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공가의 여우 황녀님 (98)화 (98/123)

98.

“그나저나 디아클렌 자작이 너를 의식하는 거 같다고?”

[아무래도 그런 거 같아.]

에리스텔라가 고개를 끄덕이며 어제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내 정체를 눈치챘는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일단 나를 의식하는 건 확실했어.]

“적어도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겠네. 디아클렌 자작. 확실히 신경 쓰이네.”

대외적으로 디아클렌 자작은 젊은 사업가였다.

그가 마법사라는 정보는 어디에도 없었다.

“마법사라는 것을 숨기고 있는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겠지.”

마법사라는 존재는 그 사실만으로도 많은 혜택과 이득을 볼 수 있었다.

그러니 숨기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그래도 지금까지 그런 사례가 한 건도 없었던 것은 아니니까.

“그리고 디아클렌 자작가에서 하는 사업도 마법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 하는 거라고 생각하기 힘든 부분이 있기도 하고.”

하인리시온이 디아클렌 자작을 신경 쓰는 이유는 두 가지 때문이었다.

하나는 에리스텔라가 그를 신경 쓰기 때문이고.

또 다른 하나는 그가 하는 사업 때문이었다.

“이상한 점이라도 있어?”

에리스텔라는 디아클렌 자작이 하는 사업에 대해서까지는 잘 몰랐다.

“디아클렌 자작의 사업에 대해 알아보고 있는데 워낙 보안이 철저해서 쉽지 않아.”

정말로 흑마법에 연루되었든 그게 아니든 새로운 기술을 이용한 새로운 사업이었다.

정보가 새어 나가 경쟁자가 생기지 않도록 보안을 철저히 하는 것은 당연했다.

“따로 만나 본 디아클렌 자작은 어땠는데?”

“확실히 범상치 않았어.”

이미 전부 경험해 본 적 있는 듯한 여유와 연륜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건 에리스텔라가 데클렌에게서 느꼈던 것과 같았다.

아델라시아 대공가는 오래전부터 마법사를 배출하는 가문이었다.

특히 평범한 사람들도 마법의 편의성을 누릴 수 있도록 끊임없이 연구했기 때문에, 응용 마법 아이템은 대공가의 주력 사업이기도 했다.

그런데 디아클렌 자작의 사업이 아델라시아 대공가와 영역이 겹쳤다.

평범한 사람들도 쓸 수 있는데 지금까지 본 적 없는 새롭고 신기한 물건.

지난번 기부회 때 벚꽃을 보여 주면서 사람들을 매료시키더니, 그 후로 비슷한 물건이 많이 나왔다.

실용성은 없이 그저 아름답기만 한 관상용 물건들을 내놓아, 돈을 쏟아붓게끔 사람들을 자극했다.

그게 어디서 만들어져서 어떻게 구한 건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마법이 기본 재료가 되지 않는다면 아무리 봐도 불가능해 보였다.

“이게 제대로 된 방식으로 만들어진 물건이라면 상관없어.”

그의 사업에 방해가 되고 경쟁이 되기에 신경을 쓰는 게 아니었다.

아델라시아 대공가의 유구한 역사 속에 그런 일 한두 번쯤 없었던 일도 아니니까.

오히려 비슷한 일들이 수없이도 많았다.

다만 지금도 아델라시아 대공가가 독보적인 위치에 있는 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태껏 아델라시아 대공가와 잠깐이라도 경쟁을 했던 사업체들은 대부분 어린 마법사들을 착취해 연구를 하고는 했다.

그때마다 제국이 발칵 뒤집히고 국력에 도움이 되는 마법사들을 지켜야 한다는 명목하에 몇 번이나 새로운 법이 생겨났다.

“게다가 지금은 그 가능성 말고 더 질이 나쁘고 위험한 가능성도 고려해야 하니까.”

흑마법.

만약 이 물건이 흑마법을 이용해 만들어진 거라면?

흑마법이 묻어난 물건을 오래도록 쓰는 것만으로도 영향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럴 경우에는 모든 물건을 회수해야 해. 너무 위험해.”

사실 여부를 확인해야만 했다.

***

다음 날, 하인리시온과 에리스텔라는 거리로 나와서 상점들을 돌아다녔다.

현재 디아클렌 자작가의 물건이 얼마나 많은 곳에서 팔리고 있고 그 분위기가 어떤지 확인하기 위해서.

다만, 둘러보는 것만으로는 정확하게 알 수 없었다.

직접 경험한 사람의 조언이 필요했다.

그리고 최근 유행하고 있는 것에 관해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샬롯이었다.

[오늘 샬롯 공연 있지 않아?]

“극장으로 가자는 거지?”

오페라 극장은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마침 샬롯은 공연을 준비하고 있는 중이었다.

대기실에서 목을 가다듬던 중 하인리시온과 에리스텔라가 나타나자 눈을 흘겼다.

“내가 너무 보고 싶어서 왔을 리는 없을 테고. 무슨 일이죠?”

하하. 보고 싶은 것도 있는데.

에리스텔라가 통할 리도 없는 변명을 하면서 뒷발로 귀를 긁적였다.

“최근 유행하고 있는 이 물건에 관해 물어보고 싶어.”

샬롯에게 꽃이 담긴 유리구의 반응에 관해 물었다. 물건을 확인한 샬롯이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잘 알아요. 요즘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보다 하나라도 갖고 있는 사람이 더 많죠.”

[너도 갖고 있어?]

“나는 없어.”

[왜?]

“너도 나도 다 가지고 있는 물건에는 흥미가 없어서.”

샬롯의 단호한 대답에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싶어서 웃음이 나왔다.

[이 물건에 대해 알아보고 있어.]

“무슨 문제라도 있어?”

[이 물건이 마법과는 전혀 상관없는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어서 살펴보고 있는데. 생각보다 물건의 종류가 많아서 가까이에서 접할 만한 너한테 물어보고 싶어.]

그러자 샬롯이 곰곰이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귀족들이 주로 구매하는 것만 알아보는 건가요?”

“그게 무슨 소리지?”

“귀족들 사이에서는 사치품 위주로 유행하고 있지만. 디아클렌 자작가에서 유통하는 물건은 그게 전부가 아니라서요.”

거기까지는 로웬의 보고서에도 없는 내용이었다.

“일반 백성들이 쓰는 것들은 흔히들 조사 대상에서 빠지겠죠.”

샬롯이 알만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디아클렌 자작가에서 나오는 물건은 귀족들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이 쓰는 물건도 있어요. 오히려 그쪽이 인기가 더 많기도 하고요.”

설마.

마법을 이용한 물건은 언제나 희귀하기에 사용 계층이 명확했다.

그래서 놓쳐 버리고 말았다.

샬롯은 사람들이 흔하게 쓰는 물건들을 몇 가지 말해 주었다.

“물에 넣기만 하면 거품을 만들어 줘서 빨래를 편하게 해 주는 물건, 정해진 시간이 되면 알람이 울리는 물건 같은 것들요. 언제나 시간에 쫒겨 사는 이들에게는 필요한 물건들이죠.”

“하지만 필요하다고 사기에는 가격이 있을 텐데?”

“귀족들에게 파는 것과는 달라서 굉장히 합리적인 가격이에요. 덕분에 사람들이 많이 쓰고 있죠.”

그렇다면 사람들이 찾는 건 당연했다. 이걸 왜 완전히 놓치고 있었지.

“그런 건 어디서 팔고 있지?”

“그건 어느 가게를 가도 전부 팔아요. 안 파는 곳을 찾는 게 오히려 어려울걸요?”

하인리시온의 물음에 샬롯이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하인리시온과 에리스텔라가 다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기까지 왔으니 공연은 보고 갔으면 좋겠지만, 힘들 것 같네요. 다음엔 꼭 보러 오세요.”

“오늘은 미안하게 됐어.”

[다음엔 꼭 공연 볼게.]

샬롯이 먼저 일어나서 무대로 향했다. 뒤이어 에리스텔라와 하인리시온이 나가려고 할 때였다.

방금까지 샬롯이 앉아 있던 자리에 놓여 있는 게 보였다.

‘영웅의 구원자……? 처음 보는 제목인데 초연인가 보네.’

샬롯이 하고 있는 공연인 듯싶었다.

에리스텔라는 다음에는 꼭 보러 와야겠다고 생각하며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확인해 본 결과, 샬롯의 말대로 평민들이 주고객인 일상 용품들은 귀족들의 사치품과는 판매 규모부터가 달랐다.

***

곧바로 하인리시온과 에리스텔라는 디아클렌 자작이 유통하는 물건들을 종류마다 전부 모았다.

그리고 흑마력이 섞여 있는지 감별하기 시작했다.

매우 까다롭고 어려워서 쉽지 않은 작업이었지만 해내야만 했다.

에리스텔라와 하인리시온은 밤을 새우면서 작업에 열중했다.

그리고 털썩 주저앉으며 중얼거렸다.

“없어.”

“나도 흑마력 흔적은 못 찾았어.”

아니. 흑마력은커녕 단순한 마력조차도 느껴지지 않았다.

“어쨌거나 증거도 없고 우리가 확인했을 때도 아무런 문제가 없어.”

“그러네.”

“그럼 우리가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어.”

이게 가능한가?

에리스텔라와 하인리시온은 혼란스러웠다.

정말 혁신적인 물건이라면 차라리 다행이지만.

왜 이렇게 찝찝하지?

하지만 몇 번을 확인해도 결과는 똑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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