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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가의 여우 황녀님 (42)화 (42/123)
  • 42.

    “으응? 조심하라고? 걱정하지 마. 나만 믿고 있어. 그럼 얼른 가 볼까. 하하.”

    샬롯이 에리스텔라의 눈빛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것처럼 엉뚱한 말을 하며 어색하게 자리를 피했다.

    에리스텔라가 황당해하며 의심의 눈초리로 멀어지는 샬롯을 지켜봤다.

    “아, 오늘 너무 재밌다.”

    샬롯이 흥얼거리듯 콧노래를 부르며 다른 이들에게 다가갔다. 샬롯의 웃음소리가 반대편까지 들릴 지경이었다.

    ‘일부러 이해 못 한 척한 거지?’

    샬롯은 마치 이 순간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사교계를 휘저었다.

    그뿐 아니라, 에리스텔라를 욕하는 무리에 섞여들어서는 누구보다 열띤 모습으로 대화에 참여했다.

    ‘저거 진심 맞는 거 같은데.’

    그 모습을 지켜보던 에리스텔라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내가 잘한 거 맞나……?’

    ***

    하지만 어쨌거나 샬롯의 대활약(?)으로 에리스텔라에게 수상쩍은 관심을 드러내는 사람들의 후보를 만들 수 있었다.

    다만, 그 이상 특별한 이상 징후는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에리스텔라가 다른 영애들의 대화를 슬쩍 살펴보았지만.

    “올해는 연회 시기가 좀 빠르네요.”

    “그러게요. 원래는 오페라 공연이 전부 끝나고 난 후에 했었잖아요. 이번에만 연회를 당긴 연유가 뭘까요?”

    “이유랄 게 있나요. 그동안 안 좋은 일들도 많아 연회를 하지 못했으니, 몸이 간질간질해 일정을 당긴 거죠.”

    “하긴, 덕분에 우리도 즐겁기는 해요.”

    샬롯이 분위기를 이끌며 황녀에 관한 화제를 끌어낸 것 외에는 대부분 시답잖은 대화였다.

    그래도 알맹이가 없어 보이는 대화에도 가끔씩 새로운 정보가 섞여 있고는 해서 심심풀이로 듣기 나쁘지 않았다.

    에리스텔라가 샬롯이 주도하는 대화를 지켜보다가 시선을 떼서 다른 곳들도 상황을 둘러보고 있을 때였다.

    하인리시온이 로웬과 뭔가 중요해 보이는 대화를 은밀하게 나누더니 곤란해하는 얼굴로 말했다.

    “아무래도 나는 잠시 자리를 비워야 할 거 같아.”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애초에 에리스텔라를 위해서 일정을 조정해서 참석한 연회였다.

    에리스텔라도 더는 그의 시간을 빼앗고 싶지 않아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대로 돌아가는 건 좀 아쉽지만 오늘이 전부는 아니니까.

    “소니아가 여기에 끝까지 남아 있도록 해.”

    그런데 하인리시온이 소니아를 향해 말했다.

    소니아를 자기 대신 남겨, 에리스텔라가 끝까지 연회에 남을 수 있도록 배려한 듯했다.

    “내가 직접 마중 오지 못할 수도 있으니. 끝나면 마차를 타고 돌아오도록 하고.”

    “네. 알겠습니다.”

    하인리시온이 몇 가지 당부를 한 뒤에 연회장을 빠져나갔다.

    ***

    가장 높은 단상 위에 올라선 중년 남성이 가볍게 손뼉을 치며 입을 열었다.

    “여러분들. 잠시만 집중해 주십시오!”

    그가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고개를 살짝 치켜들며 말을 이어 나갔다.

    이럴 때가 아니면 귀족들 앞에서 자신이 당당하게 나설 수 있을까. 그는 이 시간을 무척이나 즐기고 있었다.

    “오늘 연회에서 가장 빛나는 순서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모두 즐겨 주시길 바랍니다.”

    모두가 박수로 환호성을 보냈다.

    오페라 극장에서 열리는 연회.

    당연히 연회의 하이라이트는 공연이었다. 그중에서도 주인공으로 나오는 샬롯이 가장 시선을 끌었다.

    샬롯이 우아한 자태로 무대 위로 올라왔다.

    모두를 향해 그림같이 아름다운 미소를 지은 샬롯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샬롯의 공연이 시작되었다.

    목소리 하나만으로 모두의 시선을 끌어당기는 힘.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진지하면서도 여유로운 태도로 부르는 노래는 모두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에리스텔라도 집중해서 공연을 보고 있는데, 문득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깐만. 생각해 보니 오페라 연회가 언제 시작되었더라?’

    에리스텔라의 기억이 맞다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오페라 극장은 분명 흥행하고 있었지만 정작 그 주인은 도박 빚을 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 정도 규모의 연회를 아무렇지 않게 열 수 있는 자금이 있다라.

    게다가 예전보다 이른 시기에 열린 연회. 그럼 보통 다른 목적이 있지 않나?

    에리스텔라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잠깐만. 이게 단순한 연회인가. 만약 다른 게 있다면?’

    에리스텔라의 시선이 조용하지만 빠르게 주변을 살폈다.

    그때 이상한 광경이 포착되었다.

    에리스텔라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군중 속에 파묻힌 채 태연하지만 은밀하게 움직이는 사람.

    다른 사람이라면 조금도 이상함을 눈치채지 못할 만큼 자연스러운 행동이었다.

    하지만 에리스텔라의 눈에는 그들의 수상한 행동이 분명히 보였다.

    ‘그야 저들이 지금 마법을 쓰고 있으니까.’

    그것도 단순한 마법이 아닌 흑마법이었다.

    아무리 잘 숨겨도 에리스텔라의 눈을 피할 수 없었다.

    확실했다.

    오페라는 연막일 뿐 이건 단순한 연회가 아니었다.

    흑마법사들이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틈을 이용해 뭔가를 하려는 거다.

    에리스텔라는 그들의 행적을 좇았다.

    ‘이게 오페라 연회의 진짜 목적이었구나.’

    화려한 분위기로 사람들의 시선을 빼앗고, 경계심을 낮췄다.

    은밀한 거래를 하기에 최적이었다.

    주변을 살펴보니 저들을 주시하고 있는 건 에리스텔라가 유일했다.

    ‘일단 이걸 누구한테…….’

    때마침, 공연이 잠시 멈췄다.

    에리스텔라는 샬롯이 중간에 잠시 휴식을 위해 무대에서 내려왔을 때, 대기실로 향해 그 사실을 알렸다.

    “뭐야? 그런 일이 있었어?”

    [응. 공연 중에 이상한 거래를 하고 있어. 그게 목적인 거 같아.]

    “아아…….”

    샬롯의 입매가 비틀렸다. 사실을 알게 된 그녀는 곧장 분노했다.

    “감히 내 공연을 가지고 이런 장난을 쳐?”

    자신의 자존심 그 자체인 공연에 이런 먹칠을 하다니 용서할 수 없었다.

    휴식 시간이 끝나자 샬롯은 일단 다시 무대 위로 올라갔다. 아직 공연은 끝나지 않았으니까.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샬롯이 능숙하게 공연을 이어 나갔다. 공연을 재개하자 모두의 시선이 샬롯에게만 집중되었다.

    흑마법사들의 수상한 행동을 살피며 샬롯을 돌아봤을 때였다.

    에리스텔라는 찰나 샬롯과 눈이 마주쳤다.

    그 순간 그녀의 눈매가 부드럽게 휘어졌다. 굉장히 불길하게.

    ‘너 뭐 하려고……?’

    갑자기 샬롯이 무대를 한 바퀴 돌더니 장식으로 있던 검을 집어 들었다.

    평소에도 가만히 서서 공연을 하기보다는 무대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던 샬롯이기에 사람들은 환호했다.

    에리스텔라만 제외하고.

    ‘제기랄!’

    에리스텔라는 샬롯이 무슨 행동을 할지 알 것 같았다.

    위험해.

    에리스텔라의 머릿속에 최악의 가능성이 떠올랐다.

    많은 이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대담하게도 중요한 거래를 하는 저들이 만약 정체가 들통나게 되면 어떻게 나올까.

    난리를 피해 도망갈까.

    ‘아니. 저들은 도망가지 않을 거야.’

    에리스텔라는 그런 확신이 들었다.

    이미 흑마법사들은 조금씩 자신들의 존재감을 제국 곳곳에서 드러내는 중이었다.

    ‘오히려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차라리 이곳에서 자신들의 힘을 과시하는 쪽을 선택하겠지.’

    만일 그렇게 된다면 위험해지는 건 저들이 아니라 이곳에 참석해있는 수많은 사람들이었다.

    그러니 샬롯이 무슨 사고를 치기 전에 막아야 했다.

    하지만…… 샬롯은 지금 공연을 하는 중이었고, 모두가 주목하고 있는 샬롯을 막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역시나, 에리스텔라가 그녀를 말리기 위해 뭔가를 해 보기도 전에 샬롯이 먼저 움직였다.

    하지만 에리스텔라는 샬롯을 나무랄 수 없었다.

    그녀의 공연은 존중받아야 마땅하고 흑마법사들의 뒷거래 수단으로 이용되어선 안 됐다.

    샬롯은 마치 검무를 추듯 유려한 몸짓으로 검을 빼들더니, 관객들 너머의 밀거래자들을 검끝으로 정확히 가리켰다.

    샬롯의 극적인 연출을 기대한 관중들의 시선이 온통 그곳으로 몰렸다.

    “이 검에 닿는 자는 가면을 벗고 추악한 얼굴을 드러내리니. 설령 모두를 속일지라도 끝내 밝혀지는 진실을 피할 수 없으리라.”

    샬롯의 비장한 노래가 절정에 이르고 있었다.

    사람들은 이 역시 극의 일부라고 여겼다.

    하지만 에리스텔라는 똑똑히 봤다. 샬롯의 눈이 광기로 빛나는 것을.

    샬롯의 검 끝을 따라 순식간에 쏟아지는 시선.

    정확히 거래하는 이들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어머. 저기 지금 뭐 하는 거야?”

    “글쎄. 혹시 특별 출연 그런 건가?”

    극장 관계자들마저 공연의 깜짝 이벤트라고 생각했는지 흑마법사를 향해 조명을 비췄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에리스텔라가 눈을 부릅떴다.

    조명 담당자는 누구야? 일부러 자극하려는 것도 아니고 뭐 하는 짓이야.

    에리스텔라가 마구 짜증을 내며 짧은 다리로 열심히 달렸다.

    그러나 에리스텔라는 곧 깨달았다. 두 사람을 향해 조명을 비추는 건 실수가 아니라는 것을. 샬롯의 소름 돋는 목소리가 이를 증명하고 있었다.

    아차 하면서 돌아봤을 때는 이미 늦은 상태였다.

    “공연은 여기까지입니다. 내 노래는 흑마법사들이 밀거래하는 배경이 되어 줄 수 없거든요.”

    샬롯이 노래의 선율이 조금도 담겨 있지 않은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단호하게 선언했다. 이에 곧바로 주위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하나씩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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