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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위한 이혼은 없습니다 (77)화 (77/120)

당신을 위한 이혼은 없습니다 77화

나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았다. 당장이라도 무릎에 힘이 풀릴 것 같았다. 몸이 휘청거리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정말로 신이 대답해 줬다는 거지. 나는 돌아갈 수 없다고.’

머리가 복잡했다. 돌아갈 수 없다는 건 어렴풋하게 느끼고 있었다. 다른 일에 신경 쓰자, 당장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뇌까리며 몇 번이나 눈을 돌렸다. 그러나 이제는 직시해야만 했다.

‘신이 돌아갈 수 없다고 말했으니 계속 카를라로 살아야 할지도 몰라.’

어깨가 무거웠다. 무기력이 덩어리가 되어 몸에 달라붙는 것 같았다. 벗어날 수 없는 몸에 갇힌 기분이었다.

‘실컷 이 몸을 써 놓고 지금 와서 이런 생각을 하는 것도 우습긴 하다만.’

나는 자조했다. 불행히 발생한 사건이 아니라 누군가의 의도에 의한 일이라면, 가장 큰 피해자는 카를라였다. 나는 멋대로 그녀의 몸을 차지한 이물질이고, 악령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카를라가 신이 말했던 ‘그녀’라면,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이런 일을 벌였단 말인가. 도통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녀’라는 게 카를라가 아닐 가능성도 있었으나, 지금 당장 다른 사람을 떠올리기는 어려웠다. 카를라는 나를 이곳에 불러왔고, 내가 돌아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왜?’

이유를 알 수 없어 더욱 머리가 지끈거렸다.

‘카를라가 왜 나를 여기에 불러온 건데? 나랑 무슨 연관이 있다고?’

눈앞이 핑 돌았다. 머리를 붙잡고 한참을 꼼짝 않고 서 있자 테오도르가 말을 걸었다.

“카를라 님, 괜찮으십니까?”

나는 습관처럼 괜찮다고 말하려고 했으나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목이 꽉 멨다. 기도에 무언가가 가득 차 말을 토해 낼 수가 없었다. 대답 대신 고개를 저었다.

테오도르의 손이 조심스럽게 어깨를 감쌌다. 그가 고개를 숙여 상태를 확인하려고 시도했다. 그것이 단지 나를 걱정해서라는 걸 알았지만, 엉망인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손으로 얼굴을 가리자 그가 물었다.

“제가 보는 것이 싫으시다면 고개를 끄덕여 주십시오.”

고개를 끄덕이자 테오도르가 손을 거뒀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위대한 분의 대답에 무슨 문제가 있었습니까?”

그가 자상하게 묻자 괜히 서러움이 밀려왔다. 그 ‘위대한 분’이 나는 집으로 돌아갈 수 없대요. 그렇게 쏘아붙이고 싶었으나 입술 사이로 흘러나오는 것은 묵직한 숨소리뿐이었다. 치맛자락에 동그란 자국이 생겼다. 어설프게 쌓아 두었던 바닥이 와르르 무너져 서러움이 나를 잠식했다.

한참 후에야 내가 울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어쩌지. 우는 모습을 누군가에게 보이는 건 싫었다. 분명 근처에 벨이 있을 텐데, 이런 모습을 보이면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해할 게 뻔해 보여 주고 싶지 않았다.

왜 우는지도 모르고 울었다. 치마 위로 눈물이 얼룩졌다. 그러다 여기가 신전이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남에게 이런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는 판단에 뺨을 문질렀으나 눈물은 쉽게 걷히지 않았다. 그저 숨을 죽이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여기는 신전인데, 울더라도 마차에 돌아가서……. 적어도 남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 울어야 하는데.’

누군가 우는 모습을 보며 동정하거나 허튼 말을 퍼트리는 게 싫었다.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나는 이를 악물고 소리를 죽였다. 신전에 사람이 많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이 모습을 누가 보지는 않았겠지. 얼굴을 문질러 닦아도 자꾸만 눈물이 나왔다.

“무례를 용서해 주십시오.”

나는 순간 그가 무슨 짓을 하든 다 용서할 거라고 대답할 뻔했다. 아무렴 집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보다 더 나쁜 일이 있을까. 고개를 끄덕이려는 순간 머리 위로 두꺼운 천이 떨어졌다.

반사적으로 몸을 웅크렸으나 부질없는 짓이었다. 몸은 공중으로 붕 떠올랐다.

“불편하시겠지만, 잠시만 견뎌 주십시오.”

흔들리는 몸이 내가 그에게 안겨 있다는 것을 알려 주었다. 놀란 바람에 눈물이 쏙 들어갔다. 내 몸을 덮은 묵직한 천에서 언젠가 맡아 보았던 비누 냄새가 났다.

‘재킷을 벗어서 가려 준 거구나.’

테오도르가 벨에게 무어라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문이 달칵거리는 소리가 나고, 곧 몸이 아래로 내려갔다. 푹신한 것이 다리에 닿았다. 슬며시 재킷을 걷자, 테오도르가 입을 열었다.

“곧바로 마차로 모시는 것보다 나을 것 같아 신전의 방을 빌렸습니다.”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테오도르가 나를 내려준 곳은 넓은 소파였다. 나는 방을 훑어보았다. 서랍 위에 붕대와 약병이 뒹굴고 있는 것을 보니 의무실 같은 곳인 것 같았다.

“위대한 분의 답을 받고 어지럼을 느끼셨다고 말해 두었습니다.”

테오도르는 종종 현기증을 느끼는 사람이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며 말을 덧붙였다.

입술을 꾹 깨물었다. 고맙다는 말을 하면 울먹이는 목소리가 샐 것 같았다. 그가 어떻게 말을 해 주었는지, 벨은 따라 들어오지 않았다. 한참을 진정한 후에야 그가 입을 열었다.

“무례를 사과드립니다.”

“아뇨, 괜찮아요. 오히려 고마웠어요.”

테오도르는 내가 왜 고맙다고 말하는지 모르는 눈치였으나 굳이 설명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그가 나를 그렇게 안아 들고 움직이지 않았다면, 언제까지고 그 자리에서 울었을지도 모른다. 그는 머뭇거리다가 무릎을 꿇고 나를 올려다보았다.

“괜찮으십니까?”

테오도르가 물었다. 그의 물음은 서러움을 밀려오게 하는 버튼 같았다. 엉망이 되었을 게 분명한 얼굴로 그를 마주 보았다. 테오도르는 언제나처럼 자상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눈빛에는 걱정과 연민이 가득했다.

“안 괜찮아요.”

나는 겨우 목소리를 짜내 뱉었다.

“이제 집에 돌아갈 수 없대요.”

목소리는 형편없이 덜덜 떨리고 있었고, 내 목에서 나온 게 아닌 것처럼 엉망이었다. 나는 아무렇게나 지껄이기 시작했다.

“나는 카를라가 아닌데, 집에 돌아갈 수 없다니, 어째서죠? 이유를 물으니까 그냥 그녀가 원해서 그런 거래요. 그녀가 누군지도 가르쳐 주지 않고 가 버렸어요.”

횡설수설 뱉는 말에도 테오도르는 불평하지 않았다. 그저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래서 안 괜찮아요. 집에 가고 싶어요…….”

다시 둑이 무너지듯 울음이 터졌다. 한참을 울어 더는 나올 것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눈물은 끝없이 쏟아졌다. 구체화한 서러움은 멈추지 않고 눈물샘을 짓눌렀다. 뺨 아래로 굵은 눈물이 후두둑 떨어져 테오도르의 재킷을 적셨다. 그는 얼굴을 문지르는 나를 보더니, 천천히 손을 뻗어 눈물을 훑어 주었다.

“자꾸 만지시면 상처가 날지도 모릅니다.”

테오도르의 손이 눈가를 부드럽게 스쳤다. 그의 말대로 눈물이 멎자 뺨이 따끔거리기 시작했다. 테오도르는 서랍을 뒤져 천을 찾아 내밀었다. 천에서는 약 냄새가 났다. 눈물이 멎자 그 자리를 채우는 것은 부끄러움이었다.

“부끄럽네요. 추태를 보였어요.”

그는 손가락으로 얼굴에 남은 물기를 닦아 주고는,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추태라니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이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길게 숨을 뱉었다. 나는 천천히 생각을 더듬었다.

“정말 카를라가 날 이곳으로 불러왔다면, 이유가 뭔지 알고 싶어요. 다시 신과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요?”

테오도르가 고개를 저었다. 신과 이야기하는 건 흔한 일이 아닌 모양이었다. 애초에 모든 질문에 대답해 주지 않는다고 하기도 했고. 테오도르는 무언가를 깊게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카를라 님, 그러니 이전의 카를라 님이 위대한 분에게 무언가를 빌어서 이런 일이 생겼다면, 그 기록이 아직 남아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신은 대답을 해 주면 글을 다 지워 버리는 게 아닌가요?”

글자가 사라지던 종이를 떠올리며 말하자 테오도르가 고개를 저었다.

“답을 바라는 글자에 답을 주었으니 거두어 가신 것뿐입니다.”

그가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덧붙였다.

“사제들이 쓰는 종이가 아니면 답을 주시는 경우가 잘 없으니, 카를라 님이 바라신 것은 아직 그대로 남아 있을 겁니다. 그것을 찾아보시는 건 어떠십니까?”

정말이지 좋은 생각이었다. 눈물로 어지럽던 머리가 단번에 맑아지는 것 같았다. 카를라가 신에게 빌어서 내가 이 세계에 오게 되었다면 분명 어딘가에 남겨 놓은 글이 있을 것이다. 갑작스럽게 몸이 바뀌었으니, 카를라가 그것을 없앨 시간도 없었을 것이고. 나는 머리를 마구 끄덕였다.

“좋은 생각이에요.”

“그럼 마차를 부르겠습니다. 잠시 앉아 계시면…….”

“아뇨, 같이 나가죠. 벨을 계속 걱정시킬 수도 없는 노릇이니.”

자리에서 일어나자 테오도르가 당황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금방이라도 다시 앉아 휴식을 취하는 게 좋겠다고 권할 것 같아 나는 얼른 어깨에 걸친 재킷을 벗어 그에게 돌려주었다.

“감사했어요. 그리고 테오도르 경의 휴일을 망쳐서 미안해요. 휴가는 다른 날로 잡아도 좋아요.”

“제게는 충분한 휴식이었습니다.”

“그렇게 말하면 더 미안해지는 거 알아요?”

내가 농담처럼 뱉자 테오도르가 입을 다물었다. 다시 단정하게 재킷을 입은 그가 내게 손을 내밀었다.

“모시겠습니다.”

나는 그의 손 위에 손을 얹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밝혀내야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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