이기 전에 물어야 할 게 있었다.

“아니, 아니에요. 일단 물어볼 게 있어요.”

나는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테오도르가 얼른 부축했다. 마차에서 내리자, 검은 천을 뒤집어쓴 사내들이 팔이나 다리에 큰 상처를 입고 널브러져 있었다. 바닥은 피범벅이었다. 나는 그중 가장 가까운 곳에 누워 있는 남자의 천을 벗겼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얼굴이었다. 그는 인상을 쓰고 나를 노려보았으나, 반격할 힘은 없는 것 같았다. 피가 흐르는 다리를 붙잡고 헉헉거리는 남자를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누가 사주했지?”

“우리는 그냥 돈을, 돈을 벌어 보려고 지나가는 아무나 잡아서…….”

거짓말이었다. 귀족의 마차를 무작위로 골랐다기엔 지금은 너무 이른 시간이었다. 인질을 잡아 돈을 빼앗으려면 늦은 시간 집으로 돌아가는 마차를 잡았어야 했다. 피곤함에 지친 귀족을 어둠 속에서 몰래 납치하는 게 밝은 아침에 사람을 납치하는 것보다 쉬울 테니까.

나는 그의 다리를 구두로 밟았다. 체중을 실어 밟자 남자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으으으윽!”

그는 제대로 비명을 지르지도 못하고 고통스럽게 뒹굴었다. 나는 떨리는 몸을 감추기 위해 목소리를 높였다.

“똑바로 대답해. 누구의 사주로 날 죽이려고 했지?”

“주, 죽이려던 건 아니고……. 겁만, 겁만 주라고 해, 했습니다.”

“그러니까 누가!”

내가 다시 다리를 밟을 시늉을 하자 남자가 허겁지겁 손으로 마차를 가리켰다. 그의 피 묻은 손가락이 가리키는 것은 마차 겉면에 찍혀 있는 백작가의 문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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