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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위한 이혼은 없습니다 (67)화 (67/120)

당신을 위한 이혼은 없습니다 67화

어이없는 말에 헛웃음이 터졌다. 그러나 백작은 쉬지 않고 입을 놀렸다.

“저놈을, 저 성기사를 잡아다가 벌을 내려 주십시오!”

그는 말을 더듬고 횡설수설하며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주변의 웅성거림이 더욱 커졌다. 귀족들은 호기심이 역력한 얼굴을 숨기지 않았다.

“성기사님이랑 백작 부인이 그런 사이라뇨.”

“세상에, 저게 사실이라면…….”

왕은 가만히 그의 말을 듣다가 손을 들어 올렸다. 주변의 소음이 가라앉자, 그녀가 입을 열었다. 짜증스러운 목소리가 카지노 홀 안을 울렸다.

“이카루스 백작, 그대가 지금 무슨 말을 했는지 아는가?”

그녀의 목소리는 분노로 이글거렸으나 눈빛은 시리도록 차가웠다.

“폐하! 저들이 어떻게 신전과 왕실을 기만했는지를 보십시오!”

백작은 나와 테오도르가 신전과 왕실을 무시하고 품격을 떨어트렸다고 주장했다. 불륜이 공공연한 세상이라지만, 그것을 공개적으로 밝히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백작은 나와 테오도르가 그들을 기만하였다고 외쳤다. 그러나 그것은 오히려 왕의 분노를 부추길 뿐이었다.

“성기사는 신전이 왕실에 보인 우호의 상징이다. 그의 품행을 어찌 사사로이 입에 올리는가!”

목소리가 높아지자 신전 관계자들이 하나둘 몰려들었다. 그들의 표정도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그들은 왕의 주변을 둘러싸고 백작을 노려보았다. 날이 선 분위기가 오싹했다.

왕은 백작과 테오도르를 찬찬히 훑은 뒤 입을 열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묵직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좋다. 백작 부인에게 묻겠다. 그대는 정녕 성기사와 올바르지 않은 관계였는가?”

“저, 저는…….”

입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수많은 사람의 시선이 내게 쏠리자, 긴장으로 몸이 떨렸다. 손바닥에 땀이 맺혔다. 꿀꺽, 마른침을 삼키고 입을 열기 직전, 테오도르가 먼저 말했다.

“저는 카를라 님을 사모하고 있습니다.”

그건 폭풍 같은 고백이었다. 숨을 들이켜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왔다.

“세상에!”

“말도 안 되는 일이…….”

숨을 제대로 쉬기 힘들었다. 분노한 왕이 테오도르에게 어떤 처벌을 가할지 상상도 가지 않았다. 우호의 표현으로 왕에게 보낸 성기사가 문제를 일으켰으니 신전에서도 강경하게 나올 것이다.

테오도르가 모두를 기만했다며 비난받을 것이 눈에 선했다. 나 또한 백작에게서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테오도르는 어깨를 당당히 펴고 마저 말을 이었다.

“그러나, 위대한 분의 이름에 걸고 맹세하건대, 카를라 님의 명예를 더럽힐 일은 하지 않았습니다.”

신의 이름에 걸고 테오도르가 맹세하자, 웅성거림은 더욱 커졌다. 사제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중 가장 지위가 높아 보이는 사람이 말했다.

“위대한 분의 이름에 맹세했으니, 그 말은 진실일 것이오. 폐하, 신전은 성기사 테오도르의 결백을 확신합니다.”

테오도르는 쓸쓸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돌아보았다.

“죄송합니다. 제 하찮은 마음이 카를라 님께 폐를 끼쳤습니다.”

그의 목소리가 허공을 갈랐다. 등에 소름이 끼쳤다. 그가 나지막하게 말하자, 이번에는 명백히 호의가 섞인 감탄이 주변에 울려 퍼졌다.

“소설 속 기사님 같군요.”

누군가 무심결에 한 말이 들려왔다. 고개를 끄덕일 뻔했다. 정말 테오도르는 소설 속 주인공 같았다. 항상 그가 필요할 때 뒤를 돌아보면 그가 있었다. 허탈한 한숨이 터져 나왔다.

백작이 털썩 자리에 주저앉았다. 테오도르는 손을 놓은 지 오래였다.

“이건 말도 안 돼! 저 여자가 내 돈을 빼돌렸다고! 그래, 저 여자와 춤을 춘 다른 놈이 있을 겁니다. 그 남자가 돈을 빼돌린 것이 분명해!”

그는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고 아무렇게나 지껄이기 시작했다. 그는 주변을 마구 손가락질했다. 사람들은 미간을 찌푸릴 뿐, 누구도 그를 도와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왕이 혀를 찼다.

“제정신이 아니군.”

그녀는 좌중을 훑어보고는 백작에게 시선을 주었다.

“이카루스 백작, 그대에게 왕실을 욕보인 죄를 물어 재산의 반을 몰수하고 2개월의 자택 근신을 명한다.”

왕의 생일 연회를 망친 것치고는 관대한 처벌이었다. 구금이 아니라 자택 근신이라는 말에 웅성거림이 커졌다. 왕은 아랑곳하지 않고 신관들에게 시선을 주었다.

“신전의 처벌에 왕실은 관여하지 않겠소.”

그제야 웅성거림이 멈추었다. 왕의 생일 연회를 망친 것보다 신전을 모욕한 것이 더 무거운 죄였기 때문이었다. 처벌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말은 신전에서 백작을 죽여도 귀족들이 반발할 수 없다는 말과 같았다.

꿀꺽, 마른침을 삼키는 소리가 생생했다.

“이는 믿음이 부족한 탓이니, 신전은 이카루스 백작에게 필사의 벌을 내립니다. 신께서는 글에 깃들어 계시니, 자택 근신을 하는 동안 매일 신의 말씀을 한 권씩 되돌아보기를 바랍니다.”

흰옷을 정갈하게 입은 노인이 말했다. 역시 관대한 처벌이었다. 그러나 믿음이 없다는 말은 신을 믿는 국가에서는 큰 모욕이나 다름없었다. 백작은 몸을 덜덜 떨더니, 고개를 마구 저었다.

“이럴 수는 없습니다! 저, 저 기사 놈은 왜 처벌하지 않습니까? 그가 부인에게 추근거렸기 때문에 제가 오해를, 오해, 그래, 오해를 만든 사람에게도 죄를 물어야 합니다. 카를라! 당신이 꾸민 짓이지?”

그는 손가락으로 테오도르와 나를 번갈아 가리키며 마구 악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나 누구도 그를 동정하지 않았다.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군. 끌고 가. 왕실에 불복한 죄로 이틀간 감옥에 구금한다.”

왕이 싸늘하게 명령하자, 어디서 나온 것인지 모를 기사들이 순식간에 백작을 제압했다.

“폐하! 이익! 놔라, 놔! 놓으라고!”

그는 악을 지르며 기사들을 떨쳐 내기 위해 발버둥 쳤다. 그러나 마약으로 제 몸도 가누지 못하는 사람이 훈련받은 기사들을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가 연행되어 끌려가는 동안, 주변 시선이 내게 닿았다.

억누르고 있던 긴장이 풀려 다리가 휘청이자, 테오도르가 나를 붙잡았다.

“괜찮으십니까?”

“네, 네……. 현기증이 나서…….”

왕은 나를 힐긋 바라보았다. 내게 변명을 할 기회를 주겠다는 신호였다. 나는 볼 안쪽을 꽉 깨물었다. 아픔이 올라왔다. 눈물이 고이기는 하였으나 흐를 정도는 아니었다.

“좋은 날 소란을 피워 어떤 말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비틀거리는 몸을 억지로 일으켜 세운 후, 허리를 굽혔다.

“정신이 아픈 남편을 보살피지 못한 제 잘못입니다. 어떤 처벌을 내리셔도 감내하는 마음으로 받겠습니다.”

“일어나게.”

허리를 세워 왕을 바라보자, 속눈썹에 눈물이 맺혔다. 그녀는 그것을 보곤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쯧, 정신이 아픈 남편을 뒀다는 죄로 어찌 부인을 처벌하겠는가? 나는 그리 매정한 사람이 아닐세.”

왕은 관대하게 처벌이 없음을 알리고, 다시 큰 목소리로 말했다.

“흉한 꼴을 보였군. 식은 분위기를 다시 살리려면 좋은 술만 한 것이 없지. 내가 한잔 대접하겠소.”

시종들이 빠르게 술잔을 옮겼다. 악단이 잔잔한 곡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술을 마시기 위해 자리를 옮기는 틈을 타, 나도 자리에서 벗어났다.

“카를라 님, 괜찮으십니까?”

“놀라긴 했지만, 잘 끝났으니 괜찮아요.”

테오도르의 부축을 받아 가장자리로 움직이고 있는데 누군가 뛰어와 내 팔을 붙잡았다. 깜짝 놀라 몸을 뒤틀어 바라보자 피데스 소공작이 울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언니, 괜찮아?”

나는 그녀의 손을 가볍게 토닥여 주었다.

“그럼. 괜찮아.”

“어, 언니가, 언니가 막, 그런데, 미셸이 가지 말라고 해서……. 도와주지 못해서 미안해.”

미셸 남작이 숨을 헐떡이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다가왔다. 피데스 소공작이 뛰는 걸 보고 따라온 모양이었다.

“소공작님,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엮이는 순간 도와드릴 수가 없다니까요.”

“나도 알아. 아는데, 언니가 다칠 수도 있었잖아.”

두 사람이 주고받는 대화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단번에 이해했다. 피데스 소공작이 나를 두둔하기 위해 끼어들었으면 아마 정치적으로는 더 복잡해졌을 것이다.

‘정말 놀란 모양이네.’

나보다 더 상황 판단이 빠르고 정치에 빠삭한 소공작이 그만큼 몰렸다는 뜻이기도 했다.

울 것 같은 동생을 달래는 것은 미셸 남작에게 맡길 생각이었다. 미셸 남작에게 가볍게 묵례하자, 그도 고개를 마주 까딱여 답했다.

“아무튼, 언니가 무사해서 다행이야. 폐하가 언니한테 뭐라고 할 줄 알았어.”

“그럴 리가 있니. 많이 놀란 모양이니 가서 뭐라도 좀 마시고 오렴.”

피데스는 고개를 끄덕이기는 했지만 쉽게 자리를 뜨지는 못했다. 주변 사람들이 그녀를 힐금거리기 시작하자 아쉽게 발걸음을 떼었다.

“언니, 무슨 일 생기면 소리쳐. 알았지?”

“그럴 일이 뭐 있겠니.”

“그래도!”

“알았으니 가서 쉬다 오렴.”

벽에 손을 짚고 잠시 숨을 고르자마자 바로 다음 사람이 다가왔다. 이본이었다.

“카를라, 괜찮아요?”

“정말 괜찮아요. 나 오늘 이 말을 몇 번 하는지 모르겠어요.”

내가 웃으며 대꾸하자, 이본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녀는 목소리를 낮춰 백작을 흉보기 시작했다.

“다행이에요. 정말 미친놈 같았다니까요. 왜 저렇게 미쳤는지 모르겠네.”

당연히 이본이 아편에 대해 알고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전혀 모르는 것같이 말하는 탓에 당황스러웠다.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본, 아틀라스가 파는 시가에 대해 알고 있어요?”

“알고 있죠. 그 이상한 냄새가 나는 시가 말하는 거죠? 얼마나 피워 대는지, 근처에만 가도 머리가 깨질 것같이 아파서 가까이 가지도 못해요.”

이본은 아틀라스의 흉을 보기 시작했다. 그녀는 그것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잘 모르고, 그저 독한 시가라고만 생각하는 듯했다.

“음, 이본, 놀라지 말고 들어요…….”

크게 심호흡을 하고 그녀에게 말했다.

“백작은 그 시가 때문에 미친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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