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위한 이혼은 없습니다 72화
집사는 내가 마차에서 내리자마자 눈에 띄게 당황했다. 그녀의 얼굴에는 핏기가 없었고, 손은 덜덜 떨리고 있었다. 그녀의 눈이 나와 테오도르를 연신 번갈아 훑어보는 것이 느껴졌다.
“마, 마님, 어째서 벌써 돌아오신…….”
“내가 이르게 돌아오면 안 될 일이라도 있는가?”
“아, 아닙니다.”
날카롭게 묻자 집사는 미적거리며 문을 열었다.
“마차에 문제가 생겨 돌아왔네.”
나는 어깨 위에 걸치고 있던 재킷을 테오도르에게 건네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지금 집사를 추궁해 봤자 발뺌할 게 뻔해.’
집사가 마차에 손을 대었다는 증거는 없다. 증인도 없다. 그녀를 쫓아낼 수는 있지만 그래서는 그저 트집을 잡아 집사를 내쫓은 백작 부인이 될 뿐이다.
“마차 수리가 끝나면 마부에게는 이틀 정도 휴가를 주도록 해. 말들이 크게 놀란 것 같지는 않지만, 혹시 모르니 꼼꼼하게 살피도록 하고.”
빠르게 명령을 쏟아내고는 방으로 향했다. 집사가 허둥거리는 동안 주방에서 뛰어나온 벨이 빠르게 따라붙었다.
“마님, 오셨어요.”
“응, 내가 없는 동안 무슨 일 없었니?”
벨은 능숙하게 대답했다.
“백작님이 찻잔을 던지셨어요. 찻잔 두 개가 깨져서 식기 세트를 새로 사야 할 것 같아요.”
방문을 열자, 테오도르가 문 앞에서 묵례했다. 이런 상황인데도 문 앞을 지키겠다는 듯한 행동에 웃음이 나왔다.
‘성실해도 너무 성실하잖아.’
셔츠 깃의 안쪽이 땀으로 젖어 있는 것이 보였다.
“테오도르 경, 저는 씻고 바로 잘 예정이에요. 그러니 지금 들어가셔도 좋아요.”
테오도르는 잠시 머뭇거리다 대답했다.
“주무실 때까지 문 앞을 지키겠습니다.”
그에게 오늘은 힘들었으니 일찍 자라는 말을 해 봤자 듣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양손으로 뺨을 가리고 부끄러운 척, 시선을 내리깔았다.
“오래 목욕을 할 예정이라 부끄러워 그래요.”
테오도르는 그것이 왜 부끄러운지 모르는 얼굴이었다. 나는 재빨리 설명을 덧붙였다.
“얼마나 오래 씻는지 경에게 알려드려야 하잖아요.”
그제야 그가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말을 더듬기까지 했다.
“그, 그럼 지금 들어가겠습니다. 위대하신 분이 카를라 님의 밤을 지켜 주시길.”
“좋은 밤 되세요.”
사실 그리 부끄러운 일은 아니었으나, 테오도르는 철석같이 내가 부끄럼을 탄다고 믿는 모양이었다. 방문을 닫자마자 벨은 마치 식자재를 얼마나 사들였는지 보고하는 투로 말을 이었다.
“어젯밤에 백작님의 방에 집사가 들어가는 걸 잉게가 봤대요.”
역시 백작이 마차에 수작질을 부린 게 분명했다. 벨이 목이며 팔에 걸린 장신구를 풀어 주는 동안 생각에 잠겼다.
‘백작은 내가 크게 다치길 원한 걸까, 아니면 위협만 하려고 했던 걸까.’
어느 쪽이든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오늘은 테오도르가 있어 마차가 넘어갔어도 무사했지만, 그가 없었더라면 십중팔구 어디 한 곳은 부러졌을 것이다. 아니, 머리를 부딪쳤더라면 죽었을지도 몰랐다.
“마님! 어깨에 멍이 들었어요.”
드레스를 벗기던 벨이 깜짝 놀라 외쳤다.
“아, 응. 마차가 뒤집힐 때 부딪힌 모양이네.”
“네? 마차가 뒤집혀요?”
벨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녀는 당장이라도 내가 죽을 것처럼 굴었다.
“다른 곳은 괜찮으세요? 의사를 부르겠습니다. 혹시 팔을 움직이실 수는 있으세요?”
이미 늦은 시간이라 의사를 부를 수도 없었으나, 당황한 탓에 거기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못한 모양이었다. 흘낏 거울을 보니 벨의 말대로 푸른 멍이 어깨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의사를 부를 일은 아니야. 심하게 다친 것도 아니고.”
“하지만…….”
“괜찮다니까.”
벨은 내 옆에서 떨어지려고 하지 않았다. 그녀는 목욕 시중을 들면서도 연신 멍든 곳을 안쓰럽게 바라보았다. 뜨거운 물에 잠겨 있으니 정신이 멍해졌다.
‘당장은 허튼짓을 할 수는 없을 거야.’
백작은 아편을 구하기 위해 바빴고, 아편을 구하지 못하면 술에 취해 있어 제정신인 날이 거의 없었다. 간신히 아편을 구한 후에는 방에서 나오지 않으니 지금 당장 다른 행동을 할 시간이 없을 것이다. 집사도 섣불리 굴 수는 없으니 당분간은 조용할 테고.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지.’
그렇다고 가만히 앉아서 다음 행동을 기다려 줄 생각은 없었다. 긴장이 풀린 탓인지 어깨며 등이 욱신거렸다. 테오도르가 감싸 줬는데도 몸에 멍이 들다니, 얼마나 위험했는지 실감이 났다.
‘내가 이 정도면 테오도르는…….’
순간적으로 나를 감싼 테오도르는 더 심하게 다쳤을 게 분명했다. 재킷을 벗었을 때 셔츠에 피가 묻어나지는 않았지만, 혹시 모를 일이었다.
“벨, 내일 해가 뜨자마자 의사를 불러.”
벨의 눈이 큼지막해졌다. 그녀는 뺨의 주근깨가 붉어질 정도로 당황했다.
“역시 어깨가 아프신가요? 주방에 있는 연고라도 가져올까요?”
“내가 아니라 테오도르 경의 상태를 봐 달라고 하려고. 나를 감싸느라 다쳤을 수도 있다는 걸 지금 떠올렸지 뭐니.”
“네? 성기사님이 다칠 정도로 위험한 상황이었나요?”
상황을 설명했지만, 벨은 내일 당장 의사를 보는 것은 물론이고 지금 당장 연고를 발라야 한다며 강경하게 나왔다. 고약한 냄새가 나는 연고를 어깨에 치덕치덕 바르고 나서야 그녀는 나를 놓아주었다.
* * *
아침 식사 전부터 의사를 부르겠다는 말에 저택은 잠시 소란이 일었다. 마차를 쓸 수 없는 탓에 의사를 부르기가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그 때문이 아니더라도 집사는 눈에 띌 정도로 벌벌 떨며 내 눈치를 보았다.
“서, 설마 다치셨습니까?”
“아니. 나는 무사해. 테오도르 경이 감싸 준 덕분에 다친 곳은 없어.”
집사는 내가 다치지 않았다는 말에 안심한 듯 가슴을 쓸어내렸다가, 이번에는 테오도르의 안위를 물었다.
“성기사님이 많이 다치셨습니까?”
“그건 의사가 와 봐야 알겠지.”
이렇게 간이 작은 주제에 어떻게 마차에 톱질했는지 모를 일이었다. 어쩌면 다치지 않으리라 생각하고 그렇게 대담한 짓을 저질렀을지도 모르겠다. 어느 쪽이든 집사가 백작의 사주를 받았다는 건 달라지지 않지만 말이다.
사용인 중 가장 말을 잘 타는 사람을 시켜 저택 가까이에 사는 의사를 부르게 했다. 다행히 의사는 아침 식사 직후 저택에 도착했다.
호위 기사와 멀리 떨어지고 싶지 않다는 핑계로 나는 테오도르의 진찰을 가까이서 구경할 수 있었다. 그는 사람들 앞에서 웃옷을 모두 벗고 있는 것이 부끄러운지 자꾸만 목덜미를 긁적거렸다.
테오도르는 자신은 멀쩡하다고 주장했으나, 진찰 결과 등이며 허벅지에 피멍이 들어 있었다. 문외한이 보아도 심각한 상처였다.
“아이고, 피멍이 이렇게 많이 들어서. 팔은 들 수 있겠어요?”
“그렇게 아프지 않았습니다. 팔도 제대로 들 수 있고, 거동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나이 많은 의사는 테오도르의 허세에 하하 웃으며 그의 등을 손바닥으로 후려쳤다.
“윽!”
“피가 이만저만 고인 게 아니군, 쯧쯧. 어찌 참았는지 모르겠군요.”
의사는 테오도르의 상처에 거머리를 붙이기 시작했다. 시커먼 벌레들이 꿈틀거리며 피를 빨아내는 것은 그리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었다.
“제가 미리 알아챘어야 했는데, 미안해요.”
“아닙니다. 보기만 요란할 뿐, 저는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테오도르는 허세를 부렸으나, 피멍이 잔뜩 든 등이 더욱 안쓰러울 뿐이었다.
한참 피를 빤 거머리가 후두둑 바닥으로 떨어지자 근처에 서 있던 리자가 으으, 하고 앓는 소리를 냈다. 그녀는 최대한 테오도르에게 시선을 주지 않으려 애쓰며 의사에게 젖은 수건을 가져다주었다.
“피가 안쪽으로 고이지 않도록 빼내었으니, 크게 움직이지만 않으면 금방 멍이 빠질 겁니다.”
의사는 젖은 수건에 손을 닦으며 테오도르에게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버틴다고 만사가 해결되는 게 아니라는 이야기였다. 의사의 말이라 부정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이지도 못해 쩔쩔매는 테오도르는 퍽 귀여웠다.
의사는 바닥을 뒹구는 거머리를 조그만 통에다 주워 넣었다. 나는 그에게 슬그머니 다가가 물었다.
“그 거머리, 나도 좀 구할 수 있겠나?”
“마님께서요?”
주변을 훑어보았다. 벨은 의사에게 줄 왕진비를 계산하고 있었고, 리자는 거머리가 무서워 바닥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어 이쪽을 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나는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나도 어깨에 멍이 생겨 그러네.”
“아이고, 그럼 미리 말씀을 해 주셨으면 일찍 봐 드리는 건데. 잠시 보여 주시면…….”
“남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상처라.”
의사는 무슨 생각을 했는지 얼굴이 사색이 되어 있었다. 하긴, 귀부인이 보이고 싶지 않은 상처라면 뻔한 게 아닌가.
“몇 마리만 구하면 되네. 심한 건 아니야.”
나는 최대한 처연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의 머릿속에서는 드라마 한 편이 생생하게 방영되고 있을 게 분명했다.
어깨를 가볍게 부여잡자 의사가 아이고, 하고 한탄을 내뱉었다. 그는 왕진 가방에서 작은 통을 꺼내 거머리 몇 마리를 덜어내 주었다.
“고맙네. 내 톡톡히 사례하지.”
“아이고, 아닙니다.”
의사는 나를 안쓰러운 눈빛으로 보다가 다시 짐을 꾸렸다. 귀족의 집안일에 크게 관여해 보았자 좋을 게 없으니 돌아가 술이라도 한잔하면서 오늘 들은 이야기를 잊으려 애쓰리라.
나는 손바닥보다 작은 유리병을 움켜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