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놓고 사내연애-31화 (특별 외전 1) (31/32)

특별 외전 1. 내겐 너무 무서운 팀장님

이른 아침.

다정은 자신이 다니는 회사인 <한신 건설>에 출근도장을 찍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기획팀 사무실 앞에 도착한 다정. 그녀는 투명한 자동문 너머로 보이는 사무실 풍경을 살폈다. 불이 켜진 사무실은 아무도 없는 것처럼 조용했다. 하지만 그녀는 이곳에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이미 눈치채고 있었다.

·

다정은 사원증을 대고 문을 열었다. 그녀의 책상은 사무실 문과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그녀는 책상 한쪽에 가방을 내려놓고, 걸음을 옮겼다. 그녀가 향한 곳은 다름 아닌 팀장실이었다.

입사한 지 6개월이 된 다정은 기획팀에서 항상 제일 먼저 출근하는 사원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부지런함이 최고의 무기라고 생각했고, 신입사원 때부터 꾸준하게 1등으로 출근했다. 알아주는 이가 없더라도, 언젠가는 그녀의 성실함이 빛을 보는 날이 있을 거라 믿었다.

하지만 기획팀에 새로운 팀장이 오고 난 이후로부터는, 매번 1등을 놓치고 있었다. 평소보다 조금 일찍 온 오늘도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팀장실엔 불이 켜져 있었다.

다정은 팀장실 문을 노크하기 전에, 손목시계를 보았다.

오전 7시 40분.

보통 사원들의 출근시간이 8시 30분인 것을 감안하면, 지금도 굉장히 이른 시각이었다.

‘이 남자는 대체 언제 집에서 출발을 하는 걸까. 잠을 자긴 자는 걸까?’

다정은 정말 빈틈이 없는 남자라고 속으로 중얼거리며, 팀장실 문 쪽으로 손을 가져갔다. 노크를 하려는 그녀의 얼굴에 긴장감이 맴돌았다. 주먹 쥔 손에는 괜스레 땀이 맺혔다.

그저 인사를 하려는 것뿐인데도, 이렇게 긴장이 되는 이유는 바로 하나.

새로 온 팀장이 너무도 무서웠기 때문이었다.

똑똑.

어렵게 노크를 하자, 문 너머로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와요.”

나지막이 울리는 중저음.

날카로운 이미지와는 다르게, 목소리 톤은 참 근사한 사람이었다.

다정은 문손잡이를 잡았다. 아마 그도 알고 있을 것이다. 지금 시간에 그에게 인사하러 오는 사원은 바로 다정밖에 없다는 것을.

천천히 문을 열고, 다정이 팀장실 안으로 들어갔다.

조금 떨어진 곳에 너른 어깨를 펴고 반듯하게 앉아있는 상사의 모습이 보였다.

단정한 네이비색 슈트가 모델처럼 잘 어울리는 남자.

어디서나 눈에 띄는 비현실적인 외모를 가진 남자.

바로 그가 기획팀의 새로운 팀장 지도훈이었다.

“안녕하세요. 팀장님.”

다정이 깍듯하게 인사했다.

“좋은 아침입니다.”

“네. 좋은 아침입니다.”

그녀의 인사에 도훈이 고개를 올렸다.

그러자 그의 또렷한 눈동자가 다정과 마주쳤다.

‘윽.’

바로 저 눈빛이 다정이 그를 무서워하는 이유 중 하나였다.

가로로 길게 뻗은 그의 눈매와 날카로운 눈빛은 언제나 제가 무슨 잘못을 했나 싶은 마음이 들게 했다.

특히, 짙은 검은색의 눈동자를 계속 보고 있으면, 마치 끝도 없는 블랙홀에 빠져드는 듯한 기분도 들었다.

그를 무서워하고 불편해하는 건, 비단 다정만이 아니었다. 이미 그는 기획팀 안에서 냉철하기로 소문난 상사였다. 완벽하고 빈틈없는 그는 사원들의 업무 평가에 혹독했다. 모든 사원들이 그의 사무실에 들어갈 땐 몸이 저절로 굳었다.

“그럼…… 전 이만 나가보겠습니다.”

다정은 숨 막힐 것 같은 이 공간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고개를 숙여 인사한 뒤, 얼른 몸을 돌렸다. 그리고 경보하듯 빠르게 그의 사무실에서 나왔다.

3분도 안 되어 아침인사를 마친 후, 다정이 향한 곳은 탕비실이었다. 한쪽에 놓아둔 물뿌리개 안에 물을 채웠다. 그리고 그것을 들어 밖으로 나와, 사무실 창가로 걸음을 옮겼다.

그녀가 출근 후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저보다 일찍 오는 상사에게 인사를 하는 것이라면, 두 번째는 창가에 놓인 화분에 물을 주는 것이었다.

화분은 이전 팀장이 두고 간 것으로, 아무도 신경을 써주지 않는 바람에 다정이 이 일을 맡게 되었다. 아니, 어떻게 보면 다정이 먼저 잘 보살폈기에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창가로 다가간 다정은 진한 아메리카노 향을 느꼈다. 그녀는 흘깃 맞은편 창 쪽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팀장실에서 나온 도훈이 창가에 기대서 있었다. 그는 손에 커피 한 잔을 들고, 창 밖 어딘가로 시선을 두고 있었다.

팀장실이 답답하게 느껴져서일까?

그는 늘 이 시간쯤, 팀장실 밖으로 나와 이렇게 커피를 마시거나 책을 읽곤 한다. 그러다 직원들이 하나둘씩 출근하기 시작하면, 다시 팀장실로 들어간다.

오늘도 창가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는 도훈을 뒤로한 채, 다정은 제 일을 시작했다. 창틀에 나란히 놓인 세 개의 화분에 차례로 물을 주었다.

쪼르르 가늘게 내리는 물줄기가 흙을 적셨다. 그녀는 한 화분에서 자줏빛의 작은 꽃이 피어난 것을 보며, 작게 미소 지었다. 감탄과 뿌듯함으로 적셔진 미소였다. 다정은 낮게 중얼거렸다.

“너무 예쁘다.”

그 순간, 다정은 저에게 향하는 강인한 시선을 느꼈다. 그녀가 살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저를 뚫어져라 보고 있는 도훈을 발견했다.

‘왜…… 왜 저렇게 보는 거지? 내가 너무 크게 말했나?’

당황한 다정이 그를 바라보며, 변명하듯 말했다.

“아……. 화분에 꽃이 피었는데, 너무 예뻐서 저도 모르게 말이 나왔어요.”

불쑥 던져진 그녀의 말에 도훈이 눈매를 잠시 꿈틀했다. 그러다 화분의 꽃을 지그시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

“네.”

도훈의 시선이 다시 슬그머니 그녀에게로 향했다.

“정말 예쁘네요.”

순간 마주 닿은 그 눈빛이 너무 짙어, 다정은 두 볼이 화끈거리는 기분을 느꼈다. 그 어색한 기분이 싫어, 다정이 얼른 시선을 내리며 말했다.

“이 화분은 이전 팀장님이 두고 가신 건데, 그분이 워낙 식물을 가꾸고 키우는 것을 좋아하셨거든요. 그래서…….”

어색함을 누그러뜨리고자, 주저리주저리 말을 내뱉던 그녀가 멈칫했다. 생각해보니, 이 이야기는 이미 그에게 했던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표정 없는 도훈의 얼굴을 보니, 더욱 확실해졌다.

다정이 살짝 민망해하며 말했다.

“아……. 제가 이 이야기를 했던가요?”

“말했습니다. 처음 회사에서 마주한 날.”

그의 명확한 말에 다정은 살짝 움찔했다. 그녀가 도훈을 불편해하는 또 다른 이유는 바로 첫 만남 때문이었다. 처음 마주한 날, 다정은 그를 새로운 상사가 아닌 신입사원으로 착각했었다. 그 이후, 도훈은 그날 일에 대해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다정은 그때 일을 마음에 두고 있지는 않을까 늘 마음을 졸였다.

첫날의 기억을 떠올리며 표정이 굳어지고 있는데, 도훈의 목소리가 사무실에 울려 퍼졌다.

“전 팀장님이랑은 사이가 좋았나 봅니다.”

다정의 눈이 동그래졌다.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냐는 눈빛이었다.

“?”

도훈은 나직하게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분이 놓고 간 물건까지 잘 챙기는 걸 보면.”

그렇게 내뱉는 말에 날이 선 듯한 느낌이 들어, 다정이 얼떨떨해하며 답했다.

“……아니요. 딱히 사이가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어요.”

도훈은 그렇군요, 라고 짧게 답한 후, 창밖 어디론가 멀리 시선을 돌렸다.

다정은 생각했다. 이유가 뭔지 몰라도 그가 자신을 못마땅하게 보고 있는 게 틀림없다고.

다시 사무실 안은 깊은 침묵이 흘렀다. 다정은 재빨리 화분에 물주는 것을 마치고, 자리를 떠났다.

제 자리에 앉은 다정은 컴퓨터를 켜고 할 일을 찾기 시작했다. 일을 하면서도 그녀의 시선은 한 번씩 창가에 기대있는 도훈에게로 향했다. 고요한 사무실 안에 알 수 없는 긴장감이 맴돌았다.

후, 속으로 작게 한숨을 내쉬는 다정. 사실 그녀에게 지금은 하루 중 가장 불편한 시간이었다.

어색한 기류가 흐르는 사무실에서 다정은 바랐다.

다른 사원들이 어서 빨리 출근하기를.

***

퇴근 시간이 훌쩍 넘은 시각.

기획팀 사무실엔 조명이 한쪽만 켜져 있었다. 바로 다정의 책상이 있는 부근이었다.

다정은 내일까지 제출하기로 한 보고서를 다 작성하지 못해, 혼자 사무실에 남아 일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모니터에서 시선을 떼어 팀장실을 바라보았다. 불이 켜져 있는 팀장실은 블라인드 너머로 어렴풋이 도훈의 실루엣이 보였다.

‘팀장님도 일이 남으셨나?’

그렇게 생각하곤 다정은 다시 모니터 화면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 후로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허리 한 번 펴지 않고 일에 집중한 결과, 드디어 보고서 작성을 마무리했다. 다정은 그제야 손을 쭉 올려, 기지개를 켰다.

“으~ 다 했다!”

급격히 피곤함이 몰려왔다. 그리고 배도 슬슬 고파왔다.

다정은 시간을 확인했다. 벌써 여덟 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팀장실 쪽을 바라보았다. 언제 가버렸는지, 팀장실 불이 꺼져있었다.

“언제 가신 거지?”

너무 집중하느라, 그가 사무실 밖으로 나간 줄도 모르고 있었다. 다정도 얼른 퇴근하려고 가방을 메는 그 순간이었다.

지이잉, 사무실 입구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다정은 고개를 돌려 입구를 바라보았다. 먼저 간 줄만 알았던 도훈이 다시 사무실로 들어오고 있었다. 양손에 무언가를 가득 든 채로.

그가 다정 쪽으로 다가오더니, 말했다.

“배고파서 몇 가지 사왔는데, 같이 먹을래요?”

다정은 그가 들고 있는 쇼핑백을 바라보았다. 유명한 초밥집 상호가 새겨져있었다. 봉투가 커다란 것을 보니, 많이도 산 모양이었다. 없어서 못 먹는 초밥이었지만, 그녀는 배고픔 대신 불편함이 더 두려웠다.

“아니, 전 괜찮습…….”

그렇게 말하는 순간이었다.

꼬르륵.

마치 만화의 한 장면처럼 배 속에서 요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다정의 얼굴이 순식간에 빨개졌다. 도훈이 피식, 입매를 올리며 말했다.

“한다정 씨 배 속은 안 괜찮은 것 같군요.”

그 옅은 미소에 다정은 얼굴이 더욱 뜨거워지는 느낌을 받았다.

***

다정은 탕비실 옆에 작게 마련된 휴게실에서 도훈과 단둘이 앉아있다.

둘이 마주 본 테이블 위에는 도훈이 사온 초밥이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먹음직스러운 비주얼에 다정이 침을 꿀꺽 삼켰다. 그녀의 눈이 반짝반짝 빛나는 것을 보며, 도훈이 넌지시 말했다.

“어서 먹어요. 많이 배고픈 것 같던데.”

다정은 작게 미소 지으며 답했다.

“아, 네. 감사히 잘 먹겠습니다.”

배고팠던 그녀는 초밥 하나를 입에 넣고, 오물오물 맛있게도 먹었다. 무서운 상사가 앞에 있다는 것도 잊을 정도로, 먹는 데 집중했다. 그런 제 모습을 도훈이 한 번씩 지그시 바라보는 것도 당연히 눈치채지 못했다.

순식간에 도시락을 비운 다정은 행복한 포만감에 표정이 밝아졌다. 그녀가 미소를 머금으며 도훈에게 말했다.

“감사합니다. 정말 맛있게 잘 먹었어요.”

그녀의 감사인사에 도훈이 답했다.

“맛있었다니, 다행이군요.”

그렇게 말하는 도훈의 입술 끝이 부드럽게 호를 그렸다. 그 미소를 눈앞에서 마주한 다정의 눈동자가 살짝 떨려왔다.

늘 차가운 인상인 그를 보며 다정은 저를 싫어하거나, 감정이 메마른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오늘 그의 태도나 표정을 보았을 때는, 자신의 예상이 어쩌면 틀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그렇게 무서운 사람은 아닐지도…….’

다정이 속으로 중얼거리던 때였다.

도훈의 핸드폰이 울렸고, 그가 화면을 잠시 응시하더니 전화를 받았다. 이윽고 상대방의 목소리가 휴게실 안에 울려 퍼졌다.

[지 팀장. 나일세!]

쩌렁쩌렁한 목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부문장이었다. 워낙 목소리가 큰 덕에 떨어져있는 다정도 단박에 알아챌 수 있었다.

그는 술에 취한 듯한 목소리였고, 도훈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주된 이야기는 바로 자신의 딸과 한번 만나보지 않겠냐는 제안이었다.

그의 이야기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자, 미간이 굳어진 도훈이 말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지금 바빠서, 이만 끊겠습니다.”

냉정하게 끊는 그의 모습을 보며, 다정은 부문장을 상대로 저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이 남자밖에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또한, 회사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부문장에게 찍힌 그가 불쌍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의 눈치를 보던 다정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부문장님 때문에 많이 힘드시죠?”

함께 식사를 하면서 거리가 조금은 가까워졌다고 느낀 걸까.

다정은 용기 내, 그에게 말을 이었다. 그녀 딴에는 도훈을 위로해주고 싶은 마음이 생겼던 듯했다.

“부문장님이 팀장님이 너무 마음에 드셨나 봐요. 그렇게 적극적으로 딸을 소개해주려는 건 저희도 처음 보거든요.”

도훈은 별 반응이 없었다.

하긴, 자신이 생각해도 이런 식의 말은 그다지 위로가 되지 않을 것 같았다. 뭔가 현실적인 조언이 필요하다고 느낀 다정이 고민 끝에 입을 열었다.

“차라리 둘째 따님을 소개 받는 건 어떨까요?”

그녀의 말에 도훈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순식간에 차가워진 그의 눈빛에 다정이 움찔했다.

당황한 다정이 급히 다음 말을 이었다.

“저번에 사진 보니까, 둘째 따님은 얼굴도 자그맣고 예쁘더라고요. 부문장님 하나도 안 닮았어요.”

“…….”

“나이가 조금 어린 게 문제라면 문제지만……, 어린 게 흠은 아니잖아요. 하하.”

어떻게 된 건지, 말을 하면 할수록 그의 표정이 점점 더 매서워졌다.

다정은 제가 주제넘는 말을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밥 한 번 같이 먹었다고, 잠시 정신을 놓은 게 잘못이었다.

눈빛이 싸늘해진 그가 다정에게 말했다.

“한다정 씨한테 그런 이야기는 듣고 싶지 않군요.”

다정 역시 표정이 굳으며, 곧바로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둘 사이의 분위기는 급격히 내려앉았다. 다정은 다 먹은 도시락을 정리하며, 그의 얼굴을 살폈다. 그의 표정은 여전히 굳어있었다.

‘저렇게 냉랭해질 만큼, 내가 심한 말을 한 것 같진 않은데…….’

역시, 그는 첫 만남 때부터 저를 탐탁지 않게 보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이렇게 무서운 상사에게 찍혔다고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해졌다.

***

식사를 마친 다정과 도훈은 사무실을 나왔다.

그리고 조금 떨어진 채로, 엘리베이터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정은 올라오는 층수에 시선을 두고 있었다. 그와 함께 있는 것이 불편해, 어서 빨리 엘리베이터가 오기만을 바랐다. 그때였다.

“한다정 씨.”

그의 음성이 울렸다. 다정이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네?”

“시간도 늦었는데, 태워…….”

Rrrrr----, Rrrrr----.

도훈이 뭐라고 말하려는 순간, 다정의 핸드폰이 울리며 그의 목소리를 덮었다.

“잠시만요.”

다정은 그에게 양해를 구하고,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막둥아. 너 언제 퇴근해?]

시끄러운 목소리는 바로 다정의 언니 애정이었다. 그녀는 다정의 회사 근처에서 술을 마시고 집에 들어가려다가 동생에게 전화를 한 것이었다.

“그럼 같이 집에 들어가면 되겠다. 우리 회사 후문 쪽에서 만나자. 어딘지 알지?”

애정과 집에 함께 가기로 약속하고, 다정이 통화를 마쳤다. 그가 도훈을 보며 물었다.

“아까 저에게 무슨 말씀 하시려고 하지 않았어요?”

“……아닙니다. 아무것도.”

그가 짤막하게 답을 했고, 엘리베이터는 도착했다.

엘리베이터에서 살짝 거리를 두고 선 두 사람.

다정의 목적지는 로비 층. 도훈의 목적지는 차가 주차된 지하 3층이었다.

다정은 그곳에서도 내려가는 층수만 바라보고 있는데, 도훈이 불쑥 말을 걸었다.

“이거 받아요.”

다정은 그가 건넨 쇼핑백을 바라보았다. 그가 아까부터 들고 있었던 쇼핑백은 영어로 된 로고가 그려져 있었다.

“아까 나갔다가, 디저트로 산 겁니다.”

초밥 사러 나갔을 때 같이 사 온 디저트인 모양이었다. 다정은 얼떨떨한 얼굴로 그가 건넨 쇼핑백을 받았다.

“아……. 감사합니다.”

마침 엘리베이터가 로비에 도착하고, 다정은 그에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그러다 문득, 그의 손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잠깐만요.”

밖으로 나온 다정이 버튼을 눌러, 엘리베이터를 세웠다. 그리고 도훈에게 말했다.

“이걸 저한테 주시면, 팀장님 건…….”

도훈의 입술 사이로 굵은 음성이 흘러나왔다.

“난 단 거 별로 안 좋아합니다.”

그 말을 끝으로, 엘리베이터 문은 닫혔다.

홀로 남은 다정이 멍한 얼굴로 쇼핑백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중얼거렸다.

“그럼…… 대체 왜 산 거야?”

***

“다녀왔습니다~.”

애정과 다정이 함께 집으로 들어오며 말했다.

소파에 널브러져있던 소정이 몸은 움직이지 않은 채, 그녀들에게 물었다.

“왜 둘이 같이 들어와?”

“다정이 회사 근처에서 회식 중이었거든.”

애정이 답하며 거실 안으로 들어왔다. 다정도 뒤따라 들어오며 물었다.

“엄마랑 할머니는?”

“진작 꿈나라로 여행 가셨지.”

다정은 거실 테이블에 도훈에게 받았던 쇼핑백을 올려놓았다.

“그래? 그럼 우리끼리 먹어야겠다.”

그녀의 말에 소파와 한 몸이었던 소정이 곧바로 분리되었다. 마치 순간이동이라도 한 것처럼 테이블 앞에 재빠르게 앉은 소정. 그녀는 먹을 것 앞에서만은 그 누구보다 날렵한 동작을 보여주곤 했다.

그녀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이게 뭔데?”

“우리 회사 팀장님이 주신 거야. 디저트라던데, 뭔지는 모르겠어.”

그렇게 답하며 다정이 쇼핑백에서 잘 포장된 케이스를 꺼내었다. 딱 봐도 고급스러워 보이는 케이스를 열어보니, 여러 개의 조각케이크가 들어있었다.

“어맛. 이거 내가 제일 좋아하는 밀푀유잖아.”

케이크를 보고 입이 떡 벌어진 소정. 그녀는 쇼핑백 로고를 다시 한번 본 후, 흥분한 목소리로 외쳤다.

“여기 제과점 거 무지 비싼 데다가, 줄도 길다고 들었는데? 대박. 너 이거 어디서 났다고?”

“회사 팀장님이 주셨는데?”

어느새 케이크를 입에 한가득 밀어 넣은 소정이 쩝쩝거리며 말했다.

“그래? 그 사람 돈이 무지 많거나, 아님 너한테 잘 보이고 싶었나 보다.”

……뭐?

언니의 말에 다정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그녀가 시큰둥하게 답했다.

“전자는 맞는 것 같고, 후자는 절대 아니야.”

“왜 후자는 절대 아닌데?”

“그 사람 나 싫어하거든.”

“에이. 널 싫어하면 이런 것도 안 사주지.”

다정은 고개를 휘휘 저으며, 크게 부정했다.

“날 싫어하진 않아도, 적어도 좋아하지 않는 건 확실해.”

그녀는 뾰로통한 얼굴로 한마디를 덧붙였다.

“만날 날 잡아먹을 듯이 바라보는걸.”

“널 정말 잡아먹고 싶은 건 아닐까?”

“…….”

짓궂은 소정의 말에 다정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자기 연애도 제대로 못하는 언니들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은 제 잘못이었다.

“그 팀장이라는 사람은 어떤 남자인데?”

애정의 물음에 다정이 잠시 생각하는 듯싶다가 대답했다.

“되게 차갑고 무서운 사람이야. 그리고…….”

그녀는 도훈의 얼굴을 떠올려보았다. 눈만 마주쳐도 어깨가 움츠러들 만큼 차가운 이미지를 가진 그였지만, 또 볼 때마다 감탄이 나올 만큼 놀라운 외모를 가지기도 했다.

다정이 나직하게 말을 이었다.

“그리고 잘생겼어.”

“얼마나 잘생겼는데?”

“강동완처럼 생겼어. 아니, 그보다 더 잘생겼나?”

“어머머, 완전 대박이다. 키는?”

“키도 커. 185는 넘을걸.”

동생의 말을 듣고 있던 소정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혀를 찼다.

“에이, 뭐야. 그럼 완전 틀렸네.”

“틀리다니?”

“언니. 그런 남자가 우리 막둥이를 좋아할 리가 없잖아.”

언니의 무자비한 발언에 다정이 눈을 흘겼다. 맞는 말이긴 한데, 기분이 나쁜 건 어쩔 수가 없었다. 그녀는 어느새 두 번째 케이크로 향하는 소정의 포크질을 가로막았다.

“언니는 먹지 마.”

“야, 치사하게 먹는 걸로 이럴래?”

“내가 받은 거니까, 내 거야.”

“이거 너 혼자 다 먹으면 돼지 될까 봐, 언니가 걱정스러운 마음에 먹어주는 거야. 언니의 깊은 속도 모르고!”

티격태격하는 동생들을 보며 애정이 한마디 내뱉었다.

“혹시 모르지. 그 남자가 우리 다정이한테 콩깍지가 쓰였을지도.”

그녀는 태연하게 케이크를 먹으며 말을 이었다.

“다정이도 관심이 없는 건 아닌가 본데? 강동완보다 더 잘생겼다고 말하는 거 보면.”

그녀의 말에 다정의 미간이 꿈틀했다.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었다.

“관심은 무슨. 나는 그 남자랑 있으면 숨이 막혀서 1분1초도 못 버티는 사람이라고.”

“원래 그런 사이가 갑자기 연인이 되기도 하는 거야.”

“언니가 빨리 누구라도 엮어서 날 집 밖으로 내보내고 싶은 마음은 알겠지만, 이번엔 완전히 잘못 짚었어.”

다정이 입술을 삐죽거리며 말했다.

“하늘이 두 쪽 나도 그 남자와 잘될 일은 없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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