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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가의 여우 황녀님 (74)화 (74/123)
  • 74.

    황제와 황후에게서 불길한 검은색 기류가 흘렀다.

    그들은 자신들의 어린 딸을 돌아봤지만 눈빛에 초점이 없었다.

    이성과 이지를 잃은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본 에리스텔라는 당혹스러웠다.

    이전 생에서는 없던 일이었다. 아니, 몰랐던 일인 건가.

    전생의 기억을 떠올렸기에 알 수 있었다.

    황제와 황후에게서 보였던 검은 기운이 흑마법이었다는 것을. 그건 절대로 용납될 수 없는 일이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왜 흑마법이…….”

    두 사람의 기운이 건물 밖까지 새어 나가려 했다.

    ‘안 돼. 흑마력이 밖으로 나가면 무마할 방법이 없어. 어떻게든 여기서 막아야 해.’

    에리스텔라가 두 사람의 기운을 막아 내면서 외쳤다.

    “제발 정신 차려요! 저 라라예요! 엄마랑 아빠 딸!”

    에리스텔라의 얼굴은 이미 눈물로 범벅이었다.

    아무리 제정신이 아니라 해도 엄마와 아빠를 공격할 수 없었다.

    그저 막아 내는 수밖에.

    황제와 황후를 제지하는 것과 동시에 마력의 기운이 건물 밖으로 터져나가지 않도록 막아야 했다.

    엄청난 마력이 소모되는 일이었기에 아직 어린 에리스텔라에게는 무리가 가는 게 당연했다.

    결국 에리스텔라는 조금씩 밀려나기 시작했다.

    ‘안 돼. 이대로 흑마법의 기운이 새어 나가는 순간 끝이야……!’

    이를 악문 채 필사적으로 모든 힘을 끌어모아 둘의 공격을 동시에 방어했다.

    하지만 지금 두 사람의 눈에 그녀는 방해물로만 인식되는 것 같았다. 황제와 황후의 공격이 점점 더 거세졌다.

    “왜 나를 못 알아보는 거예요? 엄마 아빠의 라라인데. 나 좀 알아봐 줘요. 제발.”

    에리스텔라는 힘겹게 공격을 막으며 애타게 둘을 불렀다.

    “엄마……. 아빠…….”

    결국 에리스텔라의 눈물이 볼을 타고 흐르는 순간이었다.

    황제와 황후가 느릿하게 행동을 멈추더니 천천히 의식이 돌아오는 듯 에리스텔라를 정확히 바라봤다.

    “라라…….”

    처음에는 자신들의 딸이 눈앞에 있는 걸 보고 놀란 것 같았다. 그리고 뒤늦게 지금까지 벌어진 상황을 살폈다.

    황제와 황후가 혼란스러워하는 게 에리스텔라에게도 느껴졌다.

    “이게 어떻게 된…… 설마 우리가…….”

    “설마 내가 방금 에리스텔라를 해치려고…….”

    황후가 자신의 어린 딸을 공격하려고 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큰 충격을 받았다.

    “아니에요! 저 하나도 안 다쳤어요!”

    에리스텔라가 다급하게 외치며 멀쩡한 팔과 얼굴을 보여 주려 애썼다.

    하지만 두 사람에게 중요한 건 자신들이 딸을 해칠 뻔했다는 사실이었다.

    “아무 일도 없었어요. 여기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무도 모를 거예요.”

    에리스텔라가 막아서 다행히 외부로까지 번지지 않았다.

    그러니 아무 문제도 없다고. 어떻게든 지금 있었던 일을 없었던 것으로 하고 싶었다.

    “…….”

    황후는 자신의 딸을 그저 꽉 안아 주었다. 두려움과 불안함에 떨리던 작은 몸이 차츰 진정되었다.

    “많이 놀랐지? 앞으로 다시는 이런 일은 없을 거야.”

    황후와 황제는 아직은 어린 딸을 다독이며 약속했다.

    황제와 황후가 이성을 잃었던 사건은 무사히 넘어갔다.

    하지만 에리스텔라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이전 생에서 이맘때쯤 황궁에 사고가 있었다. 그때는 황궁 일부가 무너지면서 소란이 일었었다.

    하지만 원인은 찾을 수 없었고, 이후 몇 년 동안 복원 작업을 진행했었다.

    ‘그게 사실은 아빠랑 엄마가 저지른 일이었던 거야?’

    정황상 분명했다.

    대체 뭐가 어떻게 되고 있는 거지. 아무리 과거의 기억들이 전부 돌아왔다고 해도 흑마법의 등장은 큰 충격이었다.

    그건 제국의 근간을 흔들고 나아가 제국 전체를 위험에 빠트리는 일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아빠와 엄마가 흑마법 때문에 이성까지 잃을 수 있는 거지.

    ‘몸에서 흑마법 특유의 마력이 흘러나온다는 건…… 이미 체내에 쌓였다는 건데.’

    그건 심각한 문제였다.

    황제와 황후에게 예정되어 있는 사고와는 별개로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예상할 수 없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하게 될 수밖에 없었다.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어떻게 하면 좋지. 떠오르지 않는 해결책을 찾느라 고민이 깊어질 때였다.

    “라라. 오늘은 왜 하루 종일 방에만 있어?”

    오빠의 목소리가 들리자 에리스텔라가 고개를 들었다. 한순간도 가만있지 않는 동생이 갑자기 조용해지자 이상해서 찾아온 모양이었다.

    “오빠랑 같이 나갈까? 아버지랑 어머니가 시찰을 예정대로 가시기로 했대. 그러니 가시기 전에 우리가 잘 다녀오시라고…….”

    시찰을 간다는 말 다음부터는 어떠한 것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뭐……? 어딜 간다고?”

    “두 분이 시찰을 가시니까 그동안 내가 빈자리를 메워야 해. 나도 방금 들었어.”

    “……안 돼.”

    믿을 수 없는 사실에 에리스텔라의 심장이 단번에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번에 가시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한단 말이야. 적어도 이전 생처럼 돌아가시는 모습을 무력하게 지켜보기만 할 수는 없다.

    “라라. 갑자기 어디 가?!”

    그녀는 오빠가 부르는 소리도 제대로 듣지 못할 정도로 정신없이 달렸다.

    지금 당장 아빠와 엄마를 만나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엄마!”

    황제는 시찰을 가기 전까지 최대한 많은 일을 처리하느라 만날 수 없었다.

    황후만이 자신의 딸이 올 걸 알고 있었다는 듯이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 라라가 드디어 왔구나.”

    황후의 미소는 다정했지만 딸을 바라보는 시선은 애틋하고 슬펐다.

    “안 가기로 했잖아요. 갑자기 왜 가는 거예요?”

    “…….”

    “가지 마요…….”

    아이는 다짜고짜 고집부리며 떼를 썼다. 원하는 대답을 들을 때까지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였다.

    “에리스텔라.”

    황후가 오랜만에 라라가 아닌 이름을 불렀다. 그녀를 혼내거나 타이를 때면 황후는 이름으로 부르곤 했다.

    황후는 아직은 작지만 분명 나중엔 자신보다 더욱 훌륭해질 게 분명한 아이의 두 눈을 똑바로 마주 보면서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미안하구나. 약속을 못 지켜서. 하지만 이번 시찰은 꼭 가야 해.”

    “……돌아올 거예요?”

    결국, 에리스텔라는 참고 있던 의문을 꺼냈다.

    그날 밤부터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던 불길한 생각.

    사실 두 분의 사고가 진짜 사고였을까.

    어쩌면…… 두 분이 마지막을 준비해 놓고 떠났던 게 아니었을까.

    그리고 만약 두 분이 시찰을 간다고 결정하면 아무리 부정하려고 해도 끝내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거 같아 무서웠다.

    에리스텔라는 더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눈물을 펑펑 쏟아 냈다.

    두 분이 어떤 결심을 한 지 알 거 같아서, 그게 너무 무서워서 몸이 떨리고 진정이 되질 않았다.

    “혹시 뭔가 아는 거니?”

    어린 딸에게 예상 못 한 질문을 받은 황후 역시 당황한 모습이 역력했다.

    절대 보이고 싶지 않은 진실을 들켜 버린 것처럼.

    하지만 황후는 금세 표정을 갈무리했다. 그러곤 자신이 늘 귀여워했던 작고 부드러운 머리를 쓰다듬었다.

    “라라. 너는 태어난 그 순간부터 특별했지.”

    “…….”

    “분명 라라가 성장하고 나면 지금보다 더 빛날 거야. 그 모습을 지켜보고 응원해 주고 싶었단다.”

    “지켜봐 줘요! 옆에서 응원도 해 주세요! 그럴 거죠? 네?”

    에리스텔라가 간절하게 부탁하며 황후의 옷소매를 붙잡았다.

    황후가 그런 딸의 작은 손을 마주 잡아 주었다. 하지만 그게 오히려 밀어내는 것처럼 느껴지는 건 착각이 아니었을 것이다.

    “황제와 황후는 제국을 수호해야 할 의무를 가지고 있단다. 하지만 엄마와 아빠가 그럴 수 있는 시간이 끝나 버렸어.”

    “…….”

    “……제국에 해가 되는 존재가 될 수는 없어.”

    황후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녀의 목소리가 비통에 잠겨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에리스텔라는 고개를 내저으며 부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가야만 해.”

    두 사람은 제국을 위해서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서 스스로 물러날 방법을 찾아야 했다.

    “몰라요. 아무것도 몰라요. 그냥 가지 마요. 안 갔으면 좋겠어…….”

    하지만 아직 에리스텔라는 황후의 말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절대로 안 돼. 인정 못 해. 떼를 쓰고 고집을 부리며 끝까지 반항했지만 끝내 아이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가지 마요. 그냥 가지 말아요…….”

    에리스텔라는 끈질기게 같은 말만 반복할 뿐이었다.

    이미 이전 삶의 기억까지 돌아왔기에 이후에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너무나 잘 알았다.

    그리고 지금은 분명해졌다. 두 분의 죽음은 사고가 아니었다.

    그러니 더더욱 막아야 했다. 그래서 엄마와 아빠와 함께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문제는 지금 두 분을 설득할 방법이 없었다. 고작 떼를 쓰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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