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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위한 이혼은 없습니다 (9)화 (9/120)

당신을 위한 이혼은 없습니다 9화

“제가 읽어 드릴게요!”

뭐라 말릴 틈도 없었다. 그녀는 내게 얇은 봉투를 보여 주자마자 멋대로 뜯어 내용물을 읽기 시작했다.

“친애하는 카를라, 당신이 보내 준 친, 친애의…….”

“멈추렴.”

남에게 온 초대장을 열어 보는 건 아주 친밀한 사이에서만 허락되는 일이었다. 백작도 내게 온 초대장이며 편지를 열어 보는 일은 하지 않았다.

남작 부인이 어지간한 멍청이가 아니라면, 리자는 선을 넘은 거였다. 제가 벌써부터 백작 부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낭독하던 입술이 멈추고, 동그란 눈이 나를 응시했다.

“예의를 배운 적이 없는 모양이구나.”

“하지만, 편지를 가져오라고…….”

“편지를 가져오라고 했지, 읽으라는 말은 하지 않았단다.”

나는 짧게 한숨을 쉬었다.

“주인의 것에 멋대로 손을 대는 사용인을 쓸 수야 없지.”

“죄송해요, 잘못했어요. 저는 몰랐어요.”

리자의 새파란 눈동자에 눈물이 고였다. 그녀는 애처롭게 말했다. 물론 나는 그녀를 해고할 생각이 없었다. 백작이 허락하지 않을 게 뻔했거니와, 위험 인자는 옆에 두고 관리하는 게 편하기 때문이었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에요, 마님…….”

금방이라도 왈칵 울어 버릴 듯 목소리가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히잉, 하고 울먹이는 것만 들으면 내가 이유도 없이 모질게 괴롭힌 거 같기도 했다.

나는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손 위에 올려놓으라는 뜻이었다. 리자는 입술을 깨물고 손바닥 위에 멋대로 뜯은 종이를 공손히 내려놓았다. 그건 편지가 아니라 초대장이었다.

“용서해 주세요, 마님.”

울먹이는 리자를 무시하고 초대장을 읽기 시작했다. 별 내용은 아니었다. 승마장에 함께 가자는 초대였다.

나쁘지 않은 권유였다. 나는 기분이 풀린 것처럼 웃으며 그녀에게 다시 초대장을 넘겨주었다.

“승마 권유구나. 조만간 승마장에 갈 테니 준비하렴.”

리자의 얼굴이 확 밝아졌다.

“용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녀가 크게 허리를 숙였다. 그녀의 귓불에는 백작이 걸어 주었음이 분명한 귀걸이가 여전히 달랑이고 있었다.

나는 그녀가 어딘가의 여자주인공 같다고 생각했다. 아, 확실히 이 세계의 여자주인공이었지.

아름답고, 밝으며, 사랑스럽고, 모진 시련에도 꿋꿋하게 버텨 내는 세상의 중심. 누군가는 그녀를 퍽 어여뻐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그 ‘누군가’가 아니었다.

“무슨 소리니? 멋대로 초대장을 열어 보았으면 벌을 받아야지.”

그녀를 향해 비아냥거리며 말했다. 리자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오늘 저녁과 내일 아침은 없어. 벨, 집사에게도 말해 놓으렴.”

방 밖으로 쫓아낼 때까지 리자는 줄곧 울상이었다. 음식으로 구박하는 게 제일 서러운 거라 했다. 나는 백작의 정부를 서럽게 만들어 볼 생각이었다.

고작 두 끼를 굶겼다고 죽지는 않겠지만, 타의로 굶는 건 비참한 기분이 들게 하지 않는가. 저택의 주방에는 재료가 쉽게 떨어지지 않으니, 어떻게든 눈치를 보아 삶은 감자나 계란을 훔쳐 먹을 수 있을 거다.

그러나 아침에 그녀를 보았을 때, 인사보다 나를 먼저 맞이한 건 그녀의 배곯음 소리였다. 꼬르륵, 텅 빈 위가 움직이는 소리가 요란했다. 이 멍청한 여자는 정말 저녁을 거른 것이다.

“식사하세요, 마님.”

아침 식사를 할 때는 시중을 들면서 입맛을 다시기도 했다. 틀림없이 백작에게 쪼르르 달려가 우는소리를 할 줄 알았는데 그러지 않은 모양이었다.

일부러 테이블 아래로 사과 하나를 떨어트려 그녀의 발치에 닿게 했다. 주워 먹을 수도, 그렇다고 발로 차 버릴 수도 없는 음식.

그저 보고만 있어야 하는 건 꽤 고문일 터였다. 미안하기는 했지만, 괴롭힘을 멈추지는 않았다.

“빵이 고소하네.”

일부러 빵을 여러 번 뜯어 냄새를 풍기고, 잼이며 버터를 듬뿍 발라 먹었다. 꿀꺽, 리자가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얼른 네 연인에게 달려가서 배고프다고 울어 보렴, 속으로 중얼거렸다. 아침 식사가 끝나고 나서도 리자는 핼쑥한 얼굴로 자꾸만 접시를 힐끔거릴 뿐, 우는소리는 하지 않았다.

나는 그녀를 좀 더 괴롭히기로 했다. 쉬는 시간을 조금도 주지 않기로 한 것이다.

“승마 준비를 하자꾸나.”

원래라면 벨에게 옷을 가져오라고 했을 테지만, 일부러 리자에게 옷을 골라 오라고 시켰다. 그리고 그녀가 옷을 가져오는 족족 트집을 잡았다. 예를 들면 이랬다.

“나는 말을 타러 가는 거지 춤을 추러 가는 게 아니란다.”

“하, 하지만 마님, 드레스를 입고도 말을 탈 수 있는걸요.”

“내 치마가 찢어졌으면 좋겠다고 솔직히 말하지 그러니.”

물론 드레스를 입고도 말을 탈 수 있었다. 보통 귀족들은 정식으로 말을 타지 않는 이상 가벼운 외출복을 입었다. 거기다 지금 가는 승마장은 말을 타는 게 아니라 사람을 타는 곳이기도 하고.

그러나 리자는 얼마 전 새로 맞춘 야회복을 들고 왔고, 그건 분명히 승마에는 어울리지 않는 차림이었다. 나는 트집을 잡기 쉬워져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도 그녀를 몰아붙였다.

“다시 가져오렴.”

이런 대화를 두 번 반복하자, 리자도 눈치가 생겼는지 승마용 바지와 재킷을 가지고 왔다. 하지만 어디서 꺼내 온 것인지 화려해서 눈을 둘 곳이 없었다.

어이가 없어 한숨도 나오지 않았다. 정말 이걸 내가 입을 거라고 생각한 건지, 아니면 반항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너는 내가 광대라도 되는 줄 아는 모양이구나.”

목소리를 높여 비꼬자 리자는 울 거 같은 얼굴을 했다. 투명한 눈동자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뺨은 수치심인지 분노인지 모를 감정으로 발그레하게 달아올랐다. 장밋빛 입술은 처연하게 떨리고 있었다. 손을 대면 금방이라도 눈물이 툭, 떨어질 거 같은 모습이었다.

사랑스러운 얼굴에 문득 손을 대 눈물을 닦아 주고 싶었다. 나는 일부러 한숨을 크게 쉬었다.

“벨.”

“네, 마님.”

“네가 적당히 골라 오렴.”

크게 한숨을 쉰 후, 벨에게 다시 옷을 골라 오라고 시켰다. 그러고는 이어 리자에게 핀잔을 주었다.

“넌 할 줄 아는 게 뭐니?”

리자가 고개를 숙였다. 눈물이 떨어진 모양대로 바닥의 색이 짙어졌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의 머리통에 다시 속삭였다.

“벌로 다음 주까지 저녁은 없단다.”

리자는 훌쩍거렸지만 큰 목소리는 내지 않았다. 측은함에 어깨를 쓰다듬어 주려다 손을 거뒀다.

나는 지금 못된 사람이다. 아주 못되어 먹었다. 자기 암시를 끝내기도 전에 벨이 옷을 가지고 돌아왔다. 아주 평범한 승마복이었다.

* * *

리자가 내 전담 하녀가 된 후로, 백작은 종종 먼저 식사를 권했다. 중요한 대화는 없었다. 그는 내 어깨너머로 리자와 시선을 교환했다. 어이가 없었다.

사람을 무슨 연애 조미료쯤으로 여기는 꼴에는 기가 찼다. 스릴 넘치는 연애를 즐기는 게 좋은 모양이었다. 승마 약속을 잡은 날도 백작은 나를 아침 식사에 초대했다.

“크흠.”

“콜록, 콜록.”

둘은 아예 내가 듣든 말든 서로 헛기침과 기침으로 비밀 신호를 주고받았다. 나는 그런 그들을 보며 웃었다. 백작은 모르고 있을 거다. 사랑하는 여자를 네 부인이 굶기고 있단다.

뭐든 해 줄 것처럼 달콤한 말을 뱉은 주제에, 그녀의 배고픔 하나도 해결해 주지 못하는 무능한 남자. 나는 입가의 미소를 지우지 않고 그를 바라보았다. 멍청한 자식.

“오후에는 말을 타려고 해요.”

나는 영양가 없는 말을 늘어놓았다. 백작은 심드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 승마 실력이 좀 늘기를 바라겠소.”

꼭 카를라의 속을 긁는 것으로 대화를 마무리해야 성에 차는 모양이었다. 백작은 턱을 들어 할 말이 있으면 해 보라는 식으로 나를 도발했다. 물론 나 역시 그대로 맞고 있지는 않았다.

“말을 잘 타는 하녀를 데려가니, 곧 제 실력도 늘지 않을까요?”

백작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쟤는 나한테 말로 이기지도 못하면서 꼭 먼저 시비를 걸더라. 이죽거리며 덧붙였다.

“할 줄 아는 게 없으니 말이라도 잘 타야죠.”

그렇지 않냐는 뜻으로 리자를 돌아보자, 그녀가 화들짝 놀랐다. 그녀는 엄지손톱을 튕기며 우물쭈물 대답했다.

“마님, 저는 말을 못 타는데요.”

나는 잠시 그녀의 멍청함에 말을 잇지 못했다. 리자는 곧 표정을 밝게 바꾸고는 말을 이었다.

“하지만 금방 배울 수 있을 거예요. 저는 배우는 게 빠르거든요!”

햇살같이 바라보는 얼굴에는 한 점의 두려움도 없었다. 내가 정말 말을 태워 줄 것이라 믿는 얼굴이었다.

이 세상은 엄연한 신분제 사회였다. 불륜 상대의 부인에게 저렇게 당당하게 구는 건 패기라기보다는 멍청함에 가까웠다. 나는 그녀에 대한 평가를 지능이 조금 모자란 야심가에서 머저리로 몇 단계 강등시켰다.

“네가 배움이 빠르다니, 그것참 놀라운 이야기구나.”

백작이 무어라 말을 하기도 전에 내 입에서 비아냥거림이 튀어나왔다. 리자가 눈을 깜빡이며 백작을 바라보았다. 도움을 청하는 모습에 나도 백작을 바라보았다.

“애초에 하녀가 말을 탈 수 있는 곳도 아닌걸. 그렇죠?”

“큼, 또 모르지…….”

“하긴, 발소리만큼은 기사 못지않으니 종자가 되면 가능할 수도 있겠군요. 평민은 기사가 될 수 없지만…… 또 모르죠.”

그녀의 신분을 실컷 무시했다. 미안한 마음이 들기는 했지만, 원래 남을 공격할 때는 야비하고 못되게 구는 게 최고였다.

리자가 울음을 터트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그녀는 입술을 깨물 뿐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다. 그래도 분하고 서러울 거다.

나는 아랑곳하지 않는 척 계속 백작을 바라보았다. 그는 곤란한 얼굴로 평소보다 빠르게 식사를 해치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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