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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위한 이혼은 없습니다 (71)화 (71/120)

당신을 위한 이혼은 없습니다 71화

무슨 생각을 하는지 훤히 들여다보인다고 생각했지만, 곰곰이 떠올려 보면 의외로 테오도르에 대해서 아는 게 없었다. 그가 몇 살인지, 가족관계는 어떻게 되는지, 쉬는 날엔 무엇을 하는지.

그가 다가오기만 해도 밀어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와 좀 더 친해지고 싶지만, 지금은 안 돼.’

백작과 완전히 헤어지기로 마음먹자, 테오도르에게 끌리는 마음을 더는 숨길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 당장 그와 잘해 보려는 생각은 없었다.

백작이 나와 테오도르를 모함한 이후로 사교계의 눈치가 이만저만 보이는 게 아니었다.

테오도르가 신의 이름을 걸고 맹세한 덕분에 오해는 더 생기지 않았으나, 나와 그를 오묘한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생겨났다. 남의 연애는 맺어지기 전이 더 재미있지 않은가.

‘거기다가, 근사한 기사와의 로맨스는 누구나 한 번쯤 꿈꿀 만한 일이긴 하니까…….’

그것을 부추길 생각은 없었다. 백작이 소문을 근거로 이혼을 거부하거나 소송을 벌이는 사태는 원하지 않았다. 그의 머릿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몰라도, 제가 그런 꼴을 당한 이유가 나 때문이라고 단단히 믿고 있는 게 분명했다.

‘애초에 연회에서 그런 말을 하지 않았으면 될 것을. 빌어먹을 자식.’

백작을 떠올리자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나는 백작에게 퍼부을 욕을 목구멍 너머로 삼켰다. 내가 이를 갈자 테오도르가 의아하게 바라보았다.

“추우십니까?”

그는 내가 대답하기도 전에 자신의 제복 재킷을 벗어 어깨에 둘러 주었다. 그제야 나는 내 팔이며 손가락이 차갑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놀란 탓에 추위를 느낄 겨를이 없었던 모양이었다. 몸을 감싼 재킷의 온기가 뜨겁게 느껴졌다.

“체온이 너무 떨어지면 위험할 수 있습니다. 불쾌하시더라도 잠시만 참아 주십시오.”

“전혀 불쾌하지 않아요. 신경 써 줘서 고마워요.”

테오도르는 무표정을 유지하려고 애썼으나 그의 눈은 숨길 수 없을 정도로 초롱초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런 모습이 주인에게 충성하는 대형견을 연상케 했다. 그를 닮은 까만 개가 꼬리를 흔드는 것을 떠올리니 저절로 웃음이 튀어나왔다. 테오도르는 내가 왜 웃는지 몰라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테오도르 경.”

“네.”

“백작과 제가 이혼하고 나면, 테오도르 경은 다시 폐하께 돌아가나요?”

“그렇습니다.”

테오도르는 임시로 붙여 준 호위니, 목적을 달성한 후에는 왕에게 돌아가야 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참을 수 없는 쓸쓸함이 밀려왔다.

“그럼 이렇게 있을 시간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네요.”

가벼운 한숨이 흘러나왔다. 앞으로 만나기도 어려울 것이다. 왕을 만날 때나 얼굴을 볼 수 있을지 모른다. 눈을 내리깔고 조심히 속내를 드러냈다.

“아쉽네요.”

순간 무릎에 테오도르의 무릎이 닿았다. 고개를 들어 올리자, 그가 기쁨을 억누를 수 없는 표정으로 웃는 것이 보였다.

“테오도르 경?”

테오도르는 자신이 웃고 있다는 자각도 없는 모양이었다. 내가 이름을 부르고 나서야 그는 창에 자신의 얼굴을 비추어 보았다.

“죄송합니다.”

사과하면서도 입꼬리는 내려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결국, 그는 손으로 입가를 꾹 눌러 내려 표정을 갈무리해야만 했다. 나는 헤어지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그는 기분이 좋아 보이니 괜히 심통이 났다.

“그렇게 좋아하시는 걸 보니 얼른 폐하의 곁으로 가고 싶으신가 보군요.”

“아닙니다!”

테오도르는 재빠르게 대답하고는 다시 입을 가렸다. 자신이 한 말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뱉고 나서야 알아차린 것 같았다. 나는 신경 쓰지 않는다는 뜻으로 고개를 까딱여 보였다.

그는 내 눈을 지그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무례를 용서해 주십시오. 제가 그만큼 카를라 님께 필요한 사람이라는 생각에 그만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습니다.”

새파란 눈동자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언제까지고 카를라 님을 지키고 싶다는 마음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굳은 결의가 목소리에 묻어 나왔다. 헤어지고 싶지 않은 것은 그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서운했던 마음이 단숨에 풀렸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헤어지고 싶지 않아.’

테오도르와 정정당당히 만나려면 백작과 이혼해야 한다. 그러나 백작과 이혼하면 테오도르는 다시 왕에게 돌아가야 한다. 동전의 양면처럼 떼어놓을 수 없는 일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제대로 데이트 한번 못 해 보고 헤어지는 건 싫어.’

잠시 미간을 누르며 생각에 빠졌다. 테오도르와 남들의 시선을 피해 이야기를 나누려면 어디가 좋을지 도통 떠오르지 않았다.

저택은 보는 눈이 많은 데다가 백작의 감시가 있어 깊은 이야기를 하기 힘들었고, 그렇다고 아무 곳이나 방문할 수는 없었다. 여러 이유로 몇 장소를 빼고 나니 적절한 장소는 한 곳밖에 남지 않았다.

“조만간 신전을 다시 한번 안내해 줄 수 있을까요?”

갑작스러운 요청이었으나 테오도르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이번에는 다른 분들이 더 쉽게 돌아보실 수 있도록 준비하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어요.”

들뜬 테오도르를 향해 고개를 저어 보였다. 다른 사람과 함께 신전을 방문할 생각도, 그가 이전처럼 안내꾼 역할을 하도록 내버려 둘 생각도 없었다.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다른 사람은 부르지 않을 거예요.”

“그 말씀은…….”

“단둘이 신전에 가자는 뜻이에요. 안 될까요?”

테오도르는 말을 잇지 못했다. 마차는 침묵에 쌓였다. 침을 삼키는 소리까지 들을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나는 치맛자락을 움켜쥐었다. 거절당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손가락의 감각을 마비시켰다. 마침내, 그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카를라 님께서 원하신다면, 어디라도 가겠습니다.”

어깨에 얹어진 재킷이 뜨겁게 느껴졌다.

* * *

저택에 도착할 때까지 테오도르에게 줄곧 궁금했던 것들을 하나씩 물어보았다. 마음의 짐이 덜어져서 그런지, 아니면 곧 만날 수 없다는 생각에 조급해져서 그런지는 나조차도 알 수 없었다.

테오도르는 어느 시골 귀족의 차남으로, 위로는 누나가 한 명 있다고 했다. 가난한 집안이라 테오도르는 집안의 원조를 받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직업을 선택하기로 했고, 특기인 검술을 살리기 위해 성기사가 되기로 했다고 한다. 신실한 집안 환경도 진로를 결정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는 말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직업을 선택한 이유도 테오도르답네.’

성기사로 발탁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최종적으로는 신의 글자가 내려온다고 했다. 신탁과 비슷한 개념인 듯했으나, 직접 종이에 글자가 새겨진다는 것이 달랐다.

“이름 옆에 위대한 분께서 써 주신 글자가 떠오르면 서임을 받은 것입니다.”

그는 기사단의 생활에 대해서도 말해 주었는데, 완전히 다른 세계의 이야기를 듣는 것 같았다. 아침 해가 뜨기 전부터 일어나 달려야 한다니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왕실로 오게 된 것도 신의 뜻인가요?”

“아니요, 신전이 정한 기준에 우연히도 제가 부합했을 뿐입니다.”

“기준이요?”

테오도르는 기사를 뽑는 기준에 대해서 말해 주지 않으려고 하다가, 재차 조르자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조금 떨리고 있었는데, 나는 그것이 부끄러움이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외모와 나이, 그리고 마지막이 실력입니다.”

“그렇군요.”

카를라의 외모를 칭찬할 때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던 남자가 자신이 외모로 뽑혔다는 이야기를 할 때는 놀랄 정도로 부끄러워하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 정도로 평범한 외모인 덕에 발탁되었다는 것을 말씀드리자니 무척 부끄럽습니다.”

나는 그의 말에 할 말을 잃고 말았다. 테오도르는 농담하는 게 아니었다. 그는 진실로 자신이 평범한 외모라고 믿고 있었다.

‘진짜 미적 감각이 이상한 게 틀림없어.’

카를라를 보고 아름답다니 예쁘다니 할 때부터 알아봤지만, 그의 미적 감각은 어딘가 고장 난 것이 틀림없었다. 테오도르는 이 세계의 기준으로도, 한국 기준으로도 객관적인 미남이었다.

반듯한 이마, 선명한 아몬드 모양의 눈, 긴 속눈썹과 오뚝한 코, 적당히 도톰한 입술까지. 누구도 그를 평범하다고 평가할 수는 없을 것이다. 기사를 뽑는 기준이 외모였다면, 그것은 왕실에 보내도 부끄럽지 않을 미남이라는 뜻일 것이다.

내가 테오도르의 미적 감각에 고민하는 사이, 마차가 천천히 속도를 줄이기 시작했다.

“다행입니다. 임시방편으로 수리한 것이 도착할 때까지 버텨 줄 것 같군요.”

그가 말하고 나서야 나는 바퀴 축이 부러졌다는 사실을 상기해 낼 수 있었다.

‘마차 바퀴가 빠졌었지. 테오도르와의 대화가 재미있어서 잊고 있었어.’

몸이 다시 차갑게 식었다. 나를 노린 범인은 아마 백작일 것이다. 그러나 몸이 망가진 백작이 마차 밑으로 기어들어 가 톱질을 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는 금단 증상으로 손을 떨고 있으니 직접 톱질을 했다면 목재에 그 흔적이 남았을 것이다.

‘누구지? 누가 백작을 도운 걸까.’

가장 먼저 리자가 떠올랐으나 그녀는 아침부터 내 시중을 드느라 쉽게 자리를 비울 수 없었다. 어젯밤까지 멀쩡했다고 했으니, 아침부터 내가 마차를 타기 직전까지 시간이 비는 모든 사람이 의심스러웠다.

‘내가 도착했을 때, 가장 당황하는 사람이 범인이다.’

이윽고 마차가 완전히 멈춰 섰다. 마차 소리를 듣고 뛰어나온 집사의 얼굴은 말 그대로 하얗게 질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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