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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가의 여우 황녀님 (49)화 (49/123)

49.

***

로웬은 지체하지 않고 프루투 영지로 향했다.

사실, 그도 궁금했다. 최근에 황녀에 대한 새로운 사실들을 알게 되었다.

자연스레 황녀의 마지막 행선지에 대한 진실에도 뭔가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로웬은 이번 기회에 직접 제대로 확인해 보고 싶었다.

로웬이 에리스텔라 황녀가 실종되었던 곳으로 추정되는 산 중턱에 도착했을 때였다.

현재 제국을 발칵 뒤집은 상황 때문에 이미 황궁에서 파견된 조사관들도 와 있는 상태였다.

이제 와 여기서 뭔가를 알아낼 것 같지는 않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결과를 내는 게 로웬이였다.

“아델라시아 대공가에서 왔소. 대공 전하께서 황궁에도 기별을 하신 거로 아는데, 전해 들었소?”

“오셨습니까. 그렇지 않아도 뭐든 협조하라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일단 조사관들이 알아보는 방향을 먼저 파악하고 있을 때였다.

조사관의 옆에서 뭔가를 외치고 있는 소년이 보였다.

“저 소년은 뭐지?”

“이곳에 관련된 정보에 상금이 걸려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온갖 사람들이 자신이 정보를 알고 있다며 찾아오고 있습니다.”

“…….”

“저 아이도 주변을 얼쩡거리면 뭐라도 떨어지는 게 있을까 싶어 그러는 겁니다. 무시하시면 됩니다.”

프루투 영지에 있던 아델라시아 대공가의 정보원이 상황을 설명했다.

소년은 자신을 무시하는 조사관에게 달라붙으며 계속 뭔가를 외치고 있었다.

“아니라고요! 정말 제가 증인이라니까요! 왜 안 믿어 주시는 거예요?”

“저리 썩 꺼져!”

조사관들의 거친 손길에 뒤로 넘어진 소년은 벌떡 일어나 다시 달려들었다.

“정말이라니까요! 제가 여기서 황녀 전하를 만났었어요!”

“여기서 너 같은 거짓말쟁이들을 한두 명 본 줄 아니. 자꾸 방해하면 체포할 거다.”

아이가 끈질기게 붙잡고 늘어지자 점점 신경질이 나는지 아이를 뿌리치는 조사관의 행동이 거칠어졌다.

멀리서 한 부부가 사색이 되어 다급하게 달려왔다.

“너……! 기어이 여기를 왔구나! 혼자 돌아다니지 말라고 했잖니.”

“아이고. 죄송합니다. 저희가 얼른 데려가겠습니다.”

아이의 부모가 조사관을 향해 고개를 몇 번이고 숙이며 말했다.

아이가 팔을 바르작거리며 벗어나려고 하지만 그럴수록 두 사람은 필사적으로 아이를 붙잡았다.

“더 이상 방해하지 마라.”

“네네. 그러겠습니다. 얼른. 빨리 가자꾸나.”

부모로 보이는 이들이 아이를 보호하듯이 감싸 안았다.

“안 돼! 황녀 전하의 누명을 내가 벗겨 드려야 해! 이대로 모른 척할 수는 없어요!”

“제발. 가만히 좀 있거라. 엄마 아빠가 다른 방법을 찾아볼 테니까.”

“여기서 이러면 안 된다. 주변에 눈과 귀가 얼마나 많은데…… 그때 너에게 한 말을 전부 잊은 거니? 이게 다 널 위해서…….”

로웬의 신경을 붙잡은 건 아이의 간절한 외침보다 그런 아이를 달래기 위해 필사적으로 설득하는 부모의 모습이었다.

왠지 저 말을 무시하면 안 될 것 같은 경고음이 머릿속에서 울렸다.

“설마 저 소년…….”

로웬의 미간이 점점 구겨졌다.

황녀가 실종된 후부터, 혹시나 목격한 사람이 없나 꾸준히 조사했었다. 그런데 단 한 번도 나타난 적 없던 목격자가 지금 나타날 수 있을까.

보통 이런 경우에는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목격자로 위장한 자일 가능성이 높았다.

아직은 앳된 아이인 것 역시 의심을 덜기 위한 장치일 수도 있었다.

그런데도 로웬의 머릿속에는 혹시나 하는 아주 작은 가능성이 고개를 들고 있었다.

“황녀 전하는 절대로 흑마법과 결탁하지 않았어요! 그런 분이 아니란 말이에요! 전하는 흑마법사를 상대로 용감하게 싸우시고…… 그리고…….”

울분을 토하듯 외치던 아이가 주변을 의식하자 입을 다물었다.

그 모습을 본 로웬은 고민을 멈추고 아이를 향해 움직였다.

아무래도 저 소년에게 물어봐야 할 말도 들어야 할 말도 있을 것 같았다.

아이에게 다가간 로웬이 부드러운 어조로 물었다.

“이름이 뭐니?”

로웬의 물음에 닿지 않는 자신의 호소가 너무도 답답해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아이가 빤히 올려다봤다.

***

로웬은 다급하게 수도로 돌아왔다.

그리곤 마차에서 내리자마자 곧바로 하인리시온을 찾아왔다.

“전하. 바로 보고드려야 할 일이 있습니다.”

하인리시온은 지난 며칠 동안 로웬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인사도 없이 바로 본론부터 꺼내는 그를 보자마자 프루투에서 빈손으로 돌아오지 않았다는 기대가 차올랐다.

“뭔가 알아낸 게 있나 보네.”

“네.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냈습니다.”

애써 침착하게 물어보는 하인리시온과는 달리 로웬의 흥분한 대답이 바로 치고 들어왔다. 그만큼 확실하고 놀라운 내용이 바로 뒤에 이어졌다.

“에리스텔라 황녀의 마지막을 본 아이를 제가 데려왔습니다.”

프루투에서 아델라시아 대공가까지 오는 마차에는 로웬 혼자가 아니었다.

“마지막을 본 아이?”

“네. 프루투에서 우연히 한 소년을 만났습니다. 황녀 전하께서 실종되던 날 그 자리에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었습니다.”

“그 자리에 있었다고?”

그동안 목격자를 찾기 위해 얼마나 헤맸는가. 그러나 에리스텔라와 흑마법사의 흔적 외에는 찾을 수가 없었기에 목격자의 존재에 대해서 거의 포기하고 있었다.

그런 하인리시온의 애타는 심정을 로웬이라고 모르지 않았다.

로웬의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분명 사건에 휘말렸던 생존자였습니다.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부 알고 있었습니다.”

“…….”

하인리시온의 얼굴이 그대로 굳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다. 목격자가 있었다니. 그런데 왜 지금까지 나타난 적 없는 거지. 그래서 덜컥 걱정부터 들었다.

“그런데 왜 지금까지 전혀 몰랐던 거지?”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의구심이었다.

하인리시온의 미간이 구겨졌다. 로웬이 말한 아이의 존재가 진짜이길 바라는 마음 반, 의심해야 한다는 마음이 반으로 갈라졌다.

“저도 처음부터 믿은 건 아닙니다.”

“그런데?”

“다만, 제가 아이를 만나서 들은 이야기를 무시할 수는 없었습니다.”

하인리시온 역시 그 아이의 존재를 마냥 무시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아이가 하는 이야기를 들어 보니 그날의 정황과 일치합니다. 심지어 저희가 알지 못하는 부분들까지도요. 그러니 확인해 볼 가치가 충분한 것 같습니다.”

“이곳으로 데려왔다고 했지?”

“네. 지금 방을 내어 주어 쉬고 있으라 해 두었습니다.”

하인리시온이 할 일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내가 직접 만나 봐야겠어.”

조금도 참을 수 없었다. 인내심이 바닥을 드러낸 하인리시온의 걸음이 점점 빨라졌다.

***

그렇게 서둘러 찾아온 하인리시온 앞에 있는 아이는 그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고용인에게 방을 안내받은 아이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지금껏 아이의 인생에서 이토록 크고 화려한 공간은 본 적이 없었다.

처음 보는 가구들이 신기했던 아이는 슬그머니 침대에 걸터앉아 봤다가 문이 열리자마자 놀란 토끼처럼 뛰어오르듯이 벌떡 일어났다.

그 모습이 그저 세상 물정 모르는 순진한 아이 같아서 하인리시온의 의심이 한 꺼풀 벗겨졌다.

낯선 하인리시온을 보며 겁을 먹은 채 로웬을 힐긋힐긋 쳐다보는 아이.

하인리시온이 아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과연 이 아이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조금은 긴장되었다. 어쩌면 무서운 진실일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듣지 않을 수 없었다.

하인리시온이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아, 안녕?”

최대한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면서.

다만, 그게 너무 과해서 오히려 아이의 얼굴이 빨개지는 건 예상 밖의 일이었다.

“아, 안…… 안녕하세요…… 전하를 뵈, 뵈옵…… 딸꾹.”

“…….”

“딸꾹!”

긴장한 나머지 아이의 입에서 딸꾹질이 쉬지 않고 나왔다. 그 덕에 하인리시온까지 덩달아 당황했다.

“어떡하지?”

“괜찮아. 지난번에 내게 해 준 이야기를 그대로 해 드리면 된단다.”

로웬이 나서서 아이를 향해 말했지만, 이미 잔뜩 움츠러든 아이는 여전히 겁을 먹고 있었다.

하인리시온의 무뚝뚝한 인상은 아이에게 아무래도 장벽이 높은 모양이었다.

당장 물어보고 싶은 게 많은데, 지금 당장은 아이를 편하게 하는 게 우선인 듯싶었다.

그때였다.

하인리시온의 무릎을 꾸욱 끌어당기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것도 무척이나 억센 힘으로.

덕분에 하인리시온의 몸이 기우뚱 기울어지면서 한쪽 무릎이 살짝 꺾였다.

‘앉아!’

바로 귓가에 외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그리고 역시나 억센 힘의 주인공은 여우 한 마리, 에리스텔라였다.

에리스텔라가 앞발을 파닥거리며 하인리시온의 바지를 힘껏 잡아당겼다.

‘뭐 하는 짓이야?’

‘당장 앉으라고! 일단 눈높이를 맞춰야 겁을 안 먹지.’

‘아.’

에리스텔라가 으르렁거리며 눈빛으로 가리키는 신호를 알아차린 하인리시온이 엉거주춤 한쪽 무릎을 꿇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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