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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위한 이혼은 없습니다 (59)화 (59/120)

당신을 위한 이혼은 없습니다 59화

만찬회를 준비하는 동안 피데스와 이본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다. 피데스는 내 손님 리스트를 보고 초대해도 괜찮은 사람들을 알려 주었고, 이본은 만찬회에 어울리는 요리를 추천해 주었다.

나는 미셸 남작과 버너 후작 부부를 초대하기로 했다. 둘 다 안면이 있고, 내게 어느 정도 호의를 가지고 있으며 왕을 지지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이본과 그렇게 사이가 나쁘지 않은 것도 이유 중 하나였다.

주방장은 신이 나서 팔을 걷어붙였다. 그는 자신의 솜씨를 발휘하기만을 기다렸다는 듯 온갖 요리를 선보였는데, 덕분에 만찬회를 열기 전까지 매 식사에 기름진 음식이 올라왔다.

‘맛있기는 한데, 기름진 음식을 자주 먹으니 혀가 아플 정도로 매운 게 당기네. 아무래도 메인 요리는 부담스럽지 않을 정도의 담백한 요리로 해야겠어.’

결과적으로 내가 선택한 것은 칠면조 통구이였다. 큼지막한 칠면조를 통째로 구워 손님들이 원하는 부위를 잘라 그릇에 덜어 주는 것이다. 거기에 갖가지 양념으로 버무린 샐러드와 얇게 썰어 튀긴 감자, 구운 옥수수, 달콤하게 조린 밤과 다진 고기를 넣은 파이를 대접하기로 했다. 파이의 겉면은 장미 모양으로 멋을 냈는데, 자르기가 아깝다며 발을 동동 굴리는 하녀가 생길 정도였다.

저택의 사용인들은 오랜만의 손님맞이에 한껏 들떠 있었다. 집사가 잠시 우중충한 얼굴을 하기는 했으나, 만찬회를 준비하는 동안의 저택 유지 관리비는 내가 부담하겠다고 하자마자 다른 사용인들처럼 표정이 밝아졌다. 저택에서 기분이 좋지 않은 사람은 단 한 명, 백작뿐이었다.

그는 얼핏 보아도 건강이 위험하다는 걸 알 수 있을 정도로 안색이 창백해지고 나날이 야위어 갔다. 미간에는 주름이 깊게 자리를 잡았고, 손을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떨어 종종 컵을 떨어뜨렸다. 아직 날씨가 쌀쌀하지 않은데도 그는 춥다며 옷을 몇 겹이고 껴입곤 했다.

‘완전히 중독자의 몰골이네.’

백작은 그렇게 처참한 몰골로도 바득바득 카지노에 기어갔다. 그의 씀씀이는 점점 더 헤퍼져 마침내 집사가 현금 지급을 거부하는 사태에 이르렀다.

그러자 백작은 나를 찾아왔다. 그가 방에 들어오자마자 역한 냄새가 풍겼다. 나는 벨에게 눈짓을 보내 창문을 열도록 했다. 백작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헛기침을 하곤 곧장 본론을 꺼냈다.

“큼, 급하게 현금이 필요한 일이 생겼소.”

“그렇군요.”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왜 그런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얼굴을 하자 그는 입술을 깨물고 인상을 찡그렸다.

“그래서 말인데, 당신이 좀 도와줘야겠소.”

“제가 무슨 수로 백작님을 도와 드릴 수 있겠어요?”

백작은 짜증스럽게 머리를 쓸어올렸다. 그의 손은 덜덜 떨리고 있었다. 백작이 직설적으로 뱉었다.

“여왕에게 다 갖다 바쳤겠지만, 카지노를 운영하며 번 돈이 있을 것 아니오. 푼돈이라도 좋으니 그걸 꺼내 와 봐.”

돈이 없어 빌리러 온 주제에 명령조라니, 짜증이 왈칵 솟았다.

“물론 받은 보수가 있기는 해요.”

“그래? 다행이군. 그럼 어서 가져오지 않고 뭐 하는 거요?”

짜증이 섞인 재촉에 나는 그를 빤히 바라보다가 대답했다.

“그런데 만찬회를 여느라 전부 써 버렸지 뭐예요.”

내가 낭창하게 대답하자 백작의 얼굴에 열이 몰리는 것이 보였다. 주먹 쥔 손을 아까보다 더 심하게 떠는 게 당장이라도 소리를 지를 것 같았다.

그는 고개를 돌려 내 옆에 있는 리자를 바라봤다. 그의 눈이 번들거리며 빛나는 듯했다.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긴장시켰다. 또 리자를 때리려고 하는 줄 알았으나 그는 그저 혀를 세게 찰 뿐이었다.

“후회할 거요.”

내가 후회할 일이 뭐가 있겠는가. 아쉬울 것이 없는 내게 협박을 해 봤자 우습기만 할 뿐이었다. 나는 그에게 웃어 보였다. 백작은 나가며 쾅, 소리가 나게 문을 닫았다. 귀가 얼얼했다. 망할 놈.

* * *

만찬회 당일에도 백작은 계절과 어울리지 않는 겨울용 코트를 입고 카지노에 갈 채비를 했다. 그는 외출 준비를 끝내고 저택을 나서다가 마주친 내게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선약이 있어 만찬회에 참석하기는 어렵겠소. 당신이 미리 말해 주었더라면 약속을 조정했을 텐데 아쉽게 되었군. 당신의 잘못이니 섭섭하더라도 참으시오.”

백작의 뻔뻔함에 기가 차 작게 혀를 찼다. 만찬회를 여는 것부터 모든 과정을 일일이 알려 주었는데 무슨 소리인지. 선약이라고 해 봤자 카지노에 가서 노는 게 전부일 것이다.

물론 만찬회에 참석해 달라고 매달릴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어차피 그가 참여하지 않더라도 전혀 문제가 될 게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자신이 참석하지 않는 게 복수라고 여기는 백작의 생각이 훤히 보여 어이가 없었다.

‘저 주둥이를 원 없이 팰 수 있다면 소원이 없겠네.’

나는 퉁명스럽게 뱉었다.

“그리 섭섭하지 않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백작은 내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한 표정이었다. 그는 눈을 끔뻑거리더니 이내 퉁명스러운 말투로 말을 이었다.

“아침이나 되어야 돌아올 거요. 손님 접대는 부끄럽지 않게 하길 바라오.”

나는 대꾸하지 않았다. 백작은 혀를 차곤 마차를 타러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좌우로 휘청거리는 모습이 금방이라도 꼬꾸라질 것 같이 보였다.

그 뒤를 조용히 따라가자 백작이 탄 마차가 출발하는 것과 동시에 엇갈리듯 피데스의 마차가 도착했다. 피데스는 평소와 달리 분홍빛 드레스를 입고 있었는데, 스무 살 초반의 앳된 소녀들이 으레 그러하듯 풋풋하고 사랑스러웠다.

“어서 와. 일찍 왔네?”

“언니가 보고 싶어서 서둘렀지.”

약속 시각보다 이르게 도착한 피데스 덕분에 백작의 헛소리가 머릿속에서 말끔히 지워졌다. 그녀는 분위기가 바뀐 저택을 보곤 감탄을 뱉었다.

“와, 이전이랑 분위기가 완전히 다른데.”

“그런가?”

“전보다 이게 더 깔끔하다. 언니랑 어울려.”

“고마워. 사실 커튼이랑 가구 위치만 바꾼 거야.”

나는 키득거리며 그녀를 응접실로 안내했다. 우리는 가볍게 차를 마시며 백작의 뒷담을 했다.

“얼마 전에 카지노에서 봤는데 눈이 완전 맛이 갔던데.”

“말도 마. 완전히 제정신이 아니야.”

백작의 이름을 입에 올리지 않아서인지, 리자는 우리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웃는 얼굴 그대로였다.

“마님, 손님이 도착하셨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후작 부부가 도착했다. 집사가 문을 열고 정중하게 그들을 내게 안내했다.

“후작님, 어서 오세요.”

“초대해 줘서 고마워요. 집이 정말 예쁘더군요.”

“감사해요.”

“이쪽은 내 남편이에요. 여보, 백작 부인이셔.”

“처음 뵙겠어요, 후작 부군.”

버너 후작의 남편은 중후한 인상이었고, 후작과 마찬가지로 신실한 신자였다. 서로 인사를 끝내자마자 그는 내 뒤에 서 있던 테오도르에게 관심을 보였다.

그는 말을 걸고 싶어 죽겠다는 시선으로 테오도르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쉽게 입을 떼지 못했다. 나는 은근슬쩍 후작의 아들을 입에 담았다.

“영식께서 참여하지 못하여 아쉬워요. 테오도르 경께 소개해 드리고 싶었거든요.”

“아무래도 신의 종이 된 자로서 봉사를 빠질 수 없다고 해서 말입니다. 저도 제 아들놈을 소개하고 싶었는데 아쉽게 되었습니다. 테오도르 경같이 훌륭한 실력을 갖춘 성기사님을 가까이서 뵙고 이야기를 나눌 기회는 흔치 않으니까요.”

“위대한 분을 모시는 형제님을 알게 되는 건 언제든 기꺼운 일이지요. 기회가 된다면 꼭 뵙고 싶습니다.”

후작 부군은 테오도르와 몇 마디를 나누고는 입꼬리가 귀에 걸릴 듯 미소를 지었다.

다음으로 방문한 것은 미셸 남작이었다. 남작은 아주 조용하고 숫기 없는 사내로, 잉크 냄새가 날 것 같은 특유의 분위기가 있었다. 젊은 사람에게서 보기 힘든 독특한 느낌 탓인지, 파티에서 두세 번 얼굴을 마주쳤을 뿐인데도 기억에 남았다.

그는 왕과 친하게 지내고 싶어 하면서도 말을 걸지 못하는, 어수룩한 데가 있는 사람이었다.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백작 부인.”

“어서 오세요.”

남작은 묵묵히 고개를 까딱이고는 피데스의 옆에 자리를 잡았다. 피데스와 안면이 있는 모양인지 몇 마디 대화를 나누기는 하였으나 잠깐뿐이었다.

나이가 지긋한 후작 부부와 말수가 적은 미셸 남작은 잘 어울리지 못했다. 각각의 손님과 대화를 나누기는 했으나, 다른 사람과 교류를 한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아, 어색해. 어떻게 하지?’

한참 고민을 하고 있는데 이본이 도착했다. 가장 마지막에 도착한 그녀는 나를 보자마자 밝게 외쳤다,

“카를라! 오랜만이에요!”

“어서 와요.”

“아, 그래요. 그렇게 오랜만에 만나는 건 아니죠. 어쨌든, 초대해 줘서 고마워요!”

그녀의 목소리는 곧게 뻗어 나갔다. 쾌활한 목소리는 다른 사람들의 기분을 밝게 만들어 주는 힘이 있었다.

“초대한 분들이 모두 오셨군요. 먼 길을 와 주셔서 감사해요.”

“카를라 덕분에 대단한 분들을 알게 되는군요.”

능청스러운 이본의 말에 딱딱했던 분위기가 단번에 풀어졌다. 손님들이 저마다 입을 열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미셸 남작께서도 신앙심이 깊으시다 들었어요.”

“아직 깊이를 말할 정도는 아닙니다.”

서로 안면은 있어도 사이가 그렇게 돈독한 편은 아니었던 터라 어색함이 느껴졌다. 그러나 이전보다는 훨씬 편해진 모습이었다.

“마님, 식사가 준비되었습니다.”

집사의 말에 나는 손님들에게 만찬회의 시작을 알렸다.

“준비가 다 되었다는군요. 이동하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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