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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거짓의 장막이 걷힐 때 (2)(4권) (14/22)

딱 1년만, 나를 사랑해 주세요 4권

13. 거짓의 장막이 걷힐 때 (2)

프레디아의 수확제는 추수의 끝을 알리는 축제임과 동시에 가을의 끝을 알리는 것이기도 했다.

때는 이른 저녁 시간. 수확제에 참여한 마을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 간이 테이블에 놓인 음식을 먹거나 술을 마시며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에드의 손에 이끌려온 애쉴도 마찬가지였다.

과수원에서 일을 하며 친해진 여자들에게 둘러싸인 그녀는, 주도적이지는 않았지만 이따금 맞장구를 치며 대화에 참여하고 있다는 티를 내었다. 이런 자리에서 모나게 굴어 봤자 좋을 것이 없으니까. 나름 귀족 출신이었기에, 불편한 자리일지언정 속마음을 숨기는 것은 익숙했다.

그녀와 조금 떨어진 곳에서 에드는 다른 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연신 애쉴을 힐끔거렸다. 평상시와 다름없는 여자의 무표정한 얼굴에 피곤함이 엿보였다.

‘육체와 정신, 둘 다 때문이겠지.’

미안한 마음에 그는 한시도 여자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러자 여관 주인 부부 중 남편인 베르하가 툭툭 쳐댔다.

“아주 눈을 못 떼는구만?”

“그런 거 아닙니다.”

“그런 게 아니긴 뭘. 오늘 같은 날 고백이라도 하지 그러나. 아, 설마 이미 했나?”

“그런 거 아니라니까요.”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든 게 누구인데.

거의 들리지 않을 만큼 입술을 달싹거린 남자가 눈을 돌렸다. 사람들에게 저와 애쉴의 이야기를 하지 말아달라 그렇게 부탁했거늘. 언제 고백할 거냐는 둥 질문들이 계속해서 들어오는 것으로 보아 이미 마을에 전부 퍼진 것 같았다.

그는 자꾸만 애쉴에게로 돌아가려는 시선을 땅에 내리꽂으며 모조리 한 귀로 듣고 흘렸다. 부디 이 망언들이 그녀에게 들어가지 않기를 바라면서.

“그러고 보니 자네, 곧 떠난다고 들었는데. 그 전에 마음은 알리고 가야 하지 않겠나. 혹시 누가 아는가, 그사이에 다른 남자가 채가기라도 할지?”

“그건 또 누구한테 들으셨습니까?”

“누구라고 할 게 있나. 온 마을에 파다하게 퍼졌는데.”

돌아버리겠군.

에드는 침음하며 이마를 짚었다. 애쉴과 있을 때 외에는 입에 올린 적도 없던 게 떠돌아다니고 있으니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벨키에로트의 눈과 귀가 어디에 있을지도 모르는데, 사실에 기반한 것인지라 뭐라 정정하지도 못했다.

“금방 돌아올 겁니다.”

“금방이 문제가 아니야. 고백이라도 하고 가야 할 것 아닌가. 네가 자네 나이 때는 말이지.”

“여기서 뵙는군요. 애쉴의 호위 기사분. 아. 기사가 아니시죠, 참?”

걸걸하던 중년 남성의 목소리가 뚝 끊겼다.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뒤를 돌아보았다. 금발에 금안을 가진 음유시인이 그들을 보며 웃고 있었다. 부드러운 그의 외모에 잘 어울리는, 소나무를 닮은 청량한 미소였으나 어딘가 모르게 섬뜩함이 느껴졌다.

그에게 좋은 감정이 없던 에드가 인상을 확 일그러뜨렸다. 그사이에 베르하는 옆 사람의 부름에 다른 곳으로 가 버렸다.

“무슨 일입니까?”

달갑지 않다는 기색을 여실히 풍기며 묻자 클라우드가 섭섭하다는 듯 한쪽 입꼬리를 비틀었다.

“그냥 반가워서 그러죠. 꼭 일이 있어야 할까요?”

“저는 전혀 반갑지 않습니다. 그럼.”

“곧 떠나신다고 들었는데.”

냉기 서린 음성을 마지막으로 발을 움직이려던 남자가 멈칫했다. 마음을 읽으려는 듯 예리한 눈빛이 파고들었으나 클라우드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이었다.

“언제 떠나십니까?”

“그쪽에게 알려 줄 이유 없습니다.”

대화를 단절시킨 에드는 그대로 등을 돌렸다. 해사한 미소를 띤 채 그의 뒷모습을 쳐다보던 클라우드의 눈빛이 어느 순간 의미심장하게 변했다. 그는 옷자락에 땀으로 가득 찬 손바닥을 문지르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무의식중에 긴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괴물 같은 새끼.”

여하튼, 저놈을 상대하지 않아도 되어 다행이었다.

* * *

누군가가 그랬다. 괴롭고 힘든 시간은 느리게 지나가지만, 즐거운 시간은 빠르게 지나간다고.

수확제가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어느새 깜깜해진 하늘에는 반짝거리는 별들이 흩뿌려져 있었다. 공터 중앙에서 피어오르는 거대한 모닥불은 저 위, 둥근 보름달에 닿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높게 연기를 뿜어 대었다. 마을에 방문한 음유시인들과 무희들은 그 주위에서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며 흥겨운 분위기를 더하고 있었다.

한창 흥이 올라 두꺼운 겉옷들을 벗어 던진 이들과는 다르게, 애쉴은 모포로 몸을 칭칭 감아둔 채 조용히 앉아 있었다. 이젠 추위와 더위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몸이 상했기에 함부로 벗어 던질 수가 없었다. 조금만 움직여도 금세 고갈되는 체력 탓에 그들만큼 움직일 수도 없었다.

“뭐 하고 있어, 우리도 나가자!”

초점 없는 눈동자로 춤을 추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는데, 별안간 그들 중 하나가 달려와 애쉴을 잡아끌었다. 과수원에서 몇 번 마주친 후 친하게 지내자며 살갑게 굴던 동갑내기 여자였다.

애쉴은 이대로 앉아 있는 것이 좋다며 그녀를 돌려보냈다. 아쉬운 듯 입을 삐죽거리던 여자는 완고한 고집을 꺾지 못하고 돌아갔다.

가벼운 실랑이였을 뿐인데 진이 쭉 빠졌다. 애쉴은 무릎을 감싸 안은 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씁쓸하고, 허탈했다.

수십 번의 회귀 후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지만 무희였던 과거만큼은 그대로였다. 애쉴은 춤을 추는 것을 좋아했다. 아름다운 음악 소리에 맞춰 몸을 흔들고 있노라면 가난뱅이인 자신이 떠오르지 않았으니까. 오늘 저녁은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어디서 자야 할지, 내일은 또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걱정되지 않았으니까.

음악이 없어도 괜찮았다. 돈을 주는 사람이 없어도, 아무도 지켜보고 있지 않아도 괜찮았다. 그 정도로 그녀는 춤을 좋아했다.

하지만, 지금은…….

애쉴은 제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남들처럼 일을 한 게 아니라 주방 보조만 한 데다 그마저도 헬라가 편의를 많이 봐주었는데. 종일 큰일이라도 한 것처럼 바르르 떨리고 있었다.

‘부러워.’

남몰래 읊조리며 주먹을 꼭 쥐었다. 아픈 몸을 불편하게 여길지언정 남을 부러워한 적은 없었는데. 춤을 추며 웃고 떠드는 이들을 보자 있는지도 몰랐던 감정이 메마른 가슴속으로 스멀스멀 스며들었다. 그걸 뒤늦게 자각한 순간. 물기가 넘실넘실 차오르는가 싶더니 시야가 뿌옇게 흐려졌다.

아, 이런. 애쉴은 황급히 무릎에 얼굴을 묻었다. 오늘만큼은 스스로가 이토록 처량할 수가 없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의 부탁을 거절할 걸 그랬다. 마지막이니까, 마지막이니까 하며 받아들인 것이 이토록 후회될 줄은.

“늦어서 죄송합니다.”

불현듯 머리 위에 그림자가 졌다.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들자 미안한 표정으로 헉헉거리는 남자가 보였다. 잠시만 기다려 달라더니, 숲을 헤매다 오기라도 한 것일까. 그의 상의에는 작은 나뭇잎 하나가 붙어 있었다.

그녀를 일으키기 위해 무심코 손을 내밀려던 남자가 멈칫했다. 쓸데없는 접촉은 피해 달라는 말을 한 박자 늦게 떠올린 탓이다.

애쉴은 땅을 짚으며 어기적어기적 일어났다. 가까워진 얼굴에 비로소 그녀가 울고 있었음을 알아차린 남자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무슨 일 있으셨습니까?”

“아니요, 없었어요.”

“그럼 왜 우셨습니까?”

“눈에 먼지라도 들어갔나 봐요. 갈까요.”

이 주제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던 여자가 말을 돌렸다. 다른 이들이 춤을 추는 곳으로 발을 옮기려는데, 못마땅한 표정을 짓고 있던 남자가 손으로 막아 세웠다. 그러고는 어깨에 걸치고 있던 모포를 잡아당기며 그녀를 모닥불의 반대쪽인 숲 쪽으로 인도했다.

“왜……?”

그의 마지막 부탁은 수확제에서 함께 춤을 춰 달라는 것이었다. 그러지 않았느냐고 눈빛으로 묻자 에드가 음유시인들 쪽으로 턱짓하며 대답했다.

“노래가 마음에 안 들어서요.”

“아.”

그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때마침 클라우드의 노래가 들려오고 있었으니까.

에트나의 도서관에서 보여 줬던 아름다운 곡들은 죄다 잊기라도 했는지, 그는 자기 차례가 올 때마다 웨이센 황실을 찬양하는 노래만을 불렀다. 애쉴로서는 안타깝게도 마을 사람들은 올해의 풍년이 황실 덕이라며 다들 즐거워했고, 덕분에 시간이 갈수록 다른 음유시인들도 하나둘 황실에 바치는 노래들을 부르기 시작한 참이었다.

“그래요. 가요.”

애쉴은 얌전히 그가 이끄는 대로 따라가기로 했다.

* * *

그들이 향한 곳은 숲속의 작은 공터였다.

무도회장의 샹들리에처럼 은은한 달빛이 사방을 비추고, 위대한 오케스트라 악단처럼 이름 모를 풀벌레들이 찌르르 연주하고 있는, 아름답지만 작은 공간.

깜빡깜빡, 반딧불이들이 점점이 붙어 있는 나무들 아래 누군가가 치우기라도 했는지 낙엽 더미들이 몇 움큼씩 쌓여 있는 것이 보였다. 애쉴은 에드의 옷에 왜 나뭇잎이 붙어 있었는지 어림잡아 짐작했다.

“누추하지요?”

에드가 쓰게 웃었다. 나름대로 고르고 골라 선정한 장소였는데. 그녀가 발을 디딘 순간, 이보다 더 좋은 것을 해 줄 수 없다는 안타까움이 심장을 옭아매었다.

몽롱한 표정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여자가 그를 보며 살포시 미소 지었다.

“아니요. 예뻐요.”

“진심이십니까?”

“네. 정말 예뻐요.”

자연이 꾸며놓은 이 광경을 누군들 예쁘지 않다 할까. 애쉴은 진심을 담아 이야기했다.

달빛을 받아 반짝거리는 적안과 호선을 그리는 어여쁜 입매에 에드는 그만 숨이 멎을 뻔했다. 단테를 떼어 놓고 온 것이 다행이었다. 겨우 웃는 것 하나에 정신을 놓은 모습을 보았다면 틀림없이 어이없어했을 터이니.

정신을 차리기 위해 고개를 휘휘 돌린 그는 허리를 살짝 숙인 후, 한 손은 뒷짐을 진 채 다른 한 손을 부드럽게 내밀었다.

흠잡을 데 없는 예법에 놀란 여자의 눈이 잘게 떨렸다.

“춤을 춰야 하니, 이 정도 접촉은 허락해 주시겠죠?”

“……네. 그보다, 귀족이셨나요?”

“뭐, 한때는요.”

‘한때는’이라니. 몰락 귀족이라도 된단 말인가.

불현듯 스친 생각이었으나 소리 내어 물어볼 수는 없었다. 접촉을 허락한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잡자 그는 공터 한가운데로 그녀를 이끌었다.

“저, 끝까지 못 출 수도 있어요.”

“상관없습니다. 힘드시면 언제든지 말씀 주시길.”

모포가 떨어지지 않도록 목덜미 부근에서 단단히 묶어 주며 그가 응수했다. 위쪽에서 떨어지는 숨결을 고스란히 맞고 있자니 심장이 뻐근하게 조여들었다.

익숙한, 그러나 불쾌하진 않은 생소한 감각에 애쉴이 작게 놀랐다. 하지만 겉으로는 티를 내지 않은 채 그 감각을 빠르게 갈무리하며 에드와 손을 맞잡았다.

굳은살이 박인 손은 단단하고 다정했다. 그래, 꼭 에르도안 같았다.

“제가 리드해도 되겠습니까?”

“네, 괜찮아요.”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에드가 발을 움직였다. 몸이 약한 그녀를 배려해서 그런지 굉장히 느리면서도 조심스러운 몸짓이었다.

그를 따라 스텝을 밟던 애쉴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왜 하필 이 춤을.

그녀의 표정이 어두워지자 에드가 재빨리 입을 열었다.

“마음에 들지 않으시면 다른 것으로 바꿀까요?”

“아니요.”

오랜만에 접하는 박자에 머리가 아찔했다. 그러나 혼란스러워진 정신과는 달리 몸은 착실히 움직였다. 절대로 틀릴 수 없는, 틀려서는 안 되는 박자였으므로.

그들은 그렇게 말없이 춤만 추었다. 음악이 없었음에도 허전하지 않았다.

참 이상도 하지. 분명 춤 상대로는 서로가 처음일 터인데. 마치 수십 번은 함께한 것처럼 호흡이 잘 맞았다. 그러나 두 사람 중 누구도 이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에드는 이유를 알고 있기 때문이고, 애쉴은 혼란스러움을 가라앉히느라 정신이 없던 탓이다.

사박사박. 잔디와 미처 치우지 못한 낙엽들이 밟혀 고운 선율을 내었다. 은은한 달빛 조명 아래 반딧불이들이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어두운 밤하늘을 아름답게 수놓았다. 여기에 때때로 바람이 불며 나뭇잎들이 사각거리는 소리와 바닥에 뭉쳐 있던 낙엽들이 흩날리는 소리, 이름 모를 벌레가 우는 소리까지 더해지니 웬만한 무도회장 부럽지 않았다.

한 바퀴, 또 한 바퀴. 그들이 돌 때마다 달빛을 머금어 반짝거리는 은발과 어깨에 매달린 모포가 각각 작고 큰 원을 그렸다. 각자의 상념으로 복잡하게 가라앉은 적안과 녹안이 공중에서 뒤얽혔다. 이 순간이 영원히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에드는 되뇌었다.

“여쭤보고 싶은 것이 있어요.”

약간 거칠어진 숨소리를 내던 애쉴이 불현듯 입을 열었다. 에드는 살며시 눈꼬리를 접었다.

“말씀하세요.”

“그 가면은 왜 쓰고 다니시는 건가요?”

예상치 못한 물음에 남자의 표정이 굳었다. 그것을 눈치채지 못한 애쉴이 계속해서 입술을 달싹거렸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한 번만 벗어 주실 수 있을까요?”

그가 쓰고 있는 가면을 인식하게 된 후로 좀처럼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그의 본얼굴을 봐야 한다.’라는 이상한 생각이.

그래서 조심스레 요구했다. 말도 안 되는, 어쩌면 상대방에게 큰 실례가 될 수도 있는 부탁을.

평소의 그녀답지 않은 언행에 에드가 크게 당황했다. 그러나 최대한 침착하게 변명했다.

“흉측한 흉터가 있어서요. 보여 드리기가 좀 그렇습니다.”

“흉터, 요. 저는 괜찮-”

“제가 괜찮지 않습니다.”

아.

민망함과 미안함으로 얼굴이 화르륵 달아올랐다. 도망치고 싶은 마음에 손가락을 움찔거렸다. 에드는 그녀가 달아나지 못하도록 마주 잡은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박자에 맞춰 몸을 가까이 밀착하고, 그녀가 착각하고 있는 부분을 소곤소곤 지적했다.

“보여 드리기 싫은 게 아니라 보여 드리고 싶지 않다는 뜻입니다.”

“미안해요. 이상한 말을 해서.”

“저야말로 들어드리지 못하게 되어 죄송합니다.”

오랜만이었다. 부끄러워하며 얼굴을 붉히는 그녀는.

정말이지, 사랑스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당장에라도 껴안고 입을 맞추고 싶었다. 그러나 그래서는 안 되었기에 에드는 애쉴을 잡은 손에 계속해서 힘을 주었다. 아쉬운 대로 작은 온기라도 느껴보고자. 그러다가 아파요, 하며 읊조리는 소리에 놀라 힘을 쭉 뺐다.

“죄송합니다. 다른 생각을 하느라 그만.”

본인과 춤을 추고 있으면서 다른 생각을 한다는 것에 기분이 나쁠 법도 하건만. 애쉴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화를 내지도, 짜증을 부리지도 않았다. 그저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알 수 없는 눈빛으로 그를 지그시 응시했을 뿐이다.

기실 애쉴은 그에게 뭐라 할 처지가 못 되었다. 그녀 또한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까.

“저도 죄송합니다.”

조금 전까지 활활 타오르던 녹안을 보며 같은 눈빛을 하고 있던 자안의 남자를 떠올리고 있던지라.

미안했다. 욕을 해도 할 말이 없었다. 저를 좋아한다는 남자를 보며 제가 버렸던 남자를 떠올리고 있노라니 참으로 스스로가 싫어졌다.

그러나 이를 알지 못했던 남자는 밑도 끝도 없는 사과에 당황스러워졌다.

“뭐가 말입니까?”

“아니에요. 아무것도.”

춤이 진행될수록 애쉴의 숨이 더욱 가빠졌다. 이마가 식은땀으로 촉촉이 젖어 들었다. 눈동자가 피곤함으로 서서히 풀려갔다.

그녀의 안색을 살피던 에드는 그만하자는 의미로 손을 놓으려 했다. 여기까지 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고마웠다. 아픈 그녀를 괴롭힌 것 같아 죄스러웠다.

그러나 그럴 수 없었다.

작고 차가운 손이, 그의 것을 붙잡고 놓아주지를 않았다.

“아직, 춤이 끝나지 않았어요.”

“다 추지 않아도 됩니다.”

“제가 하고 싶어서 그래요.”

소원을 들어주겠다던 약속을 파기하고 마음마저 밀어냈으니 이런 거라도 해 주고 싶었다.

애쉴은 가팔라지는 숨소리를 어떻게든 참기 위해 이를 앙다물었다. 그녀가 한번 저렇게 나오면 물러서는 법이 없었으므로 에드는 어쩔 수 없이 리드를 이어나갔다. 아까보다 어두워진 얼굴과 불안해하는 눈빛으로, 조금 더 느려진 박자에 맞춰 스텝을 밟아가면서.

그러나 그 행동은 오래가지 못했다.

다름 아닌 에드의 폭탄선언 때문이었다.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이미 눈치채셨을지도 모르겠지만.”

이런 식으로 말하려던 게 아니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초점을 잃는 적안에 이래서는 오늘 말을 못 꺼낼 수도 있겠다 싶어 조심스레 운을 뗐다. 몽롱한 표정으로 올려다보는 여자를 떨리는 녹색 눈동자로 응시하다가, 깊은숨을 토해내며 가슴에 묻어두었던 말을 꺼냈다.

“저, 내일 떠나려 합니다.”

흐리멍덩하던 적안이 일순간 커졌다. 그와 동시에 발이 크게 꼬였다. 당황하는 사이 애쉴은 중심을 잡지 못하고 앞으로 확 고꾸라졌다. 춤은 그대로 끝나 버렸고, 정신을 차려 보니 그의 너른 가슴에 얼굴을 기댄 채 안겨 있는 꼴이 되어 버렸다.

쿵쿵. 누구의 심장에서 나는 것인지 모를 소리가 귓가에 윙윙 울렸다.

“미리 말씀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입에 올리면, 정말 돌이킬 수 없을 것 같아서.”

이미 돌이킬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혹시나 하는 미련과 곁에 남아 있고 싶다는 욕망 때문에 이제야 이야기를 꺼냈다.

어느새 그는 저도 모르게 애쉴을 꼭 껴안고 있었다. 멋대로 다가오지 말라는 그녀의 말을 어긴 셈이었다.

“많이 놀라셨다면, 정말 죄송합니다.”

싫다고 밀어내면 곧장 손을 풀 생각이었는데, 애쉴은 달달 떨기만 할 뿐 꼼짝달싹도 하지 않았다. 마치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모르는 사람처럼.

“그, 래요.”

꽤 시간이 흐른 끝에 그녀는 숨을 할딱이며 겨우 대답했다. 이렇게나 숨이 차는 게 춤을 춰서인지, 아니면 예상치 못한 소리를 들어서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그렇, 군요…….”

그의 말마따나 어느 정도 짐작은 하고 있었다. 날이 갈수록 집 안에서 보이지 않는 그의 물건들과 사라지는 흔적들이 곧 그가 떠날 것을 증명하고 있었으므로.

자신이 먼저 꺼낸 말이니 별다른 투정 없이 순순히 들어주었음을 기뻐해야 할 터인데. 이상하게도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다.

에드는 품에서 불안해하는 여자의 귀에 입술을 가져다 댔다. 그리고 작게 소곤거렸다.

“마을에 심어둔 마도구 같은 건 두고 갈 터이니, 너무 심려치 않으셔도…….”

“그런 거 아니에요.”

애쉴은 호위의 부재로 불안해하고 있을 것이라는 그의 추측을 단번에 날려 버렸다. 에드가 곁에서 떨어지기만 한다면 본인 따위 어찌 되든 좋았다. 벨키에로트에게 끌려가 농락을 당하든. 지하 감옥에 갇혀 쓸쓸히 죽어가든.

어차피 죽을 목숨인데 길동무를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이기심으로 같은 실수를 또 하고 싶지는 않았다.

놓아달라는 듯 애쉴이 바르작거렸다. 그러나 에드는 조금 전의 마음가짐과는 다르게 그녀를 더욱 힘있게 껴안았다. 가늘게 떨리는 몸과 물기 어린 음성으로 애쉴이 울고 있음을 눈치챘기에. 여기서 그녀의 우는 모습을 보았다간 떠나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미안해요.”

힘없는 몸부림이 멎었다. 앞섶이 다 젖을 정도로 눈물을 흘린 여자가 떨리는 음성을 내었다. 분명 그와는 아무런 사이도 아닌데. 돈으로 맺어진 인연일 뿐인데. 왜 이리도 가슴이 아픈 것인지.

“행복하세요. 저 같은 건 잊어버리시고.”

“아가씨.”

에드는 그녀를 더욱 끌어안았다.

“아가씨께서는 자신을 조금 더 소중히 여길 필요가 있어요.”

“아뇨. 그럴 필요 없어요.”

끝없이 밀려드는 눈물을 삼키며 애쉴은 주먹을 꼭 쥐었다.

“혹여, 황실에서 앙심을 품고 에드 님을 쫓아오거든 팔라디움 공작가를 찾아가세요.”

“그런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편지를 써 드릴게요. 그걸 들고 가시면 어떻게든 막아 줄 테니까.”

“아가씨.”

누가 누구를 걱정하는 것인지.

처참하게 일그러진 얼굴을 한 남자가 손에서 힘을 뺐다.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나 무릎을 꿇고 시선을 맞췄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의 곱디고운 얼굴은 눈물로 엉망이 되어 있었다.

에드는 발갛게 달아오른 눈가를 가만가만 어루만졌다. 그러면서 조곤조곤 속삭였다.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저는 아가씨께서 생각하는 것만큼 약하지 않습니다.”

“예전에, 똑같은 말을 한 사람이 있었어요.”

애쉴이 고개를 푹 숙였다. 에드는 할 말을 잃었다.

“약하지 않다고 해서…….”

죽지 않는 건 아니잖아요.

애쉴은 튀어나오려던 뒷말을 삼켰다. 기껏 그어놓은 선을 넘는 것이라 생각했기에. 주제넘는 말이라 생각했기에.

에드는 목구멍을 타고 올라오려던 뜨거운 무언가를 억지로 눌렀다. 괴롭다는 듯 얼굴을 잔뜩 일그러뜨리다가, 이내 깊은숨과 함께 간신히 말을 토해냈다.

“미안합니다.”

“…….”

“미안해요.”

그는 계속해서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을 가득 담아 상대방의 눈가를 쉴 새 없이 쓰다듬으면서.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아낼 것 같은 남자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애쉴이 시선을 내리깔았다. 왜 저렇게 슬픈 표정을 짓는 것인지. 미안하다는 말은 왜 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녀는 얼굴 근처에서 흔들거리던 남자의 옷소매를 조심스레 잡아 끌어내렸다. 괜찮으니 그만하라는 의미로. 그러면서 들릴 듯 말듯 속삭였다.

“그동안 고마웠어요.”

산들바람과도 같은 미약한 힘에 순순히 손을 내린 남자의 녹안이 낮게 가라앉았다.

“절대로 잊지 못할 거예요.”

눈을 내리깐 것도 모자라, 애쉴은 그를 보지 않기 위해 아예 고개를 숙여버렸다. 그를 보고 있으면 또다시 눈물이 날까 두려웠던 탓이다.

어느새 정을 주었던 이와 이별해야 한다는 것에 가슴이 찌르르 울렸다. 다시 만날 수도 없을뿐더러 설사 가능한들 만나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기에 더욱 그랬다.

에드는 어깨를 타고 흘러내리는 은발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헤어지고 싶지 않았다. 떠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애쉴의 말을 거부할 수는 없었다.

그는 알고 있었다. 애쉴이 왜 자신을 밀어내는 것인지. 무엇을 걱정하고, 두려워하는 것인지. 그 모든 것을 해결하면서 그녀의 곁에 머무는 방법은 단 하나였다.

그건 바로…….

“아가씨.”

애쉴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 에드는 그녀의 턱을 살며시 들어 올렸다.

아니나 다를까, 깊게 잠긴 녹안에 들어온 것은 눈물 젖은 얼굴이었다. 그는 무언가를 고민하듯 이미 너덜거리는 입술을 잘근잘근 씹다가,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의아함이 담긴 붉은 눈동자가 그에게로 향했다. 에드는 묵직한 말을 토해내고 싶은 사람처럼 입을 벌렸다. 그러나 목구멍을 타고 올라온 것은 진실이 아닌 한탄 섞인 숨결이었다.

모든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그녀는 과연 어떤 표정을 지을까.

두려웠다. 순간의 잘못된 선택으로 또다시 긴 기다림이 시작될까 봐. 여태껏 쌓아온 시간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릴까 봐.

파도 한 번에 산산이 부서져 내리는 모래성처럼, 지금 그녀가 자신에게 주는 감정들이 부질없다는 걸 안다. ‘본질’에게 향한 게 아니라는 걸 안다. 그런데도 눈을 뗄 수 없었다. 미련을 버릴 수 없었다.

이토록 감정을 드러내고 그를 생각해 주는 건 무척 오랜만이었기에.

“저는…….”

고해성사하듯 가슴속 깊은 곳에 묻어두었던 문장을 꺼냈다. 그러나 혀끝에서만 맴돌 뿐 밖으로 내보낼 수가 없었다.

잔뜩 긴장한 녹색 눈동자가 이리저리 흔들렸다. 앞머리로 살포시 덮인 그녀의 이마를, 아름답지만 물기에 젖어 있는 적안을, 오뚝한 콧날을 차례차례 훑었다. 그러다 아픈 사람처럼 색소가 옅은 입술에까지 닿았다.

문득, 묘한 충동이 일었다.

“…….”

자신을 뚫어지라 보고 있던 남자의 얼굴이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애쉴은 뒤로 빼지 않았다. 움직이지 말라는 명령을 받기라도 한 것처럼 그 자리에 가만히 있었다.

하지 말라 하면 곧장 멈출 터인데. 인상을 한번 찌푸리기만 해도 미안하다며 사과를 할 터인데. 그녀는 그 어떤 것도 하지 않았다.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멍한 표정만 짓고 있었다.

불을 머금은 듯 뜨거운 숨결이 얼굴 위로 훅 끼쳤다. 두 사람의 입술이 종이 한 장 간격을 두고 떨어져 있던 그때였다.

“데이지!”

“……!”

꿈에서 깨어나듯, 흐릿하던 적안이 확 커졌다.

애쉴은 다급히 그를 밀쳤다. 순식간에 깨져 버린 긴장감에 다리에 힘이 풀린 에드는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타닥타닥. 횃불이 타는 소리, 사람들이 움직이는 부산스러운 소리와 함께 아이를 찾는 고함이 사방에서 들려왔다. 그제야 두 사람은 근처에 다른 이들이 있음을 알아차렸다.

에드와 애쉴, 둘 중 누구 하나 정신을 차리기도 전이었다. 횃불을 든 여인이 빠르게 그들 쪽으로 뛰어왔다. 여관 주인이자 데이지의 어머니인 헬라였다.

“혹시 우리 데이지 못 보셨어요?”

헬라는 두 남녀 사이에 흐르는 미묘한 기류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사라진 딸을 찾는 것이 그 무엇보다 급했던 탓이다. 뒤늦게 요동치는 심장을 부여잡으며 애쉴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넋이 나간 얼굴을 하고 있던 에드는 주저앉은 자세 그대로 헬라를 쳐다보며 대꾸했다. 내색하진 않았으나 그의 심장 또한 애쉴의 것 못지않게 쿵쿵거리고 있었다.

“예, 보지 못했습니다. 무슨 일이라도 있습니까?”

“졸리다길래 먼저 들어가서 자고 있으라 한 게 두 시간 전인데, 집에 가니 아무도 없어요.”

“친구네 집에 놀러 가기라도 한 건.”

“데이지 또래 집들은 다들 수확제에 참석하느라 문을 잠그고 왔다 하더라고요. 항상 새벽까지 멀쩡하던 애가 오늘따라 계속 졸길래 어디 아픈 데라도 있나 했는데, 대체 어디를 간 건지.”

헬라가 울먹거렸다. 에드는 그녀 몰래 인상을 찌푸리며 지끈거리는 이마를 짚었다.

실수하기 전에 나타난 것을 고마워해야 할지.

일단은 애쉴부터 어떻게 해야겠다 싶어 입술을 꾹 깨문 채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하고 있는데, 대뜸 애쉴이 끼어들었다.

“저도 도와드릴게요.”

“……!”

“아이고, 이거 고마워서 어쩌나.”

두 사람의 표정이 워낙 심상치 않아 차마 도와달라는 말을 꺼내지 못했는데. 뜻밖의 언사에 헬라의 얼굴이 조금이나마 밝아졌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말을 들은 남자는 그러지 못했다.

몸도 좋지 않은 사람이 어딜 돌아다닌다는 말인가. 지금도 좀 움직였다고 저리 지친 얼굴을 하고 있으면서. 에드는 당황한 표정으로 애쉴을 쳐다보았다.

그녀는 그를 돌아보지 않았다. 자신을 향한 시선을 느꼈음에도.

“이쪽은 내가 갈게요. 아가씨는 저쪽을 찾아봐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평상시처럼 무표정으로 돌아온 여자가 짧게 대답했다.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헬라는 부지런히 달려갔다. 그녀가 들고 있던 횃불이 점차 멀어지면서 사방에는 칠흑 같은 어둠이 찾아왔다.

환한 달빛은 구름 속으로 사라진 지 오래였다. 반딧불이들은 그보다 더 밝은 빛에 놀라 어디론가 도망가 버리고 없었다. 이름 모를 벌레들의 연주로 가득 찼던 공간은 아이를 찾는 고함으로 메워져 있었다.

조금 전과는 다른 스산한 바람이 두 사람을 스치고 지나갔다. 바람이 헝클어뜨리는 머리칼을 가다듬으며 헬라가 사라진 방향을 멍하니 응시하고 있던 애쉴은, 바람이 잦아들자마자 빠르게 발을 옮겼다. 역시나 그사이에 에드를 보는 일은 없었다.

“잠시, 잠시만요!”

움찔한 애쉴이 등을 진 채 멈췄다. 에드는 숨도 쉬지 않고 말했다.

“제가 찾아보겠습니다. 먼저 돌아가서 쉬고 계세요.”

“아뇨, 그러실 필요 없어요. 제가 찾겠다 한 거니까. 에드 님은 신경 쓰지 마세요.”

호의를 싸늘하게 자른 여자가 발걸음을 떼었다.

조금 전의 일 때문이었을까. 머리가 띵 울렸다. 이상하리만치 빠르게 뛰는 심장이 고통스러웠다. 가능한 빨리 그와 멀어지고 싶었다. 그러나 채 세 발자국도 가지 못하고 저지당했다. 뒤쫓아온 남자가 그때까지도 어깨에 걸치고 있던 모포를 잡은 탓이다.

어둠 속에서도 선명히 보이는 사나운 시선이 남자에게 닿았다. 명백한 거부반응이었다. 몇 달 만에 보는 부정적인 눈빛에 심장이 발밑으로 떨어졌다. 모포를 쥐고 있던 손이 힘없이 툭 떨어졌다.

“따라오지 말아요.”

제자리에서 얼어붙은 남자를 뒤로한 애쉴은 총총 발을 옮겼다. 뒤따르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 * *

왜 그랬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었다. 왜 그랬을까.

애쉴은 달빛도 들어오지 못할 정도로 빽빽하게 우거진 나무들 사이를 걷고 있었다. 아무리 맹수들이 살지 않는 숲의 외길이라고는 하나 늦은 시간이었기에 안전하다고는 볼 수 없었다. 평소라면, 제정신이었다면 절대 하지 않을 일이었다.

‘대체 왜…….’

손가락을 잘근잘근 씹던 애쉴이 불현듯 제 입술을 만지작거렸다. 보드라운 감촉에 조금 전의 일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감정들이 척추를 타고 온몸으로 퍼져 들었다. 기분이 나쁜 것 같기도 했고, 어찌 보면 그렇지 않은 것 같기도 했다. 그래서 더 불쾌했다. 그를 밀어내지 못한 자신에게 화가 치밀었다.

헬라가 등장하지 않았더라면, 그들은 아마도…….

‘대체 왜 이러는 거야. 정신 차려, 애쉴.’

발이 우뚝 멈췄다. 스스로를 책잡으며 주먹을 꽉 쥐었다. 아무 사이도 아닌데. 왜 그를 보면 마음이 흔들리는 것일까. 모질게 대하자는 다짐이 무너지는 것일까.

가슴이 답답해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별안간, 누군가가 다가오고 있는지 불빛 하나 없는 근방에서 풀들이 바스락거렸다. 하지만 고개 숙인 채 혼자만의 생각에 잠겨 있던 여자는 듣지 못했다.

점차 커지던 발소리가 어느 순간 뚝 멎었다. 바로, 그녀의 앞에서.

“한참 찾았네. 왜 이런 곳에 있는 거야?”

온기라고는 전혀 없는 목소리에 애쉴이 시선을 들었다.

금발에 금안의 따뜻한 인상을 가진, 그러나 눈빛은 결코 따뜻하지 않은 남자 클라우드가 눈에 들어왔다. 그는 어깨에 조그마한 무언가를 둘러업고 있었다.

‘데이지를 찾으러 왔나 보네.’

그의 말을 제대로 듣지 못한 애쉴은 기분 나쁘게 웃는 남자를 무시하며 발걸음을 떼었다. 평상시 대화하는 것만으로도 불쾌해지는 사람과 이런 상황에서 이런 기분으로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곁을 지나가는 순간, 갑자기 생긴 장애물을 보지 못하고 크게 넘어졌다. 그가 발을 건 것이다. 졸지에 땅을 구른 애쉴이 클라우드를 노려보았다. 어찌나 정신이 없었는지 온몸에 상처를 입었다는 것도 깨닫지 못하고 팔에 기댄 채 간신히 몸을 추슬렀다.

“너, 이게 무슨!”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짐짓 상냥하게 말한 남자가 메고 있던 것을 내려놓았다. 한쪽 무릎을 꿇고 손가락으로 그녀의 얼굴을 들어 올렸다.

“아, 이런. 다쳤잖아? 쯧. 이렇게 가면 혼날 텐데. 그러길래 바로 대답했어야지.”

“이거 놔.”

짐짓 걱정스럽다는 듯 그녀의 상처를 살펴보던 클라우드가 뻔뻔스레 말을 걸었다. 본의 아니게 황금색 눈동자와 대면하게 된 여자가 표독스럽게 맞받아쳤다. 자신의 턱에 닿은 손을 사납게 뿌리치면서.

클라우드는 이에 전혀 거리끼지 않고 예의 그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귀가 안 들리는 것도 아니면서, 왜 대답을 안 했을까.”

“놓으라고!”

“이렇게 말도 잘하는데 말이야. 그런데…… 그놈은?”

제게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애쉴을 꽉 잡으며 클라우드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가 누구를 언급하는 것인지 알아챈 애쉴이 이를 꽉 앙다물었다.

“네가 알 바 아니야. 놔!”

“어쩐지, 분위기가 이상하더라니. 싸우기라도 한 거야?”

대답할 가치조차 없었다. 미간을 일그러뜨린 애쉴은 그를 뿌리치는 데만 전념했다. 그런 그녀의 행동에 스스로 답을 내린 클라우드가 밝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잘됐네. 역시 난 운이 좋아.”

“……뭐?”

이상한 소리에 놀란 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나뭇잎 사이로 얼핏얼핏 스쳐 들어오는 달빛이 남자의 얼굴 위에서 일렁였다. 기괴하고 오싹했다.

비로소 얌전해진 애쉴을 보며 그는 어여쁘게 웃었다.

“애쉴리아 팔라디움.”

심장이 툭, 떨어졌다.

한순간 정신이 나간 것 같은 상대방의 모습에 클라우드는 지상에 강림한 천사처럼 아름다운 미소를 띠며 말했다.

“황태자 전하의 명을 전하러 왔어.”

애쉴은 말하는 방법을 잊어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입을 열지 않았다.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파르르 눈꼬리만 떨 뿐 손가락 하나 옴짝달싹하지 못했다.

이따금 땅을 비추는 달빛에 새하얀 눈보다도 더 창백하게 질린 여자의 얼굴이 드러났다. 그것을 보며 키득거리던 클라우드는 품속에서 편지 한 장을 꺼냈다.

예전에 여관에서 건네려 했으나 갑자기 등장한 에드 때문에 주지 못했던 물건이었다. 잘 돌아가지 않는 고개를 숙여 내려다보자 사자 무늬가 새겨진 황금색 밀랍이 눈에 들어왔다. 마법으로 처리라도 해 놓았는지 어둠 속에서도 고고히 빛나고 있는.

두말할 필요도 없이 웨이센 황실의 인장이었다.

“뭐 해, 안 받고.”

황실의 인장이 찍힌 물건이란 곧 황실 그 자체를 의미했다. 그러니 보는 순간 고개를 조아리고 예를 갖춰 정성을 다해 받아야 했다. 그것이 설령 사형 집행서라 하더라도.

그러나 애쉴은 그리하지 않았다. 그럴 정신이 없었다. 황실의 예법? 황실 모독죄? 그게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지금 이 순간에.

천만다행으로 클라우드는 예법 따위를 신경 쓰는 이가 아니었다. 그랬다면 애초에 황태자의 편지를 이런 식으로 들이밀지도 않았겠지만.

사냥을 성공한 맹수와도 같은 쾌감 서린 금안이 얼어붙은 얼굴을 느릿하게 훑었다. 그녀가 편지를 받을 상태가 아님을 파악한 남자는 들고 있던 것을 다시 품속으로 밀어 넣었다.

그제야 굳어 있던 여자가 입술을 달싹였다.

“저를 왜 찾으시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잔뜩 목이 멘 소리로 더듬거렸다. 소환장이라는 건 읽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편지 내용을 설명해야 하나 싶어 귀찮음으로 인상을 찌푸리고 있던 클라우드가 표정을 폈다.

“알고 있네? 그러면서도 도망친 거야?”

“도망…….”

자유의지가 없는 노예라면 모를까, 웨이센 제국민들은 어디든지 갈 수 있는 이동의 자유가 있었다. 따라서 애쉴이 프레디아에 간 일은 흠이 될 만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클라우드는 그 행위를 ‘도망’이라 표현함으로써 그녀가 수도라는 새장 안에 얌전히 갇혀 있었어야 할 새라는 것을 인식시켜 주었다.

애쉴은 영혼이 없는 얼굴로 도망이라는 단어를 읊조렸다. 결국, 여기까지였다.

“직접 가서 여쭤봐.”

뱀처럼 속살거린 남자가 무릎을 펴고 일어나더니 한 손을 내밀었다. 같이 가자는 의미였다. 초점 없는 눈동자로 그의 손을 멍하니 응시하고 있던 여자가 입술을 벙긋거렸다. 색소가 옅은 그것은 달달 떨리고 있었다.

“시간을, 주세요.”

“시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해서.”

기실 이 남자를 따라가는 순간 자유란 없었다. 죽어서야 황궁 밖으로 나갈 수 있을 것이 뻔했다. 그래서 애쉴은 애원했다. 어머니를 보고 싶었다. 어머니와 함께 살았던 집에 가 보고 싶었다. 에드에게 마지막으로 인사하고 싶었다.

오늘이 마지막인 줄 알았더라면. 이렇게 허무하게 흘려보내지는 않았을 텐데.

“안 돼.”

그러나 돌아오는 답은 매정했다. 시간을 달라 할 때부터 얼굴을 구긴 그는 애쉴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거절의 의사를 표했다. 귀찮은 일에 얽히고 싶지 않다는 게 역력한 표정으로.

애쉴은 다급하게 울먹였다.

“제발. 저, 호위 있는 거 아시잖아요. 그분에게도 잘 둘러대고 올 테니까, 제발.”

“그 호위, 어차피 내일 떠나잖아.”

아까 춤출 때 다 들었어. 클라우드가 비릿하게 웃었다. 애쉴은 손끝이 저릿해지는 걸 느꼈다.

“얼마나 열중해 있었으면 근처에 누가 있는지 눈치도 못 챘을까, 소드마스터라는 놈이.”

“소드, 마스터……?”

“뭐, 어쨌든. 떠나기 전날 밤에 거하게 싸운 의뢰인을 굳이 찾으려 하진 않겠지. 하룻밤 정도는 농땡이 치지 않겠어, 그놈도?”

“…….”

‘따라오지 말아요.’

매몰차게 던졌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망연자실해진 얼굴이 축축이 젖어 들었다. 턱을 타고 흘러내린 눈물이 땅을 짙게 적셨다. 그 어떤 말을 해도 여유를 주지 않으리라는 것을 깨달은 여자는 하릴없이 울었다.

결국, 기다리다 지친 클라우드가 거칠게 손을 놀렸다.

“시간 작작 끌고 빨리 일어, 윽!”

머리를 잡아채려던 동작이 멎었다. 그녀의 머리칼에 손가락이 맞닿는 순간 스파크가 튀었던 탓이다. 클라우드는 재빨리 손을 물렸다. 그러나 고유 능력이 해제되는 것까지 막지는 못했다. 금색이던 머리칼과 눈동자가 흰색과 분홍색으로 변했다. 따뜻하던 인상은 차갑고 예리하게 바뀌었다.

순식간에 바뀐 외형에 애쉴이 흠칫 놀랐다. 어쩐지 낯이 익었다.

그래, 분명 어디선가 봤던 것 같은데…….

“……!”

수십 번은 넘게 겪어왔던 과거의 일이 불현듯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이쪽은 델라스 백작가의 영식, 클라우드 델라스.’

‘처음 뵙겠습니다, 영애.’

사교계에 발을 들이게 해 주겠다며 라인하르트가 소개해 줬던 믿을 만한 지인들. 그중 하나였다, 클라우드 델라스는. 1년 중 단 한 번 스쳐 지나가는 만남이었던 데다 클라우드라는 이름이 워낙 흔했던지라 악보에 적힌 이름을 보고서도 기억해내지 못했다.

진즉 깨달았더라면 피할 수 있었을지도.

이루 말할 수 없는 침통함에 애쉴이 입술을 꾹 깨물었다. 그와 동시에 한 가지 가정이 떠올랐다. 라인하르트가 ‘믿음직스럽게 여겼던’ 남자, 클라우드가 사실은 벨키에로트의 심복이었다면. 그녀가 라인하르트에게 건넸던 에르도안을 구출해달라는 편지도 사실은 이 남자가 벨키에로트에게 넘겨준 것이 아닐까?

과거의 라인하르트가 배신한 것이 아니라 그저 믿어서는 안 될 사람을 믿은 것일 뿐이라면.

“빌어먹을.”

시꺼멓게 그을린 손을 노려보던 클라우드가 욕설을 내뱉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마법이길래 핏줄을 타고 전해 내려오는 델라스가(家) 고유의 외형 변경 능력까지 풀어 버린단 말인가. 그렇지 않아도 마을에 깔린 말도 안 되는 숫자의 마도구들 탓에 행동하는 데 지장도 많았는데.

정말이지 짜증 나 미칠 지경이었다. 성질 같아서는 애쉴을 포함하여 마을의 모든 사람을 깡그리 죽여 버려도 시원찮을 것 같았다. 그러나 소드마스터와 충돌 없이 목표물을 데려오라는 명령 때문에 그러지도 못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 빌어먹을 마법은 애쉴이 경계심을 품을 때만 펼쳐진다는 것이었다. 클라우드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프레디아에 온 첫날, 여관에서 그녀를 만났을 때. 우연히 살갗이 스쳤으나 스파크가 튀지 않았다. 게다가 조금 전 정체를 밝히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그녀를 만질 수 있었다.

그렇다는 건.

“야.”

경계심을 풀게 하는 방법은 간단했다.

클라우드는 품속에서 새끼손톱만 한 약들이 들어 있는 작은 병을 꺼낸 후 그중 하나를 애쉴에게 던졌다.

“먹어.”

그녀의 손등에 튕긴 약이 흙 위를 굴렀다.

어느새 울음을 멈춘 애쉴은 반항심이 깃든 얼굴로 클라우드를 올려다보았다.

방금 본 것이 맞다면 그의 말을 따르지 않아도 그는 자신에게 섣불리 위해를 가할 수 없을 터다. 에드가 전에 말했었던 어떤 조치를 취해 놓았다는 게 이걸 뜻하는 것이었을까.

너무 미안해서, 가슴이 아릿해졌다.

“싫습니다.”

마을에도 피해가 가지 않도록 손을 써놨다 했었으니 말을 듣지 않아도 클라우드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으리라 생각했다.

클라우드도 마침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히죽거리더니, 이번에는 품속에서 작은 단검 한 자루를 꺼내 들었다. 그러고는 애쉴이 아니라 그가 메고 왔었던 ‘무언가’의 위로 쳐들었다. 말을 듣지 않으면 내리꽂겠다며 협박하는 모양새였다.

“안 먹겠다고?”

자연스레 시선이 그쪽으로 갔다. 그제야 애쉴은 바닥에 놓여 있던 ‘무언가’를 보았다. 검은색 천으로 둘러싸인 그것은 조금씩 움찔거리면서 쌕쌕거리는 숨소리를 내고 있었다.

순간, 구름이 걷히며 달빛이 그 위로 떨어져 내렸다.

맙소사. 애쉴은 바보처럼 입을 벌렸다.

“데이지!”

“다들 좀 조용해졌으면 해서 음식에 약을 탔는데 말이야. 너무 조금 타서 그런가 걸려들지를 않더라고? 아, 착각은 하지 마. 그냥 수면제일 뿐이니까.”

에드가 준비해 둔 마도구들 탓에 수면제 효과가 상쇄된 것이었으나 그 사실을 아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데이지도 호기심이 아니었다면 신기한 걸 보여 주겠다며 접근한 클라우드에게 넘어가지 않았을 터다.

그는 잠든 소녀의 목덜미에 단검을 들이대며 이죽거렸다.

“지금이야 잠깐 자고 있는 거지만, 앞으로도 깨어날 수 있을지는 모르겠군.”

“…….”

“빨리 결정하는 게 좋을 거야. 나는 전하처럼 인내심이 뛰어난 사람이 아니라서.”

벨키에로트의 인내심이 뛰어나다니. 지나가는 개도 웃을 소리였다.

이미 너덜거리는 입술을 물어뜯자 피 맛이 났다. 애쉴은 땅을 짚고 있던 손을 꽉 말아 쥐었다. 힘이 부족한 탓에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 정도까진 되지 못했으나 그 여파로 팔뚝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렇게 잠시 클라우드를 노려보던 그녀는, 데이지의 목에 새빨간 선이 그어지기 시작하자 숨도 쉬지 않고 뱉었다.

“먹을게요.”

흙 위에 나뒹굴고 있던 약을 털지도 않고 집어 들었다.

“저만 데려가면 되잖아요. 그 아이는 놔주세요.”

입가에 약을 가져다 대자 클라우드는 곧바로 데이지를 놓아주었다. 요구를 들어주겠다는 듯 단검을 과장되게 갈무리하며 턱짓했다. 빨리 먹으라는 뜻이었다.

다시 눈을 뜨면, 그때는 어떤 상황이 펼쳐져 있을까.

너무나도 참담하여 눈물도 나지 않았다. 붉게 충혈된 눈으로 흙 묻은 약을 쏘아보던 애쉴은 결국 두 눈을 질끈 감으며 약을 씹어 삼켰다.

그 후로는 암전이었다.

* * *

‘따라오지 말아요.’

애쉴이 떠난 직후였다.

그녀가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며 못 박힌 듯 서 있던 에드가 주저앉았다. 고통스러운 얼굴로 지끈거리는 머리를 감싸 쥐고 있다가 마른세수를 몇 번 했다. 그러고도 답답함이 가시지 않는지 깊은숨을 여러 번 토해내었다.

여기까지가 한계였던 걸까.

혐오감이 담겨 있던 붉은 눈동자를 잊을 수가 없었다. 실상은 애쉴 본인을 향한 감정이었으나 그걸 몰랐던 에드는 크게 착각하고 있었다. 이번 시간대에서 그녀와의 관계는 정말 끝이라고, 돌이킬 수 없다고 멋대로 판단하고 있었다.

‘또 기다려야 하는 건가.’

항상 그랬다. 관계가 파탄 난 후의 그녀는 얼마 지나지 않아…….

‘제길.’

에드는 이마 위를 덮고 있던 앞머리를 거칠게 쓸어 올렸다.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지레짐작하다니. 이게 무슨 멍청한 짓인지.

그답지 않았다. 더군다나 이번은 다른 회차와 유난히 다르지 않은가. 희망을 걸어볼 만했다. 이번에야말로 성공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한 남자가 어지러운 마음을 추슬렀다.

그때였다.

“커헉!”

별안간, 심장이 찢어질 듯한 통증이 찾아왔다. 그는 검붉은 피를 한 움큼 뱉어냈다. 피가 뚝뚝 떨어지는 입에서 마른기침을 뱉어내다가 왼쪽 가슴을 움켜쥔 채 앞으로 푹 고꾸라졌다. 죽어가는 벌레처럼 전신을 부들부들 떨었다.

단테가 가면에 걸어 놓았던 마법의 반동이었다.

‘이게, 왜, 지금?’

누군가를 지키고자 하는 건 해치고자 하는 것보다 더욱 힘들다. 마법 또한 같은 이치였다. 에드는 애쉴을 수호하는 마법의 재료로 제 목숨을 바쳤다. 그리고 지금, 그 마법이 발동되었다. 바꿔 말하자면 애쉴이 위험에 처했다는 뜻이었다.

“허흑, 쿨럭.”

채 몇 초도 지나지 않아 통증이 빠르게 사그라들었다. 그러나 심장의 미미한 고통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그녀도 매번 이 정도로 아팠을까. 아니면 이보다 더 아팠을까.

불현듯 찾아온 생각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러나 때아닌 감상에 빠져들지 않고자 고개를 내저었다. 그러면서 힘을 끌어올렸다. 애쉴을 찾기 위함이었다. 남자의 전신이 은은한 보랏빛 기운으로 뒤덮이나 싶더니 이내 사방으로 퍼져 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낮게 욕설을 내뱉었다. 얼굴은 낭패감으로 물들어 있었다.

“제기랄.”

데이지를 찾기 위함인지 숲에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마을 사람들이 전부 다 오기라도 한 것일까.

이 또한 그가 애쉴을 쉽게 찾지 못하게 하려는 클라우드의 계략이었다. 뒤늦게 그걸 눈치챈 에드는 이를 갈았다. 잡히기만 하면 절대로 곱게 죽이지 않으리라 다짐하면서.

상황이 좋든 나쁘든 일단은 애쉴의 위치를 파악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그는 숲의 외곽부터 샅샅이 훑기 시작했다. 벨키에로트가 보낸 자라면 틀림없이 숲을 빠져나가려 할 테니까.

아니나 다를까, 숲을 빠져나가려는 두 사람의 움직임이 포착되었다. 속도로 보아 일반인은 아닌 듯했다. 사냥을 시작하는 육식 동물처럼 흉흉한 눈빛이 된 남자는 곧장 그곳으로 향했다.

거기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짐작도 하지 못한 채.

* * *

“이거 정말 괴물 새끼 아냐?”

축 늘어진 여자를 안고 최고속력으로 달리던 클라우드가 중얼거렸다.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어떠한 인기척도 없었는데. 어느 순간부턴가 지독한 살기가 그를 뒤쫓고 있었다. 잠시라도 방심했다간 금방이라도 덮쳐와 숨통을 조일 것 같은, 그런.

게다가 아무리 속도를 높여도 살기와의 거리는 가까워지면 가까워졌지 멀어지지는 않았다. 이대로라면 숲을 빠져나가기 전에 잡힐 것이 뻔했다. 나름 제국 기사 중에서도 속도에는 자신이 있는 데다 암살자란 타이틀도 갖고 있거늘. 어처구니가 없었다. 혹여 들키기라도 할까 싶어 마차를 숲 밖에 대기시켜 놓은 것이 화근이었다.

“이를 어쩐다.”

그는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주군께서는 실패한 자 따위 가차 없이 버리실 텐데.

입이 바짝 타들어 갔다. 지난번이야 소드마스터나 되는 위인이 목표물의 곁에 있을지 몰라 어쩔 수 없었다지만 이번은 달랐다. 무조건 성공해야 했다.

소드마스터 놈이 떠나고 난 다음에 실행했어야 했나 하는 후회가 솟구쳤으나 이내 훌훌 털어버렸다. 언제 실행해도 똑같았을 것이다. 그는 절대 여자를 떠나지 않았을 테니까.

여자를 보는 소드마스터의 눈에는 항상 짙은 정념이 가득했다. 같은 남자라서 알 수 있었다. 그는 여자를 제 목숨 이상으로 사랑하고 있었다. 정작 여자는 모르는 듯했지만.

“전하께서는 왜 하필.”

아무리 머리를 굴려 봐도 이 상황을 타파할 만한 좋은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이에 원망의 대상자가 소드마스터에서 황태자로 옮겨갔다. 그러나 진심으로 원망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황태자의 수족이었고, 주군이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했다. 그것이 비록 납득하지 못한 명령이라 해도.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소드마스터가 지키고 있는 여자를 데려오라니. 수틀렸다 소드마스터의 분노라도 받게 되면 어찌하시려는 것인지. 제국이 위기에 빠질 수도 있을 텐데.

하지만 그는 명령에 대해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저 기계처럼, 감정 없는 도구처럼 벨키에로트의 말을 충실히 이행할 뿐이었다.

쾅!

뒤에서부터 일직선으로 길게 늘어진 보랏빛 기운이 반짝인다 싶더니 예고 없는 큰 소리가 지척에서 들렸다. 왼쪽 대각선 방향에서 흙먼지가 일었다. 푸스스, 나무들이 흔들리는 소리가 났다.

“미친놈.”

조금도 속도를 줄이지 않은 남자가 혀를 찼다. 방금 공격이 빗나가지 않았더라면 즉사였을 터다. 하지만 클라우드는 눈 한 번 꿈쩍이지 않았다. 그는 뒤에서 쫓아오고 있는 남자가 자신을 함부로 공격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잘못했다간 그의 품에 안겨 있는 여자도 함께 죽어 버릴 테니까.

쾅!

다시 한번 오른쪽 대각선 방향에서 흙먼지가 일었다. 왼쪽이 아직 가라앉지 않은 탓에 주위가 곧 흙먼지로 자욱해졌다. 상황에 맞지 않게 궁금증이 일었으나 뒤를 보진 않았다. 그는 계속 달렸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멈춰 서야만 했다. 당연히도 본인의 의지는 아니었다.

우드드득- 쾅, 쾅-!

죽은 사람도 벌떡 일어날 만큼 커다란 굉음이 사방을 메웠다. 하지만 약에 취한 여자는 깨어나지 못했다. 앞쪽에 있던 나무들이 줄줄이 쓰러지면서 벽이 되어 진로를 막았다. 옆도 마찬가지였다. 정말이지 미친놈이라 생각하며 그는 뒤로 돌았다. 항시 걸치고 있던 얼굴의 미소는 온데간데없이 지워진 상태였다.

“빌어먹을 새끼.”

“진짜, 죽고 싶어서 환장했나 보지.”

두 남자의 눈동자가 허공에서 맹렬하게 맞부딪쳤다.

드세게 타오르는 녹안을 본 순간. 클라우드는 본능적으로 알았다. 잡히면 결코 편안하게 죽을 수는 없음을.

뭘 해도 죽는다면 최대한 정보라도 뽑아내고 죽어야 했다. 아니면 속이라도 뒤집어놓던지. 입가에 비웃음을 걸친 그는 상대방을 도발했다.

“죽어? 내가? 그럴 리가. 난 그저, 애쉴이 원하는 대로 해 줬을 뿐인데.”

“닥쳐.”

“정말이야. 아니면 어떻게 이렇게 안고 있을 수가 있겠어.”

클라우드는 축 늘어진 여자를 고쳐 안으며 이죽거렸다.

“내가 준 약을 제 손으로 먹었어. 얼마나 널 떠나고 싶었으면 그랬을까.”

“닥치라고.”

뻔한 거짓말인 걸 알고 있으면서도 속이 끓었다. 에드는 검을 쥐고 있는 손에 힘을 주었다. 주인의 의지에 따라 몸에서 흘러나온 보랏빛 기운이 검신에 덧씌워졌다.

지금 바로 애쉴에게 상처 하나 없이 적을 베어 넘길 수 있었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만일에 하나 그녀가 휘말려 다치기라도 한다면 죄책감을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클라우드는 똬리를 튼 뱀처럼 속살거렸다.

“이 여자가 가지고 싶어? 그게 가능할 것 같아? 한 나라의 공녀를, 소드마스터라지만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네가?”

“…….”

“내가 가능하게 해 주지. 나와 함께 가자. 가서 전하를 알현하면.”

“개소리.”

무슨 말을 하나 싶어 가만있었더니 들을 가치도 없는 얘기였다.

귀가 썩는 것 같은 느낌에 에드가 얼굴을 구겼다. 기실 상대방의 회유에 넘어간 척하며 수도로 가 벨키에로트를 처단하는 방법도 있었으나 그리하지 않았다.

거짓으로도 그에게 충성하고 싶지 않았다. 수도를 벗어나고 싶어 하던 여자를 다시 가둬놓고 싶지도 않았다.

클라우드는 눈을 가늘게 떴다.

“이 여자가 다른 남자한테 가도 상관없다, 이거로군.”

“…….”

“그럼, 지금 내가 가져도 되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그는 애쉴의 입술에 제 것을 들이밀었다. 다른 남자라는 단어에 속이 부글거리던 에드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이 개자식이!”

“하하, 고상한 척해도 역시 별수 없군! 안 그래?”

흉흉한 기세로 달려오는 남자를 향해 클라우드가 비아냥거렸다. 그러더니 안고 있던 여자를 그쪽으로 내던졌다. 깜짝 놀란 에드가 검을 내팽개쳤다. 애쉴을 받아 안고서는 곧장 옆으로 굴렀다. 목표물을 잃은 검의 파공음이 날카롭게 허공을 찢었다.

땅에 굴러다니는 검을 멀리 차 버린 클라우드가 달려들었다. 잠들어 있는 여자를 조심스레 내려놓은 에드가 품속의 단검으로 그를 상대했다.

캉! 금속끼리 부딪치는 소리가 사방을 메웠다. 달빛을 머금은 검이 서늘하게 빛났다.

검신이 짧으니 불리할 만도 하건만. 그는 조금도 밀리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압도했다. 예리하게 찔러지는 검날을 단 한 끗 차이로 피하며 상대방에게 파고들었다.

“뭘 먹인 거지?”

“글쎄, 기억이 안 나는데?”

“기억나게 만들어 주지.”

애쉴이 눈을 뜨고 있다면 모를까 정신을 잃었으니 봐줄 것도 없었다. 짧은 검신이 휘둘러질 때마다 맞은편의 몸에 크고 작은 생채기들이 하나둘 생겨났다. 곱게 죽일 생각이 없었기에 일부러 급소를 피해간, 검사로서는 수치스럽고도 노골적인 상처였다.

어디까지나 기교로 버틴 것일 뿐. 조금이라도 지치면 곧바로 잡아먹히리라는 것을 클라우드는 아주 잘 알았다. 그러나 알면서도 어찌할 바가 없었다. 그는 에드의 기백에 눌려 차츰차츰 뒤로 물러났다. 그러다 쓰러진 나무 기둥에 등이 닿는 순간이었다.

“크흑!”

어깨에 날카로운 단검이 내리꽂혔다. 클라우드는 고통으로 전신을 부르르 떨면서도 검을 놓치지는 않았다.

“해독제는?”

“그딴 거 없어.”

단순 수면제였으니 시간이 지나면 알아서 깰 터다. 하지만 클라우드는 이를 말해 줄 생각이 없었다. 그는 살기를 내뿜는 남자를 향해 한쪽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비릿하게 웃었다.

에드는 검을 쥐고 있던 손을 콱 비틀었다. 귀를 찢을 듯한 비명이 이어졌으나 아랑곳하지 않았다.

“바른대로 말해.”

“흐으, 흐으……. 저 여자도 알아? 네가 이렇게 미친놈이라는 걸?”

“말할 생각이 없나 보군.”

단검이 더욱 깊게 파고들었다. 클라우드는 고통에 찬 소리를 참지 않고 냈다. 그래, 꼭 누가 듣기를 바라기라도 하는 것처럼.

정면을 향해 이리저리 흔들리던 분홍색 눈동자가 어느 한 지점에 멈췄다. 그러나 눈 깜짝할 새 다른 곳으로 이동했던지라 에드는 눈치채지 못했다.

“알 리가 없겠지. 철저하게 숨겨왔을 테니까. 그런데 어쩌지?”

클라우드가 킥, 웃었다. 그러더니 에드의 뒤쪽을 턱짓하며 중얼거렸다.

“다 들킨 것 같은데.”

“뭐…….”

반사적으로 에드가 고개를 돌렸다. 그 천금 같은 순간을, 클라우드는 놓치지 않았다. 상대가 방심한 틈을 타 그는 어깨에 박혀 있던 단검을 뽑았다. 그러고는 들고 있던 검을 그대로 올려쳤다.

머리카락이 쭈뼛 곤두섰다. 에드는 고개를 돌리려다 말고 몸을 뒤로 물렸다. 그러나 검이 일으킨 날카로운 바람에 가면의 끈이 끊어지는 것까진 막을 수 없었다.

검은색 가면이 콧잔등을 타고 흘러내렸다. 눈을 한번 깜빡이기도 전, 머리카락과 눈동자가 바뀌었다. 검푸르던 머리칼은 칠흑처럼 검게 물들었다. 기묘한 녹색이던 눈동자는 자수정을 닮은 보라색이 되었다. 색상만 바뀌었을 뿐인데, 그는 완전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헉 하고, 두 사람이 숨을 참는 듯한 소리가 귓가에 파고들었다. 에드는 잠시 숨 쉬는 것을 잊었다.

“에르…… 도안……?”

바람이 불면 날아가 버릴 것 같은 가냘픈 음성이 귓가에 파고들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에드, 아니 에르도안은 잘 돌아가지 않는 고개를 천천히 돌렸다.

창백하게 질린 애쉴이, 그를 보고 있었다.

* * *

캉, 카앙.

소름 끼치는 소리가 윙윙 울렸다. 처음에는 마차를 두드리는 바람 소리인 줄 알았는데, 자세히 들어보니 쇠붙이끼리 부딪치는 소리였다. 누군가가 싸우기라도 하고 있는 걸까?

바닥에 쓰러져 있던 여자가 천천히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아직 약 기운이 남아 있어서인지 몽롱했다. 공교롭게도 그녀가 먹었던 수면제의 주원료는 에드가 자주 건네주었던 치료용 약초였고, 내성이 생겨 있던 탓에 빠르게 깨어날 수 있었다.

“크흑!”

고통 어린 숨소리가 허공에서 메아리쳤다. 찬물을 맞기라도 한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었다. 더듬더듬 땅을 짚으며 힘겹게 몸을 일으키던 그때. 생전 처음 들어보는 싸늘한 목소리에 등골이 서늘해졌다.

“해독제는?”

“그딴 거 없어. 으윽!”

빽빽하게 자라 있던 나무들이 쓰러진 탓에 사방은 달빛으로 환했다. 덕분에 애쉴은 고통스러워하는 클라우드와 그의 어깨를 파고든 단검을 똑똑히 보았다.

에드에게 건넸던 팔라디움의 물건은 본래의 빛을 잃고 새빨갛게 변해 있었다. 그것을 쥐고 있는 남자의 손도 마찬가지였다. 팔뚝을 타고 흘러내린 피가 땅에 후드득 떨어질 때마다 정신이 아득해졌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비명을 지를 것 같아 입을 틀어막았다.

그때였다. 클라우드가 애쉴을 본 것은.

그는 일부러 크게 신음한 후 이죽거렸다.

“저 여자도 알아? 네가 이렇게 미친놈이라는 걸?”

“말할 생각이 없나 보군.”

곧바로 비명이 이어졌다. 땅을 적시는 피의 양도 많아졌다. 애쉴은 덜덜 떨면서도 눈을 떼지 못했다. 그가 용병이라는 건, 전쟁터를 돌아다니며 피에 찌든 생활을 해왔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충격적이었다. 이제까지 그녀에게 보여왔던 다정함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애쉴은 이 상황을 겪어본 적이 있었다. 누구보다 다정했던 남자가, 누구보다 잔인하게 타인을 짓밟는 모습을.

‘당신이란 여자, 정말 끔찍해.’

바로, 이전 시간대에서.

“우욱.”

그 잔인함이 자신에게 향한 것이 아닌데도 토악질이 밀려왔다. 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 입술을 꾹 깨물었다. 그러나 눈가에 눈물이 고이는 것까진 막을 수 없었다. 머릿속이 새하얗게 질려가면서 온몸의 피가 차게 식었다.

점차 상태가 나빠져 가는 여자를 본 클라우드가 비웃었다.

“그런데 어쩌지? 다 들킨 것 같은데.”

“뭐…….”

당황한 남자가 그녀를 돌아보았다. 그 순간, 번개처럼 움직인 클라우드가 검을 올려쳤다. 놀란 애쉴이 무어라 하기도 전 에드는 인간의 움직임이라고는 볼 수 없는 동작으로 공격을 피했다. 하지만 가면이 벗겨지는 것까진 어찌하지 못했다.

그리고 애쉴은 보았다. 검푸르던 머리칼이 검게 변하는 것을. 녹색이던 눈동자가 보라색으로 물드는 것을. 환한 달빛에 비친 얼굴은 그녀에게 너무나도 낯익은 것이었다.

“에르…… 도안……?”

천천히, 아주 천천히.

얼굴의 옆면만을 보인 채 못 박힌 듯 서 있던 남자가 그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단 몇 초였으나 애쉴에게는 영원의 순간과도 같았다.

“아, 아…….”

완성되지 못한 말들이 입속에서 맴돌았다. 시야가 노랗게 변하고 손과 발 마디마디가 저렸다. 감각이 예민해지면서 온몸에 소름이 돋은 것이 똑똑히 느껴졌다.

애쉴은 소리 없이 입술을 벙긋거렸다. 그러다 결국,

“하윽.”

쿵. 한계에 다다른 심장이 기어코 내려앉았다.

크게 확장된 동공이 부르르 떨렸다. 제대로 비명조차 지르지도 못한 여자가 가슴을 움켜쥔 채 무너져내렸다.

보랏빛 눈동자가 확 커졌다. 에르도안은 절망했다.

“안 돼, 레이디!”

가물가물한 시야 속 달려오는 남자를 마지막으로 애쉴은 졸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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