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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가의 여우 황녀님 (64)화 (64/123)
  • 64.

    “다들 왜 여기에…….”

    그레타가 넋 나간 사람처럼 중얼거렸다.

    “왜 그레타 영애가 여기 있는 거지?”

    “황녀 전하의 시녀였었잖아요. 그래서 온 거 아닐까요?”

    “그게 언제 적 일인데. 이제 와서 주인도 없는 황녀궁에?”

    “저는 너무 찜찜한데요. 게다가 저번에는 황녀궁에서 아주르디 백작 사건이 있었잖아요…….”

    혼란스러운 얼굴인 것은 그레타만이 아니었다.

    모두가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수군거렸다. 그레타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일단 침착하자.

    내가 여기 온 이유는 충분히 잘 둘러댈 수 있어.

    그레타가 억지로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변명을 늘어놓으려고 할 때였다.

    “어째서 이곳에 계신 건지 말씀해 주셔야겠습니다.”

    “…….”

    황궁의 경호를 총책임지는 기사단장이 나서서 그녀를 추궁했다.

    그 순간 그녀는 깨달았다. 처음부터 이 자리는 함정이었다는 것을.

    과연 누가 황녀궁에 찾아올지를 지켜보고 있었던 거다.

    그레타의 눈빛이 순식간에 허탈함으로 물들었다.

    “제가 이곳에 있는 게 이상해 보일 수는 있지만 이렇게까지 저를 몰아붙이는 건 무례하군요.”

    잠시 멈칫했던 그레타는 반대로 당당하게 나서기로 했다.

    “제가 따로 어떻게 된 경위인지 해명하도록 하지요.”

    하지만 그녀의 말을 들었음에도 기사 단장은 더욱 강경하게 앞을 가로막았다.

    “사실 이번 위로회에는 두 가지 목적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황녀 전하를 위로하는 것이고.”

    “……?”

    “또 하나는, 숨어 있는 흑마법사를 찾는 것입니다. 아주르디 백작 사건을 기점으로 이 황녀궁은 저와 로웬 경이 감시하고 있었습니다. 황녀궁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었음은 알고 계시겠지요. 대공 전하의 도움을 받아 마법으로 결계를 쳐 놓았습니다만, 위로회가 열리는 오늘만큼은 풀어 두었지요. 저와 로웬 경의 시선까지 피해 여기까지 오신 연유를 설명해 주셔야겠습니다.”

    흑마법과 연루된 인사를 찾기 위해 하인리시온과 기사단장은 이미 사전에 협력하고 있었다.

    기사단장이 더욱 엄중한 목소리로 쐐기를 박았다.

    “그리고 흑마법사들은 죽은 대마법사의 마력을 손쉽게 변질시킬 수 있다고 하더군요.”

    에리스텔라의 강대한 마력이 흑마법사들의 손아귀에 들어가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질 뻔했다는 뜻이었다.

    물론, 에리스텔라는 죽지 않았으니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겠지만.

    아주르디 백작가에서 황녀의 물건에 손을 대려고 한 것처럼 황녀가 죽었다고 알고 있는 상황에서 얼마든지 벌어질 수 있는 일이었다.

    “이중 흑마법사가 있다면 황녀궁의 동향을 살폈을 테니 오늘 결계가 풀렸다는 걸 알고 나타나지 않겠습니까.”

    황녀궁에서 나온 그레타 라테른이 유력한 용의자라는 뜻이었다.

    이쯤 되니 그레타도 자신이 처한 상황을 알 것 같았다.

    지금 나는 최악의 혐의를 받고 있구나. 어떤 변명을 해도 이 자리를 피할 수가 없구나.

    그레타의 얼굴이 서서히 무너졌다.

    “그럼 그레타 영애가 흑마법에 연루된 건가요?”

    “아무래도 그렇겠죠. 설마 그레타 영애가 흑마법사일 줄이야. 세상에 이런 끔찍한 일이…….”

    사람들은 이미 그레타를 흑마법과 관련지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나, 나는 정말로 아니야! 내가 흑마법이라니. 말도 안 돼……. 어떻게 그런……!”

    그레타는 당황해서 열심히 부정했다. 그 모습이 오히려 더 수상해 보인다는 사실도 모른 채로.

    “생각해 보면 갑자기 마법을 쓸 수 있게 된 것도 이상했어요. 보통은 어릴 때 재능이 드러나는 법인데…… 갑자기 달라졌잖아요?”

    “흑마법이 마법에 재능이 없는 사람들도 마력을 인위적으로 키워 준다고 하잖아요.”

    “저도 그런 얘기 들어 본 거 같아요.”

    “영애가 자신의 마법 실력을 자랑하는 걸 들은 사람이 한둘이 아니에요.”

    역시나 그레타와 가까웠던 이들이 나서서 의심스러운 부분을 끄집어내었다.

    “그건…….”

    “거짓말은 상황을 더 나쁘게 만들 거예요.”

    사람들의 경고를 들은 그레타의 눈동자가 불안하게 흔들렸다.

    “마법을 할 줄은 알지만…….”

    사실, 마법이라고 해 봐야 일반인보다 아주 조금 나은 정도에 불과했다. 그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 평소에 과장하고 다닌 게 이런 식으로 돌아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런 거짓말은 안 했지!

    그레타의 얼굴이 사정없이 일그러졌다. 결국, 더 참지 못한 그녀는 버럭-

    “그래 봐야 기초적인 게 전부란 말야! 그 이상은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된다고! 그런 내가 무슨 흑마법이야!”

    그녀는 정말 억울하다는 듯이 소리를 질렀다.

    어째서 자신이 흑마법과 연루되었다는 혐의를 받아야 하는지 정말로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황녀의 시녀로 지내면서 배웠었어. 기초적인 건 재능이 없어도 훈련만으로도 채울 수 있다고 해서…….”

    그래도 스스로를 지키기에는 충분할 거라고.

    그렇다고 에리스텔라의 시녀가 전부 마법을 배운 건 아니었다. 황녀의 제안에 마법을 배우겠다고 나선 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배운 건 그레타와 소니아 단둘뿐이었다.

    “그렇다 해도 이상한데요? 황녀 전하께서 계실 때는 한 번도 마법을 쓸 수 있다고 말한 적 없잖아요?”

    “맞아요. 저도 분명 기억해요. 분명 황녀 전하가 실종되고 난 후에 오르딘 후작가의 티파티에서 자랑했었잖아요.”

    한 영애가 나서서 의문을 품자 여러 영애가 각기 동조하는 반응을 보였다.

    그때 티파티에서 감탄하며 물어보는 영애들에게 그레타는 분명 그렇게 말했다.

    “드문 경우라고는 하는데…… 저처럼 성장한 다음에 재능이 눈을 뜨는 경우도 있다고는 하더라고요.”

    그 말을 들은 영애가 한둘이 아니었기에 기억하는 이들이 많았다.

    그레타를 향한 의심이 더욱 짙어졌다.

    “황녀 전하가 돌아가신 후에야 마법을 쓸 수 있다는 사실을 밝힌다는 게 시기적으로 수상하잖아요?”

    “…….”

    그레타가 입술만 짓씹자 영애들이 이미 확신을 가진 채 경멸 가득한 시선을 보냈다.

    그때 난처해하며 입술을 달싹이면서도 망설이던 그레타가 눈을 질끈 감고 버럭 외쳤다.

    “그야 황녀가 있는데 내가 마법을 쓸 수 있다는 게 무슨 자랑이 되겠어!”

    그래서 일부러 숨기고 있었다.

    황녀가 사라지고 나니 자신의 볼품없는 마법 실력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녀가 마법을 쓸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런 밑천 다 드러나는 이야기를 어떻게 하냐고.

    그동안 자신이 거짓말을 하고 다닌 것이 부끄러워서 제대로 해명하지 못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알량한 자존심 같은 게 중요한 상황이 아니었다.

    “나는 결백하다고요!”

    사람들의 경멸 어린 시선이 그레타를 따갑게 찌르고 있었다.

    여전히 그녀의 말을 믿을 수 없다는 불신의 눈빛이었다.

    “내 마력이 어느 정도인지 확인해 보면 되잖아요!”

    결국 참다못한 그레타가 답답해하며 외쳤다.

    하지만 그녀를 매섭게 질책하던 이들 중에 막상 나서는 이가 없었다. 그때 누군가 앞으로 나왔다.

    “제가 하죠.”

    하인리시온이 나서서 그레타의 마력을 확인했다.

    마력끼리는 서로 반응하는 성질이 있었다. 하인리시온은 이 점을 이용해 그레타의 마력을 확인했다.

    확인을 끝낸 하인리시온이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확실히 그레타 영애에게는 마력이 거의 존재하지 않네요.”

    자신의 결백이 증명되는 건데도 불구하고 그레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만천하에 자신의 허풍이 드러나고, 자신이 얼마나 별 볼 일 없는지에 대해 까발려지는 수치심이 과연 흑마법에 대한 오명을 쓰는 것보다 덜한 건지 고민이 될 정도로.

    어쨌거나 이로써, 그레타의 흑마법 연루설은 결백함이 증명되었다.

    “이제 됐죠?! 맹세컨대 저는 흑마법과는 어떤 관련도 없어요.”

    그레타가 씩씩거리며 몰려든 이들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그걸로 모든 게 무마될 리 없었다.

    기사단장이 다시 한번 그레타를 추궁했다.

    “그럼 황녀궁에는 왜 온 거죠?”

    그녀가 의심을 받는 결정적인 이유는 황녀궁에 몰래 잠입한 순간이 발각되어서였다.

    그는 모두가 그녀의 마력에 집중하느라 잠시 잊고 있었던 문제를 꼬집었다.

    “그건! 그게 어떻게 된 거냐면…….”

    계속되는 의심의 연속에 발끈했지만 그레타는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가 결백한 건 흑마법에 한해서일 뿐. 정말 아무런 잘못도 없는 건 아니었으니까.

    게다가 지켜보고 있던 이들 중 한 사람이 나서서 그레타를 향한 의문에 힘을 실었다.

    “황녀 전하께서 흑마법사를 상대하다가 실종되신 건 우리 모두가 알고 있어요.”

    “…….”

    “게다가 최근 황녀 전하에 대한 소문까지 도는 와중에 황녀궁에 몰래 잠입했다는 건 너무 의심스럽잖아요?”

    누가 들어도 일리 있는 말이었다.

    그레타는 피가 맺힐 정도로 입술을 깨물었으나, 그렇다고 현 상황을 타개할 방법이 나오는 건 아니었다.

    결국, 어떻게든 자신의 치부가 드러나게 되어 있었다. 그래야만 흑마법에 대한 누명을 완전히 벗을 수 있었다.

    꼭 둘 중 하나는 선택하라고 내모는 거 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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