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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위한 이혼은 없습니다 (11)화 (11/120)

당신을 위한 이혼은 없습니다 11화

“아녜요, 마님!”

리자가 목소리를 높였다. 싸구려 귀걸이도 그녀의 손가락에 매달려 있으니 퍽 그럴싸하게 보였다. 그녀는 코앞까지 귀걸이를 들이밀었다. 싸구려 귀걸이가 달랑달랑 흔들렸다.

“이건 마님께서 주신 귀걸이가 맞아요!”

아까보다 더 많은 사람의 시선이 쏠렸다. 나는 고개를 기울였다.

“다시 찾아보렴. 나는 이런, 이렇게 엉성한 걸 걸치지 않는단다.”

근처에 있던 부인이 부채를 펴고 일행에게 무어라 속삭였다. 듣지 않아도 무슨 말을 하는지 알 거 같았다. 벨이 리자의 손에 든 귀걸이를 보곤 나를 거들었다.

“리자, 이건 마님의 귀걸이가 아니야. 오기 전에 내가 직접 걸어 드렸는걸.”

리자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서는,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억울하다는 듯 제 주머니를 뒤졌지만, 주머니에서 나온 건 종잇조각 몇 개와 그녀의 귀걸이뿐이었다.

내 것과 달리 세공이 섬세하게 되어 있는, 백작의 선물. 나는 흘러나온 것을 잡아채듯 손에 넣었다.

“헷갈렸나 보다. 내 건 여기 있지 않니.”

그러고는 내가 낼 수 있는 가장 부드럽고 다정한 목소리로, 어린 하녀의 실수를 눈감아 주는 자애로운 주인 흉내를 냈다.

“아, 아니에요, 마님!”

“실수했다면 죄송하다고 사과를 하면 된단다.”

“아니, 아닌데…….”

“내가 그렇게 엄해 보였니? 자잘한 실수에 혼을 낼 만큼 못된 사람은 아닌데 말이야.”

나는 키득키득 웃으며 귀걸이를 귀에 걸었다. 부풀어 오른 귓불이 따가웠지만, 참을 만했다. 귀걸이는 무게감 있게 아래로 떨어졌다. 리자는 억울하다는 듯, 몇 번이고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아니에요, 마님. 그건 제가 선물 받은 물건이에요……!”

그녀는 제 것과 비슷한 귀걸이를 손에 꽉 쥔 채 항변했다.

“이, 이게, 이게 마님 거예요!”

“마님이 용서해 주셨잖아. 그만해.”

벨은 튀어나올 듯 몸을 기울이고 있는 그녀를 말리는 척, 리자의 팔뚝을 꽉 쥐고 잡아당겼다. 그녀의 얼굴에 억울함이 가득 담겼다.

그건 어떤 의미에서 쾌감을 불러일으켰다. 카를라와 리자의 입장이 역전된 이 기묘한 모습은 우스꽝스럽기도 했다.

“다시 봐 주세요, 마님! 정말 아니에요!”

리자는 억울하다고 몇 번씩 외쳤지만, 나는 그녀를 철저하게 무시했다. 카를라는 불공평한 일을 입 밖으로 내지도 못했으니.

주변 귀족들, 그리고 그들의 시중을 들기 위해 대기하고 있던 하인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거만하게 고개를 기울이고는, 그녀에게 물었다.

“이렇게 값비싼 귀걸이를, 누가 네게 선물했다는 거니?”

목소리를 높여 그녀를 압박했다. 모든 이들의 시선이 그녀에게 닿았다. 나는 전혀 두렵지 않았다. 그러나 내 심장은 점점 더 빠르게 뛰었고, 고조되는 기분을 억누를 수 없었다.

“대답해 보렴, 누구니?”

푸르고 투명한 눈동자가 겁에 질렸다. 그 눈동자에서 그녀가 비로소 이 상황에 대해 이해했다는 사실을 읽어 낼 수 있었다.

내가 조금만 더 우기면, 그녀는 도둑이 될 수도, 주인의 것을 탐낸 못된 하녀가 되어 추천장 없이 쫓겨날 수도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백작이 준 선물이라 입 밖에 낼 수는 없을 거다. 그러기에는 보는 눈이 너무 많았다.

그녀에게도 세간의 시선을 인식할 지능은 있다는 사실이 다행스러웠다.

“아, 아아…… 그게…….”

나는 그녀에게 알려 주고 싶었다. 네 행복은 백작의 비호 아래 쌓아 올려진 게 아니라, 카를라가 꾸역꾸역 삼킨 불행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거라고.

네가 그렇게 방자하게 굴 수 있는 이유는 단 하나, 카를라의 묵인이 있었기 때문이라 말해 주고 싶었다.

“실수할 수도 있지.”

그녀에게 부드럽게 속삭였다. 리자는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위태로워 보였다. 벨이 휘청이는 리자의 팔뚝을 잡아 세웠다.

“귀걸이가 가지고 싶었던 모양이구나.”

나는 관대한 주인처럼, 그녀의 어깨를 쓰다듬었다. 리자는 가볍게 떨고 있었다.

“하지만, 주인의 것을 탐내려면…… 조금 더 똑똑해야 한단다.”

리자의 머리카락을 귓바퀴 뒤로 넘겨 주었다. 손가락이 그리 차가운 거 같지도 않은데 그녀가 흠칫 몸을 떨었다. 가련한 새끼 사슴 같았다. 나는 배부른 맹수처럼 입맛을 다셨다.

“소란을 피워 죄송해요. 아직 어린 하녀라, 가르칠 게 많답니다.”

웃으며 주변 사람에게 사과하자, 그들은 이내 흥미를 잃고 자리를 떴다. 내게 초대장을 보내온 부인 하나가 목소리를 높여 내게 충고했다. 리자가 들으라는 투였다.

“분수를 모르는 것들에겐 매가 약이에요. 카를라, 매를 아끼지 말아요.”

마차를 타는 내내 리자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나는 그녀의 턱 아래로 떨어지는 눈물을 끝끝내 외면했다. 심장 박동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 * *

승마 부츠를 벗기도 전에 리자는 덜덜 떨면서도 할 말이 있다며 독대를 청해 왔다.

“드릴 말이 있어요, 마님.”

“벨, 차를…… 아니, 간식을 가져올래? 음, 사과파이가 좋겠구나. 한 김 식혀서 가지고 오면 좋겠구나.”

나는 심부름을 핑계로 벨을 주방으로 보냈다. 방에 나와 단둘이 있게 되자, 리자는 굵은 눈물을 떨어트리기 시작했다.

나는 굳이 그녀가 왜 우는지 묻지 않았다. 짐작 가는 것이야 많았다. 턱을 까딱였다.

“말해 보렴.”

그녀는 울먹이며 말했다. 뺨 아래로 투명한 구슬이 방울방울 떨어졌다.

“마님, 너무하세요. 제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너무 괴롭혔나 싶어 양심이 따끔거렸다. 리자는 훌쩍, 하고 손가락 끝으로 눈물을 훔쳤다.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 얼굴도 참 예뻤다.

이 얼굴로 마님, 사실 저도 피해자랍니다, 하고 한마디만 하면 홀랑 넘어갈 거 같았다. 그야말로 천사 같은 얼굴이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은 외모였다.

리자는 살짝 깨물어 붉어진 입술을 벌렸다.

“백작님이 절 사랑하는 거 때문에 이러시는 거, 알아요.”

그녀는 애처롭게 말을 이었다.

“사랑이 죄는 아니잖아요. 백작님이 마님을 사랑하지 않으시는 건, 제 잘못이 아녜요…….”

그녀의 목소리는 가볍게 떨리고 있었다. 그러나 눈은 똑바로 나를 쏘아보고 있었다. 눈물로 일렁거리는 얼굴이었지만, 조금의 죄책감도 비치지 않았다.

지금껏 애써 외면했지만 결국 인정하고 말았다. 얘도 쌍년이다. 어마어마한 쌍년. 나는 죄책감 없이 입을 열었다.

“그래. 너도 잘하는 게 하나 있기는 하구나.”

나는 달고 있던 귀걸이를 풀어 그대로 리자에게 던졌다. 그녀는 화들짝 놀라며 귀걸이를 받아 쥐었다. 귀걸이가 빠져나간 귓불이 따끔거렸다.

“소매치기보다 더 남의 것을 잘 훔치니 말이야.”

나는 한껏 그녀를 비꼬았다. 사실 그녀가 내게 훔친 건 없었다. 카를라의 남편과 연애를 하고 있기는 했지만, 따지자면 그것 때문에 손해를 본 것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내가 원한이 있는 건 이카루스 백작이었다. 그러나 지금 내 앞에서 당당하게 헛소리를 뱉는 것은 리자였고, 그녀는 이카루스 백작의 연인이었다. 비합리적인 합리화를 끝낸 데는 몇 초도 걸리지 않았다.

“왜 우니? 이제 생각해 보니 도둑질이 수치스럽니?”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 그녀는 조롱에 익숙하지 않은지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고 흐느꼈다.

“너무하세요, 마님.”

나는 리자가 울음을 그치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더욱 서럽게 울어 대었다. 그녀는 벨이 돌아올 때까지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쟁반을 들고 방에 들어오던 벨이 몸을 뻣뻣하게 굳혔다.

“벨, 회초리를 가져와.”

“회초리요?”

“그래. 없으면 나뭇가지라도 주워 오렴.”

벨은 우는 리자를 한 번 흘겨보고는 쟁반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고 다시 방을 나섰다. 그러고는 곧바로 돌아왔다.

얼마나 뛰었는지 헐떡거리는 그녀의 손에는 손질되지 않은 가느다란 나뭇가지가 들려있었다.

“후우, 후우…… 마님, 저택에는 회초리가 없어서 정원사에게 얻어 왔어요.”

“그래. 잘했다.”

벨은 뿌듯한 얼굴로 내게 나뭇가지를 건넸다. 그것을 받아들자마자 공중에 휙, 휘둘러보았다.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제법 날카롭게 났다.

“리자.”

“흑…… 네에…….”

“손을 내밀렴.”

리자는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한 듯 눈만 끔뻑거렸다. 벨이 그녀의 손목을 쥐고 잡아당겼다. 리자는 손을 빼려고 했지만, 벨의 손아귀 힘을 이기지 못하였다.

희고 고운 손등은 핏줄 하나 보이지 않았다. 단단히 고정된 그녀의 손을 내려다보며 나는 무미건조하게 말했다.

“건방지구나.”

그러곤 그대로 리자의 손등을 후려쳤다. 짝, 소리와 함께 흰 손등에 붉은 줄이 생겼다. 얇은 나뭇가지는 금방 동강 나 바닥으로 떨어졌다.

“아!”

내가 정말 때릴 줄 몰랐는지 벨도 눈을 휘둥그레 떴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여기서 마음이 약해지면 안 돼.

리자는 손을 맞으면서도 귀걸이를 놓지 않았다. 얼마나 백작을 사랑하는 걸까, 측은하기까지 했다.

“가서 반성하렴.”

리자는 맞은 손등을 움켜쥐고 나를 노려보았다. 고인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신께서 투기하지 말라 하셨어요, 마님.”

“그러니?”

입꼬리를 올리기 위해 애썼다. 그렇지 않으면 부러진 나뭇가지로 조금 전 행동을 반복할 것만 같았다.

“죄를 털어 내세요, 마님.”

정부의 입에서 흘러나올 말은 아니었다.

“사랑은 죄가 아녜요. 하지만 투기는 죄여요. 이러시니 백작님께서 밤마다…….”

그녀는 말을 잇지 못하고 그대로 벨에게 끌려 나갔다. 리자의 뒷말은 끝까지 듣지 않았어도 충분히 유추해 낼 수 있었다.

그러니까 백작이 너를 찾지 않고, 그러니 아이가 생기지 않는 거다, 하는 유치한 도발이었다. 리자가 측은한 것과는 별개로 카를라에 대한 연민이 짙어졌다.

만약 내가 이 미친 세계에 오지 않았더라면, 카를라는 꼼짝없이 리자의 건방진 발언을 묵인해야 했을 거다. 백작과의 동침을 위해 그가 아끼는 하녀를 어찌하지 못하고 굴욕을 삼켜야 했겠지.

그제야 리자가 카를라의 하녀가 되는 것을 무서워하지 않은 이유를 알아차렸다.

하긴, 카를라가 정부를 해치려고 했으면 이미 해쳤을 거다. 나와 달리 그녀는 저택에서 일하는 하녀들의 얼굴을 잘 알고 있었을 테니, 리자의 얼굴도 일찍이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카를라는 이때껏 그녀에게 손가락 하나 대지 않았다. 가슴앓이만 했을 뿐.

“하, 그깟 아이가 뭐라고.”

카를라가 마음이 약해서도, 순하고 착한 여자여서도 아니었다. 백작의 아이를 가지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 지고지순한 마음에 구역질이 나올 거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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