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공가의 여우 황녀님 (100)화 (100/123)
  • 100.

    ***

    에리스텔라와 하인리시온이 디아클렌 자작가의 사업에 대해 좀 더 알아보기 위해 외출하려 할 때였다.

    집사가 편지 한 장을 다급하게 가져왔다.

    “전하. 오늘 이른 아침에 이 편지가 도착했습니다. 아무래도 급한 일인 듯합니다.”

    보낸 사람은 레이튼이었다.

    ‘당장 열어 봐.’

    에리스텔라도 덩달아 하인리시온을 재촉했다.

    편지를 확인해 보니 지금 친구와 함께 아델라시아 대공저로 오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지금은 학기 중 아닌가?”

    하인리시온이 미간을 찌푸리며 의문을 가졌다.

    “맞습니다. 방학까지 두 달 정도 남았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갑작스럽게 연락하다니.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가.”

    레이튼의 방문은 언제나 환영하는 일이었지만.

    지금 이건 아무래도 평범한 방문이 아닌 듯싶었다.

    “일단 레이튼을 맞이할 준비를 하도록 해. 그리고 마법 아카데미에 무슨 일이 생겼는지도 알아보고.”

    하인리시온이 로웬에게 지시를 내리며 일어났다. 에리스텔라도 재빨리 하인리시온의 어깨 위로 올라왔다.

    ***

    레이튼이 탄 마차가 도착했다.

    “아카데미에서 저랑 같은 방을 쓰는 친구예요.”

    하인리시온과 에리스텔라가 레이튼을 마중 나갔을 때였다.

    레이튼은 친구를 부축하며 마차에서 내렸다.

    “그래. 일단 들어오거라.”

    그리고 레이튼이 학기 중인 지금 갑자기 하인리시온을 찾아온 건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레이튼의 룸메이트라는 아이의 상태가 좋지 않았다.

    그리고 그 친구가 레이튼이 다급하게 하인리시온을 찾아온 이유였다.

    “일단 방으로 데려가 상태를 보는 게 좋겠구나.”

    하인리시온이 빠르게 상황을 판단해 움직였다.

    단순한 질병이었다면 굳이 여기를 찾지 않았을 것이다.

    마법을 배우다 보면 여러 가지 사고가 생기고는 했다.

    하지만 그 역시도 웬만한 것들은 아카데미의 교수진들이 해결 가능했다.

    그런데 여기까지 일부러 찾아왔다는 것은 해 볼 수 있는 건 전부 해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는 뜻이기도 했다.

    ***

    그사이에 마법 아카데미 측에서도 소식이 도착했다.

    역시나 교수진들도 원인을 찾기 위해 애써 봤지만 도통 알아낼 수가 없었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레이튼이 삼촌에게 데려가겠다고 했을 때, 남은 방법은 그뿐이라고 생각했다고.

    아카데미에서 여기까지 오는데 무리를 했는지 아이의 상태는 많이 안 좋았다.

    이미 마차 안에서도 기절하다시피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거니?”

    “저희도 모르겠어요.”

    레이튼은 혼란스러워하면서 고개를 흔들었다.

    “우선 친구의 증상에 대해 자세하게 말해 보거라.”

    레이튼이 걱정이 가득한 채로 그동안의 상황을 설명했다.

    원인불명의 이상한 증상들이었다.

    “갑자기 시름시름 앓더니 발작했어요. 그리고 사실…….”

    레이튼이 머뭇거리며 작은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성을 잃은 것처럼 폭주한 적이 있어요.”

    교수진들이 겨우 막아 내기는 했지만 더는 아카데미 내부에서 수습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니었다.

    “기억도 하지 못하는 자해를 하기도 하고요.”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던 레이튼의 목소리가 떨렸다.

    “대체 왜 이러는 건지 모르겠어요.”

    “…….”

    “정신이 돌아올 때마다 친구도 무척 괴로워하는데. 이러다 갑자기 잘못될까 봐 너무 무서워요.”

    그 친구는, 처음 마법 아카데미에 적응하는 동안 레이튼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절친한 사이가 되었고,

    하루 동안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했다.

    그런 친구가 갑자기 눈앞에서 이상 증세를 보이며 죽어 가는 모습을 보는 건 레이튼으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일이었다.

    그렇기에 하인리시온에게 온 것이었다.

    그가 아는 마법사 중 가장 강하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이기에.

    그리고 레이튼이 말하는 증상을 모두 종합하는 순간.

    하인리시온과 에리스텔라의 눈이 마주쳤다.

    두 사람의 머릿속에 똑같은 단어가 떠올랐다.

    ‘흑마력 충돌 증상’

    마력과 흑마력은 비슷한 듯싶지만 정반대의 상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에 대비하지 않은 상태에서 흑마력이 들어오게 되면 이런 증상이 나타나고는 했다.

    ‘시온. 레이튼도 확인해 봐.’

    에리스텔라가 먼저 눈빛으로 하인리시온에게 알렸다.

    “레이튼. 너는? 너는 아무 이상도 없는 거야?”

    “저요? 저는 아무렇지도 않아요.”

    “그래도 확인해 보는 게 좋겠다.”

    레이튼도 이상이 시작되었는데 아직 눈치를 못 채는 것일 수도 있었다.

    하인리시온이 레이튼의 마력 상태를 살폈다.

    역시나.

    아주 미세하기는 하지만 흑마력과 충돌한 흔적이 있었다.

    “왜 그래요? 저도 문제가 있는 거예요?”

    하인리시온의 심각한 표정을 본 레이튼이 조심스레 물었다.

    “……아니다. 괜찮아. 다만, 급하게 와서 그런지 몸이 좀 상했구나. 여기서 약을 좀 먹는 게 좋겠어.”

    하인리시온이 애써 얼굴을 풀며 말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레이튼의 상태는 아직 무리가 없다는 점이었다.

    문제는 이 친구인데.

    하인리시온이 목소리를 가다듬고서 입을 열었다. 레이튼이 동요하지 않도록 차분한 목소리였다.

    “레이튼. 친구에 대해서 자세히 말해 주거라.”

    어떻게 하다가 흑마법과 닿았는지 알아야 했다.

    “이런 상태가 되기 전부터 전부. 사소한 변화까지.”

    친구의 병에는 다른 문제가 있다는 것을 눈치챈 레이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게요.”

    ***

    자정이 되고 난 후.

    하인리시온과 에리스텔라는 레이튼에게 들은 정보와 마법 아카데미 측에 요청해서 받은 아이에 관한 자료를 합친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있었다.

    그중, 아이에 관한 특이 사항이 적혀 있는 부분이 눈에 띄었다.

    - 타고난 마력량이 높으며 체질적으로 마력에 예민한 편. 어릴 적부터 마력 조절 훈련을 강도 높게 받아 왔음 -

    마법사들 중에는 특이 체질을 가진 이들이 심심치 않았다.

    그중에서 마력에 굉장히 예민한 체질이 있었는데, 그런 경우에는 마력을 잘 사용하는 법을 익히지 않으면 오히려 중병에 걸리고는 했다.

    그렇기에 아카데미에서도 마력의 운용법을 중요하게 가르쳤다.

    그리고 레이튼에게서 들은 이야기에 따르면 그의 룸메이트는 유행하는 물건을 모으는 취미가 있었다.

    그리고 당연스럽게도 디아클렌 자작가가 유통하는 물건들도 가지고 있었다.

    “마력에 민감한 아이가 흑마력에 무의식적으로 노출되었다면.”

    “거부 반응도 남들보다 크게 올 거야.”

    다른 사람들이라면 반응하지 않겠지만.

    예민한 체질인 레이튼의 룸메이트만이 이상 반응을 일으킨 것이다.

    “아이를 보러 가지. 다시 한번 자세히 살펴봐야겠어.”

    에리스텔라가 먼저 나섰다.

    에리스텔라가 원래 모습으로 돌아온 상태로 아이의 상태를 살폈다.

    “어때?”

    흑마력에 대한 것은 하인리시온보다 에리스텔라가 더 잘 알았다.

    “확실해. 이건 흑마력에 대한 거부 반응이야.”

    “방법이 있어?”

    “보통은 할 수 있지만 이건.”

    에리스텔라의 얼굴이 어두웠다. 그녀가 마법에 관해서 할 수 없다고 말한 적은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다.

    언제나 자신만만했는데.

    에리스텔라의 고개가 아래로 떨어졌다. 그녀 혼자의 힘으로 고치기 힘들었다.

    아직은 수단도 확실치 않았고 증거도 없지만 이로써 확실해졌다.

    디아클렌 자작이 유통하는 물건에는 흑마력이 존재했다.

    무조건 막아내야만 했다.

    “우리가 찾아낼 수 없었어.”

    아무래도 디아클렌 자작의 흑마력이 생각하던 것 이상인 게 확실해졌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아니, 사실은 굉장히 어렵고 힘든 일일 것이다.

    “일단 저 아이를 고치는 것도 당장은 힘들어.”

    중화 마법을 걸고는 있지만.

    “그다지 효과가 있지는 않을 거야. 고작해야 더 나빠지는 것을 막아 주는 정도.”

    일반적인 흑마력 중독 현상과는 달랐다. 그래서 통할지 미지수였다.

    우선은 치료 방법을 찾을 때까지 더 나빠지지만 않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이 아이를 낫게 하려면 그 물건이 어떤 원리인지 알아내야 해.”

    그러려면 디아클렌 자작을 정면으로 상대해야 했다.

    대체 진짜 정체가 뭐지.

    디아클렌 자작을 떠올리는 에리스텔라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의 진짜 정체가 뭐길래 에리스텔라마저도 속일 수 있는 마력을 가지고 있는 걸까.

    에리스텔라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막연한 두려움을 느꼈다.

    그녀가 지킬 수 없는 일이 일어날까 봐.

    그 순간, 하인리시온이 에리스텔라의 어깨를 다독였다. 그녀도 모르는 사이에 떨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

    그런데 하필이면 디아클렌 자작의 사업은 나날이 번창하고 있었다.

    하지만 정확한 증거가 없으니 그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곧 사업 발표회를 위한 연회가 곧이었다.

    “디아클렌 자작가에서 보낸 초대장 있지?”

    “있긴 합니다만, 불참하실 예정 아닙니까?”

    “아니. 참석할 거야.”

    하인리시온이 굳은 얼굴로 다짐하듯이 말했다.

    이제는 아무것도 없더라도 나서야 했다.

    그래야 아이를 고칠 방법을 찾고 자신들도 모른 채 위험에 처한 사람들도 구할 수 있었다.

    그래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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