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
“우와……! 믿기지 않아요. 너무 아름다워요.”
“어떻게 한 거예요? 마법을 쓴 건가요?”
당연히 모두가 감탄하면서 디아클렌 자작에게 유리구에 대해 물었다. 마법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아닙니다. 이 물건의 가장 큰 매력은 바로 마법사의 도움 없이도 이런 특별한 순간을 선사해 준다는 점입니다.”
디아클렌 자작이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흩날리는 벚꽃을 바라보며 매력적인 미소를 지었다.
“정말 놀라운 물건이군요! 자, 이제 경매를 시작하죠!”
진행자는 커다란 목소리로 경매의 시작을 알렸다. 그 후 유리구를 차지하기 위한 치열한 경쟁 끝에 어마어마한 가격이 매겨졌다.
“아무래도 오늘 최고가는 디아클렌 자작께 돌아갈 듯싶습니다. 모두들 벚꽃을 감상하고 싶어 하는 듯하니 잠시 쉬었다가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진행이 잠시 멈춘 틈을 타 사람들은 모두 디아클렌 자작에게 모여들어 질문을 쏟아 내기 바빴다.
그 모습을 하인리시온과 에리스텔라가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흐음. 정말 마법을 사용하지 않은 거라면 신기하기는 하지만.]
대체 이런 걸 왜 만들었지?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나저나 기부품은 아직도 바꿀 생각이 없어?”
하인리시온이 에리스텔라를 힐긋 노려보았다.
나중이라도 생각을 바꿀 때를 대비해 교체할 물건을 준비해 놓았다.
[나는 그게 좋아.]
하지만 에리스텔라는 어림도 없다는 듯 단호하게 거절했다.
벚꽃비가 멈추고 기부 경매가 다시 시작되자 초반의 열기가 거짓말처럼 가라앉았다. 그때 분위기를 전환하듯 진행자가 목소리를 높였다.
“이번에는 아델라시아 대공 전하께서 기부하신 물건입니다. 지금까지와는 사뭇 다른 물건이라 더욱 기대가 되네요.”
진행자는 전달받은 상자에서 꺼낸 물건을 모두에게 보여 주었다.
한눈에도 오래된 물건이었지만 정성을 들인 듯 깨끗한 여우 인형이었다.
“무려 대공 전하께서 어린 시절 직접 만드신 인형이라고 합니다. 무척 귀엽지 않습니까?”
값진 물건은 아니지만 무려 하인리시온이 직접 만든 인형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사람들에게서 열렬한 반응을 일으켰다. 게다가 탐내는 이들도 많았다.
“지금 옆에 있는 여우랑 닮은 거 같지 않아요?”
“어머. 정말 비슷하네요.”
새로운 발견을 한 것처럼 사람들이 여우 인형과 하인리시온의 어깨 위에 있는 여우를 번갈아 가며 쳐다봤다.
“대공 전하가 여우를 어릴 때부터 좋아했나 봐요. 귀여워라.”
사람들의 반응에 하인리시온의 얼굴이 몇 번이나 빨개지려고 했지만, 안간힘을 짜내어 겨우 평정심을 유지해 냈다.
“이제 시작해 보겠습니다.”
진행자의 신호를 기점으로 기대 이상의 반응이 터져 나왔다.
“이번엔 제가 가져가고 싶어요.”
“어떡하죠? 저도 탐이 나는데.”
“아무래도 이번 인형은 경쟁이 치열하겠어요.”
하인리시온의 여우 인형을 향한 경쟁이 제법 치열했다. 특히, 귀부인과 영애들의 참여가 뜨거웠다.
끝도 없이 금액이 올라가는 듯싶을 때였다.
보조가 진행자에게 다가와 쪽지를 전하더니 뭔가를 속닥였다.
그러고는 진행자가 마치 연극을 하는 듯 과장된 몸짓을 하며 외쳤다.
“이번 경매 최고액이 나왔습니다! 혹시 이 이상 하실 분이 계십니까?! 마지막으로 숫자 다섯을 세겠습니다!”
다섯의 숫자가 사라지는 동안 그 누구도 손을 들거나 신호를 보내지 않았다.
차마 그럴 수 없는 금액이었다.
“그럼 낙찰되었음을 알려 드립니다!”
진행자가 함성 같은 우렁찬 목소리로 외쳤다.
“대체 누구지?”
탄성과 함께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하며 웅성거릴 때였다. 진행자가 한껏 목소리를 높이며 외쳤다.
“여우 인형을 차지한 주인공은 원주인이셨던 아델라시아 대공 전하십니다! 오늘은 이미 최고액이 나온 줄 알았는데, 대공 전하께서 제국을 위해 직접 나서 주셨네요.”
그렇게 이번 기부회에서도 하인리시온은 손에 꼽히는 경매액을 기록했다.
진행자의 아름다운 포장과는 달리 하인리시온은 그저 여우 인형을 다른 사람에게 차마 넘길 수 없었을 뿐이었다.
으하하하핫.
그 광경을 지켜보며 가장 즐거워하는 사람은 당연히 에리스텔라였다.
‘엄청 소중한가 봐. 결국, 다시 사 올 정도로.’
에리스텔라의 놀리는 듯한 표정에 하인리시온이 얼굴에 미세한 경련이 일었다.
분명 에리스텔라는 처음부터 이런 상황을 예상하고 있었을 것이다.
“대공 전하의 의외의 면을 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여우에게 선물로 줄까 해서요.”
‘나?’
하인리시온이 여우 인형을 자신의 어깨에 앉아 있는 여우 앞에 내밀었다.
“덕분에 저희가 아주 좋은 구경을 했습니다. 하하!”
하인리시온의 단정한 얼굴에 금이 생겨났지만, 전혀 눈치채지 못한 귀족들의 웃음소리가 더욱 커졌다.
하지만 사실 기부회의 본래 목적인 경매가 마무리 되어 갈수록 에리스텔라는 점점 더 긴장되었다.
흑마법과 손을 잡은 가장 깊은 연줄이…… 황제일 가능성.
지금 두 사람은 그 가능성을 의심하고 있었다.
하인리시온이 보기에도 지난 6개월 동안 가장 많은 변화가 있었던 건 다름 아닌 황제였다.
그동안 흑마법은 원인으로 꼽을 수도 없을 만큼 존재가 흐렸다. 하지만 흑마법이 귀족들에게까지 침투해 있었단 사실을 안 지금, 자연스럽게 황제에게 의심이 닿았다.
만에 하나 황제가 흑마법사들과 연관이 있다면 에리스텔라와 황제는 완전히 반대편에 서게 될 것이다.
에리스텔라는 황제인 오빠와 적이 될 각오 또한 하고 있었다.
부디 아니기를 바라면서도 마음 한구석에는 의심이 싹트고 있었다.
그래서 일부러 더욱 장난을 치면서 무거워지는 마음을 지워 내려 애쓰는 중이었다.
기부회가 절정에 다다르고 있을 때였다.
에리스텔라는 기부회를 즐기면서도 황제의 상태를 예의주시했다.
황제는 기부회 내내 어떠한 관심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결국 중간에 자리를 빠져나갔다. 에리스텔라는 당장 쫓아가고 싶었지만 여우의 몸으로 아직은 무리였다.
***
에리스텔라는 자정이 되기만을 기다렸다. 자정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부터는 시계만 보고 있었다.
에리스텔라가 초조해하며 시계를 계속 기웃거릴 때였다.
11시 55분.
마법의 시간이 다가온다.
56… 57… 58… 59…
시간이 다가오자 하인리시온이 자연스럽게 연회장 출입구 쪽으로 다가갔다.
“조심해서 다녀. 혹시 위험하다 싶으면 숨어 있어. 내가 찾으러 갈 테니까.”
하인리시온은 자신의 어깨 위에 있는 에리스텔라에게만 들릴 만큼 낮은 목소리로 당부했다.
에리스텔라가 고개를 끄덕이며 조용히 바닥으로 뛰어내렸다. 그러곤 곧바로 연회장을 빠져나가서 황궁 복도를 뛰었다.
인적이 없는 곳에 다다랐을 때, 시계탑의 초침이 정각으로 향하고 있었다.
열두 시. 자정이 되는 순간.
신비로운 안개가 여우를 감싸더니 서서히 형체가 변했다.
어느새 황녀의 모습으로 돌아온 에리스텔라가 서둘러 움직였다.
황제의 주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에리스텔라는 황제 앞에 정체를 드러낼 생각까지도 하고 있었다.
대전이나 침실에 있으면 접근하기 어려운데.
하지만 다행히 황제는 연회장에서 멀지 않은 정원에 있었다.
잠깐…… 지금 잠들어 있는 건가?
에리스텔라가 멈칫했다. 그리고 조용히 상황을 더 지켜봤다.
그때였다. 황제의 곁으로 누군가 다가왔다.
황궁과는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은 사람은 마치 산책이라도 하는 것처럼 가벼운 발걸음으로 황제 앞에 멈춰 섰다.
그를 더 자세히 보기 위해 에리스텔라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그런데 하필이면 등을 지고 있어 누구인지 얼굴을 볼 수 없었다.
“폐하. 쉬고 계십니까.”
“…….”
“오늘 수고하셨습니다. 분명 주인님께서도 흡족해하실 겁니다.”
이게 무슨 소리지. 방금 말한 주인이라는 사람은 누구고.
그때였다. 피곤한 듯 눈을 감고 있던 황제가 눈을 부릅떴다.
황제의 서늘한 눈빛이 그를 향했다.
“치워라. 감히 나에게 손을 댈 생각하지 마라.”
기부회에서 보여 주던 것과는 완전히 상반된 모습. 에리스텔라가 알고 있던 황제의 모습이었다.
“이런. 오랜만에 자아가 돌아오셨군요.”
그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오히려 입가에 미소까지 머금은 채 말했다.
“참으로 의지가 굳센 분이십니다.”
감탄하면서 비아냥거리는 목소리. 그게 에리스텔라의 신경을 긁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금방 다시 편안해질 겁니다.”
“……!”
그가 황제의 머리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곤 조용히 주문을 읊었다.
그의 주문이 이어질수록 황제가 괴로운 듯 머리를 감싸고 비틀대다가 무기력하게 축 늘어졌다.
저항할 생각도 하지 못한 채로.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지. 대체 지금 무슨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앞으로도 폐하께서 해 주셔야 할 막중한 일들이 남아 있답니다.”
“…….”
황제의 눈동자는 이미 초점을 잃고 흐릿해진 후였다.
“저희를 위해서 기꺼이.”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끼쳤다. 남자가 반대편에서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저절로 떠오를 정도로.
“부디 그때까지 제정신으로 돌아오지 않았으면 좋겠군요. 그럼 앞으로도 잘 해내 주시기 바랍니다.”
그가 자리를 떠나자 황제의 고개가 옆으로 꺾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