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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위한 이혼은 없습니다 (48)화 (48/120)
  • 당신을 위한 이혼은 없습니다 48화

    그제야 직원은 아쉬운 듯 손을 내려놓았다.

    “아, 그렇군요. 카를라 님께 괜한 걸 여쭈었습니다. 반지나 목걸이로 만드실 거라면 부디 저희 가게도 생각해 주시길 바랍니다.”

    “나를 어떻게 알죠?”

    갑작스럽게 들린 이름에 내가 깜짝 놀라자 그가 웃으며 대답했다.

    “검은 보석은 흔치 않지요. 이 년 전에 폐하께서 검은 보석을 구해 오라 하셨을 때, 블랙 토르말린을 공수해 온 게 바로 저랍니다.”

    직원은 눈을 찡긋거리며 이어 말했다.

    “또한, 지금 백작 부인이 수도의 유행을 주도하고 계시니, 백화점 직원이 카를라 님을 몰라봐서야 체면이 서지 않지요.”

    그는 부드러운 말씨로 나를 추켜세웠다. 유행을 주도하고 있다고 해도 모자에 관한 일시적인 일일 뿐이지만, 그는 사람을 우쭐거리게 만드는 교묘한 화술을 가지고 있었다.

    “혹시나 가지고 계신 보석이 싫증 나시면 언제든 연락해 주십시오. 매입도 하고 있으니까요.”

    “그래요. 폐하께 선물받은 건 몰라도 다른 것이라면, 종종 들리지요.”

    좋은 이야기를 들었다. 보석이나 장신구를 현금으로 바꿀 수 있는 가게를 알고 있으면 큰 도움이 될 터였다.

    뒤를 돌아보자 테오도르가 자연스럽게 허리를 숙였다. 그에게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혹시 보석 좀 볼 줄 알아요?”

    “기본적인 건 볼 줄 압니다만…….”

    “그래요? 그럼 믿을게요.”

    가방을 열어 백작이 미리 사인해 놓은 수표를 확인했다. 남의 돈으로 하는 쇼핑이 가장 즐거운 법이다. 나는 여전히 웃는 얼굴로 기다리는 직원에게 마주 웃어 보였다.

    “우선 다이아몬드를 좀 보여 줄래요?”

    기분 전환을 하려면 확실하게 해 줘야지.

    * * *

    평생 볼 다이아몬드를 이 자리에서 다 본 것 같았다. 직원이 쥐여 준 루페를 들고 다이아몬드를 확대하여 보니 반짝이는 빛이 너무 강해 눈이 따끔거릴 정도였다.

    내포물이니 성장흔이니 하는 소리는 영 이해할 수 없었지만, 예쁘게 깎아 놓은 돌은 사람의 마음을 들뜨게 했다. 반짝이는 걸 좋아하는 이본의 마음이 어느 정도 이해가 갔다.

    “다 예뻐서 뭘 골라야 할지 모르겠네요.”

    “고르기 힘드시다면, 가공된 상품 몇 가지를 살펴보시고 결정하시는 건 어떠십니까? 가벼운 조정은 바로 이 자리에서 가능합니다.”

    “그럼 목걸이 먼저 보여 줄래요?”

    내 말에 직원은 즉시 안쪽에서 상자를 가져와 열기 시작했다. 잘 손질된 목걸이들이 유리장 위에 늘어졌다. 그중 큼직한 보석이 박힌 것을 손가락으로 가리키자, 직원이 양손으로 그것을 들어 보였다.

    “한번 착용해 보시겠습니까?”

    직원이 목걸이를 걸어 주기 위해 내 등 뒤로 다가오자, 테오도르가 그를 막아섰다.

    “제가 걸어 드려도 되겠습니까?”

    직원은 내 눈치를 보았다. 고작 목걸이일 뿐인데 누가 걸어 주든 상관없는 일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직원이 날 위협할 리가 없는데, 테오도르는 유난일 때가 있어.’

    테오도르는 직원에게서 장갑을 건네받아 착용했다. 그러고 나서 받아든 목걸이를 조심스럽게 내 목에 둘러 주었다.

    귓가에서 목걸이의 훅을 거는 소리가 들렸다. 쉽게 걸리지 않는지, 테오도르의 손이 움직이는 것까지 느껴졌다. 목덜미에 그의 손끝이 가볍게 스치자 나도 모르게 어깨를 살짝 움츠렸다.

    ‘방금 한 생각 취소. 위험하긴 위험하네.’

    간지러운 건 아니었으나 목덜미 근처에 다른 사람의 손이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등이 오싹해졌다. 마침내 테오도르가 손을 놓자, 목걸이가 쇄골 위로 늘어졌다.

    “어떠십니까?”

    “흠…….”

    목걸이는 중앙의 큼지막한 다이아몬드를 자잘한 보석들이 감싸고 있는 형태였다. 자잘한 것들도 어느 정도 크기가 있어서, 여차할 땐 한 알씩 떼어 팔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어때요?”

    몸을 돌려 테오도르에게 목걸이를 보여 주었다.

    “아름다우십니다.”

    돈이 될 것 같냐는 물음이었는데 돌아오는 건 엉뚱한 대답이었다. 나는 직원에게 들리지 않도록 목소리를 낮춘 뒤 그에게 쏘아붙였다.

    “목걸이가 어떠냐는 말이었어요. 보석을 볼 줄 안다면서요.”

    “아! 네, 확실히 좋은 물건입니다. 크기도 크고 투명한 데다가 내포물이 적으니…….”

    테오도르는 허둥거리며 대답했다. 그의 보증이 있으니 구매를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그 뒤로도 직원은 몇 종류의 장신구를 더 보여 주었고, 테오도르는 그때마다 직원에게서 장신구를 받아 내 목과 팔에 걸어 주었다.

    그럴 때마다 심장께가 간질간질한 기분이 들었으나 꾹 참고 보석을 보는 데 집중했다.

    눈이 어지러울 정도로 보석을 보다 보니 내게도 얕은 노하우가 생겼다. 이 세계에서도 보석은 크고, 투명하면서 색이 선명할수록 값이 나갔다. 보석점에는 큐빅 같은 인공 합성물이 없으니 구분하기 더욱 쉬웠다.

    요컨대 보석은 예쁘면 예쁠수록 가치가 높았다.

    “이 반지는 어떠십니까?”

    “흠, 괜찮네요. 그것도 사겠어요.”

    직원이 권유하는 것이 괜찮다고 느껴지면 족족 사들였다. 이본이 놀랄 정도의 사치였다.

    “카를라, 이렇게 잔뜩 사도 괜찮아요?”

    “후후, 백작님이 주신 수표가 있어서요.”

    금액도 묻지 않고 사겠다고 고개를 끄덕인 탓에 수표에 적힌 금액은 어마어마했다. 가게를 나설 때 직원들이 머리가 발에 닿을 정도로 허리를 숙였다.

    * * *

    다른 물건들은 저택으로 배송을 요청했으나, 일부러 목걸이 하나는 착용한 채 가겠다고 했다. 백작에게 보여 주기 위해서였다.

    그는 내 목에 걸린 목걸이와 청구서를 번갈아 보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어때요, 잘 어울리나요?”

    알이 큰 목걸이를 쓸며 묻자 그가 목덜미까지 새빨갛게 물들이고는 인상을 썼다.

    “당신은 생각이 있는 거요? 아무리 수표를 줬어도 이런……!”

    나는 그가 목소리를 더 높이기 전에 입을 열었다.

    “카지노 공사가 거의 다 끝나 가서 개장이 머지않았거든요. 모처럼 많은 분이 모일 텐데, 그 자리에서 당신이 선물한 목걸이를 보여 주고 싶어서요.”

    백작은 잠시 생각하더니 흥분을 가라앉히고 말을 이었다. 카지노라는 군침이 도는 큰 건이 있으니 수표에 적힌 액수 따위는 하찮게 느껴졌을 것이다.

    “그렇군. 기분은 좀 나아졌소? 목걸이가 아주 우아해 보여. 당신이랑 정말 잘 어울리는군. 다른 사람은 보이지도 않을 정도요.”

    그는 태연하게 태도를 바꿔 나를 칭찬했다. 감정이 조금도 담겨 있지 않은 게 명확히 느껴졌다. 로봇이 말해도 그보다는 더 진정성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방긋 웃으며 대꾸했다.

    “백작님이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정말 기뻐요.”

    슬쩍 옆을 보자 리자가 불손하다고밖에 볼 수밖에 없는 눈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녀의 표정은 싸늘하게 굳어 있었고, 당장이라도 내게 달려들 것 같았다.

    나는 흐뭇하게 웃었다.

    ‘계획대로 되고 있어.’

    그 이유가 무엇이든 백작이 나를 신경을 쓰기 시작하면 틀림없이 리자가 질투를 드러내리라 생각했고, 그 예상은 맞아떨어졌다. 그녀는 무서울 정도로 내 도발에 곧이곧대로 걸려들었다. 이글거리는 눈빛이 부담스러울 정도였다.

    잔뜩 약을 올려놓아야 그녀가 합방일에 내 뜻대로 움직일 확률이 높아지니까. 지금도 거의 80%는 넘어온 것 같지만, 그때까지는 리자의 분노 어린 눈빛을 만끽할 생각이었다.

    * * *

    합방일까지 리자는 나를 노려보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벨이 옆구리를 꼬집고 눈치를 주어도 꿋꿋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점잖은 척 “사용인은 주인의 눈을 함부로 보아서는 안 된단다.” 같은 핀잔을 주었다.

    합방 준비는 품이 많이 드는 일이었다. 목욕물에는 향유를 풀었고, 종일 머리카락을 빗질했다. 단추가 많이 달리지 않은 옷을 고르고, 머리는 장식하되 쉽게 풀리는 스타일을 골라야 했다. 벨은 즐거운 듯 장식을 골랐지만, 리자는 입술만 깨물고 있었다.

    창밖으로 노을이 지는 것이 보였다. 완전히 해가 저물면, 백작이 방문을 두드릴 것이다. 그 전에 계획한 일을 마쳐야 한다. 벨은 눈치껏 자리를 비웠으나 리자는 끝까지 내 옆에서 물러나지 않았다.

    나는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그녀를 도발하기로 했다.

    “백작님을 모셔 오렴. 아, 술도 가져올래? 백작님이 숨겨 둔 술이 아니라도 좋아.”

    “마님, 정말 이렇게까지 하셔야겠어요?”

    그녀의 파란 눈은 투지로 불타고 있었다. 쓸모없는 짓이었으나, 말릴 이유는 없었다. 오히려 더 그녀를 부추겨야 했다.

    백작에게 아편을 먹이는 것으로는 안심할 수 없다. 아편은 정신을 몽롱하게 만들고 판단력을 흐리게 할 뿐, 몸을 움직일 수 없게 하는 약은 아니었다. 그러니 그가 제정신이 아닐 때 발목을 묶어 둘 강력한 한 수가 필요했다.

    그게 리자였다. 그녀는 질투심에 눈이 멀어 백작에게 아편을 먹이고, 그가 내게 오지 못하도록 단단히 발목을 잡아 줄 것이다.

    ‘악역들이 보통 어떻게 말하더라?’

    나는 가련한 여주인공을 비웃는 악당처럼 과장되게 웃었다.

    “앞으로 백작님과 나는 영원히 서로를 사랑하며 행복하게 살 거야. 평생, 영원히. 알겠니? 그러니 귀찮게 굴지 말고 어서 가서 백작님을 모셔 오렴.”

    “어떻게 그렇게 잔인하실 수 있으세요?”

    리자는 양손을 맞잡고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마님은 모르실 거예요. 저희가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당연히 몰랐다. 알고 싶지도 않았다. 백작은 카를라의 인생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인간이었고, 리자 또한 마찬가지였다.

    지금 내게 중요한 건 합방을 피하면서, 그 원인을 백작의 탓으로 돌리는 것이다.

    “할 말은 끝났니?”

    나는 한쪽 입꼬리를 끌어올려 그녀의 말을 비웃었다. 그리고 서랍을 열어 도자기 병을 꺼냈다. 마침내 내가 정말 원했던 행동을 할 수 있게 된다고 생각하니 흥분이 고조되었다.

    “리자, 네가 뭐라고 지껄이든 그분의 아내는 나란다. 백작님도 그렇게 생각하실 거야.”

    나는 그녀에게 도자기 병을 건넸다. 리자는 그것을 단번에 낚아채 손에 꽉 쥐었다.

    “네가 백작님께 먹이렴. 그동안 내게서 백작님을 빼앗아 간 벌이란다.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는 것뿐이니, 너무 섭섭하게 생각하지 말렴.”

    바들바들 떠는 얼굴은 정말로 볼만했다.

    “후회하실 거예요.”

    그 말을 마지막으로 리자는 방을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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