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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가의 여우 황녀님 (104)화 (104/123)

104.

“그걸 지금 보여 주도록 하죠.”

처음 이 목걸이를 걸어 줄 때 무슨 의도인 걸까 궁금했었다.

아마도 날 시험하려고 이 목걸이를 준 거겠지.

‘그러니 이 목걸이에만 내가 흑마력을 분명하게 느낄 수 있는 거고.’

이번은 내가 도망칠 거라고 생각한 네가 진 거야.

“내가 이 목걸이에 마력을 넣으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지켜보도록 해요.”

덕분에 방법이 떠올랐어. 이게 흑마력의 존재를 증명해 줄 거야.

‘내가 이 자리를 제대로 깽판 칠 수 있게 됐어.’

레이튼의 친구처럼 흑마력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체질인 사람이 있었다.

에리스텔라 자신이었다.

그래서 흑마력에 반응하는 스스로의 상태를 직접 보여 주기로 했다.

모두가 숨죽여 지켜보는 순간이었다.

목걸이에서 파지직 금이 가면서 폭발했다.

그리고 흑마력과 충돌한 에리스텔라는 그대로 쓰러졌다.

‘신고식 한번 거하게 하네.’

갑작스러운 황녀의 귀환, 그리고 기절까지.

아수라장이 되는 건 순식간이었다.

그녀는 사업 발표회를 난장판으로 만들면서 더 이상 지속될 수 없도록 막았다.

혼란스러워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하인리시온이 나서서 에리스텔라를 챙겼다.

“너 제정신이야?”

하인리시온이 쓰러진 에리스텔라를 부축하며 질린다는 듯이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흐릿하게 정신이 남아 있었던 에리스텔라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이 방법밖에 없었어.”

그러고는 하인리시온에게 몸을 맡긴 채 완전히 의식을 잃었다.

***

으. 머리야.

어질어질하고 머리를 둔기로 맞은 것처럼 아팠다.

내가 쓰러진 후로 드문드문 무슨 소리가 들렸던 거 같기는 한데.

에리스텔라가 잔뜩 인상을 찌푸리면서 눈을 뜨는 순간이었다.

“너 3일 만에 일어났어.”

에리스텔라가 느릿하게 눈을 깜박였다. 나 생각보다 오래 잠들어 있었구나.

“너 이것도 학대야. 너 스스로를 해치는 거라고.”

하인리시온은 낮게 깔린 목소리로 에리스텔라를 나무랐다.

“어떻게 됐어?”

눈을 뜨자마자 에리스텔라가 반사적으로 물었다.

하인리시온이 답답한 듯 한숨을 푹 내쉬고는 입을 열었다.

“사업 발표회는 바로 무산되었고, 황궁 기사단이 곧바로 들이닥쳐서 수사를 하고 있어.”

에리스텔라가 쓰러진 후, 적절한 타이밍에 황궁 기사단이 나타난 덕분에 상황을 잘 정리할 수 있었다.

참석한 귀족들에게 물건이 가지고 있는 위험성을 알리고 현재 소유하고 있는 것들을 처분하도록 했다.

그다음 사업 발표회를 진행하던 궁은 물론이고 디아클렌 자작가도 철저하게 수색 중이었다.

범위가 넓어서 아직은 한창 진행 중이기 때문에 결과가 나올 때까지 시일이 걸릴 예정이었다.

“사람들에게도 위험성에 대해서 계속 경고하고 있고, 곧 뭐든 나올 거야.”

“무조건 뭐든 찾아내야 해.”

“그럴 거야. 폐하가 직접 나섰으니까.”

에리스텔라가 한시름 덜었다는 듯 긴장을 풀었다.

하지만 신경 써야 할 일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에리스텔라가 아직 방심할 수 없다는 듯이 물었다.

“데클렌…… 디아클렌 자작은?”

“역시 네가 말한 흑마법사가 맞구나?”

하인리시온 역시 에리스텔라가 모습을 드러낸 순간 눈치채고 있었다.

에리스텔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조사받고 있는 중이기는 한데. 아직 명확한 증거가 없어서 강제로 붙잡아 두지는 못하고 있어.”

에리스텔라는 그다지 아쉬워하지 않았다. 데클렌이 쉽게 꼬리를 잡힐 리 없었다.

“결국 어떻게 대량의 물건에 흑마력을 넣었는지 그 방법을 알아내야 해.”

에리스텔라가 직접 보여 준 것만으로 모든 걸 해결할 수 없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일단 그걸 계기로 디아클렌 자작가의 사업이 전면 재검토되고 조사를 할 명분을 얻었다는 게 중요했다.

“올리버는?”

혹시 쓰러져있는 동안 무슨 문제가 생긴 게 아닐까 걱정되었다.

“다행히 중화제를 만들어서 지금은 회복 중이야.”

에리스텔라가 쓰러져있는 동안 하인리시온은 그녀를 살피는 것과 동시에 흑마력 중독을 중화하기 위한 연구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상태가 나빴던 만큼 완전히 회복하는 데 시간이 좀 걸리기는 하겠지만. 그래도 지금은 일어나서 레이튼이랑 놀고 있어.”

에리스텔라는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미소 지었다.

“내가 쓰러져 있는 동안 다른 일은 없었지?”

그런데 하인리시온의 반응이 이상했다.

왜 불안하게 바로 대답 안 하고 나를 빤히 봐?

“있었지.”

“……무슨 일인데?”

하인리시온이 심각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이틀 전이었어.”

에리스텔라가 긴장하며 하인리시온이 말에 집중했다.

그날, 에리스텔라는 연회장에 들어서기 전 마법으로 비둘기를 만들어 내 황궁기사단에게 신호를 보냈다.

- 곧 일이 벌어질 테니 근처에서 대기하다가 이상함을 감지하는 순간 들이닥쳐라.-

에리스텔라가 쓰러진 직후, 혹시 모를 흑마법사들의 난동을 대비한 것이었다.

‘혹시 거기서 문제가 생겼나. 하지만 그건 정말 혹시 몰라서 준비한 거지 흑마법사들이 진짜로 나서거나 하지는 않았을 텐데.’

그녀가 아는 데클렌은 곧바로 정체를 드러내거나 할 사람이 아니었다.

“어……?”

에리스텔라가 멍하니 눈만 깜박였다.

온갖 걱정을 했는데 하인리시온의 입에서 나온 말은 예상과는 전혀 딴판이었다.

하지만 일이 벌어지긴 벌어졌다.

그녀가 잠들어 있는 사이에 황녀의 귀환을 받아들인 귀족들 사이에서 한 가지 논란이 떠올랐었다.

“잠깐만요. 그럼 그때 귀신 소동은요?”

“설마 진짜 황녀 전하셨던 거예요?”

“어떻게 그런 쇼를 벌일 수가. 기가 막히네요. 누가 황녀 전하 아니랄까 봐…….”

진짜 황녀가 살아 있는 모습으로 나타났으니 귀신이 있을 리 없었다.

그러니 그녀가 벌였던 소동에 관한 모든 전말을 알게 되었다.

“아 맞네. 이건 미처 생각 못 했네.”

에리스텔라는 뒤늦게 사람들이 경악하는 반응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귀신소동을 벌일 때는 앞으로 있을 일까지 생각하지 못했으니까.

‘그런 대비를 꼭 해야 할 줄은 몰랐네.’

하인리시온의 경고가 잠시 스쳐 지나갔다.

근데 이미 벌어진 일이니까.

금세 뻔뻔한 얼굴로 돌아온 에리스텔라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근데 뭐 오히려 잘된 일이지 않아?”

아직도 내 영혼이 꿈에서 나타난다고 교회에서 고해성사하는 귀족들이 있다던데.

“덕분에 앞으로 잠은 잘 잘 거 아냐.”

에리스텔라의 말을 들은 하인리시온은 마저 동의할 수는 없었다.

‘무서워서 깨지는 않아도 억울해서 자다가 벌떡 일어날 것 같은데.’

하지만 사실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어차피 귀족들 역시 농락당했다는 사실에 푸념을 하기는 했지만 그뿐이었으니까.

그들에게는 황녀가 돌아왔다는 사실이 훨씬 더 중요했다.

“어쨌거나 잘됐어요.”

“황녀 전하가 돌아오셨으니 걱정할 필요가 없네요.”

좋든 싫든 황녀의 존재만으로도 제국에 위해를 가할 수 없다는 확고한 믿음이 있었다.

“흑마법이든 다른 뭐든 뭐가 무서워요. 제국에는 황녀 전하가 계시는걸요.”

“이제 불안에 떠는 일은 없겠어요.”

사람들은 뒤늦게 깨달은 사실에 황당해하는 한편 안도했다.

에리스텔라가 흑마법사들에게서 자신들을 지켜 줄 테니까.

물론, 그날 일을 떠올리면서 수치심에 파들파들 떠는 이들도 있었다.

***

황제가 찾아오자 에리스텔라의 눈이 동그래졌다. 어쩐지 눈꼬리가 살짝 내려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정말 눈 뗄 새도 없이 사고를 치는 건 여전하구나.”

걱정 때문에 하는 밉지 않은 잔소리였다.

“미안.”

에리스텔라가 바로 꼬리를 내리며 말했다. 순간 하인리시온의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지금 뭐라고 한 거야?’

너 이렇게 쉽게 바로 사과하는 애였어?

지금까지 에리스텔라가 하인리시온에게 한 말과 행동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우리 오빠가 화나면 얼마나 무서운데.’

하인리시온의 소리 없는 항의를 받은 에리스텔라가 슬쩍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황제를 향해 헤-얼굴을 풀며 웃었다.

황제가 한숨을 푹 내쉬며 에리스텔라의 손을 꼭 잡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몸을 상하게 하면 안 된다고 말했지?”

“다음부터는 꼭 그렇게 할게.”

에리스텔라가 고개를 열심히 끄덕이며 맹세하듯 말했다.

“만약 또 이런 일이 있으면 그때는 절대로 용서하지 않을 거야.”

황제가 짐짓 무섭게 경고했다. 하지만 얼굴만 단호할 뿐 목소리는 이미 흐물흐물 풀어져 있었다.

“그런데 나 왜 여기 있어?”

에리스텔라가 뒤늦게 방 안을 살피며 물었다.

“눈을 떴을 때부터 신경 쓰이기는 했는데, 여기 내 궁이잖아?”

그렇다. 여기는 황궁, 그것도 에리스텔라가 지내던 황녀궁이었다.

“황녀가 돌아왔는데 대공가로 갈 수는 없잖아.”

근 1년이 다 되어 가서야 돌아온 황녀가 머무를 곳은 황녀궁이었다.

아델라시아 대공가에서 지내던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잠시 잊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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