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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가의 여우 황녀님 (102)화 (102/123)
  • 102.

    디아클렌 자작이 하인리시온과 여우를 발견하더니 눈매를 접으며 무척이나 반가워했다.

    “여기까지 와 주실 줄은 몰랐습니다. 부디 부족한 것 없이 보내시기 바랍니다.”

    “지난번에 못다 한 대화를 나누죠.”

    “저야말로 바라는 바입니다.”

    ‘그래. 이번에야말로 네 속셈을 알아내 주마.’

    가식적인 미소로 위장한 두 사람의 대화를 지켜보던 에리스텔라가 이를 갈 때였다.

    디아클렌 자작의 시선이 여우를 향했다.

    “여우님도 즐거운 시간 되시기 바랍니다.”

    그는 유독 여우를 향해서 과한 관심과 친절을 보이며 말했다.

    에리스텔라는 하인리시온의 목 뒤에 자리를 잡은 채 디아클렌 자작을 경계했다.

    “나중에 연회장에서 뵙죠.”

    연회장 안에 들어서자 수도를 비롯한 인근 거리에 있는 대부분의 귀족들이 모인 듯싶었다.

    지금 제국에서 가장 화제성이 높다는 걸 증명하듯이 예상했던 것보다 열기가 훨씬 더 뜨거웠다.

    이대로라면 웬만한 말로는 사람들에게 위험성을 알려도 먹히지 않을 듯싶었다.

    하인리시온은 이 자리에서 이 물건이 흑마력을 품고 있다고 알릴 작정이었다.

    혹시 몰라 황실에도 지원을 요청한 상태였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하인리시온의 주장은 디아클렌 자작가의 사업을 시기하고 끌어내리려는 것으로 여겨질 것 같았다.

    거기에 황실까지 연루된다면.

    오히려 이쪽이 의심의 눈초리를 받으며 애매한 상황에 몰릴 게 보였다.

    적어도 디아클렌 자작이 마법을 쓸 수 있다는 걸 밝혀내야 해.

    에리스텔라와 하인리시온은 연회장에 있는 사람들을 은밀하게 살폈다.

    그들 중에 혹시 레이튼의 친구와 비슷한 증상을 보이는 사람은 없는지 확인해야 했다.

    아직 심각하게 나타나지는 않아도 전조 증상을 보이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었다.

    ‘어때? 있어?’

    “의심 가는 사람이 한두 명 있기는 한데. 확실하지는 않아.”

    ‘나도 비슷한데.’

    안색이 어둡고 집중력이 떨어지며 간간히 손을 떠는 사람이 몇 있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단정하기는 어려웠다.

    역시 눈대중으로 확인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어. 어떻게 확인하는 게 좋을까.

    연회장을 둘러보는 에리스텔라의 시선이 어두웠다.

    ‘그나저나 생각보다 사람이 많아.’

    그만큼 디아클렌 자작의 사업에 관심 있는 사람이 많다는 거였다.

    이번 연회를 중도에 멈추는 일이 생각보다 더 어렵겠어.

    하지만 그렇다고 상황을 더 두고 볼 수도 없어.

    이런 식으로 퍼지다 보면 나중에는 걷잡을 수 없게 될 것이 뻔했다.

    어쩌면 이미 그 상태일지도 모르지만.

    더는 미뤄 두면 안 된다는 점에서 두 사람의 생각이 일치했다.

    ‘의심되는 사람들 위주로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하인리시온과 에리스텔라가 사람들의 상태를 예의주시하고 있을 때였다.

    어느새 연회장에 돌아온 디아클렌 자작이 단상에 올라섰다.

    “제가 오늘 참석해 준 분들을 위해 특별한 선물을 준비했답니다.”

    특별한 선물이라는 말에 사람들이 술렁이며 기대에 찬 눈빛으로 디아클렌 자작을 바라보았다.

    “오늘 연회 중에 제가 숨겨 놓은 표식을 찾으신 분들에게 드리려고 합니다.”

    사람들의 호기심에 불을 붙이는 말을 한 디아클렌 자작이 여유로운 미소를 띠며 말을 덧붙였다.

    “물론 내일 오찬 직후에 추첨도 할 예정입니다. 그러니 오늘 밤은 마음껏 즐겨 주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이 환호했다. 그가 말하는 특별한 선물이 소문으로만 도는 신제품에 관련된 게 분명하니까.

    당연히 탐이 났다.

    그저 즐기는 척하면서도 눈이 돌아가고 있는 게 보였다. 나중에는 하나둘씩 남모르게 찾아다니겠지.

    그렇게 사람들을 안달 나게 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디아클렌 자작이 여우를 향해 다가왔다.

    “그전에 특별한 손님인 여우에게는 제가 따로 준비한 선물을 드리도록 하죠.”

    그러더니 여우에게 목걸이를 걸어 주었다.

    “잘 어울리네요.”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러더니 이번에는 모두를 향해 입을 열었다.

    “이것도 특별한 기능이 들어가 있습니다. 그게 뭔지는 이번 연회 중에 확인할 수 있을 겁니다. 기대해 주세요.”

    디아클렌 자작이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을 향해 예고했다.

    ‘이걸 나한테 주는 의도가 뭐지?’

    그저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는 아닐 것이다.

    목걸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는데 하인리시온이 에리스텔라를 품에 안아 들면서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찝찝하니까 벗어 두는 게 좋을 거 같아. 목걸이는 내가 가지고 있을 테니까.”

    ‘아냐. 무슨 의도인지는 몰라도 한번 지켜보지, 뭐.’

    디아클렌 자작이 여우를 의심하고 있는 건 분명했다.

    어쨌거나 디아클렌 자작은 확실하게 이목을 끌었다. 별다른 문제만 없다면 이번 사업 발표회는 발이라도 걸치고 싶은 귀족들이 알아서 움직일 거다.

    그렇게 되면…….

    디아클렌 자작을 둘러싼 사람들의 반응을 보니 한 가지 가능성이 떠올랐다.

    사교계에서 계급은 절대적인 잣대였지만, 때로는 그걸 뛰어넘는 경우도 있었다.

    뛰어난 재능을 가진 마법사.

    그리고 엄청난 부를 일으킨 경우에는 신분을 뛰어넘는 지위와 영향력을 지니고는 했다.

    그러다 보면 나중에는 마음먹기에 따라서 얼마든지 원하는 작위를 얻어 낼 수도 있었다.

    이대로라면 디아클렌 자작 역시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진짜 원하는 게 뭐지?’

    아무래도 확인을 해 봐야겠어.

    디아클렌 자작이 사람들과 간단하게 인사를 나누고 연회장을 빠져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나 다른 곳도 둘러보고 올게.’

    에리스텔라가 서둘러 하인리시온에게 신호를 보냈다.

    “너무 멀리는 가지 마.”

    하인리시온이 당부했다. 에리스텔라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빠르게 입구를 향해 움직였다.

    디아클렌이 어디서 뭐 하는지 확인해 봐야겠다.

    ***

    에리스텔라가 디아클렌 자작을 쫓을 때였다.

    순식간에 그가 사라졌다.

    ‘어디로 간 거지?’

    두리번거리며 자작을 찾는데.

    “자꾸만 저를 쫓아다니네요.”

    갑자기 뒤에서 그가 나타났다.

    여우를 바라보는 그의 한쪽 입꼬리가 의미심장하게 씨익 올라갔다.

    에리스텔라와 디아클렌 자작이 서로를 마주 보았다.

    “역시 보통 여우는 아니었군요.”

    서로의 정체를 눈치채고서.

    그는 여우가 에리스텔라라는 사실을 아는 것이 확실했다.

    ‘역시 저번에 느꼈던 게 착각이 아니었어.’

    에리스텔라는 확신했다.

    디아클렌 자작은 데클렌이라고. 그리고 데클렌도 여우가 에리스텔라라는 걸 알고 있다는 것을.

    서로가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지만 시선만으로 확신했다. 서로의 존재를 인지하고 있다는 것을.

    “오랜만에 뵙네요.”

    디아클렌 자작이 먼저 인사를 건넸다.

    “그날 그게 끝이 아닐 거라고는 생각했었습니다.”

    언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까 계속 궁금해하며 기다렸다는 듯이.

    “그런데 여우의 모습으로 계속 지냈을 줄은 몰랐네요.”

    디아클렌, 아니 데클렌이 그녀를 쓰다듬으려 손을 뻗었을 때였다.

    에리스텔라가 기겁하며 피했다. 감히 어디에 손을 얹어?

    이를 드러내며 불쾌함을 강하게 표시하자 데클렌이 진정하라는 듯 양손을 들어 보였다.

    “알겠습니다. 건드리지 않을게요.”

    데클렌은 여유로웠다.

    ‘하긴 내가 지금 이 꼴을 하고 있으니까.’

    그렇다고 여기서 에리스텔라가 물러나거나 도망칠 수는 없었다.

    에리스텔라가 지지 않고 데클렌을 노려보았다.

    그런데 얼굴이나 목소리는 대체 어떻게 바꾼 거지.

    그게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이었다.

    “이 얼굴이 궁금한 겁니까?”

    그런 에리스텔라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그가 먼저 말했다.

    지금 유리한 건 자신인 걸 알기에 일부러 떠보는 것이었다.

    “특별히 알려 드리죠.”

    갑자기 그가 흑마법을 쓰기 시작했다.

    ‘함정이었어.’

    이 상태에서 데클렌에게 당하면 에리스텔라도 손을 쓸 수가 없었다.

    다급히 방어하려고 할 때였다.

    ‘어……? 뭐지?’

    그는 공격하지 않았다. 대신, 모습이 변해있었다.

    에리스텔라가 찾고 있던 데클렌으로.

    “둘 다 저랍니다. 특별히 모습을 바꾸기 위해 마법을 쓴 건 아닙니다. 그저 마법을 쓸 때면 자연스럽게 변하는 거죠.”

    ‘…….’

    “둘 다 진짜 제 모습입니다.”

    둘 중 하나는 변장을 하든 뭔가 다른 수작을 부리고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흑마법을 전혀 쓰지 않을 때는 디아클렌 자작이고, 흑마법을 쓰는 순간 데클렌의 모습이 되는 것이었다.

    마법의 유무에 따라 외형이 달라질 수 있나?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은 직접 알아보시죠.”

    에리스텔라의 의문을 안다는 듯이 그가 숙제를 남겼다.

    “황녀 전하라면 분명 알아낼 수 있을 겁니다.”

    에리스텔라의 신경을 긁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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