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신을 위한 이혼은 없습니다 (73)화 (73/120)
  • 당신을 위한 이혼은 없습니다 73화

    유리병에 든 거머리는 힘없이 몇 번 꾸물거리다가 늘어지기를 반복했다. 징그러운데도 자꾸만 시선이 갔다.

    거머리는 이빨이 날카로워 피부에 한번 박히면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억지로 떼어 내려고 하면 피부가 벗겨질 각오를 해야 한다.

    ‘예전에 거머리를 잘못 삼켜서 식도가 상한 사람의 기사를 본 적이 있어.’

    나는 백작에게 거머리를 먹일 생각이었다. 직접 손을 쓸 필요도 없었다. 백작에게 가는 식사 위에 거머리를 뿌려 놓으라고 하녀에게 명령만 하면 되니까.

    먹이는 데 성공해서 식도가 다치든, 아니면 먹기 전에 발견하든 상관은 없었다.

    ‘백작도 내가 죽거나 다치거나 어느 쪽이든 상관없었겠지.’

    내가 다치면 한동안 저택이 조용할 것이고, 죽으면 유산은 모두 백작의 것이 된다. 그로서는 어느 쪽이든 이득일 것이다. 나 역시 그랬다. 그가 거머리를 먹어 목을 다치면 복수가 될 것이고, 먹기 전에 발견해도 음식에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는 공포를 심어 줄 수 있을 것이다.

    벨은 인상 한번 찌푸리지 않고 착실히 명령을 이행했다. 주방 하녀와 친한 덕분인지 그녀는 쉽게 백작의 식사를 가로챌 수 있었다.

    “마님, 전달하고 왔습니다.”

    건포도가 섞인 샐러드 위에 거머리를 풀어 놓으니 감쪽같았다고 보고하는 벨의 목소리에는 뿌듯함이 묻어 있었다.

    “그래? 수고했어.”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멀리서 요란한 비명이 들렸다. 끓는 물에 목을 지지는 것처럼 텁텁하고 껄끄러운 소리였다. 사용인들이 급하게 뛰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밖이 소란스러운데 살피고 올까요?”

    “아니. 직접 확인하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나섰다. 백작이 울부짖는 꼴을 내 눈으로 볼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벨과 테오도르가 내 뒤를 따랐다.

    백작의 방은 소란스러웠다. 사용인 몇 명이 문 앞에서 쩔쩔매고 있다가 인기척을 느끼고 뒤를 돌아보았다. 그들은 나를 보자마자 시선으로 바닥을 가리켰다.

    “마님!”

    바닥에는 깨진 그릇 파편이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었다. 문에 찍힌 자국이 있는 것으로 보아 백작이 그릇을 던진 모양이었다.

    “그, 배, 백작님이…….”

    사용인들은 바짝 굳어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나는 손짓으로 그들을 물리고 방 안을 훑어보았다. 백작은 목을 긁으며 이불 위를 뒹굴고 있었고, 집사와 리자가 침대에 달라붙어 쩔쩔매고 있었다.

    ‘적어도 한 마리는 먹었나 보네.’

    백작이 고통스러워하는 걸 보니 웃음이 절로 나와 입가를 가려야 했다. 고개를 숙이자 바닥에 흩어진 샐러드와 건포도, 거머리 몇 마리가 보였다. 나는 슬쩍 구두 굽으로 거머리를 밟아 으깨었다. 짓이겨진 거머리는 얼핏 보아서는 건포도와 분간할 수 없었다.

    “뭣들 하나? 정리하게.”

    “네, 네!”

    사용인들이 바닥을 전부 치우고 나서야 백작의 비명이 멎었다. 물을 얼마나 흘린 건지 이불이 흠뻑 젖어 있었다. 이불 위에 늘어진 백작의 팔은 뼈마디가 앙상하게 튀어나와 있었다.

    나는 혀를 차며 방 안으로 들어갔다. 창문을 활짝 열어 둔 상태인데도 아편 냄새가 쉬이 가시지 않았다. 이런 방에 선 듯 들어온 집사와 리자가 대단할 지경이었다.

    “무슨 일인가?”

    헉헉거리며 숨을 쉬는 백작을 무시하고 바로 집사에게 시선을 돌렸다.

    “백작님의 식사에 이상한 것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녀는 침착하게 보고했으나, 눈동자는 가볍게 떨리고 있었다. 집사는 거머리를 제대로 보지 못한 것 같았다. 나는 시선을 내리깔고 그녀에게 압박을 가했다.

    “이상한 것? 그게 뭐지?”

    “그게 뭔지는 저도 잘…….”

    “버, 벌레가 있었어! 벌레가 내 목을 물었다고!”

    때마침 백작이 침대 가까이에 굴러떨어진 건포도를 손가락질하며 고함을 질렀다. 사용인들이 미처 치우지 못한 모양이었다.

    “저것, 저것이 내 목을 물었어!”

    벨이 허리를 굽혀 백작이 가리키던 것을 주웠다. 혹시나 해 다시 살펴보았지만, 건포도가 확실했다. 나는 벨이 내민 것을 받자마자 백작의 무릎 위로 던졌다.

    “으아악!”

    백작이 손을 마구 휘저었다. 건포도는 하얀 시트 위를 이리저리 굴러다니다가, 집사의 손가락에 닿아 멈추었다. 그녀는 건포도를 보고는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쯧. 건포도에 놀라 그릇을 던지다니. 이래서야 남아 나는 식기가 없겠어.”

    짜증스럽게 뱉자 집사가 얼른 입을 열었다.

    “마님, 백작님께서는 그저…….”

    “그냥 정신이 나간 거지.”

    나를 설득하려는 집사에게 단호하게 대답했다. 누가 보더라도 백작은 정신이 나간 사람이었다. 건포도를 보고 벌레라며 목을 긁어 대었으니까. 집사 또한 그에 반박할 수 없었는지 식은땀만 흘렸다.

    “앞으로 사흘간 식사를 넣지 말게. 굶으면 머리가 맑아진다는 말도 있지 않나.”

    “백작님은 쇠약해져 계십니다. 음식을 드시지 못하면 쓰러지실지도 모릅니다.”

    집사가 당황하며 말했다. 물론 백작은 이전보다 많이 여위었으나, 소리를 지를 기운은 충분히 남아 있어 쇠약하다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았다.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쇠약한 사람은 접시를 던지지 않지.”

    “마님, 너무하십니다.”

    집사가 어떻게 그런 극악무도한 짓을 할 수 있냐는 투로 나를 나무랐다. 나는 그녀의 입을 막기 위해 치졸한 협박을 들먹거렸다.

    “그래? 앞으로 깨질 접시 값은 그대의 봉급에서 차감하도록 할까?”

    집사는 봉급이 깎였던 경험을 떠올렸는지 짧게 몸서리를 쳤다. 리자는 분위기를 살피며 눈치를 보다가, 이내 자리를 옮겨 벨의 옆에 섰다. 백작은 무어라 말을 하려 했으나 목이 쉬었는지 입을 뻐끔거리기만 할 뿐이었다.

    나는 그와 눈을 마주쳤다. 이번에는 웃음을 숨기지 않았다.

    * * *

    백작이 거머리에 충격을 받아 다른 생각을 못 하는 동안 테오도르와 신전을 둘러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정신이 온전치 않은 백작을 위해 기도한다는 핑계도 있으니 적당한 타이밍이기는 했다. 마음 같아서는 마차가 고쳐지는 대로 출발하고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테오도르의 몸 상태가 마음에 걸려.’

    그러나 그의 등이 아직 멍으로 얼룩덜룩할 게 뻔한데 여기저기 끌고 다닐 수는 없었다. 신전에 간다고 해서 크게 몸이 상하지는 않겠지만, 저택에서 휴식을 취하는 것보다 좋을 것 같지는 않았다.

    나는 곧장 테오도르를 불러 휴일을 주겠다고 말했다.

    “사흘 동안 테오도르 경도 쉬도록 해요.”

    “그럴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는 휴가를 반기지 않았다. 갑작스러운 휴가에 당황했나 싶어 이유를 말해 주었으나, 그는 여전히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저 때문에 다친 사람에게 계속 일을 시킬 수는 없잖아요.”

    “크게 다친 것도 아닙니다. 팔이나 다리가 부러진 것도 아닌데 휴일을 받을 수는 없습니다.”

    “어차피 저는 계속 저택 안에 있을 거예요.”

    테오도르는 완강했다.

    “정신이 온전치 않은 사람이 저택에 있으니, 경계를 늦출 수는 없습니다.”

    그는 백작을 완전히 미친 사람 취급하며 나의 안전을 걱정했다. 테오도르는 이전에도 백작이 나를 때리려 한 적이 있지 않냐며 호위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소중하게 여겨지는 것 같아 괜히 웃음이 나왔다. 최대한 표정을 갈무리하며 테오도르를 설득하려고 했다.

    “그렇다고 계속 혹사할 수는 없어요. 의사가 말했잖아요. 많이 움직이지 말라고요.”

    “혹사가 아닙니다.”

    테오도르는 평상시에도 고강도의 업무를 하고 있었다. 새벽부터 저녁 늦은 시간까지 나를 따라다녀야 할 뿐만 아니라 지키기까지 해야 했다.

    그저 회사에 앉아 있기만 해도 피로가 쌓이는데, 항시 주변을 경계해야 한다니 얼마나 피곤할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그런데 다친 몸으로도 연속 근무를 해야 하다니, 한국이었으면 고소감이었다. 더 일찍 그를 쉬게 해 주었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안해서 그래요. 나를 지키려다가 다친 건데, 제대로 쉴 수도 없잖아요. 마음 같아서는 멍이 다 나을 때까지 푹 쉬라고 하고 싶을 정도예요.”

    “저는 정말 괜찮습니다.”

    “테오도르 경이 하루도 쉬지 않으면, 마음이 너무 불편해서 경의 얼굴을 볼 수가 없을 것 같아요.”

    강경하게 휴식을 권하자 마침내 테오도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하루만 쉬겠습니다.”

    휴식을 더 권하고 싶었으나 하루 이상 쉴 수는 없다는 그의 고집에 결국 지고 말았다.

    “그럼 언제부터 쉬는 게 좋으세요? 오늘? 아니면 내일부터? 저는 어느 쪽이든 상관없어요.”

    날짜를 조율하기 위해 묻자, 테오도르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그에 대해 부탁드릴 것이 있습니다.”

    “편하게 말씀하세요.”

    겨우 휴일을 조정하기 위한 대화일 뿐인데 그는 매우 비장해 보였다. 테오도르의 입술이 달싹거렸다. 덩달아 나도 긴장감이 들어 손을 꽉 쥐었다. 마침내, 그의 입술이 벌어졌다.

    “얼마 전 권해 주셨던 제안이 아직 유효하다면, 제 휴일에 잠시 어울려 주시지 않겠습니까.”

    “그 말은…….”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이전에 내가 권했던 것이라면 하나밖에 없었다.

    “호위가 아니라 동행인의 신분으로 함께 신전을 방문하고 싶습니다.”

    테오도르의 새파란 눈이 나를 바라보았다. 깜빡임조차 없는 그 눈빛은 애절함마저 담고 있었다. 거절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