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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위한 이혼은 없습니다 (69)화 (69/120)
  • 당신을 위한 이혼은 없습니다 69화

    이틀 뒤, 이카루스 백작이 돌아왔다. 감옥에 있었다고는 하나 그리 모진 대우를 받은 건 아닌지, 혈색이 그리 나빠 보이지는 않았다. 감옥에서는 아편을 피울 수 없었는지 흐릿하던 눈동자가 나를 또렷하게 노려보고 있었다. 그는 돌아오자마자 자신이 창피를 당한 일을 내 탓으로 돌리며 시비를 걸었다.

    “잘도 내게 창피를 줬더군.”

    나는 대꾸하지 않았다. 백작의 헛소리에 대꾸해 그의 목소리를 더 들을 이유가 없었다. 아예 없는 사람 취급을 당하자 그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발을 구르며 자신의 존재를 과시했다가 테오도르와 눈이 마주치자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에잇, 주인이 돌아왔는데 이것들은 뭘 하는 거야?”

    백작은 부끄러움을 감추기 위해 애꿎은 사용인들에게 화풀이하곤 방으로 들어가 모습을 감췄다.

    그 후로도 백작은 방 밖으로 모습을 비치지 않았다. 혹시 죽었나 하여 집사에게 물어보니, 매일 아편을 피우거나 술에 취해 뒹군다고 했다. 그는 리자가 자리를 비운 것도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리자는 그로부터 일주일이 더 지난 후에야 저택으로 돌아왔다. 이본이 아틀라스를 죽이는 데 성공한 것이다. 신문의 부고란에 그의 이름이 올라간 것을 확인했지만, 실감이 나지는 않았다. 대외적인 사인은 심장마비였다.

    이본이 내게 부탁한 것은 무엇이든 의심하지 않고 그대로 따를 하녀였다. 처음엔 벨을 보내려고 했으나, 생각해 보니 리자가 더 적임이라 그녀를 보내기로 했다.

    그녀는 궁금증이 많기는 했으나 워낙에 해맑고 순수해 다른 생각을 품지는 않았다. 원래 이본의 저택에서 일하던 하녀였으니 어색하지도 않을 터였다.

    이본의 저택에서 무엇을 했는지 묻기도 전에 리자가 먼저 재잘거렸다.

    “저는 남작 부군의 방을 청소하는 담당이었어요!”

    그녀는 자신이 얼마나 일을 열심히 했는지 떠들어 대었다. 이본은 아틀라스를 자신의 저택에 초대해 며칠간 극진한 대접을 했다.

    “매일 파티 같았어요. 주방에 음식이 넘쳐서 눈치 안 보고 집어먹어도 되더라니까요!”

    그렇지 않아도 리자의 뺨이 통통해진 것 같기는 했다. 해맑은 미소에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음식에 무슨 수를 썼나 싶어 리자를 떠보았으나,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리기만 할 뿐이었다.

    “특이한 음식 같은 걸 내오던?”

    “네! 꿩구이, 스테이크, 생선 알, 상어 지느러미, 양 뒷다리…….”

    리자는 침을 꿀꺽 삼키며 자신이 본 요리를 나열했으나, 그리 특이한 음식은 아니었다. 저녁 식사에 독을 탔다면 주방 사용인 중 하나가 죽었을 것이다. 남은 식사를 몰래 훔쳐 먹는 건 드문 일이 아니었으니까. 매일같이 거창한 식사를 했다면 분명 남은 음식은 사용인들의 입으로 들어갔을 것이다.

    들으면 들을수록 이본이 아틀라스를 어떻게 죽였는지 도통 감이 잡히지 않았다. 정말 운 좋게 심장마비로 죽은 건지, 아니면 앓던 지병이라도 있었는지 모를 일이었다. 내가 미간을 찌푸리자 리자가 애교스럽게 말했다.

    “마님, 방에도 꽃을 장식하는 건 어떨까요? 정원에 있는 꽃 말고, 가게에 주문해서요.”

    “꽃?”

    “네! 남작 부군의 방에 꽃을 장식했거든요. 시가 연기 때문에 빨리 시들기는 했지만, 덕분에 매일 다른 꽃을 볼 수 있었으니까 좋은 일인 것 같아요!”

    머릿속에 번개가 쳤다.

    ‘이상한데?’

    아틀라스를 싫어하는 이본이 그를 위해 꽃을 매일 새로 살 리가 없었다. 이건 분명 의도된 일일 것이다. 리자의 순진한 눈동자에는 한 점의 의심도 없었다. 그녀는 몇 가지의 꽃을 줄줄 늘어놓았다.

    “온실에서 키우는 거라 봄이나 여름에 피는 꽃을 겨울에도 살 수 있대요. 은방울꽃이나 수선화 같은 거요.”

    그녀의 입에서 나온 꽃 이름에 몸이 바짝 굳었다. 리자는 그 외에도 몇 가지의 꽃 이름을 늘어놓았는데, 하나같이 독성이 있는 꽃이었다.

    ‘이거구나.’

    이본 남작이 아틀라스를 죽인 방법을 어렴풋하게 알 것 같았다. 독성이 있는 꽃을 스스로 먹거나 만지게 한 것이 분명했다.

    ‘나중에 물어보자.’

    리자는 그 와중에도 아틀라스를 동정했다.

    “이본 남작님이랑 화해하기 직전이었는데, 그렇게 가 버리시다니 너무 안타까워요.”

    나는 가만히 그녀의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본과 아틀라스의 사이를 알면서도 그런 생각을 하는 게 신기했다. 이 정도로 눈치가 없으니 어떤 의미로는 측은하기까지 했다.

    ‘자기가 공범이라는 걸 알려 주면 깜짝 놀라겠지.’

    리자는 평생 모를 일이었다. 그 사실에 웃음이 나왔다. 키득키득 웃는 나를 보며 리자가 어리둥절한 얼굴을 했지만, 이유를 알려 줄 생각은 없었다.

    이본은 처벌받지 않았다. 법이 그녀의 무결함을 증명해 주었다. 저택 어디에서도 독이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어느 정도 눈치가 있는 사람들이 그녀를 의심하기는 하였으나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의혹의 눈초리는 이본을 따라다니다가 이내 사그라들었다.

    그녀는 한동안 노란빛 옷 대신 검은 상복을 입고 다녔는데, 어두운 옷과 달리 표정은 평소처럼 화사했다. 이본은 파티는 질렸다며, 앞으로는 차를 마시는 시간을 가지고 싶다고 말했다.

    “추모 기간은 지나지 않았나요?”

    “행복하다는 뜻으로 노란 옷을 입을 필요가 더는 없으니까요. 앞으로 무슨 색 옷을 입을지 고민하는 동안에는 상복을 입고 있으려고요.”

    이본의 저택은 한결 생기 있게 보였다. 차를 마시는 내내 정원을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맑게 울렸다. 이본은 자신이 쌓아 두고 있던 이야기를 내게 털어놓았다. 우리는 아주 길고 긴 대화를 나누었다.

    이본은 자신의 아이를 위해서 이혼을 미루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것이 아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카를라가 말해 주지 않았더라면 나는 계속 그와 헤어지는 걸 미루고 있었겠죠.”

    그녀는 어떤 때보다 평온해 보였다.

    “고작 카지노에 직원을 심어 놨다고 언제든 아틀라스를 제지할 수 있다고 착각한 거예요.”

    이본이 찻잔을 매만지며 씁쓸하게 웃었다. 나는 궁금했던 걸 물어보기로 했다.

    “어떻게 한 건지 물어봐도 되나요?”

    주어도 목적어도 없는 물음이었으나 그녀는 단번에 말을 이해하고는 목소리를 낮춰 속삭였다.

    “짠 음식을 많이 먹으면 밤에 물을 마시고 싶어지잖아요? 아틀라스는 일어나기 귀찮을 땐 방에 있는 화병의 물을 마시는 버릇이 있어서요. 고치라고 잔소리를 참 많이 했는데, 고치지 않았더라고요.”

    나는 실없는 웃음을 터트렸다. 화병에 담아 둔 꽃은 모두 독성이 있는 것이고, 당연히 화병 안의 물도 같은 성분을 띨 것이다. 아틀라스의 이상한 버릇이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갔다니,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이본이 한쪽 눈을 감았다가 떠 보였다.

    “뭐든 미루면 안 돼요. 결심했을 때 해치워야죠.”

    이본의 말은 내게 경각심을 가져다주었다.

    ‘그래, 이혼하자.’

    나는 곧바로 백작과 이혼하기 위한 서류를 준비했다. 카를라의 지참금은 거의 빼앗아 왔고, 저택까지 내 손에 들어왔다. 가족과의 관계도 회복했겠다, 든든한 친구도 있으니 더는 백작과 연관될 이유가 없었다. 심지어 그의 평판은 바닥을 쳤으니, 이참에 핑계를 대어 이혼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인 것 같았다.

    백작이 카를라의 지참금을 마음대로 빼앗아 썼던 일과 결혼 생활 도중 정부를 만든 이야기만 정리했는데도 한 페이지가 빡빡하게 들어찼다.

    카를라의 일기장을 토대로 백작이 뱉은 폭언을 정리하자 종이가 지참금 목록보다 더 두툼해졌다. 나는 혀를 찼다.

    ‘법정까지 가면 귀찮으니, 합의 이혼을 하자고 할까.’

    펜을 물고 뺨을 톡톡 두드리며 목록을 작성하는 도중, 백작이 문을 두드렸다. 나는 서류를 대충 정리해 서랍에 쑤셔 넣고는 리자에게 문을 열라고 명령했다.

    백작은 영 상태가 좋아 보이지 않았다. 그의 머리카락은 진득한 기름이 흐르고 있었고, 식은땀으로 셔츠가 온통 젖어 있었다.

    “아, 아틀라스 남작이 죽었다니 정말이오?”

    그는 다짜고짜 아틀라스의 죽음에 관해 물었다. 왜 그런 걸 내게 묻느냐고 짜증을 내려 했으나, 백작의 기괴한 행동을 자극할 것 같아 입을 다물었다. 열린 문 너머에 서 있던 집사가 연신 고개를 조아렸다. 아무래도 백작은 집사에게 먼저 이야기를 듣고는 내게 찾아온 듯싶었다.

    “남작 부군이라면, 그래요. 얼마 전 신의 품으로 돌아갔다는군요.”

    내가 순순히 대답해 주자 백작은 손을 벌벌 떨며 머리를 마구 내저었다.

    “그럴 리가 없소. 당신이 봤소? 아니, 누가, 누가 죽였소? 이본 그 여자가 죽였나?”

    그는 아틀라스가 살해당했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설마 이본이 죽인 걸 알고 있는 건가?’

    하지만 그럴 리가 없었다. 백작은 자택 근신으로 밖을 나갈 수 없는 상태였고, 구금이 끝난 후에는 방에 틀어박혀 얼굴도 볼 수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심장마비라더군요. 정말 안타까운 일이에요.”

    조금의 동정도 섞이지 않은 목소리는 내가 들어도 참으로 냉정하게 들렸다. 그러나 백작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꾸만 아틀라스의 죽음을 번복해서 물었다.

    “정말 죽은 게 맞소? 심장마비라고? 범인이 없다는 말이야?”

    “그렇다니까요.”

    짜증스럽게 대꾸하자 백작은 머리를 쥐어뜯으며 무언가를 광적으로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그럼 이제 어디서 그걸 구하지? 누가 마지막으로 샀는지 찾아야 해……. 그게 없으면 나는…….”

    백작의 가슴팍이 가쁘게 오르내렸다. 그는 가슴팍을 마구 치며 숨을 쉬기 위해 꺽꺽 소리를 냈다. 나는 인상을 찌푸리고 집사를 불러 그를 방 밖으로 끌어내었다. 얌전히 끌려 나가는 백작을 보고 생각했다.

    ‘근신 중인데 무슨 일을 저지르지는 않겠지?’

    그 생각이 무색하게도 백작은 바로 다음 날부터 허튼짓을 저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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