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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행복하자 (35/50)
  • 35. 행복하자

    재현은 혜운에게 입을 맞추었다. 다정하고 부드러운 입맞춤에 긴장이 조금씩 풀어지기 시작했다. 그의 입술은 서서히 혜운의 목덜미로 내려갔고, 거기서 다시 쇄골로 방향을 틀었다.

    자잘한 입맞춤을 흩뿌리며 그의 입술이 도착한 곳은 한껏 부풀어 오른 가슴이었다. 혀끝을 세워 정점을 간질이던 그는 욕심껏 크게 베어 물고 힘껏 빨아 당겼다 놓아주었다가를 반복하며 정성스레 핥아 올렸다.

    “하아….”

    혜운의 입술 사이로 나지막한 신음이 흘러나왔고, 은밀한 그곳은 서서히 젖어 들고 있었다. 맞닿아 있는 그의 남성도 점점 부풀어 오르는 게 느껴졌다. 아랫배에 서서히 힘이 들어가면서, 뜨겁고 묵직한 기운이 뭉근하게 뭉치기 시작했다.

    입 안 가득 혜운의 가슴을 머금고 혀끝으로 정점을 굴리며 장난을 걸던 재현의 입술이 서서히 아래로 향했다. 가슴골을 타고 내려가 배 위에 머물던 그의 입술이 점점 아래로 향하고 있음을 직감한 혜운은 반사적으로 무릎을 모았다.

    하지만 재현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는 혜운의 속옷마저 단번에 벗기고 오른쪽 허벅지 안쪽을 부드럽게 손바닥으로 밀어 올린 채, 촉촉하게 젖어 버린 은밀한 그곳에 입술을 가져갔다.

    낯선 감촉에 놀란 혜운이 손을 뻗어 재현의 어깨를 붙잡았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수풀을 가르고 들어온 그의 혀끝이 작은 돌기에 닿자 허리가 들썩였다.

    그 반응이 그를 자극한 건지, 그는 집요하게 그곳을 건드렸다. 혀끝을 단단히 세워 핥아 올리고 입술을 모아 빨아 당기길 반복하며 혜운을 못살게 굴었다.

    발가락 끝까지 힘이 들어갔다가 풀어지기를 반복했다. 혜운은 고개를 뒤로 젖히며 입술을 꾹 깨문 채 부끄러운 신음을 삼켰다. 그러다 그의 혀가 입구에 닿는 순간, 그녀는 손등으로 입을 막은 채 낮게 신음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맨살을 부드럽게 쓰다듬는 그의 손길만으로도 정신이 아득해질 지경인데, 그는 계속해서 혜운을 한계점까지 몰아세웠다. 견디다 못한 혜운이 상체를 살짝 들어 그의 팔을 붙잡아 있는 힘껏 끌어당겼다.

    이번에는 재현이 순순히 따라 올라와 주었다. 그는 혜운의 양쪽 허벅지를 양옆으로 눌러 넓혀 두고 그 가운데에 자리를 잡은 채 혜운을 내려다보았다.

    타액에 젖어 번들거리는 그의 입술을 바라보고 있지만, 지금 신경은 온통 자신의 그곳과 맞닿아 있는 그의 남성에 쏠려 있었다. 잔뜩 부풀어 꿈틀거리는 그것이 자신의 몸속을 헤집고 들어오는 걸 상상하면 심장이 미친 듯이 뛰어서 견딜 수가 없었다.

    “힘들면 말해. 지난번처럼 또 참지 말고.”

    재현의 목소리가 귓가에서 윙윙 맴돌았다. 혜운은 고개를 끄덕여 대답을 대신했고, 그는 상체를 일으켜 사이드 테이블 위에 두었던 콘돔을 남성에 씌우고 다시 몸을 포개었다.

    그의 단단한 남성이 자신의 예민한 곳에 닿자, 혜운은 재현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며 입을 맞췄다. 몸이 갈라지는 듯한 아픔과, 그의 남성이 드나들 때마다 견디기 힘들었던 쓰라림에 눈물이 날 뻔했던 지난 밤의 기억이 떠올라 조금은 두려운 마음이 들어서였다.

    그런 혜운의 마음을 다독이듯, 그는 아주 정성스럽게 다정한 입맞춤을 건넸다. 그러곤 아주 천천히 혜운의 몸 안으로 밀고 들어왔다.

    “하아….”

    다행히도 지난번과 같은 고통은 없었다. 이물감이나 불쾌함 없이, 빈틈없이 가득 들어차는 묵직한 느낌이 오히려 기분을 묘하게 만들었다.

    혜운은 의식적으로 몸에서 힘을 빼려고 노력했다. 그러자 그의 움직임도 점차 부드럽게 느껴졌고, 숨도 편하게 쉴 수 있었다. 혜운은 그의 허리를 양손으로 붙잡은 채 손바닥으로 고스란히 전달되는 그의 움직임을 느꼈다.

    “으음….”

    재현의 시선은 단 한순간도 자신의 눈에서 떠나지 않았다. 마치 괜찮냐고 묻는 듯한 다정한 눈빛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혜운은 그런 그의 입술과 목덜미에 깊게 입을 맞추며 괜찮다는 답을 건넸다.

    그의 움직임이 점점 빨라질수록 온몸이 뜨겁게 달아오르는 것 같았다. 두 사람이 뿜어내는 달큼한 열기로 주변의 공기는 뜨겁고 습했다. 누구의 입에서 흘러나오는지 알 수 없는 가는 신음과 은밀하게 맞닿은 그곳에서 만들어지는 야릇한 소리만이 천둥소리처럼 크게 들렸다.

    어느새 혜운의 한쪽 다리는 그의 손에 의해 완전히 위로 젖혀 올라가 있었다. 그가 아주 강하고 빠르게 움직일 때마다 사정없이 흔들리는 맨가슴이 부끄러워 팔로 가려 보려 했지만 그는 허락하지 않았고, 오히려 팔을 붙잡아 머리 위로 올린 채 가슴을 베어 물었다.

    “재현아…. 하아….”

    허리가 배배 꼬이는 이상야릇한 느낌을 참기 버거웠다. 무언가 몸속에서 뻥, 하고 터져 버릴 것만 같은 기분에 혜운은 허리를 비틀었다. 빠듯하게 채워진 그곳은 녹아내릴 듯 뜨거웠다. 혜운은 다리로 그의 몸을 휘감으며 머리를 뒤로 젖혔다.

    “조금만….”

    “아읏!”

    재현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절정을 맞이한 혜운은 그의 어깨를 강하게 움켜쥐며 그의 품에 매달렸다.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파들거리며 떨리는 허리 아래의 움직임이 너무도 낯설었다.

    “윽…!”

    더욱 더 빠른 속도로 치받으며 가쁜 숨을 토해 내던 재현도 이내 파정을 하고 혜운의 가슴 위로 쓰러지며 뜨거운 숨을 몰아쉬었다. 혜운은 그를 두 팔로 가득 안은 채 짙은 여운을 느꼈다.

    여전히 혜운의 그곳을 가득 채우고 있는 그의 분신은 살아 있는 것처럼 움찔거리고 있었다. 혜운은 땀이 밴 그의 이마를 손으로 닦아 주며 입을 맞췄다.

    그의 몸은 혜운의 몸만큼이나 무척 뜨거웠다. 바짝 긴장했던 근육에 조금씩 힘이 풀어지자 그는 혜운의 옆으로 내려와 눈을 맞추었다. 여전히 열기가 가득한 그의 눈빛은 너무도 자극적이었다.

    “왠지… 오늘 밤은 엄청 길 것 같다.”

    혜운의 말에 재현은 부정하지 않았다. 재현은 손을 뻗어 혜운의 헝클어진 머리칼을 귀 뒤로 넘겨 주며 옅게 웃었다.

    * * *

    배고픔을 이기지 못하고 침실을 빠져나온 혜운과 재현은 항구 근처 수산물 시장에서 구입한 바지락을 넣고 칼국수를 끓여 먹은 뒤 바닷가 산책에 나섰다.

    아쉽게도 별장 2층에서 내려다보았던 바다의 낭만은 찾아볼 수 없었다. 해가 지고 나니 거센 바람이 불어 파도는 높고 제대로 눈을 뜨고 걷기 힘들 정도였다.

    두꺼운 패딩 점퍼와 목도리로 중무장을 했지만 살을 에는 듯한 겨울바람을 이길 재간이 없었던 두 사람은 결국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다.

    대신 마당에 모닥불을 피우고 나란히 앉아 밤하늘을 구경했다. 멀리서 들리는 파도 소리도 나쁘지 않았다. 가까이에서 바다를 보는 것만큼이나 낭만적이었다.

    탁탁 소리를 내며 새빨갛게 타오르는 장작을 가만히 보고 있는 것도 좋았다. 그 안에 던져 둔 고구마와 밤이 익길 기다리며 설레어하는 혜운을 바라보는 것도 좋았다.

    “재현아, 춥지?”

    “이 정도는 괜찮아.”

    혜운은 추운 겨울을 좋아했지만 재현은 유독 추위를 많이 타는 편이었다. 혜운은 계속 재현에게 춥지 않냐고 물었고, 재현이 아무렇지 않은 척해도 그에 대해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는 그녀는 쉽게 속지 않았다.

    13년의 공백이 무의미할 정도로, 여전히 서로에 대해 많은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서로가 서로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였는지를 실감하곤 했다.

    “나는 유난히 겨울이 좋더라. 생각해 보면 재밌는 일도 많았어. 너랑 눈썰매도 타러 가고, 스케이트도 타고, 다음 날 몸살 날 정도로 눈싸움도 하고….”

    혜운이 말끝을 흐리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때마다 항상 함께했던 진현의 기억 때문일 것이다. 늘 두 사람의 보호자를 자처해 주던 든든한 형의 모습이 재현의 눈앞에도 선하게 그려졌다.

    “형 보고 싶다.”

    누구에게도 할 수 없었던 말.

    혼자서만 되뇌어 보던 말.

    덤덤하게, 아무렇지 않게 툭 말을 꺼냈지만 재현의 눈에는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그리웠다. 생각하면 보고 싶고, 그러면 마음 아프니까 떠올리지 않으려 노력하던 날이 많았다. 왜 갑자기, 하필 이 순간, 혜운의 앞에서 그 말이 나왔는지 모를 일이었다.

    혹시 그녀의 마음까지 무겁게 만들었을까 봐… 재현은 그 말을 꺼내자마자 곧바로 후회했다.

    “미안. 내가 괜한 소리를 했네….”

    “그게 왜 괜한 소리야. 해도 돼. 보고 싶으면 보고 싶다고 말해도 돼, 재현아.”

    진현을 떠올리면 모두들 아파했기에, 그를 언급하는 것조차 자연스레 금기시되어 왔다. 오랜 시간이 흘렀어도 여전히 마음에 상처로 남은 탓이다.

    언젠가는 의연해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생각처럼 잘되지 않았다.

    혜운이 재현의 손을 꼭 잡으며 눈을 맞췄다.

    “나도 그랬어. 내가 엄마를 그리워하는 것만으로도 할머니한테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억지로 참아도 봤고, 엄마가 없어도 난 너무 행복하다고 스스로 설득도 해 봤는데, 그래도 생각나는 건 어쩔 수 없더라. 난 엄마에 대한 기억도 없는데… 사진으로밖에 본 적 없는데도, 자꾸만 생각났어.”

    다른 아이들보다 어른스러웠던 혜운이 혼자서 슬픔을 삭이던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다. 차마 위로조차 함부로 건넬 수 없어서 곁을 지키고만 있던 시절 또한 또렷하게 떠올랐다.

    “그런데 넌 오죽하겠니. 같은 집에서 자고, 같은 집에서 밥을 먹고, 함께 산 세월이 얼만데… 어떻게 잊을 수 있겠어? 내 기억 속에도 오빠 얼굴이 어제 본 것처럼 선명한데…. 넌 형이 얼마나 그리울까?”

    재현은 활활 타오르는 장작을 바라보며 천천히 눈을 깜빡였다. 형을 떠나보낸 후, 마음껏 아파하지도 못하고 다 끌어안고 살아서 여전히 내 마음속에 형에 대한 그리움이 이토록 무겁게 남아 있는 건가 싶었다.

    “형에 대한 생각이 한번 시작되면… 끝도 없이 번져서 걷잡을 수가 없어. 감당이 안 돼. 그래도… 보고 싶어. 지금쯤 형이 내 곁에 있었다면 어떤 모습일지 자꾸 상상하게 돼. 그렇게라도 형을 옆에 두고 싶은가 봐.”

    재현은 허탈하게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가득 차올라 위태롭게 매달려 있던 눈물이 바닥으로 후드득 떨어졌고, 재현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눈물을 감췄다.

    “가끔씩 떠올리고, 가끔씩 얘기하면서… 그렇게 곁에 두자. 그렇게 지내다 보면 형을 기억해도 조금은 덜 아프지 않을까? 억지로 생각을 가두려 하면 더 견디기 힘들어. 그러니까… 적어도 나랑 있을 땐 그렇게 하자. 응?”

    혜운은 재현을 두 팔로 감싸 안으며 가만히 등을 다독여 주었고, 재현은 그런 그녀의 어깨 위에 이마를 기댄 채 입술을 꾹 깨물었다.

    진심을 가득 눌러 담아 조심스레 건넨 위로의 말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재현의 마음을 차곡차곡 채워 주었다. 벅차오르는 감정에 울컥했지만, 재현은 이를 악물고 버텼다. 다시는 그녀의 앞에서 무너지고 싶지 않았다.

    재현과 마주 보고 누운 혜운은 곤히 잠든 그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저도 모르게 손을 뻗었다.

    짙은 속 쌍꺼풀과 가지런한 눈썹, 현실감 없는 콧대와 붉고 선명한 입술, 턱 끝에 푸르스름하게 돋아난 수염까지…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귀 아래 섬세하고 날렵하게 떨어진 아래턱부터 곧게 뻗은 남성스러운 턱 선을 손끝으로 조심스레 만지자, 그가 아주 잠시 눈을 떴다가 감으며 혜운을 품 안에 더 바짝 안아 당겼다.

    진현을 보고 싶다고 담담하게 말하던 그의 표정이 혜운의 눈앞에 자꾸만 아른거렸다.

    어차피 없던 일이 될 수도, 잊을 수도 없으니 삶 안에 녹아들도록 받아들이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함께여서 좋았던 기억이 너무도 많기에, 그것마저 봉인해 버리는 건 재현의 행복했던 시절도 함께 잃게 하는 것 같아서였다.

    혜운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그의 입술에 살며시 입을 맞추며 다짐했다.

    내가 널 행복하게 만들어 주겠다고…. 꼭, 그렇게 할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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