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놓고 사내연애 -6화 (6/32)
  • Chapter. 6

    “당신이니까.”

    다정의 눈동자가 떨려왔다.

    그의 손끝이 닿은 뺨은 열기로 물들었다.

    두근두근…….

    뛰어대는 심장은 제어 불가능이었다.

    주변이 어둡고 고요해졌다.

    오직 그의 조각 같은 얼굴만 시야에 들어왔다.

    밤하늘의 달빛은 오직 그만을 비추기 위해 존재하는 것 같았다.

    머리카락을 넘겨주었던 도훈의 손이 다시 볼에 닿았다.

    그의 손길은 깨지기 쉬운 물건을 다루듯 조심스럽고, 부드러웠다.

    빠져들 것만 같은 검은색 눈동자는 그윽하게 빛이 났다.

    그 순간만큼은…….

    그가 입을 맞춘다 해도 상관없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아니다. 내가 그의 입술에 입을 맞추고 싶다고 생각했을지도…….

    다정의 눈동자가 달빛에 반사되어 촉촉하게 빛났다.

    주변에서 들리는 옅은 소음은 배경음악이 되었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천천히 눈이 감겼다.

    그 순간이었다.

    Rrrrr, Rrrrr-

    “!!!”

    가방 속에서 울리는 벨소리에 다정이 황급히 눈을 떴다.

    그녀는 가방 안을 뒤적이며, 깊이 넣어두었던 핸드폰을 꺼냈다.

    그녀의 둘째 언니인 소정의 전화였다.

    “여보세요.”

    [야! 한다정. 오늘 무슨 날인지 몰라?]

    다정의 언니들은 모두 목소리가 우렁찼다.

    다정은 슬쩍 도훈에게서 몸을 돌려 전화를 받았다.

    “무슨 날인데?”

    [오늘 하루만 호석이 두마리 치킨에서 세 마리 주는 날이잖아!]

    “아……. 맞다. 그랬지.”

    [계집애, 까먹을 게 따로 있지, 어디 그걸 까먹어?]

    “…….”

    [20분 전에 주문했으니, 곧 있으면 도착할 거야. 식은 치킨 먹기 싫으면 얼른 와.]

    귓가를 시끄럽게 울리던 목소리가 뚝! 끊어졌다.

    다정이 미간을 잔뜩 좁힌 채, 핸드폰에 대고 중얼거렸다.

    “만날 자기 할 말만 하고 끊는다니까.”

    그녀는 고개를 돌려 도훈을 바라보았다.

    “이제 집에 가봐야겠어요. 언니들이 빨리 오라고 난리네요.”

    “무슨 급한 일이라도 생겼어요?”

    “아니요. 급한 일은 아닌데…….”

    “하긴. 치킨 식는 것보다 급한 일은 없죠.”

    “…….”

    다정의 얼굴이 화르륵 타올랐다.

    그 모습에 입매를 씩 올리는 도훈. 그는 차가 있는 방향으로 몸을 돌리며 말했다.

    “얼른 갑시다. 치킨 식기 전에.”

    ***

    “다녀왔습니다.”

    다정은 현관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넓은 거실에 옹기종기 모여 치킨을 뜯고 있는 네 여자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다정의 가족을 소개하자면 이러했다.

    “정아. 너 요즘 왜 이렇게 늦게 들어오니? 그러다 납치라도 당하면, 우린 너 구해줄 돈 없다~”

    동생이 납치돼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것 같은 그녀는 한애정.

    나이는 서른두 살. 다정의 첫째 언니이다.

    둥그스름한 이미지의 다정과는 달리 뾰족한 인상을 지닌 애정은 화장품 회사에서 근무하고 있다.

    결혼식 전날 파혼한 이력이 있다.

    그 후로는 내 인생에 결혼은 없다며 가족들에게 선포했다.

    특징으로는 은근히 말이 많다.

    “언니. 납치범이 정이는 쉽게 못 건드릴 거야. 우리 막둥이가 저래 봬도 팔뚝이 얼마나 튼실한데~ 그취?”

    치킨을 입 안에 가득 넣어 뭐라고 하는지 제대로 들리지 않는다. 그녀는 다정의 둘째 언니인 한소정.

    나이는 서른 살.

    세 자매 중 가장 왜소하게 태어났지만, 지금은 그 누구보다 우람한 체격을 자랑하고 있다.

    직업은 웨딩 플래너. 안타깝게도 자신의 결혼은 제대로 설계하지 못해, 결혼한 지 1년 만에 이혼 도장을 찍었다.

    특징으로는 귀가 아플 정도로 말이 많다.

    “요 녀석. 날씨가 이렇게 춥구먼, 왜 옷을 다 벗고 돌아 댕겨? 그러다 얼어 죽어~!”

    맨살 하나 보이지 않게 꽁꽁 싸맨 다정에게 다 벗었다고 타박하는 그녀는 바로 정길순.

    다정의 할머니이자, 이 집의 최고 연장자.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를 구사하며, 끊임없이 정자매들에게 시집 좀 가라고 잔소리를 한다.

    특징으로는 목소리가 크고 말이 많다.

    “할머니 말씀 틀린 거 없어. 아침저녁으로는 춥다니까, 따뜻하게 입고 다녀. 얼른 손 씻고 와서 치킨 먹어.”

    곱슬곱슬한 머리에 푸근한 인상을 지닌 그녀는 박봉해.

    다정의 엄마이다.

    할머니는 늘 그녀가 이름대로 팔자가 박복하다며 안타까워한다.

    다정이 어렸을 적 남편을 잃었고, 딸 셋은 만나라는 남자는 안 만나고 허구한 날 집에만 있으니 속이 터진다.

    딸들이 좋은 인연을 만나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것이 유일한 바람.

    특징으로는 역시 말이 많다.

    여자 셋이 모이면 접시가 깨진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이 집엔 무려 다섯이나 모였으니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었다.

    다정은 평소 같았으면 달려들 치킨을 보고도 전혀 식탐이 생기지 않았다. 고급 일식집에서 다섯 끼 같은 한 끼를 먹었기 때문이었다. 다정이 계단 쪽으로 걸어가며 말했다.

    “전 배불러서 안 먹을래요.”

    그녀의 말에 소정이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배부르다고? 뭘 먹었는데?”

    “그냥…… 초밥 먹었어.”

    “누구랑?”

    남자랑 먹었다고 하면 벌떼같이 달려들 것이 분명했다.

    “친구랑.”

    “친구 누구?”

    “무슨 취조하는 것도 아니고. 내가 그런 것까지 일일이 다 보고해야 해?”

    다정이 못마땅한 얼굴로 계단을 올랐다. 점점 멀어지는 그녀를 향해 소정이 소리쳤다.

    “야, 너 안 먹으면 우리 넷이서 세 마리를 어떻게 다 먹냐?”

    “언니 혼자서 한 마리도 먹잖아. 뭘 새삼스럽게.”

    다정은 그 한마디를 남기고, 제 방이 있는 2층으로 홀연히 사라졌다.

    소정이 충격 받은 얼굴로 말했다.

    “엄마. 정이 뒤늦게 사춘기가 왔나 봐. 방금 나한테 대드는 것 봤지?”

    옆에 있는 애정이 시크하게 말했다.

    “그게 뭐가 대드는 거야? 사실대로 말했구먼.”

    “뭣? 내가 돼지야? 내가 언제 혼자 치킨 한 마리를 다 먹었다고 그래?”

    “그저께.”

    다정은 오늘도 시끌벅적한 식구들을 뒤로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

    방에 들어온 다정은 화장대 앞에 앉아있다.

    그녀는 클렌징크림으로 얼굴을 문지르다가 문득 생각에 잠겼다.

    ‘당신이니까.’

    그의 나직한 음성이 아직도 귓가에 울려대듯 기분이 몽롱했다.

    그건 무슨 뜻이었을까.

    나였기 때문에 애인을 부탁했다고?

    내가 그에게 어떤 사람이었기에……?

    난 그저 같은 팀에서 함께 일해온 부하직원이잖아.

    함께 일한 1년 반 동안 특별한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가슴 떨렸던 그의 말은 곱씹어볼수록 이해하기 어려웠다.

    다정이 미간을 좁히며 중얼거렸다.

    “아니, 한국말인데 왜 이렇게 어려워?”

    그와 대화했던 맥락으로 보아선…….

    내가 날 너무 과소평가하는 게 애잔해서, 자신감을 가지라고 한 말이 아닐까?

    아니면 팀원 중에 내가 가장 부탁을 잘 들어주게 생겨서??

    그것도 아니면…….

    날 좋아하기라도 했다는 건…….

    “어우, 미쳤어, 정말!”

    다정이 클렌징크림이 묻은 손으로 두 볼을 소리 나게 때렸다.

    한다정. 이건 너무 갔다. 너무 갔어.

    팀장님이 뭐가 아쉽다고 날 좋아하겠니?

    다정은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아담한 체구에 사과처럼 둥그스름한 얼굴.

    갈색빛이 은은하게 도는 눈동자와 살짝 처진 눈꼬리.

    둥그런 콧방울과 작고 도톰한 입술.

    늘 홍조가 살짝 맺혀있는 두 볼.

    평범하기 그지없는 얼굴이다.

    그나마 눈에 띄는 장점은 눈이 큰 편이라는 것.

    인상이 좋다는 말은 자주 들었지만, 예쁘단 말은 별로 들은 적이 없다.

    그래도 어렸을 땐 예쁘단 말을 종종 들었다. 하지만 회사생활을 한 후로는 빈말로라도 들은 적이 없던 것 같다.

    현실을 직시하고 나니, 아주 잠깐이었지만 자신이 얼마나 불온한 생각을 했는지 깨달았다.

    도훈에게 미안하기까지 했다.

    다정은 클렌징 티슈로 제 얼굴을 닦았다.

    화장을 다 지우고 나니, 더 못 봐줄 얼굴이 되었다.

    얼굴을 씻으러 화장실로 가려던 순간이었다.

    “투둑……!”

    창밖에서 무언가가 툭툭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쳤던 비가 다시 내리는 모양이었다.

    다정은 잠시 걸음을 멈추고 창밖을 응시했다.

    잔잔하게 내리는 빗방울을 보고 있으니, 우산을 쓰고 나타났던 도훈의 모습이 떠올랐다.

    “…….”

    다정은 자신의 오른손을 펼쳐 바라보았다.

    그와 잡았던 손끝이 아직도 열기가 남은 것처럼 뜨거웠다.

    쏴아아아…….

    창밖의 빗방울이 조금 더 굵어졌다.

    이상했다.

    그저 빗소리를 듣는 것뿐인데…….

    마치 그와 손을 잡은 것처럼, 가슴이 두근두근 뛰기 시작했다.

    ***

    공개 연애를 시작한 지 일주일이 지났다.

    다정은 왜 사내연애는 기필코 비밀로 해야 하는지, 몸소 깨닫는 중이다.

    시간이 지나면 수그러들 줄 알았던 사원들의 관심은 여전했다.

    특히, 여사원들은 다정을 만나면 제일 먼저 도훈의 이야기를 묻곤 했다.

    귀가 아플 정도로 질문을 받는 것도 골치가 아팠지만, 평소 냉랭했던 사원들이 친한 척 구는 것도 참 꼴불견이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안 좋은 점이 생겼다.

    부문장이 대놓고 자신을 미워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인사를 해도 시큰둥했고, 다정을 차갑게 쏘아보는 시선은 ‘우리 딸도 거절했는데, 감히 네가?’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오늘도 점심을 먹은 다정에게 커피를 마시자며 팀원들이 붙었다.

    늘 거절하는 것도 미안해 그들과 함께 가기로 했다.

    회사 1층에 있는 커피숍에 도착한 다정과 네 명의 팀원들. 커피숍에서 마주친 윤 주임과 춘희가 일행에 끼어들면서 총 일곱 명의 여자가 테이블에 앉아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팀원 한 명이 빨대로 음료를 쭉 빨더니, 다정에게 물었다.

    “다정 씨. 팀장님이랑 사귄 지 얼마나 되었다고 했지?”

    “사귄 지는 한 달도 안 되었어요.”

    “그래? 그 시기면 눈만 마주쳐도 웃음이 쏟아질 때잖아.”

    팀원들은 본격적으로 도훈의 이야기를 시작해나갔다.

    “그러고 보니, 요즘 팀장님 인상 되게 부드러워지지 않았어?”

    “맞아. 목소리도 자상해진 것 같아.”

    “말도 마. 어제는 나한테 미소까지 지어주더라고. 그렇게 멋지게 미소를 지을 수 있는 남자가 그동안은 왜 그리 딱딱하게 굴었는지 몰라.”

    “호호, 이 모든 게 다 사랑의 힘이지. 안 그래, 다정 씨~?”

    다정은 어색하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렇죠.”

    그때, 춘희가 상체를 숙여 다정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한다정 씨. 우리한테만 솔직히 말해봐.”

    “뭘요?”

    춘희가 은밀한 목소리로 물었다.

    “팀장님이랑 진도 어디까지 나갔어?”

    순간 다정은 마시고 있던 음료를 그대로 뿜었다.

    “푸……읍!!”

    옆에 있던 팀원이 티슈를 건네주었다.

    “괜찮아? 사레들렸나 봐.”

    “아……. 네. 감사합니다.”

    다정이 황급히 입가에 묻은 음료를 닦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춘희가 말했다.

    “미안. 내 질문이 너무 저돌적이었지?”

    다정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그때, 춘희의 옆자리에 앉아있던 윤 주임이 끼어들었다.

    “춘희 씨. 물어보고 말 게 뭐 있어.”

    그녀는 도도하게 팔짱을 낀 채 말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사귀기 전에 잠부터 자본다잖아. 다정 씨랑 팀장님이 어린애들도 아니고, 설마 손만 잡고 다녔겠어?”

    정말 손만 잡은 게 다인 다정은 말없이 물을 꿀꺽꿀꺽 마셨다. 윤 주임의 말에 춘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팀장님 나이면 한창 팔팔할 때인데, 아직도 다정 씨를 안 건드렸다면 그게 비정상이지.”

    “…….”

    “즐길 수 있을 때 마음껏 즐겨. 우리 신랑 연애 때는 하루가 멀다고 달려들더니만, 지금은 연례행사 됐어.”

    춘희의 말에 유부녀 사원들이 동시에 까르르 웃었다.

    “난 요즘 정말 송애교, 김태이보다 다정 씨가 더 부러워.”

    그녀가 이어 말했다.

    “솔직히 우리 팀장님 얼굴만 잘생긴 게 아니라, 몸매도 장난 아니잖아. 다정 씨는 많이 봐서 잘 알고 있겠지만.”

    다정이 조심스레 물었다.

    “팀장님 몸이 좋다는 것을…… 춘희 씨는 어떻게 아세요?”

    “훗. 우리 사원 중에 그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어딨어?”

    “?”

    “작년 체육대회 때 여사원들 난리 났던 거 몰라?”

    “왜요?”

    “작년 체육대회 때, 팀장님이 축구하다 너무 더웠는지 트레이닝복 상의를 벗어 던졌잖아. 그리고 티셔츠 한 장만 입고 뛰는데…….”

    그 순간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감격스러운 듯 춘희의 눈빛이 반짝거렸다.

    “난 그 티셔츠 안으로 비치는 근육 잡힌 복근과, 넓은 가슴과, 탄탄한 팔뚝을 단박에 캐치했지.”

    “…….”

    “전문가의 눈으로 보건대, 그 몸은 꾸준한 관리와 타고난 체질이 아니면 절대 완성할 수 없는 몸매였어.”

    춘희의 말에 다른 팀원들도 체육대회를 회상하며 한마디씩 거들었다.

    “그 이후로 여사원들이 체육대회만 기다리고 있잖아.”

    “그동안 왜 그 멋진 몸을 슈트에다 꼭꼭 숨기고 다녔느냔 말이지.”

    “부럽다. 다정 씨는 그 멋진 몸을 대놓고 맘껏 볼 수 있다는 거잖아. 우리는 1년에 한 번 오직 체육대회 때나 가능한 일인데 말이야.”

    윤 주임은 긴 수다로 어느새 미지근해진 커피를 훌쩍 마신 후, 말했다.

    “몸만 좋니? 팀장님 운동도 잘해. 웬만한 경기는 팀장님이 다 휩쓸었잖아.”

    팀원들이 손뼉을 마주치며 말했다.

    “맞아. 그랬죠. 팀장님 때문에 기획팀 우승했고.”

    “축구 경기만 해도 힘들었을 텐데, 거의 모든 종목에 나가지 않았어?”

    “네. 기획팀에 뛸 만한 선수들이 없어서, 팀장님이 거의 다 나갔죠.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대단하네요.”

    그들의 대화에 다정은 낄 수가 없었다.

    작년 체육대회 때만 해도, 그녀의 관심은 온통 현우에게만 가 있었다. 현우가 뛰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벅차서, 도훈에게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팀원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춘희가 말했다.

    “그 말뜻은 우리 팀장님은 몸만 좋은 게 아니라 체력도 좋은 남자라는 이야기군.”

    그녀가 입꼬리를 슬며시 올리며, 다정 쪽을 바라보았다.

    “그렇다면…… 우리 팀장님 밤에도 장난 아닐 것 같은데 말이야. 흐흐흥.”

    다정의 얼굴이 빨갛게 타올랐다. 뭘 알아야 대꾸라도 할 텐데, 딱히 할 말도 없어 난감했다.

    옆에 있던 팀원 한 명이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물었다.

    “팀장님은 어떤 스타일이에요?”

    “네……?”

    “침대에선 어떤 타입이냐고요? 낮이밤져? 아니면 밤에도 이기는 타입인가?”

    그걸 제가 어떻게 알까요…….

    그렇다고 본인에게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고.

    다정이 당황해하자, 윤 주임이 목소리를 높였다.

    “어우 진짜, 다 큰 성인이 뭘 그리 부끄러워해? 빼지 말고, 얼른 말해봐~”

    다정은 잠시 생각해봤다.

    침대에서 팀장님의 모습이라…….

    왠지 팀장님은…… 밤에 순순히 져줄 것 같은 타입은 아니야.

    아니지, 반전으로 애인한테는 다 져줄 수도 있잖아.

    아니야. 팀장님 성격 몰라? 애인은 물론 누구에게도 지기 싫어할 사람이야.

    “……팀장님은…….”

    고심 끝에 다정이 입을 여는 순간이었다.

    뒤통수 쪽에서 귀에 익은 음성이 들려왔다.

    “여기서 뭐 해요?”

    “악!!!”

    단박에 목소리의 주인공을 알아챈 다정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괴성을 질렀다.

    그녀가 고개를 돌리자, 상체를 살짝 기울인 채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도훈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녀의 반응에 도훈이 웃으며 말했다.

    “애인 보고 내뱉을 감탄사는 아닌 것 같은데.”

    “티, 팀장님.”

    다정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다른 팀원들은 마치 그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것처럼 딴청을 피웠다.

    다정이 당황해하며 물었다.

    “언제 오셨어요?”

    “조금 전에요.”

    “……같은 카페에 있는 줄 몰랐어요. 아는 척이라도 하지 그러셨어요.”

    “그래서 지금 하잖아요.”

    도훈이 손을 뻗어 테이블 위에 트레이를 올려놓았다. 트레이 위에는 먹음직스러운 조각 케이크가 여러 개 놓여있었다.

    그걸 본 춘희가 부러운 눈빛으로 말했다.

    “어맛. 우리 팀장님 쏘스윗하셔라. 다정 씨는 좋겠다~”

    도훈이 말했다.

    “다정 씨가 아니라 여러분께 드리는 겁니다.”

    “저희요?”

    “네. 뭘 좋아하는지 몰라서 종류대로 주문했어요. 취향에 맞았으면 좋겠네요.”

    “어머나앙……. 완전 감격이에요. 감사해요.”

    케이크 하나에 팀원들이 사르르 녹아들며, 콧소리가 절로 나왔다.

    도훈이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대신 다정 씨는 내가 데려가도 될까요?”

    “물론이죠. 마음껏 데려가세용. 호호홋.”

    이제 팀원들의 관심은 사내 커플보다 케이크에 더 몰려있었다.

    그가 다정에게 고갯짓하며 말했다.

    “가요.”

    ***

    카페에서 나온 도훈과 다정.

    그와 함께 걸으며 다정이 물었다.

    “제가 카페에 있는 건 어떻게 아셨어요?”

    도훈이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내가 어떻게 알았겠어요? 그냥 우연히 1층 로비 지나가다 본 거죠.”

    “그랬군요.”

    “여사원들에게 둘러싸여있는 모습이 왠지 난감해 보여서 구출한 겁니다.”

    “…….”

    “내가 잘못 짚었나요?”

    솔직히 난감하긴 했지.

    팀장님이 들었으면 까무러칠 이야기가 오고 갔으니까.

    게다가…… 감당하기 힘든 수위 높은 질문들만 쏟아졌고 말이야.

    “맞아요. 사실 도망치고 싶은 상황이긴 했어요.”

    다정이 웃으며 말했다.

    “구해주셔서 감사해요.”

    “핸드폰 두었다가 뭐 합니까? 앞으로 도망치고 싶으면 나한테 바로 연락해요.”

    “흠. 구해주신 건 고마운데요…….”

    그녀는 못마땅한 얼굴로 이어 말했다.

    “케이크는 왜 그리 많이 사신 거예요? 거기다 비싼 케이크만 사셨던데.”

    “비싸 봤자 케이크죠.”

    “어머. 거기 케이크 값이 얼마나 비싼데요? 밥 한 끼 값이라고요.”

    케이크 때문에 잔소리를 들을 줄은 몰랐던 도훈이 어이가 없는 듯 픽, 웃어 보였다.

    “한다정 씨는 내 지갑 걱정을 자주 하네요. 내가 그렇게 없어 보여요?”

    “그게 아니라, 다들 점심도 먹었고, 두세 조각이면 충분할 텐데 아까워서 그렇죠.”

    “여자들은 커피 배랑 디저트 배는 따로 있다고 들었는데, 아닙니까?”

    “……뭐, 틀린 말은 아니에요.”

    대화하는 사이 둘은 로비를 지나, 엘리베이터 앞에 도착했다.

    이어 엘리베이터에 올라탄 다정과 도훈. 어쩌다 보니, 엘리베이터에는 둘만 타게 되었다.

    다정은 올라가는 숫자를 바라보다가 슬쩍 시선을 돌려 도훈을 바라보았다.

    그는 검은색 슈트에 하얀색 셔츠를 입고 있었다. 그의 슈트 차림은 늘 그랬듯이 깔끔하고 근사했다.

    벌어진 재킷 사이로 보이는 하얀색 셔츠가 눈에 들어왔다.

    그러자 이상하게도 하얀색 티셔츠가 연상되었다. 그리고 몇 분 전에 들었던 춘희의 목소리도 함께 떠올랐다.

    ‘그 티셔츠 안으로 비치는 근육 잡힌 복근과, 넓은 가슴과, 탄탄한 팔뚝…….’

    그러니까 저 셔츠 안에…….

    그렇게도 완벽한 몸이 숨어있단 말이지…….

    다정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집중해서 보니, 하얀색 셔츠 안으로 어렴풋이 복근이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다정이 눈을 더 가늘게 뜨는 순간이었다.

    “아까 팀원들이랑은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했어요?”

    그의 질문에 다정이 화들짝 놀랐다.

    마치 못된 짓을 하다 들킨 기분이었다. 다정은 얼른 시선을 돌렸다.

    “카페 전세 낸 것처럼 시끌벅적하던데.”

    “벼…… 별 얘기 안 했어요.”

    “그런데 얼굴은 왜 빨개져요?”

    도훈은 두 뺨이 붉게 물든 그녀를 응시하며 나직이 덧붙였다.

    “몰래 야한 얘기라도 한 사람처럼.”

    그의 말에 얼굴이 더욱 빨개지는 다정. 그녀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무…… 무슨 소리 하시는 거예요? 사람들 많은 카페에서 그런 이야기를 할 리가 없잖아요.”

    “아니면 말지, 왜 그렇게 흥분합니까?”

    “그거야 팀장님이…….”

    띠잉.

    그 순간 엘리베이터가 기획팀이 있는 층에 멈추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도훈이 말했다.

    “먼저 사무실에 들어가요.”

    “팀장님은요?”

    “난 이사님 좀 뵙고 갈게요.”

    “……네. 그럼…….”

    홀로 엘리베이터에서 나온 다정은 그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그녀가 몸을 돌리려던 때, 도훈이 엘리베이터 열림 버튼을 눌렀다.

    “한다정 씨.”

    그의 부름에 다정이 도훈을 응시했다.

    그가 말했다.

    “사람들이 왜 그런 걸 궁금해하는지는 잘 이해가 가지 않지만…….”

    “……?”

    “굳이 따지자면, 난 낮져밤이입니다.”

    그게 무슨…….

    다정의 사고 회로가 그대로 멈춰버렸다.

    얼어붙은 그녀를 바라보며 도훈이 입매를 올렸다.

    살짝 올라가는 입꼬리는 지나치게 매혹적이었다.

    그가 열림 버튼에서 손을 떼며 말했다.

    “참고하라고요.”

    그리고 문이 닫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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