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
***
에리스텔라는 황제에게도 이 사실을 알렸다.
“디아클렌 자작가에서 유통하는 물건에 접촉한 아이가 흑마력에 거부 반응 증세를 보이고 있다고?”
“응. 그런데 나랑 하인리시온의 마력으로는 감지할 수 없었어.”
“그거 참 애매한 문제구나.”
증거로는 부족했다. 좀 더 확실하게 꼬리를 잡기 위해서는 또 다른 피해자나 명확한 증거가 필요했다.
“응. 그래서 이번 사업 발표회에 가서 확인해 보려고. 그리고 상황에 따라서 그곳에서 폭로해야 하는 경우도 생길 거 같아.”
최대한 사람들이 피해에 노출되는 것을 줄이기 위해서는 그게 최선이었다.
“그건 그렇겠지만.”
황제의 고민이 깊어졌다.
상황이 그렇게 쉽게 풀리지 않을 거라는 게 충분히 짐작되기 때문이었다.
“우리의 예상이 맞다면 디아클렌 자작은 흑마법사일 거야.”
그리고 그는 데클렌이겠지.
“에리스텔라. 위험하지 않겠어?”
데클렌은 에리스텔라에게 흑마법을 건 장본인이었다.
당연히 걱정될 수밖에 없었다.
황제와 에리스텔라의 시선이 마주쳤다. 에리스텔라의 눈매가 짓궂게 휘어지더니 자신감 넘치게 말했다.
“내가 누군데? 뭐가 걱정이야?”
그녀는 역사상 가장 강력하다고 여겨지는 마법사였다.
그러니 믿어보라고.
“내 지원이 필요한 건 뭐든 얘기하도록 해.”
에리스텔라가 위험하단 이유로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을 리 없다는 걸 너무나 잘 알아서.
황제는 말리는 대신 최선을 다해 돕기로 했다.
“역시 든든하다니까.”
에리스텔라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
에리스텔라는 온전히 혼자 있게 되자 자연스럽게 디아클렌 자작을 떠올렸다.
지금 정황으로는 그가 데클렌일 가능성이 컸다.
그런데 그가 맞다면…… 왜 내가 디아클렌 자작에게서 흑마력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한 걸까.
그때 그와 맞붙었을 때는 분명 에리스텔라가 이기지 못할 상대는 아니었는데.
‘그사이에 나도 어찌할 수 없을 만큼 강해졌을 리가 없는데.’
마력 또한 성장기를 겪는다. 성장이 어느 정도 끝나고 안정이 되면 그다음부터는 폭발적으로 마력량이 늘거나 성장하는 건 무리가 있었다.
그건 흑마력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을 텐데.
‘데클렌. 정체가 뭐지?’
에리스텔라는 사실 데클렌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했다.
그날, 그 순간이 떠올랐다.
사실 에리스텔라에게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비밀이 남아 있었다.
그녀가 실종되었던 프루투 영지.
그곳에 에리스텔라가 급하게 갔던 이유는 흑마법 때문만은 아니었다.
에리스텔라는 오랜 시간 흑마법을 쫓으면서 누군가를 찾고 있었다.
그녀의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두 사람의 죽음에 관해 겨우 찾아낸 몇 가지 흔적이 있었다.
그 단서에서 유추한 흑마법사의 그림자를 찾아 헤매던 중.
프루투 영지에 그 사람이 나타났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루라도 미룰 수 없어. 그러다 놓치면 언제 찾을 수 있을지 몰라.’
에리스텔라는 곧바로 움직였다.
“전하 어디 가세요?”
뒤에서 쫓아오는 소니아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에리스텔라는 손만 가볍게 흔들 뿐이었다.
“금방 돌아올게.”
비록 금방이 6개월이라는 시간이 되기는 했지만.
‘크흠. 갑자기 목이 마르네.’
그 당시를 떠올리던 에리스텔라가 갑자기 물을 찾으며 다시 생각에 잠겼다.
처음 프루투 영지에 가자마자 데클렌을 찾아낸 것은 아니었다.
반나절을 그를 찾아 헤맸으나 우습게도 그 반나절 동안 에리스텔라는 데클렌과 함께 있었다. 그가 그녀가 찾는 흑마법사인지도 모른 채.
에리스텔라는 영지에서 사는 어수룩한 마법사라고 생각하면서 데클렌에게 길 안내를 받았다.
나중에 돌아가면 보상을 해 줘야겠다고 생각하면서.
멍청한 착각이었다.
영지의 다른 사람들이 데클렌에 대해 비슷한 대답만을 반복하자 에리스텔라는 이상함을 알아차렸다.
마치 그렇게 대답을 하라고 주문을 받은 것처럼.
에리스텔라는 데클렌이 자신이 찾던 존재라는 걸 안 순간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내심 놀랐었다.
‘왜 이렇게 젊지?’
그는 아무리 봐도 에리스텔라와 또래이거나 조금 많아 보였다.
외모가 변하지 않거나 그런 건가.
그럴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지. 저 얼굴로 알고 보면 마흔, 아흔일 수도 있는 일이었다.
“저는 스물을 넘긴 지 얼마 안 됐습니다.”
“……어?”
“제 나이를 의심하는 것 같아서요.”
에리스텔라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안다는 얼굴이었다.
“전하께서 찾는 사람은 제가 맞습니다.”
그는 에리스텔라의 의문을 해소시켜 주듯이 분명하게 말했다.
“전하. 그동안 저를 계속 찾아다니신 건가요?”
맞다. 그를 찾아내기 위해 몇 년 동안 숨바꼭질을 해 왔다.
“왜 내 부모님에게 흑마법을 걸었지? 그 때문에 두 분은 모두를 지키기 위해 희생하셨어.”
에리스텔라가 데클렌을 계속해서 찾아다닌 이유였다. 만나면 물어보고 싶었다.
“대체 무슨 목적으로 그런 짓을 해야만 했던 거야?”
그가 에리스텔라에게는 불행의 시작이었고, 그녀가 앞으로 막아야 하는 존재였다.
그래서 지금까지 쫓았던 건데.
막상 이렇게 마주하고 있으니 알 것 같았다.
내가 찾은 게 아니라.
네가 날 여기로 부른 거구나.
“한번 뵙고 싶었습니다. 과연 어떤 느낌일지 궁금했는데.”
오히려 그가 에리스텔라에게 관심이 더 많아 보이기까지 했다.
마치 오랜만에 그리운 사람을 만나기라도 한 것 같은 눈빛이 거슬릴 때였다.
그가 가볍게 입꼬리를 올리며 에리스텔라의 질문에 대한 대답을 했다.
“지금이야 이유가 있죠.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요.”
“…….”
“하지만 그때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였습니다. 믿으실지는 모르겠지만.”
“그게 무슨 개소리야. 왜 지키기 위해서 내 부모님께 그래야 하는 건데.”
에리스텔라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토록 바라고 또 바라던 순간인데, 대화를 나눌수록 수렁에 빠지는 것처럼 혼란스러웠다.
게다가 막상 눈앞에 마주하고 있으니 대답을 듣는다고 그녀의 의문이 풀리지도 않을 것 같았다.
애초에 그가 하는 말을 믿을 수 없으니까.
“도저히 안 되겠다.”
에리스텔라가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그리고 정신을 차린 것처럼 단호하게 입을 열었다.
“일단 너를 붙잡은 다음에 물어볼지 그냥 처리할지 정할래.”
계속 말을 듣고 있다 보면 휘둘릴지도 모르겠다는 위험 신호가 느껴졌다.
***
그다음부터는 모두가 아는 대로였다.
그날의 기억을 떠올렸던 에리스텔라가 머리를 짚었다. 그때를 기억할 때마다 두통이 동반되고는 했다.
머리가 꽉 막힌 듯 얼굴을 찌푸리던 에리스텔라는 뭔가가 떠오른 듯 눈매가 가늘어졌다.
‘잠깐만. 그러고 보니…….’
그는 에리스텔라가 어렸을 때부터 이미 선대 황제와 황후에게 흑마법을 걸 만큼 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그의 마력이 계속 성장하고 있다면…….
에리스텔라가 예상하는 수준 이상일 것이다.
게다가 한 가지 놓치고 있던 부분까지 떠올랐다.
‘내가 그때 데클렌에게서 흑마력을 감지했었나.’
그와 반나절을 함께 있는 동안 에리스텔라는 그가 그저 어수룩한 마법사인 줄만 알았다. 그가 흑마법을 쓰고 나서야 자신이 찾던 흑마법사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걸 왜 지금까지 까맣게 모르고 있었던 거지?
‘왜 이렇게 멍청한 거야…….’
그게 의미하는 게 뭔지 너무나도 잘 알면서. 왜 신경 쓰지 않은 거야.
에리스텔라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가.
데클렌이.
에리스텔라가 상대할 수 없는 존재일지도 몰랐다.
***
사업 발표회는 근교에 있는 성에서 열렸다.
마치 왕성을 옮겨다 놓은 것처럼 아름다운 정원을 가진 호화로운 성이었다. 이곳은 오래전부터 제국의 내로라하는 귀족들이 성대하게 연회를 열거나 특별한 일을 기념할 때면 찾는 장소이기도 했다.
그것만으로도 이번 사업 발표회에 꽤나 공을 들였다는 게 보였다.
이곳에서 1박 동안 연회를 하고 사업 투자에 관심이 있는 이들은 그 후에 남아서 논의를 나누는 방식이었다.
그러다 보니 참석자들을 위한 방까지 준비되어 있었다.
오늘 이곳에 오기 전까지 하인리시온과 에리스텔라는 물건에서 이상을 찾아내기 위해 여러 수단으로 알아보았지만.
별다른 소득이 없었다.
성 앞에 도착했을 때, 디아클렌 자작은 직접 나서서 방문객들을 전부 응대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