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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가의 여우 황녀님 (41)화 (41/123)
  • 41.

    ***

    오페라 연회는 여타 다른 연회와 참석하는 사람들도, 그들의 차림새도 달랐다.

    한결 편안한 분위기 덕에, 다른 자리에서는 보기 힘든 화려하고 대담한 의상을 선보였다. 잠시 격식을 내려놓고 자유롭게 즐기는 자리.

    그렇기에 많은 귀족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연회이기도 했다.

    다만, 하인리시온은 이런 연회에 한 번도 참석한 적 없었다.

    ‘히히. 이왕 가는 거 당연히 제일 멋진 모습으로 가야지.’

    에리스텔라가 하인리시온을 향해 눈에 불을 켰다.

    “공식 연회도 아니니 그냥 적당히 입고 가면…….”

    ‘에헤이. 안 되지. 그럼 안 돼.’

    준비과정에서부터 하인리시온과 에리스텔라 사이에서 의견충돌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그리고 그 결과, 당연히 에리스텔라의 승리였다.

    덕분에 하인리시온의 복장이 이전과는 다르게 밝고 화려했다.

    “대체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야?”

    하인리시온이 불만스럽게 중얼거렸다.

    [샬롯의 공연을 제대로 보는 건 처음이란 말야. 옷으로라도 성의를 보이고 싶어.]

    에리스텔라가 하인리시온의 모습을 빤히 보더니 씩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잘 어울려.]

    하인리시온은 에리스텔라가 분명 얄밉게 놀리며 장난스러운 농담을 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자연스럽게 나온 에리스텔라의 진심에 불평 한마디 할 수 없었다.

    오히려 옷매무새를 한 번 다듬고서 입을 열었다.

    “그럼 출발해 볼까.”

    ***

    귀족과 황족을 비롯해, 비록 신분은 조금 낮아도 언제나 소문을 몰고 다니는 유명인사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하지만 오페라 연회는 모두가 함께 노래와 무대를 즐기기 위한 자리였다. 그러다 보니 이곳에서만큼은 귀족들보다 가수와 배우들이 더 주목받았다.

    그중에서도 샬롯은 독보적인 존재감을 뽐내며 유난히 빛나고 있었다.

    “대공 전하. 이리 와 주셔서 감사해요.”

    미리 연락을 받고 연회장에 와 있었던 샬롯이 하인리시온과 에리스텔라가 들어오는 모습을 발견하자마자 다가와 인사했다.

    일부러 사람들에게 보여 주기 위한 행동이었다.

    “초대해 주었으니 당연히 와야지. 오늘 무대를 무척이나 기대하고 있어.”

    “오늘 부디 즐거우셨으면 좋겠어요.”

    샬롯과 하인리시온이 능청스럽게 친밀한 분위기를 내며 대화를 나누자 모두가 힐긋거리며 훔쳐봤다.

    이로써, 오늘 샬롯은 연회에서 모두의 관심을 받게 되었다.

    그렇지 않아도 화제의 중심인 샬롯이 대공과 친밀해 보이기까지 하자 호기심을 참지 못한 영애들이 먼저 말을 걸어왔다.

    샬롯은 어느새 그들과 어울려 많은 이야깃거리를 뽑아내고 있었다.

    “황녀가 재수 없기는 했죠.”

    그뿐 아니라, 에리스텔라를 험담하는 무리에 섞여들어서는 가장 열띤 모습으로 대화에 참여했다.

    ‘저거 진심 같은데.’

    그 모습을 지켜보던 에리스텔라의 눈매가 가늘어졌을 때였다.

    “그나저나 황녀한테 진귀한 보물들이 참 많았는데요. 그게 전부 어디로 갔을지.”

    샬롯이 목소리를 은근하게 낮추며 원래 목적이었던 화제를 슬쩍 꺼냈다.

    “하긴. 대단한 물건들이 많기는 했죠. 욕심도 많지.”

    “어떻게 하나 구하고 싶은데 말이에요.”

    샬롯이 일부러 에리스텔라의 물건을 탐내는 척하며 유도했다.

    “요즘 황녀의 물건들이 시장에 나오고 있다는데, 혹시 아세요?”

    그러자 대화 내내 은근히 샬롯과 하인리시온의 친분에 대해 궁금해하던 한 영애가 미끼를 물었다.

    샬롯이 원하는 정보를 주고 자신이 원하는 정보를 얻고자 하는 속셈인 듯했다. 그녀는 소수의 사람만 알고 있는 일이라는 듯 은밀하게 속삭였다.

    오. 샬롯의 눈이 반짝거렸다.

    “출처는 확실하다더라고요. 근데 너무 비싸서…….”

    “그거 욕심나는데요?”

    샬롯이 정보를 물었다.

    설마 했는데 황녀의 물건이 밖에 나돌고 있다니. 샬롯이 관심을 보이며 좀 더 캐물었다.

    “혹시 경로를 소개해 주실 수 있나요? 하나쯤 가지고 있으면 가치가 있을 거 같은데…….”

    “그게 아무래도 민감한 물건이라서요.”

    “제가 값은 제대로 치르긴 할 텐데요.”

    “정 그러면…….”

    영애가 샬롯에게만 들릴 정도로 작게 귓속말로 말했다. 그 말을 듣는 내내 샬롯의 입꼬리가 씰룩였다.

    ***

    에리스텔라의 시녀였던 그레타 레테른 후작 영애는 그 무리는 연회에서도 유독 눈에 띄었다.

    지난번 황궁 연회에서도 본 적이 있기는 한데.

    에리스텔라가 가만히 시선을 두고 있는데 어느새 샬롯이 다가왔다.

    샬롯과 시선을 주고받은 하인리시온은 에리스텔라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에리스텔라가 하인리시온의 손바닥을 디딤대 삼아 폴짝 뛰었다.

    그리고 다시 테이블 위로 폴짝 뛰어 순식간에 샬롯의 옆으로 이동했다.

    샬롯은 그 모습을 흥미롭게 구경하더니 입을 열었다.

    “저기 라테른 후작 영애는 내가 일부러 초대했어. 저기만큼 너를 흉볼 이들은 또 없으니까.”

    ‘너 엄청 적극적이다?’

    “도와주기로 했으니까 확실히 해야지.”

    에리스텔라의 시선을 단번에 이해한 샬롯이 찡긋 웃으며 가볍게 휘파람을 불었다. 에리스텔라가 황당해하며 바람 빠진 웃음을 흘렸을 때였다.

    듬뿍 사랑받은 티가 나는 소녀가 해사한 미소를 지으며 그레타에게 다가갔다.

    “너도 알지? 그레타 라테른 후작 영애의 동생 레일라 라테른이야.”

    샬롯이 그레타에게 살갑게 팔짱을 끼는 레일라를 눈짓하며 다른 사람들에게는 들리지 않을 만큼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두 사람 관계가 좀 묘하지.”

    샬롯이 왜 그렇게 말하는지 에리스텔라도 알고 있었다.

    “동생은 영악하게 필요할 때만 언니한테 살갑게 구는데, 그레타 라테른은 동생을 엄청 아낀단 말야. 보통이라면 그 반대여야 하는데.”

    레일라 영애는 그레타 라테른의 이복동생이었다.

    그레타 라테른의 어머니는 그녀를 낳고 오래 살지 못했다. 후작이 곧바로 재혼한 현재의 후작 부인이 낳은 자식이 레일라 라테른이었다.

    하지만 사교계의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레타와 레일라는 태어난 달의 차이가 있을 뿐 동갑이었으니까.

    “의외지?”

    그래서 에리스텔라는 샬롯의 물음에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기억이 불쑥 떠올랐다.

    예전에 레일라가 언니를 만나러 왔다는 핑계로 황녀궁을 방문해서 에리스텔라에게 눈도장을 찍으려 했던 적이 몇 번 있었다.

    ‘그런데 그때 그레타의 반응은 지금이랑은 좀 달랐었지.’

    에리스텔라가 두 사람을 예의주시하며 지켜보고 있으니 샬롯이 말을 보탰다.

    “그래서 일부러 레일라 영애도 초대했어.”

    샬롯에게서 짓궂은 미소가 떠올랐다가 태연하게 사라졌다.

    “빼돌려진 황녀의 물건이 유통되고 있다는 걸 흘린 사람도 레일라 영애거든.”

    ‘어……?’

    “레일라 영애가 한낮의 티파티에서 와인으로 과음을 해서 말실수를 한 거라네.”

    과음으로 추태를 부릴 뿐만 아니라 비밀까지 퍼뜨리다니.

    레일라 영애가 종종 철없는 행동을 해서 그레타 라테른이 수습하느라 애를 먹는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있기는 한데, 그 정도일 줄은 몰랐다.

    “제국에서 막무가내로 유명한 황녀도 그런 실수는 저지르지 않는데 말이야. 안 그래?”

    샬롯의 농담에 에리스텔라가 눈을 흘기자 그녀가 가볍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은밀하던 거래가 그 일을 계기로 공공연한 비밀이 된 거지.”

    암암리라는 건 드러내놓고 말하지 않을 뿐 사교계에서 정보에 민감한 이들이라면 대부분 알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샬롯의 목소리가 한층 더 낮게 가라앉았다.

    “그런데 레일라 영애가 어떻게 그런 정보를 알고 있었겠어? 출처가 가까운 곳이라는 거지. 다들 확신이 없을 뿐이지 비슷한 짐작을 하고 있더라고.”

    ‘그렇겠지. 너무 뻔할 정도니까.’

    에리스텔라의 시선이 그레타 라테른의 중심으로 모여 있는 무리로 향했다. 한참 그녀의 옆에 있던 레일라는 춤을 추기 위해서 자리를 떠난 후였다.

    그레타의 곁에 남은 그들은 에리스텔라의 시녀들이었다.

    의심이 확신이 되어 가고 있는 에리스텔라의 얼굴이 더는 참지 못하고 일그러지려고 할 때였다.

    “때마침 황녀궁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이 있잖아. 그지?”

    샬롯 역시 비슷한 생각을 하는지 싸늘한 목소리로 비아냥거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녀가 장난기 머금은 채로 말을 이었다.

    “내가 저기 가서 네 뒷담화 좀 하면서 확인해 볼게.”

    ‘…….’

    “걱정하지 마. 욕하는 건 또 자신 있으니까.”

    특히나 대외적으로 샬롯은 에리스텔라 황녀를 굉장히 원망하고 있다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니 샬롯은 에리스텔라의 험담에 있어서만큼은 최적의 인물이었다.

    샬롯이 근거 있는 자신감으로 움직이려고 할 때였다.

    의미심장하게 쳐다보는 에리스텔라와 샬롯의 눈이 마주쳤다.

    ‘샬롯. 너 그냥 나 욕하는 게 재밌어 죽는 거 같은데?’

    에리스텔라가 연회 내내 품고 있던 의문을 꺼냈다.

    에리스텔라가 예리한 눈빛으로 추궁하자 샬롯의 고개가 갸우뚱 기울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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