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신을 위한 이혼은 없습니다 (56)화 (56/120)

당신을 위한 이혼은 없습니다 56화

벨은 눈치껏 문을 닫고 그 앞에 섰다. 직원의 얼굴에 촛불 그림자가 일렁였다. 내 양옆으로 테오도르와 피데스가 서자 그의 안색이 더더욱 창백해졌다. 나는 턱을 치켜들고 고압적으로 말했다.

“특별실에서 무슨 일이 있었지?”

“저, 그게…….”

“이미 다 알고 있으니 솔직하게 말해야 할 거야.”

가볍게 협박하자 그는 더듬거리며 특별실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처음부터 늘어놓았다. 지루한 이야기였으나 나는 잠자코 그의 말을 들었다. 백작이 술에 취해 시계를 팔아 치웠다는 이야기가 끝나고서야 내가 원하던 말을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아틀라스 님이 이카루스 백작님께 칩 칠백 개를 받고 시가를 넘겨주었습니다.”

“시가?”

“네. 아틀라스 님이 남작저에 계실 때도 종종 취미로 만드시던 것인데, 인기가 많아서 판매도 하고 있습니다.”

직원은 아틀라스가 남작저에 있을 때, 손님들이 시가를 피우기 시작하면 눈에 띄지 않게 몇 시간 동안 자리를 피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말했다.

“물론 이곳에선 그런 교육을 따로 받지 않았지만, 그, 게임이 아예 되지 않을 정도로…… 음, 다들 늘어져 계셔서…….”

빙빙 돌려 말하기는 했으나 한마디로 요약하면 시가를 피우는 놈들이 상대하기 힘든 진상이라는 의미였다. 내가 푹 한숨을 쉬자 그는 멋대로 자리를 비운 것에 대한 책임을 물게 될 줄 알았는지 손을 모으고 애처로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잘했네.”

“네?”

“앞으로도 위험할 것 같거나 이런 일이 생기면 자리를 피하도록 해. 대신 책임자한테 꼭 말하고. 이만 나가 봐.”

“네?”

그가 멍하게 입을 벌렸다.

“어떻게 된 건지 이해했으니 이만 나가 봐도 된다는 말이야.”

내가 손짓하자 벨이 문을 열었다.

“어, 저, 사장님? 정말 나가도 될까요?”

“계속 여기 있으려고?”

“아닙니다! 편안한 밤 보내십시오!”

농담을 던지자 직원은 허리를 굽혀 인사하더니 빠르게 방을 벗어났다.

피데스 소공작이 내 어깨를 가볍게 톡톡 두드렸다. 몸을 돌려 그녀를 올려다보자, 생긋 웃는 얼굴이 보였다.

“언니, 원하던 이야기는 다 들었어?”

“덕분에요.”

“그럼 이제 용서해 줘.”

“누구를요?”

“당연히 이 귀여운 동생이지. 아까 이야기를 하자고 했잖아. 언니가 그런 말을 하면 무섭거든.”

“아, 그랬죠.”

나는 손을 저어 하녀들을 내보냈다. 벨은 아직도 무슨 일인지 감이 안 잡히는 얼굴로 눈치만 보는 리자를 끌고 밖으로 나갔다.

그들이 나간 것을 확인한 후, 무게를 잡고 피데스 소공작을 불렀다.

“소공작님.”

“네, 언니.”

피데스 소공작 역시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보시고 들으셨듯이 누군가 손님들에게 좋지 못한 영향을 끼쳤어요.”

“그렇습니다.”

“이런 불미스러운 일이 공작가의 땅에서 일어나 너무나 유감이에요. 하지만 도대체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지…….”

피데스가 한숨을 쉬었다.

“멱을 따 오면 언니의 화가 가라앉을까요?”

갑작스러운 말에 화들짝 놀라 그녀를 보니 농담이 아닌 듯 눈썹이 한껏 모여 있었다. 소공작은 검지로 주름진 미간을 꾹꾹 눌렀다가 떼었다.

“농담이 살벌하시네요.”

“언니가 원하면 지금 당장이라도 할 수 있어요. 누구 머리를 가져올까요. 이카루스? 아틀라스?”

“원하신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처리하고 오겠습니다.”

심지어 테오도르까지 그녀의 말에 합세했다. 그는 내가 고개만 끄덕이면 당장이라도 자리를 박차고 나갈 기세였다.

맘속으로 무서워서 무슨 말을 못 하겠네, 하고 투덜거리며 고개를 저었다.

“왜 그렇게 무서운 말씀을 하세요. 저는 그저 받은 만큼만 되돌려 주고 싶을 뿐이랍니다.”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뭔 줄 아니? 빚쟁이란다.

* * *

카지노는 연일 성황이었다. 귀족들은 공연을 보기 위해, 식당을 방문하기 위해서 등 갖가지 변명을 붙여 카지노에 출입했다.

백작도 마찬가지였다. 아틀라스와 만나고 싶기 때문인지, 아니면 카지노 자체에 중독되었는지 모를 일이었다.

나는 그들이 특별실을 아편굴로 만드는 것에 별다른 제재를 가하지 않는 거로 암묵적 허락을 내렸다. 특별실 이용자는 크게 늘지 않았다. 한 번에 많이 잃는 사람도 몇 없거니와, 귀족들이 특별실을 꺼리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이본에게 부탁하길 잘했어.’

특별실을 궁금해하는 귀족들의 인식을 바꾸는 데는 이본의 공이 컸다. 그녀는 큰돈을 딸 때마다 아틀라스를 들먹이며 특별실을 깎아내렸다.

“남편은 특별실이 좋다지만, 늘 빈털터리로 돌아오죠. 반면에 저는 보시다시피 꽤 재미를 봤답니다! 특별실이라 해 봤자 별 볼 일 없을 게 뻔해요.”

이본은 많이 벌었으나, 그만큼 많이 잃기도 했다. 내가 그렇게까지 져 줄 필요는 없다고 말했지만, 그녀는 게임을 즐기는 게 더 재미있다고 대답했다. 너무 많이 벌어 카지노가 파산하면 자신이 제일 곤란하지 않겠냐는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딜러들을 가지고 놀 정도로 능수능란한 실력을 보고 있으면 감탄이 절로 나왔다.

반면 아틀라스는 게임을 했다 하면 잃었다. 아편으로 인해 정신이 몽롱한 탓도 있겠지만, 듣자 하니 원래도 실력이 좋은 편은 아니라고 한다. 그런 남자에게 다섯 판 중 네 판을 내리 졌다고 생각하니 조금 우울하기도 했다. 어쨌든 아틀라스는 시가를 판 돈으로 겨우 적자를 면하는 상태였다.

사정을 모르는 다른 귀족들의 눈에는 이본이 대박을 터트리는 것과 아틀라스가 지친 얼굴로 나오는 것만 보이니, 특별실에 대해 불신을 가지게 될 수밖에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카지노의 고객들은 특별실로 가면 돈을 더 많이 잃을 뿐이라고 믿게 되었다.

그래서 자격을 충족한 사람들에게 특별실을 제안하면 대부분이 거부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카지노가 목적인 사람들은 이제 확실히 특별실에 관심을 두지 않는 것 같군.’

처음 특별실을 만든 건, 등급을 만들어 더 효율적으로 도박에 빠지게 하기 위함이었다. 귀족들은 ‘남보다 조금 특별한 나’를 원하는 경향이 있으니 말이다. 특히나 허영심이 많은 백작을 유인해 재산을 야금야금 가로채는 게 내 계획이었다. 그런데 그럴 필요도 없이 그가 먼저 특별실로 향해 일을 이렇게 만들어 주었으니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공들여 만든 장소가 아편굴로 이용되는 게 전혀 아깝지 않을 정도였다.

한편 특별실을 자주 들락거리는 사람들은 소문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아편이 들어간 시가를 피우는 것이었으니까.

그들은 원래 카드 게임 모임에서 만나던 사이라 그런지, 시가를 피우기 전에는 꼭 게임을 하며 돈을 탕진했다. 나는 카지노에서 귀족 손님을 상대하는 데 가장 능숙한 직원들을 모아 특별실 담당으로 배치했다.

특별실의 귀빈들은 아편이 들어간 시가를 마음껏 피울 수 있다는 생각에 들떠 돈을 얼마나 잃던 꾸준히 카지노를 찾았다. 백작도 다를 바 없었다. 장난감처럼 만든 칩의 효과 때문인지, 자신이 돈을 썼다는 자각도 없는 모양이었다.

벨은 당장 융통할 현금이 모자란다고 집사가 우는소리를 했다며 속삭였다. 아무래도 현금이 부족해진 탓에 여러모로 골머리를 썩이는 모양이었다.

‘계획은 완벽하게 돌아가고 있어.’

집사의 앓는 소리는 곧 곡소리로 변했다. 백작이 슬금슬금 재산을 탕진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카지노에 방문할 때마다 가지고 온 돈을 다 쓰는 것은 물론 착용하고 있던 반지나 넥타이핀, 커프스단추를 칩으로 바꾸곤 했다. 번거롭게 보석상 직원을 부르거나 먼 가게에 갈 필요가 없으니 편하게 앉아 보석을 팔아 치웠다.

그리고 그가 팔아 치운 것들은 전부 내 손 위로 떨어졌다.

“사장님, 안녕하십니까! 어제 자 보고 건입니다.”

나는 주기적으로 카지노를 방문해 특별실을 담당하는 직원들에게 보고를 받았다. 처음에는 항상 특별실을 이용하는 특별 귀빈의 명단과 그들이 판 물건들을 정리한 낱장의 종이었으나, 점점 금액이 늘어나 한 달이 지나지도 않았는데 퍽 두툼한 장부가 되었다.

“이카루스 백작님이 판매한 귀중품은 따로 보관해 놓았습니다. 보시겠습니까?”

“그래. 가져와.”

왕은 관대하게도 특별실에서 발생하는 수익 일부분을 내가 가져갈 수 있도록 허락해 주었다. 다른 손님들이 교환한 귀중품은 왕실에서 일괄적으로 처분하지만, 백작의 재산은 고스란히 내 것이 되게끔 말이다. 카를라의 지참금을 되찾으라는 의미에서였다.

직원이 백작이 팔아 치운 보석을 내 앞에 늘어놓았다. 붉은 벨벳 위로 반지와 목걸이, 브로치 따위가 가지런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나는 보석을 꼼꼼히 확인하고는, 뒤에 서 있던 벨에게 명령했다.

“벨, 적어 두렴.”

“네.”

그녀는 곧장 장부를 꺼내 물건의 개수와 종류를 꼼꼼하게 작성하고는, 직원에게서 보석을 인수했다. 벨은 조심스럽게 보석을 닦아 가져온 상자에 하나씩 넣기 시작했다.

그녀가 보석을 정리하는 동안 나는 장부를 훑어보았다. 백작이 현금 유통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게 확실했다. 현금의 비율이 점점 줄고 현물의 비중이 커지고 있었다.

어음이며 수표를 생각 없이 발행한 귀족들은 그것을 갚기 위해 현금을 끌어다 썼다. 그리고 현금이 없어 어음이며 수표를 다시 쓰는 굴레에 빠졌다. 그들은 곧 폐물을 팔아 치우기 시작했다.

내가 원하는 대로 일이 흘러가니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장부를 훑으며 빠트린 것이 없는지 확인하고 있는데, 직원 한 명이 조심스럽게 말을 붙였다.

“사장님, 저,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말해 보게.”

“땅문서도 매입 가능할까요?”

땅문서라는 말에 퍼뜩 고개를 들었다. 직원이 어색하게 웃으며 말을 덧붙였다.

“현물이 부족한 분들이 영지 일부분을 매각하고 싶다고 하셔서, 사장님께 여쭈어보겠다고 말씀드린 상황입니다.”

나는 장부를 탁, 소리 나게 덮으며 대답했다.

“받아.”

드디어 입질이 왔다. 지참금을 되찾아 올 때가 된 것이다.

“땅문서, 집문서, 광산, 선박 가리지 않고 다 받는다고 전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