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
“사실 가문의 일원이 모두 죽었습니다.”
“언제 죽었는데?”
에리스텔라는 오래전 에밋 시안느라는 소년을 만났던 기억을 떠올리며 물었다.
“목격자가 없어 특정할 수는 없습니다만, 최소 10년은 지났을 겁니다.”
대략적이지만 기억 속 그때와 시기가 비슷했다. 그게 왠지 마음에 걸렸다.
“시안느 가문은 외부와 교류를 거의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자세한 정보를 얻기 까다로웠습니다.”
“교류를 하지 않아?”
“그 지역에서도 꽤 떨어진 고성에서 폐쇄적인 생활을 했다고 합니다.”
유진의 말에 따르면 사람들과의 접촉이 별로 없다 보니 그들의 죽음도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몰랐다고 한다.
최소한의 활동조차 하지 않아 의문을 가진 후에야 알게 되었던 것이다.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 알아낼 수 있는 정보는 지극히 제한적이었다.
“다만, 그 당시 그들이 수도로 떠나는 걸 목격했다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아마 거기서 돌아오지 않았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유진의 추측이었지만 에리스텔라는 거의 확신했다.
그때, 에리스텔라가 본 이후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라고.
“에밋 시안느에 대해서 좀 더 알아보려고 했지만 아주 가끔 로브를 쓰고 지나가는 걸 본 적 있다는 게 전부였습니다.”
“어린아이에 대한 정보가 많이 남아 있을 리 없지.”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폐쇄적인 가문에서 자라는 아이에 대한 정보를 멀리 떨어진 마을에 사는 이들이 알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래도 대신 그 당시 시안느 가문에 대한 정보는 어느 정도는 알아낼 수 있었습니다.”
시안느 가문은 오래전부터 그 지역에서 터전을 잡고 대를 이어 왔다.
대대로 폐쇄적인 생활을 했으나 생계에는 전혀 문제가 없어 보이는 듯했다고.
그리고 그들이 마법을 쓸 수 있는 것 같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시안느라는 가문에 대해 들어 본 적 없어.’
게다가 에리스텔라는 에밋 시안느를 황궁에서 본 적 있었다.
전혀 알려지지 않은 가문이 황궁에 초대받을 정도라면 특별한 사유가 있는 경우였다.
그럼 정말 마법을 쓸 수 있었던 건가.
생각이 깊어질수록 그녀의 미간이 좁아졌다.
***
에리스텔라는 이른 아침부터 황제에게서 급한 서신을 받고 서둘러 황궁을 찾았다.
“무슨 일이야? 국보가 사라졌다니?”
그리고 도착하자마자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다.
“어젯밤에 확인할 게 있어서 꺼내 봤는데 그림 한 점이 없어졌어.”
황제가 황망해 하면서 고개를 저었다. 언제 사라졌는지는 알 수 없었다.
“다른 곳에는 전혀 손을 댄 흔적은 없고 딱 그것만 가져간 듯싶어.”
다만, 그 소식을 접한 에리스텔라는 불현듯 떠오르는 존재가 있었다.
‘설마 그때 일부러 잡혀 있었던 게 이거 때문인가.’
내내 의아하기는 했다.
디아클렌 자작. 데클렌은 왜 일부러 얌전히 잡혀서 조사를 받았던 걸까.
우리를 농락하기 위해서?
아니면 다른 무언가를 노려서?
하지만 그가 사라지기 전까지도 그 이유를 알아내지 못했었다.
그래서 포기하고 있었는데.
‘사라지기 전에 이 그림을 챙기기 위해서였다면?’
황궁은 건국 당시부터 정교하게 설계된 결계가 보호하고 있는 성역이었다.
허락받지 않은 이는 들어갈 수 없었다.
데클렌이라고 해도 그걸 깨고 황궁에 들어올 수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황궁 내에 들어온 후라면 내부에서 움직이는 건 다른 문제지.
그러니 데클렌의 진짜 목적은 황궁 안에 들어오는 거였을지도 모른다.
“그렇게까지 해서 가져가야 할 물건이었다는 거겠네.”
“그 그림이 특별한 물건이었어?”
“글쎄. 건국사에 관련한 의미 있어 보이는 그림이기는 하지만 다른 게 있는 것 같지는 않았어.”
황제가 그림에 대해 설명을 해 주었다.
건국 황제에게는 갖은 위험을 함께 헤쳐 온 동반자가 있었다.
그는 매우 강력한 마법사로, 군대 하나를 홀로 대적할 수 있는 힘을 가졌다고 한다.
건국 직후, 결국 전장에서 목숨을 잃는 그의 이야기는 지금도 많은 제국민들을 슬프게 했다.
제국 역사상 가장 강한 마법사는 건국 황제라는 게 정설이었지만, 그의 동반자가 황제와 필적하는 실력을 지녔다고 믿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아마 에리스텔라 역시 그 두 사람에게는 상대가 안 될 것이다.
“하지만 분명 있을 거야.”
그것도 아주 중요한 게.
다만, 아직 에리스텔라와 황제가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뿐일 거다.
“그럼 그 그림을 다시 살펴봐야겠네.”
“그게 가능해?”
황제가 의미심장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이미 몇 번이나 본 적 있는 그림인데 당연하지.”
황제는 한 번 본 것도 정확하게 기억해 내는 능력이 있었다. 게다가 그림에도 탁월한 재능이 있어 그대로 구현해 내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그럼 부탁할게.”
그 그림에 혹시 숨겨진 무언가가 있는지 확인해 봐야 했다.
에리스텔라가 의논을 끝내고 돌아가려고 할 때였다.
함께 황궁에 왔지만 잠시 보고를 받으러 갔던 하인리시온이 심각한 얼굴로 급히 드려야 할 말이 있다며 찾아왔다.
“전염병이라니? 이게 무슨 소리야?”
하인리시온의 보고가 끝나자마자 가장 먼저 반응을 보인 건 에리스텔라였다.
“최근 수도 외곽 지역에서 전염병으로 예상되는 증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보고가 들어왔어.”
“아직 환자 수가 적고 증상도 뚜렷하지 않아서 조사 중이야.”
하필 이 타이밍에 전염병이라니.
게다가 날도 점점 더 더워지고 있어서 전염병이 확산될 위험이 컸다.
“그러게. 무슨 수를 써서라도 초반에 뿌리를 뽑아야지.”
***
며칠이라는 시간 동안은 침착하게 상황을 살피려 했다.
하지만 수도 외곽의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상황은 점점 더 나빠지고 있었다.
‘더는 못 참아!’
에리스텔라가 곧바로 전염병에 대해 알아보러 나서려 했지만, 하인리시온에게 붙잡혔다.
“자꾸 먼저 나서지 말라고 했잖아.”
윽. 에리스텔라가 움찔하며 변명을 위해 입을 열었다.
“하지만 보고를 듣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어. 직접 확인해 보는 게 가장 정확…….”
“내가 가서 확인하고 올게.”
하인리시온은 떠난 다음 반나절이 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나서 대공가에 찾아온 사람은 하인리시온이 아니라 네 사람이었다.
“아무래도 전부 회수하는 건 어려울 것 같아요.”
디아클렌 자작가로 인한 문제는 끝나지 않았다.
생각보다 그가 유통하던 물건의 종류가 다양하고 많았다.
그가 작정하고 퍼트린 게 귀족이 아니라 일반 백성들이었나 싶을 정도였다.
“게다가 귀족들과는 다르게 구매 내역이 남아 있지 않아서 확인이 힘든 상황이에요.”
‘거기까지는 미처 생각 못 했네.’
에리스텔라는 허를 찔린 것 같았다.
“게다가 단순히 회수 문제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케일리가 뭔가 말을 이어가려고 할 때였다. 드디어 하인리시온이 돌아왔다.
에리스텔라가 서둘러 하인리시온을 살피는데 그의 얼굴이 심각했다.
“직접 가 보니 상황이 예상하던 것과는 달랐어.”
“역시 내가 직접 가는 게 좋겠어. 전염병은 전파를 막는 게 가장 급하다는 거 알잖아.”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많은 마법사들이 전염병의 전파를 막는 일에만 몰두하면 다른 일은 할 수 없게 된다.
하지만 에리스텔라 혼자서 전파를 막으면 그만큼 다른 마법사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졌다.
그러니 하인리시온이 아무리 막아도 직접 가겠다고 결심을 굳혔을 때였다.
“그건 걱정 안 해도 돼.”
“……어?”
이건 또 무슨 상황이지?
에리스텔라의 뜨겁게 타오르던 심장이 빠르게 차분해졌다.
“전염병이 아니라 다른 게 원인이었어.”
곧이어 네 사람도 수도 외곽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 때문에 에리스텔라를 찾아왔다.
“제가 드리려던 말도 같은 내용이에요.”
케일리가 옆에서 덧붙였다.
“같은 내용이라니?”
어떻게 같을 수가 있지. 한쪽은 전염병 한쪽은 흑마력석 회수인데.
‘잠깐만. 설마 그 두 가지 문제가……?’
“아무래도 흑마력이 담긴 물건을 오래 사용하면서 생긴 문제인 듯합니다.”
귀족들 안에서 매듭을 지었다고 생각해서 안심하고 있었던 것이 문제였다.
디아클렌 자작가의 물건을 가장 많이 구매하고 이용한 이들은 귀족이 아닌 평민들이었다.
그들은 이미 마약에 중독된 사람들처럼 그 물건들을 쓰고 있었다.
“오히려 민간에서 이상 증상이 눈에 띄고 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전염병으로 착각하느라 상황 파악이 늦어졌어.”
하인리시온도 보고만으로는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다가 직접 가서 이상을 눈치챘다.
그래서 전염병이 아닌 흑마력석 성분 물건에 대한 부작용으로 지시를 내리고 현장을 정리하느라 이제야 온 것이었다.
“다시 가 봐야겠네.”
“아무래도. 당분간은 그곳에서 직접 상황을 정리해야 할 거 같아.”
지금까지 전염병으로 대처하고 있었기 때문에 더더욱 어수선했다.
아무래도 더는 휴식을 취하고 있을 수는 없을 듯했다.
에리스텔라가 여우에서 원래 모습으로 돌아왔다.
***
에리스텔라와 하인리시온이 직접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나서려고 할 때였다.
“삼촌!”
레이튼이 하인리시온을 부르며 쫓아왔다.
“안녕하세요. 대공 전하.”
그 옆에는 레이튼의 친구 올리버도 함께였다.
두 사람은 회복이 다 되었지만, 어차피 곧 방학이라는 이유로 마법 아카데미로 돌아가지 않고 있었다.
“저도 같이 가면 안 될까요?”
“레이튼. 지금 거기가 어딘 줄 알고…….”
“저도 돕고 싶어요. 위험한 일에는 절대 나서지 않을게요.”
“저희도 마법을 배우고 있는 만큼 미약하나마 도움이 될 수 있을 겁니다.”
옆에서 올리버도 같은 생각인지 거들었다.
하지만 하인리시온은 영 내키지 않은 듯 보였다.
“그래. 그럼 그렇게 해.”
그래서 에리스텔라가 대신 허락했다.
“정말요? 저희도 가도 되나요?”
레이튼이 반색하면서도 하인리시온의 눈치를 힐긋 보며 물었다.
“좋은 경험이 될 거야. 마법은 실제로 써 봐야 느는 법이고, 그래야 스스로에 대한 믿음도 생겨.”
“…….”
“어차피 우리가 옆에 있는데 뭐가 걱정이야.”
그러니 걱정하지 말고 믿고 맡겨도 괜찮다고.
“대신 조심해야 한다.”
결국, 하인리시온이 하는 수 없이 허락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