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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가의 여우 황녀님 (99)화 (99/123)
  • 99.

    한편, 에리스텔라는 최근 몸의 급격한 변화를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많은 시간을 마력의 흐름에 집중하는데 쏟아부었다.

    ‘내 마력이 거의 다 돌아온 거 같아.’

    여우의 몸에 갇히면서 막혀 있었던 그녀의 마력이 조금씩 회복되더니 최근 들어 힘이 차오르는 감각이 느껴졌다.

    ‘다행이야. 일단 힘이 있으면 웬만한 일들은 해결 가능하니까.’

    그럼 다른 가능성도 생기는 거니까.

    ‘이 정도 힘이면 내 힘으로 저주를 풀 수 있을지도 몰라.’

    마력이 압도적으로 강하면 어떠한 구속도 힘으로 해제할 수 있었다.

    며칠에 걸쳐 몸 상태를 최상으로 끌어올린 다음 시도를 해 봤다.

    ‘……왜 안 되지?’

    분명 이번에는 될 거 같았는데.

    에리스텔라는 원래의 힘을 거의 다 찾은 상태였다. 여우일 때는 제한이 있기는 하지만 지금은 원래 모습이었다.

    그러니 이 정도 저주는 깰 수 있을 텐데.

    오히려 실패한 반동 때문인지 몸 곳곳에 강한 충격과 통증이 느껴졌다.

    ‘이러다 몸이 먼저 부서지겠네.’

    에리스텔라가 지쳐서 쓰러지듯이 돌아누웠다.

    ‘언제쯤 진짜 원래 나로 돌아갈 수 있을까.’

    자꾸만 마음이 초조해졌다.

    ***

    최근 아델라시아 대공가에서는 소형 폭탄 마법 아이템을 만들고 있는 중이었다.

    마법사가 없이도 발동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까다로운 작업이었다.

    “효과가 괜찮네.”

    실험실에서 성능을 확인하던 하인리시온이 만족스러워하며 말했다.

    “그런데 안정적이지 못하군. 잘못하면 사용하는 사람이 다칠 수도 있겠어.”

    “네. 그 부분에 대해 다시 점검하도록 하겠습니다.”

    “폭발 규모도 좀 더 체크해. 그래도 예상보단 진행이 빠르군.”

    “진행 상황이 순조로워서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로웬이 굉장히 공을 들여서 연구하는 중이었다.

    “다음 실험이 끝나면 다시 보고하도록.”

    하인리시온이 마지막으로 신경 쓰이는 점을 몇 가지 더 얘기하고 실험실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로웬은 남아서 정리를 더 한 후, 연구 보고서를 가지고 집무실로 돌아왔다.

    “연구가 길어질 테니까, 실험실이 있는 층은 출입을 봉쇄해라.”

    “이미 고용인들에게는 그쪽으로는 다니지 말라고 얘기해 뒀습니다.”

    “어? 저 방금 오는 길에 거기로 여우님이 가는 걸 봤는데요?”

    아네사가 깜짝 놀라며 말했다.

    “앞으로는 거기는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아 두는 게 좋겠네. 그래도 아직 아이템 설치 실험 전이니 다행이야.”

    “……어쩌죠. 거기 아이템 설치했는데요?”

    방금 집무실로 들어오던 보좌관이 아연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어……?”

    순간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한 박자 늦게 상황을 파악한 보좌관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큰일 났다!

    “달려!”

    로웬을 비롯한 고용인들이 다급하게 달려갔다.

    만에 하나라도 늦으면 큰일이었다.

    ***

    한편, 아무것도 모르는 에리스텔라가 복도를 걷고 있을 때였다.

    디아클렌 자작가의 물건에 대해 놓치고 있는 게 있는지 다시 확인해 보자고 하인리시온이 연구실이 있는 곳으로 불러서 온 것이었다.

    에리스텔라가 연구실이 있는 방향으로 열심히 걸음을 옮길 때였다.

    푸욱.

    뒷발에 뭔가 뭉툭한 것이 눌리는 듯했다.

    ‘뭘 밟은 것 같은데?’

    에리스텔라가 고개를 숙이며 발 안쪽을 슬쩍 확인해 봤다.

    ‘응? 뭐지?’

    에리스텔라가 뒷발을 번쩍 들어 올리는 순간이었다.

    ***

    로웬을 비롯한 고용인들이 도착했을 때였다.

    “여우님. 어디 계세요? 괜찮으세요?”

    상황을 파악할 정신도 없이 여우를 찾았다. 하지만 함부로 발을 뗄 수도 없었다.

    “어디에 설치했어?”

    “그게…….”

    설치한 위치를 짚어 주는 보좌관의 말에 질려 버린 로웬이 말했다.

    “대체 몇 개를 설치한 거야?”

    “총 다섯 군데를…….”

    일 처리가 빠른 게 원망스러울 때였다.

    로웬이 빠르게 구역을 확인하며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떼는데.

    그때였다.

    “무슨 일이야?”

    때마침 하인리시온이 다가오며 상황을 물었다.

    “큰일 났습니다. 저희가 실험하던 아이템이 있는 곳에 여우님께서 놀고 계십니다.”

    “아…… 그래?”

    “지금 이러고 계실 때가 아닙니다. 어서……!”

    “괜찮을 거야.”

    무슨 상황인지 짐작한 하인리시온이 담담하게 말했다.

    “지금 괜찮은 상황이…….”

    로웬이 안달이 나서 말할 때였다.

    “크흥?”

    어디선가 여우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모두의 눈동자가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빠르게 돌아갔다.

    ‘응? 왜 그러지?’

    에리스텔라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어리둥절해했다.

    ‘무슨 일인데 다들 몰려왔어?’

    에리스텔라가 고용인들을 넘어 하인리시온을 쳐다보며 물었다.

    “생채기 하나 없이 멀쩡하지?”

    하인리시온이 고갯짓하며 로웬을 향해 거보라는 듯 말했다.

    에리스텔라의 눈이 동그래졌다가 방금 자신이 밟았던 것을 돌아보았다.

    ‘이거 때문이었구나.’

    내가 사고라도 당했을까 봐 걱정해서 모여든 거였다.

    ‘괜히 걱정들 했네. 아무 일도 없었는데.’

    에리스텔라가 발을 밟았다가 뗐을 때는 옅은 연기만 좀 흘러나왔을 뿐이었다.

    어떠한 폭발도 없었다.

    ‘위험한 마법 아이템인 거 같았는데. 실수가 있었나 보네.’

    기본적인 마력량이 압도적인 경우에는 무효화시킬 수 있었다.

    그때였다.

    로웬이 마법 아이템 중 하나가 불에 탄 흔적처럼 남은 걸 발견했다.

    “여기 폭발이 있었습니다. 여우님이 밟으셨을 수도 있으니 상태를 다시 살펴보는 게 좋겠습니다.”

    에리스텔라와 하인리시온이 바쁘게 눈빛을 교환했다.

    “아까 위험해 보여서 내가 처리했어. 그래서 괜찮을 거라고 했잖아.”

    로웬의 의문을 하인리시온이 대신 수습했다.

    “정말 다행입니다.”

    하지만 로웬은 자신의 실책을 깊게 반성했다.

    “앞으로는 실험할 때 좀 더 조심하도록 하겠습니다. 다음부터는 이런 실수는 절대 하지 않겠습니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데 다들 겁먹었네.

    에리스텔라가 로웬과 고용인들을 안쓰럽게 바라보는데.

    “아네사. 나는 이곳을 정리할 테니 여우님을 안전한 곳으로 모셔다드리도록 해.”

    어? 나는 원래 연구실로 가려던 건데.

    근데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닌 것 같았다. 나중에 상황을 봐서 가든가 해야겠네.

    에리스텔라가 얌전히 아네사의 품에 안겨서 이동할 때였다.

    ‘내가 마력이 높으니 그런 폭탄 장치야 저절로 무효화되는데…….’

    어? 무효화……?

    에리스텔라의 눈이 동그래지더니 깜박거렸다.

    왠지 그동안 놓치고 있던 한 가지 사실을 깨달은 것 같다.

    에리스텔라는 아네사가 놓아 주자마자 곧바로 하인리시온의 침실로 향했다.

    그리고 빠르게 생각을 정리해 나갔다.

    ‘무효화가 있었어.’

    다른 마법사들에게 자신의 흔적을 완전히 숨길 수 있는 능력이었다.

    단, 그 차이가 압도적이어야 하기에 사실상 불가능한 능력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만약 디아클렌 자작가의 물건이 무효화를 사용해 마력을 숨긴 거라면?’

    디아클렌 자작이 에리스텔라의 예상대로 데클렌이 맞고, 데클렌의 마력량이 나보다 더 높다면?

    그래서 나와 하인리시온의 눈도 숨길 수 있을 정도라면?

    ‘그럼 흑마력이 있어도 못 찾아낼 수밖에 없어.’

    그게 사실이라면…… 에리스텔라의 얼굴이 점점 더 심각해졌다.

    그녀가 제국의 상징이라 불렸던 건 그녀가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한 마법사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만약 그게 아니라면? 나보다 더 강한 사람이 있으면?’

    아주 작은 가능성조차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정말 그런 존재가 있다면 에리스텔라는 지금까지 당연하다고 여겨 온 것들을 지킬 수 없을지도 몰랐다.

    ‘…….’

    에리스텔라는 아연해졌다.

    그녀가 오만해서 스스로의 힘에 도취되어 있어서 그러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제국 역사를 통틀어 가장 강한 마법사였다. 그렇기에 그녀의 존재만으로도 다른 나라에서 르오니아 제국을 함부로 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런 그녀보다 강한 존재가 그것도 흑마법사가 있다면 그건.

    재앙이었다.

    그러니 만에 하나라도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쿵쿵.

    쿵쿵쿵쿵쿵.

    심장이 무섭게 뛰었다.

    설마는 높은 확률로 사실이 되고는 했다.

    지금의 불안감과 제멋대로 뛰는 심장 박동 소리가 그 가능성을 높여 주었다.

    ‘하지만 그때 분명 나와 맞붙었을 때는.’

    그때도 강하다고는 느꼈었다.

    하지만 에리스텔라는 그를 상대로 질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백 번을 맞붙어도 백 번을 전부 이길 거라고 확신했었다.

    그런데 어떻게?

    그 상황에서 힘을 숨긴 거였나.

    ‘안 돼. 그럼 문제가 너무 심각해져.’

    그럴 바에는 차라리 디아클렌 자작이 정말로 흑마법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기를 바랐다.

    그래서 찾지 못한 것이라고.

    이건 그저 괜한 기우였던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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