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2.
도훈과 다정의 신혼여행지는 허니문의 로망이라고 불리는 몰디브였다.
결혼식 일정이 끝나고, 바로 공항으로 향한 둘은 몰디브 말레로 떠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장장 열두 시간의 비행 끝에 말레 공항에 도착했고, 또 그곳에서 수상비행기를 타고 호텔까지 이동했다.
아름다운 해변에 위치한 리조트에 도착했을 때, 다정은 쉴 새 없이 달려온 스케줄에 녹초가 되어있었다. 그녀는 호텔방에 들어오자마자 푹신한 침대에 지친 몸을 던졌다.
“으, 피곤해 죽겠다~”
그녀는 고단한 얼굴로 말했다.
“신혼 첫날밤은 피곤해서 아무것도 못 한다는 말을 이제야 이해하겠어요.”
그녀의 옆에서 짐을 풀고 있던 도훈이 입을 열었다.
“난 이해 못 하겠는데. 아무리 피곤해도 할 건 해야죠.”
“오늘은 넘어가요. 난 지금 내 손으로 씻는 것도 하기 싫을 만큼 피곤하다고요.”
도훈은 뭐가 문제냐는 듯 말했다.
“어려운 일은 아니니, 내가 대신 씻겨줄게요.”
그 말에 다정이 화들짝 놀라며 얼굴을 붉혔다.
“노, 농담이에요. 내가 어린애도 아니고.”
다정은 이대로 잠들고 싶은 유혹을 겨우 떨쳐내고,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일단 24시간 넘게 씻지 못한 몸을 개운하게 씻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두꺼운 신부화장은 공항 화장실에서 대충 지워냈지만, 스프레이가 묻은 머리카락은 한시라도 빨리 씻어내고 싶었다.
“나 먼저 씻어도 돼요?”
다정의 물음에 도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욕실로 가기에 앞서, 한쪽에 놓인 캐리어로 향했다.
캐리어에서 세면도구와 갈아입을 옷을 꺼내는 다정. 그녀의 시야에 핑크빛이 도는 종이백이 들어왔다.
“이게 뭐지?”
다정은 낯선 물건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종이백 안에 있는 물건을 꺼내보았다.
“어머!”
물건의 정체를 확인한 다정이 깜짝 놀라며 소리쳤다. 창가 쪽에서 경치를 보고 있던 도훈이 덩달아 놀라며 물었다.
“왜 그래요?”
다정은 물건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언니들이 몰래 넣었나 봐요.”
그녀의 손에 든 건 바로 속옷이었다. 브라는 속이 훤히 드러나 보이는 망사 재질이었고, T모양의 팬티는 차라리 벗는 게 낫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얇았다. 다정의 눈에는 그저 해괴망측해 보였는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어떻게 이런 걸 선물로 줄 수가 있담.”
도훈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한 번 입어봐요. 잘 어울릴 것 같은데.”
“으~ 죽어도 싫어요.”
“선물 준 사람 성의를 생각해서라도 입어야죠.”
다정은 짓궂게 놀리는 그를 한번 쏘아본 후, 다시 종이백 안을 들여다보았다.
“어?”
그녀는 자신의 망측한 속옷 아래에 숨겨져 있던 또 다른 속옷을 발견했다. 이번에는 남자 속옷이었다.
“어머, 도훈 씨 것도 있어요.”
그녀의 말에 도훈의 미간이 꿈틀했다. 다정은 언니들이 넣어놓은 또 다른 속옷을 활짝 펴 그에게 보여주었다. 마찬가지로 속이 훤히 비치는 디자인이었다.
그 속옷을 본 도훈이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며 말했다.
“제 취향과는 거리가 멀군요.”
“저보곤 잘 어울릴 것 같다면서요?”
“보는 거랑 입는 건 엄연히 다르죠.”
단호한 그의 말에 다정이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선물 준 사람 성의를 생각해서라도 입어봐야죠~ 후후후.”
“…….”
불과 몇 초 전 자신이 했던 말을 그대로 돌려받은 도훈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런 그를 보는 다정의 입가에는 저절로 웃음이 흘러나왔다.
“저 씻고 나오는 동안 갈아입고 있어요. 도훈 씨가 입으면 나도 입을게요.”
그렇게 말한 다정은 침대 위에 속옷을 올려놓고, 샤워실로 들어갔다.
홀로 남은 도훈은 짐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곧 이어 쏴아아, 하고 샤워기 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욕실에서 들려왔다. 바닥을 적시는 물소리가 도훈의 귓가에는 왠지 모르게 야릇하게 들려왔다.
그의 시선이 문득 침대 위에 올려져있는 속옷으로 향했다. 다정이 입어보라고 했던 속옷 옆에는 망사로 된 그녀의 속옷도 함께 놓여있었다.
속이 훤히 비치는 야릇한 느낌의 속옷.
신경 쓰지 않으려고 해도 자꾸만 그쪽으로 눈이 갔다. 머릿속에선 저절로 그 속옷을 입은 다정의 모습을 떠올리고 있었다.
검은색의 망사 속옷을 입은 그녀는 새하얀 살결이 더욱 도드라져, 아찔한 관능미를 풍겼다. 그 모습을 상상하자 도훈은 아래쪽으로 피가 쏠렸다.
‘하. 미치겠네.’
여자 속옷이나 보면서 흥분하는 제 모습이 어이가 없어 도훈은 거칠게 마른세수를 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시 그의 머릿속은 야시시한 속옷을 입은 다정으로 가득 찼다.
불쑥 깨어난 욕정을 참기가 힘들어진 도훈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욕실 근처를 왔다 갔다 배회하며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샤워기 물소리는 아직도 그치지 않고 도훈의 귓가를 울렸다.
‘대체 언제 나오는 거야?’
그녀의 샤워가 왜 이리 길게 느껴지는지.
도훈은 애꿎은 샤워 시간을 원망하며, 거친 한숨을 내쉬었다.
뜨겁게 달아오른 몸을 애써 진정시키려던 그는 생각했다.
어른들 말씀에 무엇이든 너무 참는 것도 몸에 해롭다고 했다.
게다가 오늘은 신혼 첫날밤이 아닌가.
참을 필요가 전혀 없는 날이다. 아니, 평생 쓸 힘을 다 써도 모자랄 날이다.
빠르게 판단을 끝낸 도훈은 신속하게 행동으로 이어나갔다. 그는 자신이 입고 있던 니트와 티셔츠를 벗어던졌다. 옷 안에 감춰져있던 다부진 근육들이 또렷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도훈은 검은색 팬츠마저 벗어던진 후, 바로 욕실 앞으로 향했다. 그는 욕실 문을 노크하며 말했다.
“다정 씨. 잠깐 문 좀 열어줘요.”
“네? 무슨 일 있어요?”
“급한 일이에요.”
다급해 보이는 그의 말에 샤워기 물소리가 끊겼다. 이윽고, 아무 의심 없이 다가오는 다정의 발소리가 들렸다. 도훈이 입매를 씩 올리는 순간, 욕실 문이 열렸다.
급히 수건으로 몸을 감싼 다정의 모습이 보였다.
“화장실 쓸 거면, 내가 나가있을……꺅!”
욕실을 나오려던 다정이 깜짝 놀라며 짧은 비명을 질렀다. 다정이 문을 열자마자 도훈이 그녀의 손목을 잡고, 다시 욕실 안으로 들어갔기 때문이었다.
다정은 어느새 그의 양손 안에 가둬진 채, 욕실 벽에 기대서 있었다.
당황한 그녀가 말했다.
“뭐, 뭐 하는 거예요?”
그녀를 응시하는 도훈의 눈빛에서 짙은 정염이 뚝뚝 떨어졌다.
“급한 일이 생겼다고 했잖아요.”
다정은 시선을 내려 그의 하반신 쪽을 바라보았다. 그의 중심부가 눈에 확연하게 들어올 정도로 둔탁해져있었다. 다정은 당혹감에 얼굴이 붉어진 채로 물었다.
“급한 일이라는 게…… 이거였어요?”
도훈은 대답 대신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목덜미에 입술을 묻었다. 보드라운 살결을 입술 사이로 짙게 빨아들였다. 다정의 몸을 감싸고 있던 수건은 이미 그의 손에 밀려 바닥으로 떨어진 지 오래였다. 그녀의 새하얀 몸 곳곳에 붉은 장밋빛 자국이 새겨졌다.
도훈은 점점 입술을 아래로 옮기면서, 그녀의 가슴으로 손을 가져갔다. 하얗고 보드라운 살결이 그의 손 가득히 찼다. 가슴을 강하게 주무르는 그의 손길에 다정의 입에선 얕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하아……앗.”
도훈의 손끝이 점점 더 아래로, 점점 더 깊은 곳으로 향했다. 이미 젖은 음부를 길게 쓸고, 돌기를 어루만지다가, 좁은 통로로 손가락을 밀어 넣었다.
길고 굵은 손가락이 그녀의 예민한 곳을 찾아 끊임없이 달려들었다. 쉼 없이 자극하는 손끝의 감각이 뜨겁다 못해 녹아내릴 것 같았다. 애무가 점점 더 격렬해지면서, 다정의 몸도 뜨겁게 달아올랐다. 찰박이는 소리와 함께 그의 손가락에서 물이 뚝뚝 떨어져 내렸다.
“으읏!”
쉴 새 없이 파고드는 자극에 다정은 서있는 것조차 힘들었다. 허리가 활처럼 휘고, 아랫배가 알싸해졌다. 내뱉는 숨결은 한층 더 거칠어졌다.
“앗, 그만……!”
참을 수 없는 정염에 다정이 몸을 떨었다. 보다 더 깊고 강렬한 자극을 제 몸이 원하고 있었다. 결국 백기를 든 그녀는 도훈의 어깨를 꽉 끌어안으며 밭은 숨을 토했다.
“더는 못 참겠어요.”
그 말에 기다렸다는 듯 도훈이 드로즈를 벗어 내렸다. 주체할 수 없는 그의 욕망이 우뚝 선 채로 모습을 완연하게 드러냈다. 그는 다정의 다리를 팔에 걸쳐, 몸을 들어올렸다. 어색한 자세에 제 다리를 꽉 오므린 그녀의 안으로 몸을 밀착했다.
단단한 선단이 젖은 입구를 가르며, 기둥 끝까지 밀어 넣었다. 둘의 몸이 한 치의 빈틈도 없이 맞물리며 하나가 되는 순간, 여린 신음이 터져 나왔다.
“하아!”
“읏.”
도훈이 서서히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뿌리 끝까지 밀어 넣었다가, 다시 빠져나가기를 반복하며, 그의 기둥이 더욱 부풀어 올랐다. 맞닿은 살결에 홧홧한 기운이 일었다. 흔들리는 몸을 지탱하기 힘든 다정은 그의 목을 꼭 끌어안았다. 점점 더 깊숙이 파고드는 뜨거운 감각에 그녀가 교성을 질러댔다.
“아앗!!”
머릿속이 새하얘지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율이 일었다. 견디기 힘든 벅찬 감각에 다정이 고개를 이리저리 휘저었지만, 그의 움직임은 지칠 줄 몰랐다. 보다 더 깊고 강렬하게 허리를 움직이며, 그녀의 속살을 파고들었다.
도훈의 깊은 등골 사이로 땀이 맺히고, 붉은 입술 사이로는 거친 숨이 연신 흘러나왔다. 그의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다정이 움켜쥐었다.
도훈이 더욱 더 빠르게 몸을 움직였다. 허리를 위아래로 격렬하게 흔들자, 다정의 몸도 함께 무너졌다.
“아아앗!”
탁,탁,탁…… 치받는 속도가 빨라졌다. 단단한 선단이 거침없이 그녀의 가장 깊은 곳을 누르고 또 눌렀다. 결합된 부분에서 말간 애액이 넘쳐흐르며 철벅거렸다. 발끝까지 저릿해질 정도로 아찔한 감각이 몸을 덮쳤다. 그녀의 날카로운 교성이 욕실 안을 가득 메우는 순간, 그의 움직임도 멈추었다.
“하아, 하아.”
다정이 숨을 헐떡이며, 맥없이 그의 어깨에 몸을 축 늘어뜨렸다. 도훈은 그런 그녀의 뺨과 입술에 다정하게 입을 맞추었다.
이윽고, 지친 그녀를 씻겨주겠다며 욕조 안으로 데리고 간 도훈. 몸을 개운하게 씻기 바쁘게, 다시금 그의 눈빛이 열기를 띠었다.
그의 손가락이 촉촉이 젖은 다정의 몸을 타고 깊은 곳으로 미끄러졌다. 방금 전, 한 차례 절정을 겪은 그녀의 음부는 도훈의 손을 부드럽게 감싸며 맞이했다. 몸 곳곳을 세심하면서도 격렬하게 탐닉하는 그의 손길에 다정의 몸이 빠르게 달아올랐다.
밀착된 서로의 몸이 하나로 겹쳐졌다. 초반부터 거침없는 몸짓에 다정의 얼굴 가득 파문이 일었다. 욕조 안의 물이 첨벙거리며 흘러넘쳤다. 입술 사이로 거친 숨이 쏟아지며, 욕실 안은 그들의 열기로 또 한 번 뿌옇게 젖어들었다.
***
따스한 햇살이 가득히 내려앉은 오후.
다정은 선베드에 몸을 기대 앉아 여유로운 시간을 만끽하고 있었다.
선베드 바로 앞엔 수영장이 있었고, 수영장 너머로는 에메랄드 색으로 빛나는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인피니티풀이라고 불리는 이곳은 수영장과 바다가 마치 그대로 이어진 것처럼 설계되어, 드넓은 바다를 구경하며 동시에 수영을 즐길 수 있는 최적의 장소였다.
다정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하늘과 바다를 눈에 담으며 낭만을 즐겼다.
어느덧 내일이면 신혼여행의 마지막 날이었다. 도훈과 함께 몰디브에서 보낸 신혼여행은 그야말로 퍼펙트했다.
다정이 꼭 해보고 싶었던 스노클링도 체험했고, 크루즈를 타고 돌고래를 보기도 했다. 고급스러운 분위기의 레스토랑에서 맛있는 음식을 맛보기도 했고, 해변 근처의 바에서 칵테일파티도 즐겼다.
그리고 깊은 밤이 되면, 한 몸이 되어 뜨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 시간이 너무 잦고 길다는 것이 흠이라면 흠이었지만, 다정은 신혼여행인 만큼 힘을 내기로 했다. 하지만 지칠 기색이 없는 그의 체력은 따라가기가 역부족이었다.
삼 일 내내 격렬한 밤을 보낸 다정은 오늘만큼은 푹 쉬고 싶다며 그에게 말했다. 그리하여 둘은 오전부터 어디도 가지 않고, 호텔에서 느긋한 시간을 즐겼다.
선베드에 누워 아름다운 전망을 구경하던 다정은 문득 고개를 갸웃거리며 주변을 살폈다. 도훈이 마실 것을 사오겠다며 나간 뒤 꽤 시간이 흘렀기 때문이었다.
‘도훈 씨가 왜 안 오지?’
살짝 걱정이 된 다정이 선베드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사이드 바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이국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사이드 바 근처로 다가가자, 바 테이블에서 칵테일잔을 들고 서있는 도훈의 모습이 보였다.
수영복 차림의 그는 상반신이 모두 드러나 있었다. 태평양처럼 드넓은 어깨와 탄탄한 근육이 자리 잡은 복근은 멀리서도 눈에 띨 만큼 남자다웠다. 저런 남자가 내 남편이라는 사실이 흐뭇해져, 다정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는 그 순간이었다.
금발의 한 여성이 도훈에게 다가오며 싱긋 눈웃음을 쳤다. 그 여성은 파란색 비키니를 입고 있었고, 글래머러스한 몸매를 소유했다. 특히, 풍만한 가슴은 같은 여자들도 시선을 빼앗길 만큼 압도적이었다.
그런 그녀가 도훈에게 말을 걸더니, 이윽고 그의 팔뚝을 가볍게 터치했다. 그 모습을 본 다정의 동공에 불길이 치솟았다. 그녀는 전속력으로 도훈에게 뛰어갔다.
“도훈 씨!”
다가간 다정이 그의 바로 옆에 바짝 몸을 붙였다. 그리고 사나운 눈빛으로 금발의 여성을 노려보았다. 그러자 여자가 다정을 향해 말했다.
“Oh, You’re his sweetheart. I didn’t know how surprised he was to hear that he had a lover. You’re as beautiful as I’ve heard.”
‘뭐…… 뭐라고?’
그녀의 말에 다정의 초점이 흐트러졌다.
학창 시절 다른 과목은 다 잘했지만, 유독 영어 듣기 평가에 약했던 다정이었다. 그녀는 사근사근한 미소와 함께 또다시 뭐라고 말을 이었다. 점점 더 길어지고 빨라지는 그녀의 말에 다정은 깊은 혼돈에 빠졌다.
‘이 왕가슴이 대체 뭐라는 거야?’
다정이 평소에 영어 듣기를 꾸준히 할걸, 하며 후회하던 찰나, 그녀가 도훈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더니 또 한 번 그의 단단한 팔뚝을 가볍게 터치하며 웃어댔다. 그걸 본 다정이 그녀에게 손을 저어대며 소리쳤다.
“노노, 돈 터치! 히이 이스 마이 허스밴드!”
그녀의 명확한 발음과 커다란 목소리에 도훈과 여자가 살짝 당황한 얼굴로 다정을 응시했다.
“…….”
“…….”
지독하리만큼 어색한 분위기가 셋을 휘감았다.
잠시 흘렀던 정적을 깨고, 도훈이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금발 여자에게 말했다.
“I’m sorry. Maybe she misunderstood. She thought you were trying to seduce me.”
그의 말에 여자도 함께 웃어 보였다. 다정이 슬슬 뭔가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끼려던 순간, 도훈이 그녀에게 말했다.
“인사해요. 여긴 내가 호주에서 함께 일했던 회사 동료 안나예요.”
“…….”
순간 다정은 죽고 싶어졌다. 저 깊은 바닷가에 그대로 뛰어들어, 아무도 찾지 못할 깊은 곳으로 숨고 싶어졌다.
이 처절한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금발 여성은 화사한 웃음과 함께 악수를 청했다. 다정은 그녀의 눈을 차마 바라보지 못하고, 어색하게 말했다.
“하……하이. 나이스 투 미트 유.”
그녀와 몇 마디 더 나눈 둘은 작별 인사를 한 후, 다시 선베드 쪽으로 걸어왔다.
가는 내내 침묵하는 다정을 보며 도훈이 픽,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내 아내가 영어를 이렇게 잘하는지 몰랐군요.”
“…….”
“Don’t touch, He is my husband라…….아주 귀에 쏙쏙 들리는 게, 원어민보다 낫던데.”
다정이 눈을 흘기며 말했다.
“이미 충분히 창피하니까…… 그만 놀려요.”
다정은 창피해 죽을 지경인데, 그는 뭐가 그리 재밌는지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선베드로 도착한 다정과 도훈은 넓은 바닷가를 마주하고 나란히 앉았다. 도훈은 바다처럼 파란 칵테일이 담긴 잔을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고마워요.”
칵테일을 한 모금 마신 다정은 칵테일잔을 응시했다. 위는 볼록하고, 아래는 쏙 들어간 잔의 모양새가 방금 보았던 금발 여성의 상체와 비슷해 보였다.
여자인 자신의 눈에도 쉽사리 잊히지 않는 몸매였는데, 남자인 도훈은 오죽할까.
그런 생각이 들자, 기분이 썩 좋지만은 않았다. 다정이 먼 바다를 바라보며 시큰둥하게 말했다.
“도훈 씨 동료 중에 저렇게 쭉쭉빵빵 미녀가 있는 줄은 몰랐네요.”
넌지시 던진 말에 도훈은 별 반응이 없었다. 아무 말도 없다는 것은 그녀가 미녀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다정의 미간이 살짝 좁혀졌다. 그녀는 목이 타는 듯 칵테일을 물처럼 꿀꺽 마셨다.
다정은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슬쩍 떠보았다.
“그런데…… 많이 친했나 봐요?”
그 말에 무반응이던 도훈이 드디어 고개를 돌려 자신을 응시했다. 그의 짙은 눈빛을 보니, 괜스레 얼굴이 화끈거려왔다.
다정은 마주친 시선을 살짝 돌리며 말했다.
“아니, 아까 보니까 막 스킨십도 서슴없이 하고, 계속 웃고 그러던데……. 혹시 제가 모르는 뭔가가 있는 거 아니에요? 잠깐 썸을 탔던 사이라든지…….”
다정은 더 이상 말을 잇기가 힘들었다. 자신을 응시하는 그의 눈빛이 보다 더 뜨거워졌기 때문이었다. 모든 것을 꿰뚫어볼 것 같은 그의 강렬한 시선에 다정은 숨이 턱 막혔다.
고개를 살짝 기울인 채, 그윽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는 도훈. 그가 입꼬리를 매혹적으로 올리며 말했다.
“지금 질투하는 겁니까?”
그의 말에 다정이 눈을 크게 뜨며 반문했다.
“질투라니요.”
당황한 그녀의 목소리가 저절로 높아졌다.
“제가 저 가슴 큰 여자를 질투할 게 뭐가 있겠어요?”
“…….”
“가슴만 대따 크지, 별로 예쁘지도 않던데, 뭐.”
젠장. 말하고 보니 모순 덩어리였다.
그녀를 가슴 큰 여자라고 말한 순간부터 이미 질투를 했다고 인정하는 꼴이나 다름없었다.
살짝 귀 끝이 빨개진 다정을 보며 도훈이 씩 웃었다.
“질투하는 거 맞는데요, 뭐.”
“그런 거 아니래도요.”
그녀가 입술을 삐죽이자 도훈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당신이 안나를 질투할 필요도 없고, 그럴 이유도 없어요.”
“…….”
“당신은 그녀보다 훨씬 더 사랑스러운 여자인 데다가, 이렇게 일편단심인 멋진 남자까지 남편으로 뒀잖아요. 질투를 하려면 안나가 해야죠.”
다정한 그의 말에 눈 녹듯이 금세 마음이 가라앉은 다정. 그녀가 물었다.
“안나 씨 같은 여자 백 명이 와도 제가 더 좋아요?”
“그걸 말이라고 합니까? 천 명이 와도 싫어요.”
“알겠어요. 그런데…….”
다정은 좀처럼 잊히지 않는 안나의 몸매를 떠올렸다. 그녀의 풍만한 가슴과 섹시한 바디라인은 만화 속에서나 볼 법한 광경이었다.
다정은 비키니를 입은 자신의 몸매를 슬쩍 바라보았다. 흡사 호박 같은 그녀의 가슴을 보고나니, 사과 크기 정도는 될 거라고 여겼던 제 가슴이 갑자기 계란만 해 보였다. 의도치 않게 자신감이 하락한 다정이 우울한 얼굴로 도훈에게 물었다.
“호주 여자들은 원래 저렇게 몸매가 다 다이내믹한 거예요?”
“……글쎄요. 그걸 내가 어떻게 압니까.”
아니라곤 말을 안 하는 것 보니, 아마도 자신의 말이 맞는 듯했다.
흐음. 그렇단 말이지.
다정은 아무렇지 않은 듯한 얼굴로 은근슬쩍 물어보았다.
“남자들은 시각적인 요소에 약하다던데…… 도훈 씨도 글래머러스한 여자 보면 눈길이 저절로 가죠?”
“그렇긴 하죠.”
으휴! 이 바보 같을 정도로 솔직한 남자!
이럴 때 보면 솔직한 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다정이 퉁명스러운 어투로 중얼거렸다.
“요즘 주변 사람들 보면 가슴수술 많이 하던데, 나도 상담이라도 받아볼까나…….”
“지금도 충분히 예쁜데, 수술을 뭐 하러 해요?”
“내 남편이 글래머러스한 여자를 좋아하는 것 같아서요.”
“내가 언제 좋다고 말했어요? 눈에 띈다고 했지.”
……그게 그거 아닌가? 아닌가, 엄연히 다른 건가?
다정이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리는 순간, 도훈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이상한 생각 갖지 말아요. 난 당신이 어떤 모습이든 좋아했을 거고, 앞으로도 그럴 거니까.”
그의 말에 가슴이 뭉클해지는 다정. 그녀가 장난스럽게 물었다.
“음……저팔계처럼 뚱뚱해져도요?”
도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배구선수 야오밍처럼 2미터가 넘어도요?”
“네. 어깨를 안기는 조금 힘들어지겠지만. 그리고 배구선수가 아니라 농구선수예요.”
그의 신속하고 확고한 대답에 다정은 입술이 슬며시 올라갔다. 이번엔 도훈이 물었다.
“그럼 당신은 내가 배가 한 대리처럼 나오거나, 머리가 다 벗어져도 좋아할 거예요?”
“아니요.”
“…….”
일 초도 고민하지 않고 내뱉은 그녀의 대답에 배신감을 느꼈는지, 도훈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그 모습이 귀여워 다정은 까르르 소리 내 웃어 보였다.
“농담이에요.”
그녀는 도훈의 조각 같은 턱선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난 당신이 어떤 모습이든 사랑할 거예요.”
“정말입니까?”
“그럼요. 나는 사람을 볼 때, 외면보다 내면을 더 중시하는…….”
순간 다정의 시선이 도훈의 뒤에 있는 남자에게로 향했다. 황금빛처럼 눈부신 금발에 터질 듯한 근육을 소유한 외국 남자가 걸어오고 있었던 것이다. 저절로 그에게 시선을 빼앗긴 다정의 입이 자신도 모르게 벌어졌다.
“…….”
그 모습에 어이가 없는 도훈이 눈을 가늘게 떴다. 외면보다 내면을 중시한다던 자신의 아내는 시야에서 멀어져가는 외국 남자를 따라 고개까지 돌리고 있었다.
도훈이 그녀의 턱 아래를 그러잡아, 입을 닫아주며 말했다.
“턱 빠지겠어요.”
***
다정과 도훈은 하늘빛을 머금은 바다가 잔잔하게 물결치는 해변을 걷고 있었다.
다정은 끝없는 수평선을 바라보며 말했다.
“오늘이 이곳에서 마지막 밤이네요.”
눈 깜짝할 새에 나흘이 지났다. 그만큼 도훈과 함께 하는 신혼여행은 그녀에게 잊지 못할 시간이었다. 그녀는 에메랄드빛을 머금은 눈부신 바다색을 눈에 담아두었다.
“벌써 내일이면 다시 지겨운 회사생활로 돌아가야 한다니까 아쉬워요.”
그녀의 말에 옆에서 걷고 있던 도훈이 물었다.
“회사생활이 지겨워요?”
“지루한 부분이 없지 않죠. 매일 같은 시간에 출근하고, 매일 똑같은 사람을 마주하고, 비슷한 업무를 반복하고…….”
“많이 힘들면 그만둬요. 당신 몫까지 내가 열심히 다닐 테니.”
다정이 눈을 크게 뜨고 목소리를 높였다.
“어머. 무슨 소리를 하는 거예요. 내가 얼마나 어렵게 들어간 회사인데.”
그렇게 말한 그녀는 배시시 웃어 보이며, 한마디를 덧붙였다.
“게다가 우리 회사 팀장님이 얼마나 잘생겼는데요. 요즘은 그 사람 보는 재미로 다니는걸요.”
그녀의 사랑스러운 말에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번지는 도훈.
아마 그녀는 절대 모를 것이었다.
그의 눈에 다정이 얼마나 예뻐 보이는지를.
제 품에 넣고 아무데도 보내고 싶지 않을 정도로, 그녀가 사랑스러워 미치겠는 이 마음을.
저 끝없는 바다보다 넓고, 한낮의 태양처럼 뜨거운 이 사랑의 크기를 그녀는 절대 모를 것이었다.
도훈이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애정이 가득 담긴 달콤한 입맞춤이었다.
그의 부드러운 키스에 다정의 입꼬리가 수줍게 올라갔다. 그녀는 그의 팔짱을 끼며 다시 새하얀 모래 위를 걸었다.
“도훈 씨는 회사생활하면서 힘든 점 없었어요? 직책이 높으면 그만큼 스트레스도 많이 받을 것 같은데.”
그녀의 질문에 도훈이 곧바로 대답했다.
“당연히 받죠.”
“그럼 당신도 다른 사람들처럼 회사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자주 들어요?”
“자주까지는 아니어도, 가끔 듭니다.”
다정이 살짝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여태껏 그녀가 지켜본 도훈은 주위 사람들에게 일 중독자라고 불릴 만큼 업무에 열정적인 사람이었다. 다정이 그와 사귀기 전까지 직원들은 종종 말했다. 그는 여자와 일 중에서 하나를 택하라면 일을 택할 사람이라고.
또한 그 어떤 어려운 업무도 착착 해내는 도훈의 모습을 보며 다정은 그가 일 때문에 스트레스 받을 일은 많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자신과 마찬가지로 사표를 내고 싶은 마음을 종종 갖고 있었다는 그의 말을 듣자, 어쩐지 마음이 애잔해지는 다정. 그녀가 도훈에게 물었다.
“그럼 당신은 그 어렵고 많은 업무량을 어떻게 버티는 거예요? 남들에게 힘든 티도 안 내잖아요.”
“힘들다는 생각보다는 돈 주고도 사지 못할 갚진 경험이라고 생각하면서 다니면 회사생활이 수월해져요.”
도훈은 담담한 어조로 이어 말했다.
“지금의 경험을 토대로, 나중에는 규모가 크든 작든, 내 건설 회사를 차리고 싶어요. 좋은 자재와 좋은 기술로 건물을 짓고, 사람들이 살기 좋은 집을 만드는 회사를요.”
처음 듣는 도훈의 계획에 다정의 눈동자가 커지며 그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그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그리고 기존의 한국 기업과는 다른 회사를 만들고 싶어요. 나이, 성별, 출신 상관없이 사원을 뽑고, 상사와 부하직원 간의 엄격한 상하 관계를 없애고,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을 표출할 수 있는 회사를요. 또한 남녀 구분 없이 출산 휴직, 육아 휴직 눈치 보지 않고 쓸 수 있는 직장으로 만들 겁니다.”
결연한 눈빛과 확신에 찬 목소리.
다정은 그라면 그 어떤 일이든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기어코 해낼 수 있을 사람이라고 느껴졌다.
“와……. 멋진 꿈이네요. 도훈 씨라면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예요.”
그녀의 말에 도훈이 걸음을 천천히 멈추었다.
“내 꿈만이 아니에요.”
그는 고개를 돌려 짙은 눈빛으로 다정을 응시했다.
“당신과 내 꿈이지.”
다정의 심장에 잔잔한 파도가 일었다. 그녀가 말했다.
“나도 같이 하는 거예요?”
“당연한 거 아닙니까.”
그가 말한 미래에 자신도 함께 있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 가슴이 벅차올랐다.
다정은 감격스러운 마음에 눈망울이 떨려왔다. 그녀가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그럼 이왕이면 임원급 자리에 앉혀줘요.”
“그건 안 됩니다.”
“왜……요?”
“기존의 한국 기업과는 다른 회사를 만든다고 했잖습니까. 내가 가장 싫어하는 기업 문화가 바로 혈연 인맥 중심의 채용과 경영입니다. 성별, 나이, 출신에 상관없이 채용 및 승진이 이루어질 거예요.”
냉철한 그의 말을 들으며 다정은 참 한결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뭐, 저런 점이 좋아서 그에게 반했지만 말이었다.
“……칫. 농담이라도 앉혀준다고 하면 덧나나.”
뾰로통한 그녀의 모습이 귀여운지, 도훈이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두 뺨이 살짝 붉어진 다정에게 그가 말했다.
“영어 공부 조금만 더 해요. 그럼 임원급으로 승진시켜줄 테니.”
“…….”
짓궂은 그의 말에 다정의 귓불이 빨개졌다. 그가 또 한 번 웃었다. 그런 그의 모습도 멋있어 죽겠는 걸 보면, 신혼은 신혼인 모양이었다.
그 순간, 하늘이 붉게 물들며 잔잔한 파도가 일었다. 다정은 고개를 돌려 바닷가를 바라보았다. 점점 내려앉는 태양이 바닷가를 노란빛, 주홍빛, 붉은빛으로 물들였다. 그 어떤 유명한 화가도 흉내 낼 수 없는 아름다운 색이었다.
“해가 지네요.”
다정은 눈부신 광경에서 눈을 떼지 못하며 입이 천천히 벌어졌다.
“너무 예뻐요.”
그녀의 반짝이는 눈망울을 지그시 바라보는 도훈. 그의 그윽한 눈빛을 느낀 다정이 고개를 홱 돌리며 도훈에게 말했다.
“방금 당신이 더 예쁘다고 말하려고 했죠?”
그녀의 말에 도훈이 픽, 웃었다.
“어떻게 알았어요?”
다정이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나도 똑같은 생각을 했으니까요.”
바닷바람에 그의 검고 짙은 머리카락이 찰랑거렸다. 노을빛을 머금은 그의 눈동자와 음영이 진 날렵한 얼굴선은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아마 이렇게 근사한 남자는 세상 어디에도 없을 거라고 생각하며…… 다정은 발꿈치를 올렸다. 그리고 그의 입술에 부드럽게 입술을 포개었다.
쪽, 소리와 함께 떨어진 다정의 입술. 그윽한 눈빛의 도훈이 입매를 올리며 말했다.
“외국에 와서 그런지, 과감해졌네요.”
“어차피 다시 볼 사람들도 아니니까요.”
“어차피 다시 볼 사람들도 아니니, 더 진하게도 해보죠.”
도훈은 그녀의 두 뺨을 어루만졌다. 그리고 아까보다 더 짙은 키스를 시작해나갔다.
온몸이 녹아들 것처럼 부드러우면서도 뜨거운 입맞춤이었다. 다정이 눈을 지그시 감고, 그의 목덜미에 손을 둘렀다. 잔잔한 파도 소리가 로맨틱한 배경음악이 되었다. 서로의 입술과 혀를 더욱 깊게 탐닉해나가던 순간이었다.
“까톡! 까톡!”
다정의 바지 주머니에 있던 핸드폰이 요란하게 소리를 내며 분위기를 깼다.
“까톡! 까톡! 까톡!”
연이어 울리는 문자음은 도저히 무시하려야 무시할 수가 없었다. 격렬했던 키스를 아쉽게 끝낸 다정이 살짝 미간을 좁히며 문자를 확인했다.
“아무튼 분위기 깨는 데는 선수라니까.”
문자를 확인한 그녀가 한숨을 내쉬었다. 눈치 없는 문자의 발신인은 바로 다정의 언니들이었다. 다정은 그녀들이 보낸 문자를 하나씩 읽어나갔다.
[언니들이 준 속옷 효과 봤어?]
[맘에 들었어? 효과 만점이었지?]
[제부가 좋아 죽지?]
별 쓸모없는 이야기들을 쭈욱 넘기던 다정의 시선이 마지막 문자에서 멈칫했다.
[할머니가 허니문 베이비 안 만들어오면 들어올 생각 하지 말래.]
그 문자를 본 다정의 입가에서 피식 웃음이 터졌다. 할머니는 자나 깨나 증손주 생각밖에 없는 듯했다. 웃음 짓는 그녀의 얼굴을 본 도훈이 가까이 다가오며 물었다.
“왜 웃어요?”
“할머니가 허니문 베이비 안 만들어오면 돌아올 생각도 하지 말라는데요?”
그녀의 말에 도훈의 입가에도 작게 웃음이 번졌다.
“그럼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네요.”
도훈이 한쪽 손으로 힘 있게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그리고 호텔 방향으로 걸음을 돌리며 말했다.
“얼른 할머님이 주신 숙제 하러 가죠.”
다정이 얼굴을 붉혔다가, 또 한 번 웃음을 터트렸다.
[대놓고 사내연애 에필로그 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