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 죽지 못해 산다는 것 (14/50)
  • 14. 죽지 못해 산다는 것

    사고 현장으로 가는 동안, 재현은 손에 쥐고 있던 휴대폰에서 최근 통화 목록 맨 위에 떠 있는 진현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휴. 뛰지 말라니까.”

    뛰느라 전화가 오는 것도 모르고 있나 보다. 그냥 걸어와도 된다니까 참 말을 안 듣는다. 사람들은 진현을 말 잘 듣는 착한 모범생으로만 알고 있지만 재현은 알고 있다. 진현도 가끔은 말을 잘 듣지 않는 말썽꾸러기에 장난기도 넘치는 사람이라는걸.

    아닐 걸 알면서도, 그렇게 굳게 믿고 있으면서도 재현은 어느새 사고 현장 근처에 다다랐다. 내리막길을 걷는 재현의 걸음은 점점 빨라졌고, 현장에 다다랐을 땐 전속력으로 달리고 있었다.

    아닐 거다. 그럴 리가 없었다. 그건 진짜 말이 안 되는 거니까. 절대 그럴 리가 없다.

    주문 같은 그 말을 연신 중얼거리며 사람들이 몰려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현장은 경기장에서 내려다보던 것보다 심각했다.

    좌회전을 크게 돌던 승용차와 우회전을 돌던 버스가 부딪힌 운이 나쁜 사고였다. 하필이면 횡단보도 앞이라 신호를 기다리던 사람들이 승용차를 피해 인도에 바짝 붙어 커브를 돌던 버스에 부딪혀 다친 듯했다.

    서너 명이 인도 위에 앉아 고통을 호소했고, 천만다행으로 그곳에 진현은 없었다.

    그럼 그렇지. 그럴 리가 없지.

    재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다시 돌아섰다. 그때….

    “구급대는 왜 이렇게 안 오는 거야! 여기 사람 다 죽어 가는데!”

    버스 앞바퀴 쪽에 모여 있던 장정 여럿이 큰 소리로 외치며 주변을 두리번거렸고, 재현은 떨리는 손에 잔뜩 힘을 줘 주먹을 쥐고 그곳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저 멀리서 구급차 사이렌 소리가 들리던 순간, 재현은 자신의 두 눈을 의심했다.

    “…형.”

    진현이었다. 버스의 커다란 바퀴에 깔린 채, 가쁜 숨을 몰아쉬며 연신 피를 쏟아 내고 있었다.

    “형!”

    재현은 그대로 달려가 진현의 앞에 주저앉았다. 처참하게 꺾인 진현의 다리 옆에 엎드려 온몸을 바들바들 떨고 있는 진현의 손을 붙잡았다.

    지금 자신의 눈으로 이 상황을 보고 있으면서도 믿어지지가 않아서, 형의 이름을 부르는 것밖에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이성의 회로는 진현의 얼굴을 확인하는 순간 모두 끊어져 버렸다.

    재현은 진현의 손을 잡은 채 숨이 끊어질 듯 소리 지르며 울었다. 붙잡고 싶었다. 그의 이름을 부르지 않으면 이대로 진현이 가 버릴 것만 같아서 죽을 만큼 두려웠다. 어떻게든 진현을 붙잡아 둬야 한다고 생각했다.

    진현은 절대 이렇게 떠날 사람이 아니라고 믿었다. 자신을 두고, 엄마와 아빠를 두고 이렇게 갈 사람이 아니다. 누구보다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니 버텨 줄 거라고 믿었다. 꼭 그래야만 했다.

    “제발…. 형 제발….”

    내가 빨리 오라고 재촉하지만 않았어도.

    그가 이번 신호를 건너기 위해 이 횡단보도 앞에 서 있지만 않았어도.

    내가 전화만 걸지 않았어도.

    내가…. 내가….

    장대 같은 소나기가 퍼붓기 시작한 건, 그때부터였다.

    * * *

    진현이 세상을 떠난 지 사흘째 되던 날,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 밤이 지나고, 해가 뜨고, 어김없이 새벽이 찾아왔다. 그렇게 무심하게도 시간은 계속 흘러갔다.

    화장을 앞두고 빈소 안은 새벽부터 분주했다. 빈소에는 장례 일정 내내 재현의 가족을 대신해 애써 준 친척들과 지인들이 가득했다. 마음껏 슬퍼할 수 있는 사람과 슬퍼하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사흘 동안 함께하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괜찮아질지도 모른다던 사람들의 위로는 아직 재현에게 해당되지 않는 말이었다. 오히려 시간이 흐를수록 더 아팠다. 견디면 될 줄 알았는데, 점점 견디기 버거웠다.

    때가 되면 배가 고프고, 피곤함에 잠이 오기도 했다. 살아 있다는 게, 떠난 형에게 이토록 미안한 일일 줄이야….

    민영은 진현의 마지막을 확인하고 진현의 이름을 부르며 딱 한 번 무너졌을 뿐, 무섭도록 차분했다. 마치 모든 감정을 잃어버린 사람처럼 넋이 나간 듯 멍하니 않아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큰 울음소리 한 번 내지 않고 이를 악물고 울었다. 영철의 팔에 멍이 들도록 쥐고 비틀면서도 통곡하지 않았다. 말을 잃은 사람처럼 내내 침묵했다. 그 모습이 마치 벼랑 끝에 선 것처럼 위태로웠고, 그런 그녀를 지켜보는 모든 사람들이 마음을 졸이고 있었다.

    “…여보.”

    민영이 드디어 말문을 열었다. 민영의 부름에 영철이 퀭한 얼굴을 손바닥으로 문지르며 다가가 앉았다.

    “지금도 밖에 비 와요?”

    “응.”

    “그렇구나.”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곤 뺨을 타고 흘러내린 눈물을 무심하게 손으로 닦아 내곤 재현에게 손짓했다.

    “밥은?”

    “생각 없어. 엄마, 죽이라도 사다 줄까?”

    “잠은?”

    “아까 좀 잤어.”

    “그래. 잘했어.”

    민영은 메마른 눈빛으로 허공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민영이 드디어 입을 열자, 내내 조문객을 맞으며 일손을 돕던 민영의 동네 친구들이 그녀에게 다가가 어깨와 등을 다독여 주고 손을 잡아 주었다.

    “자기들 밥은 먹었어?”

    “우리 걱정은 말고 진… 재현이 엄마 몸이나 챙겨. 이러다 쓰러지겠어.”

    “나 쉽게 안 쓰러져. 알잖아.”

    민영은 쓰게 웃으며 갈라져 부르튼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가게는?”

    “아이고 이 사람아….”

    “내일부터는 장사를 해야 할 텐데…. 여보. 이따 저녁에 고기 사러 다녀와요.”

    “재현이 엄마….”

    민영의 친구들은 민영과 영철을 번갈아 보며 난감해했지만 영철은 민영의 말에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몇몇 사람들은 눈물을 훔쳤다.

    “지금 가게가 대수야? 자기 마음부터 돌봐야지.”

    “내… 마음?”

    “그래. 자기 마음. 쉬면서 마음 좀 다독여. 그러다 탈 나. 마음병 깊어져.”

    “그럼 나보고 집에 우두커니 앉아 있으라고?”

    민영의 되묻자 다들 한숨만 내쉴 뿐 대답을 내놓지 못했다.

    “계속 생각날 텐데… 어떻게 아무것도 안 해? 나가서 장사라도 해야지. 몸이라도 움직여야지. 몸이 힘들면 좀 낫겠지. 그렇게라도 안 하면… 나 죽어….”

    한숨 섞인 민영의 작은 목소리에 영철도 끝내 돌아서서 눈물을 보였다. 분주함으로 잠시 슬픔을 외면하던 사람들도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가슴 아파했다.

    재현은 고개를 푹 숙인 채 눈물을 쏟았다.

    나는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형의 기억과 추억으로 가득한 그곳으로 내가 다시 돌아가 일상을 살아갈 수 있을까.

    형이 생각날 텐데.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형이 생각날 텐데. 동네 곳곳에 켜켜이 쌓인 형과의 추억 앞에서 나는 견딜 수 있을까. 버틸 수 있을까.

    자신이 없다. 너무도 한심하고 나약한 나라서, 고작 이것밖에 안 되는 나는 감당할 자신이 없다.

    애초에 진현에게 툴툴거리지만 않았다면. 그날 축구를 보러 가지만 않았어도. 자신이 빨리 오라고 재촉하고 전화를 걸지 않았다면. 만약 그랬다면….

    결과를 두고 과정의 모든 이유가 자신에게 있다고 끼워 맞춰 가면서 왜곡을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좀처럼 그런 생각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모든 것이 자신의 탓인 것만 같아 괴로웠다. 시간이 흐르면서 슬픔과 죄책감의 크기가 점점 더 커져만 갔고, 머지않아 그것에 집어삼켜질 것만 같았다.

    * * *

    그 후로도 비는 일주일 동안 더 내렸다. 긴 가뭄을 해소한 단비라 많은 사람들이 반겼지만, 슬픔에 잠긴 사람들에게 이 비는 하늘에서 내리는 눈물인 것만 같아 유난히 슬픈 시간이었다.

    혜운과 재현은 우산을 쓰고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혜운은 재현의 세 걸음쯤 뒤에서 걸었다.

    젊은 교생 선생님의 사고이자, 재현의 형의 사고였기에 특히 2학년의 분위기는 내내 침울했다. 웃고 떠들던 아이들도 재현을 발견하면 일순간 침묵했고, 위로를 건네기는커녕 다가가 말을 붙이는 것도 어려워하며 주변을 맴돌았다.

    그래서 재현의 곁에는 늘 혜운이 함께했다. 별다른 대화는 없었지만 등하교를 함께하는 건 물론이고 억지로 데려가 밥을 먹이고 쉬는 시간마다 찾아가 복도에서 재현을 보고 돌아왔다. 재현의 반 담임 선생님은 혜운에게 직접 재현을 부탁하기까지 했다.

    재현이 혜운의 집 방향으로 향하자, 혜운은 다가가 그의 팔을 붙잡았다.

    “너희 집 먼저 가자.”

    “됐어. 이제 그만해도 돼.”

    “오늘 하루만 더 내가 바래다줄게. 가자.”

    혜운이 팔을 잡아당기자 재현은 고집 부리지 않고 순순히 방향을 돌렸다.

    재현은 집에 들어가는 걸 힘겨워했다. 형과의 추억으로 가득한 곳이기에 그런 것 같았다. 게다가 그의 사고를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봤기에 더욱더 힘들었을 것이다.

    자신이 해 줄 수 있는 건 그저 곁에 있어 주는 것밖에는 없어서 가슴이 아팠다.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잠들지도 못해 살이 쭉 빠진 재현을 볼 때마다 혜운은 자신의 일인 것처럼 괴로웠다.

    식당 건물 앞에 도착하자 재현은 돌아서서 혜운을 바라보았다.

    “들어가.”

    “너 가는 거 보고.”

    “너 먼저 들어가.”

    이번에도 재현은 고집을 부리지 않고 혜운의 말대로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혜운은 재현이 들어간 후에도 잠시 그 자리에 서 있다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혜운아!”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귀에 익은 음성에 뒤돌아보니 그곳에 경선이 있었다. 혜운은 그녀에게 달려갔다.

    “재현이네 집에 계셨어요?”

    “전복 넣고 죽 끓여서 가져다준 참이야. 너는 재현이 집까지 바래다준 거니?”

    “네.”

    혜운은 쓰고 있던 우산을 접고 경선의 우산 아래로 들어가 그녀의 팔을 감싸 안았다.

    “어머니랑 아버지는 좀 어떠세요?”

    “에휴. 둘 다 얼굴이 말도 아니지.”

    경선은 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죽지 못해 사는 거야. 죽지 못해서…. 그 기분, 내가 잘 알지…. 그렇다고 손 놓고 있으면 자꾸 생각나니까, 어떻게든 버텨 보려고 나와서 장사라도 붙잡고 있는 거야. 안쓰러워 죽겠어.”

    경선의 말에 혜운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슬픔…. 자신은 감히 가늠조차 할 수 없는 아픔과 고통. 그 상처를 딛고 살아간다는 것은 너무 가혹한 것이라고 말하던 경선의 모습이 떠올랐다. 누군가 괜찮은 거냐고 물어보면 갈기갈기 찢어진 가슴을 열어서 보여 주고 싶었다던 그 말도 함께 말이다.

    “재현이는 어때?”

    “재현이도 여전히 많이 힘들어하고 있어요. 특히 집에 들어가는 걸 힘들어하더라고요. 근데 제가 해 줄 수 있는 게 없어서….”

    “네가 옆에서 잘 챙겨 주고 살펴봐 줘. 곁에 누가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힘이 될 때가 있거든.”

    정해진 답이 없는 것의 답을 찾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 같았다. 그래서 요즘 혜운은 자신이 힘들 때 재현이 어떻게 해 줬는지를 떠올려 보곤 한다.

    그는 늘 자신의 곁에 있어 주었고, 기댈 수 있게 어깨를 내어 주었다. 어쩌면, 그의 존재만으로도 위로를 받았는지도 모른다.

    나도 재현에게 그런 위로가 될 수 있을까? 대체 어떻게 하면 좋을지, 혜운은 그 답을 너무도 간절히 찾고 싶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