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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위한 이혼은 없습니다 (68)화 (68/120)

당신을 위한 이혼은 없습니다 68화

이본의 표정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일그러졌다. 때마침 악단이 유쾌한 곡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가장자리에 자리를 잡고 있던 사람들이 홀로 나가 춤을 추기 시작하는 동안 이본은 움직이지 않았다.

“카를라, 뭔가 오해를 한 것 같아요.”

이본에게 잘 어울리는 명랑한 곡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왜 그녀가 이런 표정을 짓는지 이해할 수 없어 눈만 깜빡였다.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시가 같은 건 없어요.”

“아뇨. 있어요. 잘 모를 뿐이지. 그 시가는 사람을 제정신이 아니게 만들어요.”

그녀는 길게 늘어진 머리카락 끝을 손가락으로 돌돌 말기 시작했다. 아이 같은 행동이었지만 말릴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녀는 신발 끝으로 바닥을 톡톡 두드렸다. 일정한 리듬이 무섭게 들리기까지 했다.

“그럴 리가 없어요. 그 시가 때문에 백작이 미친 거라면, 아틀라스는요? 그는 아주 멀쩡한걸요.”

“시가를 피우고 난 다음 날, 유난히 예민하게 굴지 않던가요? 그 독에 중독되면 맛을 잘 느끼지 못하고 춥지 않은데도 옷을 껴입게 돼요. 그러다가 점점 미치는 거죠.”

짚이는 게 있는 듯, 이본의 몸이 잘게 떨리기 시작했다. 나는 얼른 테오도르에게 눈짓했다. 그는 빠르게 자리를 떴다. 나는 이본을 의자에 앉게 했다. 그녀는 매우 혼란스러워 보였고, 뺨은 희게 질려 있었다.

“미안해요. 이런 자리에서 할 말이 아니었어요.”

그녀에게 가해졌던 폭력이 되살아 난 것일까. 방금 큰일을 겪었다고 입이 가벼워진 모양이었다. 그러나 후회해 봤자 뱉은 말을 주워 담을 수는 없었다. 나는 이본의 등을 쓸어내렸다. 테오도르가 양손에 샴페인을 들고 가까이 다가왔다. 나는 그중 하나를 받아 이본의 손에 쥐여 주었다.

“좀 마셔요. 충격을 받을 이야기였는데 생각이 짧았어요. 정말 미안해요.”

이본은 말없이 잔을 만지작거리기만 했다. 마침내 그녀가 입을 열었다.

“카를라, 시가는 피운 사람한테만 영향이 가는 거죠?”

“아뇨. 연기를 마신 사람 모두한테 안 좋아요. 연기로 퍼지는 독이에요.”

“아이들에게도 해로울까요?”

“네. 아주 많이요.”

그녀는 눈을 질끈 감더니 단번에 잔을 비웠다. 호쾌할 정도였다. 마지막 한 방울까지 마신 그녀는 크게 숨을 뱉었다. 다시 뜬 눈에는 분노가 이글거렸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지나가던 사용인에게 잔을 건넸다. 그리고 싸늘하게 굳은 얼굴로 내게 말했다.

“아틀라스 그 자식을 죽이러 가야겠어요.”

갑작스러운 말이었다. 그러나 굳어진 얼굴은 그녀가 얼마나 진심인지 보여 주었다. 손을 얼마나 강하게 쥐었는지 손등에 힘줄이 불룩 튀어나와 있었다. 나는 얼른 이본의 앞을 가로막았다.

“이본, 진정해요. 여기서는 안 돼요.”

“사람을 죽이면 안 되는 건 나도 알아요. 알면서도 하려는 거예요. 설득할 생각이라면 그만둬요. 내가 미쳤지! 그런 미친놈한테 내 아이들을 맡겼다니!”

이본은 아이에 대한 걱정과 분노로 가득 차서 아무 말이나 뱉는 것 같았다. 최대한 침착하게 말하려 했으나, 화가 머리끝까지 뻗은 그녀를 설득할 자신이 없었다. 대신 가장 우려되는 점을 짚었다.

“여기서 죽이면 바로 잡혀가요. 기사들이 우글거린다고요. 당신이 잡혀가면 아이들은 어떻게 해요?”

아이를 입에 담자 이본의 어깨에서 천천히 힘이 빠졌다. 이본의 아이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지만, 그녀를 말릴 수 있다는 생각에 빠르게 말을 이었다.

“걱정하는 마음은 알아요. 하지만 이본, 당신이 흔들리면 아이를 지킬 수 없잖아요. 자, 한 잔 더 마시고 진정해요.”

테오도르가 잔을 내밀었다. 이본은 다시 잔을 받아 샴페인을 홀짝이기 시작했다. 잠시 뒤,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어깨를 잘게 떨기 시작했다.

‘괜히 말했어.’

구불거리는 붉은 머리카락이 흘러내려 그녀의 얼굴을 가려 주었다. 무거운 죄책감만이 나를 짓눌렀다. 이본이 천천히 머리를 들어 올렸다. 그녀의 뺨에는 눈물 흔적 하나 없었다.

“카를라.”

이본이 나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얼굴에는 절망과 슬픔 대신 다른 것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것은 언젠가 그녀가 보여 주었던 절박함이었다.

“카를라, 나 좀 도와줄 수 있어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 * *

파티는 무사히 마무리되었지만, 기분은 엉망이었다. 나는 마차에 앉아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았다. 밖은 어둠이 깊게 내려앉아 보이는 것이라고는 창에 비친 테오도르의 모습뿐이었다.

바퀴가 굴러가는 소리가 간간이 들릴 뿐, 마차 안은 적막 그 자체였다.

“카를라 님.”

정적을 깬 것은 테오도르였다. 나는 느릿하게 고개를 돌렸다. 그는 평소처럼 시선을 내게 고정하고 있었는데, 이전보다 더욱 뜨거워진 눈빛에 왜 불렀냐는 물음조차 할 수 없었다.

“오늘 있었던 일은…….”

“정말 고마웠어요.”

나는 빠르게 그의 말을 잘랐다.

“백작이 무슨 생각으로 그런 짓을 저질렀는지는 모르겠지만, 테오도르 경 덕분에 억울한 이야기를 듣지 않을 수 있었어요.”

테오도르가 때맞춰 말해 주지 않았다면, 나는 제대로 해명하지 못해 오해를 샀을 것이다. 백작도 그것을 노린 것이 분명했다.

[저는 카를라 님을 사모하고 있습니다.]

파티장에서 당당하게 나를 좋아한다고 하던 그의 목소리를 떠올리자, 심장이 다시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그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만한 멋진 모습이었다.

“테오도르 경의 마음은 잘 알겠어요, 하지만…….”

그러나 나는 테오도르의 마음에 보답할 수 없었다. 그는 결혼하지 않은 성기사였고, 나는 아직은 백작의 부인이었기 때문이다. 말끝이 자꾸만 흐려졌다. 밀폐된 마차 안, 무릎이 닿을 정도의 거리가 나를 자꾸만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지금 당장 경의 마음에 답할 수는 없어요.”

나는 그가 울거나, 혹은 상처 입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테오도르는 빙긋 웃을 뿐이었다.

“알고 있습니다. 조금이라도 저를 생각해 주신 것만으로도 기쁩니다.”

그는 눈을 한껏 휘어 보였다.

“저는 언제까지나 이 자리에 있을 테니, 가끔 바라봐 주시기만 하면 만족합니다.”

나는 입술을 꾹 다물고 그를 바라보았다. 화사하게 피어 있는 테오도르의 얼굴에서는 조금의 상처도 찾아볼 수 없었다.

마차가 천천히 속도를 줄이기 시작했다. 저 멀리 저택의 불빛이 보였다.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다시 입을 열지 않았다.

* * *

백작이 구금된 이틀 동안 저택은 평화로움을 유지했다. 사용인들은 백작이 잡혀갔다는 소식에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집사마저 백작이 구금되었으니 돈을 쓰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투로 대꾸했다.

오로지 리자만이 백작을 위해 눈물을 흘렸다. 그녀는 내게 다가와 울먹이는 목소리로 물었다.

“마님, 백작님이 돌아가시면 어쩌지요?”

그녀의 새파란 눈에 눈물이 한가득 고여 있는 것이 보였다. 참으로 가련하고 불쌍한 모습이었다.

‘쟤도 참 한결같아.’

리자는 내가 당장이라도 일을 해결할 수 있는 것처럼 매달렸다. 이런 모습을 볼 때마다 그녀에게 들던 측은함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맞고 하찮은 취급을 당하면서도 백작을 위할 수 있다는 게 신기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녀는 감옥에 가면 십중팔구는 죽어서 돌아온다며 울먹이는 소리를 했다. 평민들은 그럴지 몰라도 귀족을 험하게 다룰 리가 없었다. 그러나 나는 그럴 리가 있냐는 말 대신 모호한 대답을 던졌다.

“그러게. 돌아가시면 어쩌지?”

내 말에 리자는 양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덜덜 떨었다. 긴 속눈썹이 뺨에 그림자를 드리울 때마다 눈물이 그 위로 또르르 굴러떨어졌다. 리자는 한참을 생각하다가 내게 애원하듯 말했다.

“마님, 마님은 폐하와 친하시잖아요. 백작님을 풀어 달라고 부탁하면 풀어 주지 않으실까요?”

머리를 굴려 짜낸 생각이 겨우 그런 것이라니 코웃음이 나올 뻔했다. 나는 짐짓 괜찮은 생각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래도 좋겠네.”

“정말요? 그렇게 해 주실 거예요?”

리자의 표정이 환해졌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왕에게 부탁하지 않아도 백작은 이틀 후면 저택으로 돌아올 것이나, 굳이 리자에게 말해 줄 필요는 느끼지 못했다.

“그럼. 대신 나도 너에게 부탁이 있단다.”

“마님이 제게요?”

“그래. 너밖에 못 하는 거야.”

“뭐든 말씀해 주셔요. 마님, 백작님이 돌아올 수 있다면 뭐든 하겠어요.”

리자는 손을 모으고 나를 올려다보았다. 입꼬리가 씰룩였다.

“별것 아니야. 이본 남작이 하녀 하나를 빌려 달라고 하셔서.”

“남작님이요?”

그녀는 불안한 듯 눈을 빠르게 깜빡였다. 리자는 아직도 내가 그녀가 잡역부였다는 사실을 모르는 줄 아는 모양이었다. 나는 빙그레 웃으며 자애로운 주인 흉내를 내었다.

“별일 아니야. 간단한 심부름을 시키고 싶다더구나. 손재주가 좋은 아이가 필요하다고 하길래. 못 하겠으면 말고.”

“아니에요, 마님. 저 할 수 있어요.”

내가 손을 내저으려 하자 리자가 급하게 매달렸다. 나는 그녀의 어깨를 다정하게 두드려 주었다.

정오가 지나기도 전, 마차가 저택을 빠져나갔다. 남작가를 향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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