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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안녕, 내 첫사랑 (15/50)
  • 15. 안녕, 내 첫사랑

    샤워를 마치고 욕실을 나선 재현은 주인 잃은 빈 방에 홀로 우두커니 앉아 한참을 머물다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다. 바닥에 주저앉아 천장을 바라보며 그저 멍하니 눈만 끔벅였다.

    아무것도 안 하고 버티기에는 너무나 괴로운 밤이다. 형의 부재가 여전히 믿어지지 않는 밤. 지나치게 고요해서 숨통이 점점 조여드는 그런 밤.

    재현은 그대로 바닥에 누워 책장 곳곳에 놓인 진현과 자신의 사진 액자를 바라보았다. 남는 건 사진이라며 언제 어디서든 카메라를 들던 영철 덕에 집 안 곳곳에는 크고 작은 사진 액자가 가득했다.

    시선을 돌리는 곳마다 어김없이 진현의 사진이 있어 빈자리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차라리 진현이 잠시 집을 비운 것이라고 하는 게 더 믿어질 것 같았다.

    자신의 방 곳곳에 남아 있는 형의 흔적을 찾던 재현의 눈에 작은 상자 하나가 들어왔다. 재현은 문득 떠오른 생각에 벌떡 일어나 그 상자를 열어 보았다.

    “너한테 줄 거 있는데.”

    “거기 놓고 가.”

    “뭔지 안 궁금해?”

    “나 피곤해.”

    “쌀쌀맞긴…. 알았다.”

    선물이라면서, 마지막으로 자신에게 주고 갔던 것. 상자 안에 담긴 건 시계였다. 그가 혜운에게 선물했던 것과 같은 모델의 시계.

    “끝까지 나를….”

    나쁜 놈으로 만드는 구나, 형은.

    이러면 나는 어떻게 하라고.

    이미 죄책감에 사로잡혀 숨도 제대로 쉴 수 없는데, 모든 게 내 탓인 것만 같아 괴로워 미칠 지경인데.

    진현 같이 좋은 사람이 자신의 형으로 있기에는 너무 과분해서였을까. 그래서 내게서 형을 빼앗아 간 것일까. 너 같은 인간에게 이렇게 좋은 사람을 형으로 주긴 너무 아깝다고. 그 소중함을 이제라도 느껴 보라고?

    그 순간 재현은 깨달았다. 더 이상 이곳에서 숨을 쉬고 잠을 자고 밥을 먹고 학교를 다닐 수 없다는걸. 이곳에서는 눈을 떠도, 눈을 감아도 떠오르는 형의 기억에 잠겨 죽고 말거라고.

    재현은 자신의 방을 나와 안방으로 향했다. 영철은 잠들어 있었고, 민영은 보이질 않았다. 새벽 두 시가 넘은 늦은 시간에 어딜 간 건가 싶어 집 안 곳곳을 뒤지다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1층 식당으로 내려갔다.

    “엄마.”

    불러 보지만 대답이 없었다. 그러나 가만히 귀를 기울이니 주방에서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재현은 조심스레 그곳으로 걸음을 옮겼고, 어두운 주방에서 혼자 소뼈를 헹구고 있는 민영을 발견할 수 있었다.

    민영은 요즘 밤에 잠이 잘 오지 않아서 고생하고 있었다. 몸이 힘들면 잠이 올 거라며 하루 종일 몸을 혹사시켰지만 그래도 좀처럼 잠들지 못했다. 간신히 잠이 들었다가도 갑자기 벌떡 일어나 숨이 쉬어지질 않는다며 가슴을 두드리기도 했다. 온몸으로 고통과 맞서는 민영을 볼 때마다 재현은 너무도 괴로웠다.

    “엄….”

    민영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가려는데, 민영이 손에 들고 있던 뼈를 내려놓고 두 손으로 대야를 붙잡은 채 허리를 숙였다.

    “흐흐흑…. 하윽….”

    가쁜 숨을 토해 내던 민영이 이내 고개를 뒤로 젖히더니 주먹으로 가슴을 내리치고 쥐어뜯으며 괴로워했다. 발버둥까지 치면서 몸을 비틀고 괴로워하던 민영은 꺽꺽 숨이 넘어갈 정도로 고통스럽게 울었다.

    “허으으윽, 흐윽…. 진현아…. 엄마도 데려가. 엄마도…. 엄마가 너를 먼저 보내고 어떻게 사니…. 엄마가 죄가 많아서 이렇게 너를 먼저 보내고…. 으아아악! 진현아!”

    진현을 보내 주고 집에 돌아오던 날, 잠시 이곳에서 떠나 함께 호주로 가자던 고모의 제안에 민영은 또 한 번 거절했었다. 일이라도 하지 않으면 미쳐 버릴 것 같다고. 아직 진현의 온기가 남은 이곳에서 천천히 보내 주고 싶다며 고모를 붙잡고 고통에 몸부림치며 울었다.

    그 후 며칠 동안 아무 일 없던 것처럼 일상을 지내던 민영이 또 한 번 무너졌다. 그간 참 지독한 사람이라는 사람들의 수군거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식당을 지켰다. 사람들은 그런 민영에게 역시 강한 사람이라고 말했지만, 그것은 민영이 고통을 견뎌 내는 방식이었을 뿐이다.

    “엄마….”

    차마 더는 보고만 있을 수가 없어서 민영에게 다가가려는데, 영철이 재현의 손을 잡고 말렸다.

    “엄마한테도 시간을 주자.”

    재현은 영철이 이끄는 대로 다시 3층 집으로 올라갔다.

    “들어가서 자라. 늦었다.”

    “아버지.”

    방으로 들어가려던 영철은 재현의 부름에 멈춰 섰다.

    “나 때문이야.”

    “뭐가 말이니?”

    “형 사고… 나 때문이야.”

    “재현아.”

    “내가 형한테 한심하게 굴었어. 성질부리고 짜증 내고…. 그런데도 형이 먼저 내 기분 풀어 주려고 같이 축구를 보러 가자고 한 건데…. 내가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애처럼 굴지 말았어야 했는데….”

    영철은 재현을 품에 안았다.

    “재현아. 너 때문이 아니야. 사고였어. 자책하지 마라.”

    “아냐. 나 때문이야…. 내가 빨리 오라고 전화만 걸지 않았어도, 뛰어 오라고 보채지만 않았어도, 그랬으면 그 횡단보도를 건너지 않았을 거야. 그랬다면….”

    그 순간, 뒤에서 재현의 어깨를 잡아채 거칠게 돌려세운 민영이 바들바들 떨며 재현을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여보!”

    영철이 말릴 틈도 없이 민영의 손바닥이 재현의 뺨을 내리쳤다. 그 충격으로 재현은 그대로 바닥에 넘어졌다.

    “엄마….”

    지금 자신의 앞에 선 민영의 표정과 눈빛은 재현이 처음 보는 표정과 눈빛이었다. 전혀 다른 사람 같았다. 재현은 숨을 내쉬지도 못한 채 민영의 차가운 시선을 고스란히 받아 내고 있었다.

    민영은 아무 말 없이 그대로 진현의 방으로 들어가 문을 걸어 잠갔다. 영철이 방문을 두드리며 어서 문을 열라고 외쳤지만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재현은 멍하니 앉아 불에 덴 듯 뜨겁게 달아오른 뺨을 손바닥으로 감쌌다. 칼로 심장을 도려낸 아픔이 이 정도쯤 될까. 민영의 시선이 닿았던 몸 곳곳이 칼로 베인 것처럼 쓰라리고 따가웠다.

    지금 민영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슬프고 고통스럽다는 걸 알고 있지만, 그래서 무조건 이해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지만, 그래도 아팠다. 네 탓이라고 말하지 않았지만 눈빛으로 느껴졌다. 네 탓이라고. 너 때문에 죽은 거라고. 그런 착각마저 들었다.

    그래서 재현은 다시 한번 깨달았다. 이곳에서 더는 버틸 수 없다는걸.

    * * *

    이른 새벽,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한 혜운은 집을 나와 재현의 집으로 향했다. 일어났으면 잠시 나와 보라고 메시지를 적는데, 재현이 식당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회색 후드를 뒤집어쓰고 어딘가로 향하는 재현을 발견하고 혜운은 조용히 그 뒤를 따랐다.

    그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재현의 뒤를 따라 걷는 내내 생각했다. 달려가 같이 가자고 할까, 아니면 혼자만의 시간을 줘야 하는 걸까 고민을 거듭하는데 재현의 걸음이 멈췄다.

    그의 발길이 머문 곳은 함께 다녔던 초등학교였다. 운동장 곳곳에 빗물이 고여 만들어진 물웅덩이를 피하지 않고 걸으며, 초등학교 본 건물 옆 병설 유치원의 작은 운동장으로 향했다.

    그는 운동장에 설치된 크고 작은 놀이기구를 바라보다가 시소 앞에 우두커니 서서 한참을 바라보았다.

    혜운과 함께 타고 놀았던 시소.

    진현이 함께 타고 놀아 주었던 시소.

    진현이 초등학생이었을 적에, 혜운과 재현은 이곳의 병설 유치원을 다녔다. 혜운과 재현이 바로 하원하지 않고 놀이터에서 놀고 있으면 당시 6학년이었던 진현이 두 사람을 데리러 오곤 했다.

    함께 놀아 주기도 하고, 어서 집에 가자고 어르고 달래다 안 되면 슈퍼에 들러 과자를 사 주기도 했다. 귀찮아하는 법 없이 살뜰히 챙겨 주던 진현의 모습이 생생하게 떠올라서 혜운도 결국 참았던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손을 내밀어 시소를 만져 보던 재현은 고개를 숙인 채 들고 있던 우산을 손에서 놓아 버렸다. 그리고 이내 자신에겐 한없이 듬직하고 단단하던 그의 어깨가 조금씩 들썩이기 시작했다. 보기 안쓰러울 정도로 있는 힘을 다해 버텨 내던 재현이 조금씩 무너지고 있었다.

    울음소리는 점점 커졌다. 빗소리에 감춰지지 않을 만큼 점점 커지더니, 이내 무릎을 꿇고 주저앉아 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기억하는 한, 혜운이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가족을 잃은 슬픔은 마치 몸의 일부분이 베어져 나가는 것 같은 아픔이라던 어느 책의 구절은 차라리 담담하게 표현한 것 같았다. 곁에서 지켜보는 사람도 이렇게나 아프고 힘든데, 본인은 얼마나 힘들까.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혜운은 더 이상 재현을 혼자 둘 수 없었다. 조심스레 다가가 우산을 내려놓고 함께 비를 맞았다. 그리고 두 팔 가득 재현을 감싸 안았다.

    “내가 옆에 있을게. 그러니까 울어도 돼…. 울어도 돼, 재현아. 내가 너한테 해 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서… 너무 미안해.”

    재현은 자신의 어깨에 이마를 기댄 채 하염없이 눈물을 쏟아 냈다. 혜운은 그가 쓰러지지 않도록 있는 힘껏 끌어안은 채 그의 등을 다독였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뭐든 다 해 주고 싶었다. 그가 조금이라도 덜 아플 수만 있다면, 뭐든 해 줄 수 있었다.

    * * *

    해가 떠오르면서 어두웠던 세상이 점차 밝아졌다. 억수같이 쏟아지던 빗줄기도 한결 가늘어졌고, 싸늘했던 공기도 조금은 포근해졌다.

    혜운은 재현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재현은 혜운의 머리에 자신의 머리를 기대며 서로에게 의지했다. 재현은 자신의 손 안에 쏙 들어온 혜운의 작은 손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발 앞 물웅덩이에 뛰어드는 빗줄기를 바라보았다.

    “신혜운.”

    “응?”

    “약속 못 지켜서 미안해.”

    차마 혜운의 눈을 보고 말할 자신이 없었다. 미안하고 면목이 없어서, 자신의 나약함이 너무도 부끄러워서 혜운을 볼 수가 없었다.

    “네 곁에… 있어 주지 못해서 미안해.”

    “재현아.”

    “더는 이곳에서 버틸 수가 없어. 그래서….”

    혜운은 재현의 앞에 웅크리고 앉아 눈을 맞추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괜찮아, 재현아. 다 괜찮아…. 네가 어떤 선택을 하든, 나는 너를 믿어.”

    웃고 있는 입매가 떨렸지만 혜운은 끝까지 미소를 잃지 않았다. 괜찮다고 말하는 혜운의 눈이 너무나 서글퍼 보였지만, 혜운은 다 괜찮다고 말했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

    “미안해하지 마. 우린… 다시 만날 테니까.”

    혜운은 제법 씩씩하게 말했다. 작은 손으로 재현의 뺨을 감싸며 또 한 번 예쁘게 웃었다.

    아무 걱정하지 말라고, 보내 줄 테니 미안해하지 말라고, 마음 무겁게 돌아서지 말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난 항상 여기 있을 거야. 그러니까 내 걱정 말고…. 아프지 마.”

    가늘게 떨리는 혜운의 목소리에 재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혜운을 품에 안았다.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 깊게 숨을 들이쉬며 혜운의 향기를 가슴 깊숙한 곳까지 밀어 넣었다. 따뜻함이 밀려 들어왔다.

    재현은 지금 이 순간을 온몸에 새겨 넣듯 빈틈없이 혜운을 안았다.

    펴 보지도 못하고 꺾인 내 첫사랑….

    아픔으로 남아 버린 내 사랑이 못내 서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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