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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가의 여우 황녀님 (21)화 (21/123)
  • 21.

    저 귀걸이는 에리스텔라가 어릴 적 마력 조절을 위해 썼던 물건이었다.

    그건 곧 귀걸이에는 에리스텔라의 마력이 담겨 있다는 뜻이었다.

    죽은 마법사의 마력이 깃든 물건.

    그건 자연에서 나오는 마력석과는 다른 결로 마력을 지니고 있는 물건이었다.

    그렇기에 그 자체만으로도 가치가 있었다. 특히 에리스텔라 같은 대마법사의 마력이 깃들어 있는 것은 천문학적인 금액으로 거래가 되고는 했다.

    하지만 이건 단순한 절도가 아니었다.

    ‘죽은 마법사의 마력은 저항력이 없지.’

    그렇기에 다른 성분과 쉽게 섞이기도 했다.

    이건 연구 차원에서는 도움이 되지만 안 좋은 방향으로 활용하려 든다면 치명적인 결과를 낳을 수도 있었다.

    그렇기에 제한된 경우에서만 허락되는 연구이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위험한 방법이 바로 흑마법과의 융화지.’

    이로써 아주르디 백작 부부가 흑마법과 연루되어 있다는 것은 확실해졌다.

    그들은 에리스텔라의 마력이 깃든 물건을 이용해 흑마법 연구를 하려는 것이다.

    아주르디 백작가 역시 마법사를 배출하는 가문인 만큼 가능성은 더욱 높았다.

    에리스텔라의 눈가가 분노로 잘게 떨렸다.

    그들이 이대로 나가게 둘 수 없었다.

    ‘붙잡아야 해.’

    이대로 여기를 나가게 둘 수 없었다. 에리스텔라가 나서려는 순간이었다.

    황녀궁의 문이 열렸다. 아주르디 백작 부부가 연 게 아니었다.

    바깥에서 열린 문.

    그리고 익숙하면서도 낮고 싸늘한 목소리가 울렸다.

    “여기서 뭐 하고 있지.”

    하인리시온 나이스 타이밍!

    완벽한 순간에 나타난 그를 본 순간 에리스텔라는 손뼉을 마구 치면서 환호성을 지를 뻔했다.

    ***

    하인리시온이 황녀궁으로 향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하인리시온은 에리스텔라의 움직임을 계속해서 눈여겨보고 있었다. 그녀가 종종걸음으로 연회장을 빠져나가는 모습 역시도.

    오늘 이곳에 오고 싶어 한 이유를 에리스텔라가 그에게 전부 말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를 믿을 수 없다는 거겠지.’

    황녀궁으로 향하는 길.

    하인리시온의 미간이 점점 좁혀졌다. 황녀궁에 가까워져 갈수록 제대로 된 경비조차 되어 있지 않았다. 마치 버려진 공간 같았다.

    황녀궁에 가까워질수록 하인리시온의 기분이 점점 무거워졌다.

    그런데 도착한 황녀궁 에리스텔라의 침실에는 에리스텔라 혼자가 아니었다.

    ‘이건 예상 못 했는데.’

    하인리시온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꽤나 흥미진진한 상황이었다.

    황녀궁에 에리스텔라가 아니라 아주르디 백작 부부가 있을 줄이야.

    하인리시온의 입꼬리가 느른하게 올라가며 입을 열었다.

    “아주르디 백작께서 여긴 무슨 일입니까?”

    하인리시온이 빠르게 방 안을 살폈다.

    구석에 몸을 반쯤 숨기고 있는 여우 한 마리가 보였다.

    그리고 다시 아주르디 백작 부부를 보니 그들이 손에 쥐고 있는 물건이 눈에 띄었다.

    하지만 하인리시온은 그걸 자신이 알아차렸다는 내색을 하지 않았다.

    괜히 아주르디 백작 부부가 그 물건을 숨겨 버리면 곤란하지 않나.

    어차피 아주르디 백작 부부는 하인리시온의 갑작스러운 등장 때문에 당황해 주변을 살필 여유가 없었다.

    다만, 한 가지 의문점을 찾아내었다. 자신들만큼이나 하인리시온이 여기 있는 것 역시도 부자연스럽다는 것을.

    “저, 전하가 여기는 어떻게?”

    아주르디 백작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와 같은 걸 궁금해하시는군요.”

    하인리시온의 한쪽 입꼬리가 매끄럽게 올라갔다.

    아주르디 백작 부부는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끼며 식은땀을 흘렸다.

    “제 여우가 사라져서 말입니다. 찾다 보니 여기까지 왔습니다.”

    오늘 하인리시온이 여우 한 마리를 데리고 왔다는 것을 모르는 이들이 없었다.

    사라진 여우를 찾아 여기까지 오다니 하인리시온 대공답지 않았다.

    “여우는 여기에 없…….”

    아주르디 백작이 말하는 순간 눈앞에 뭔가가 휙 지나갔다.

    ‘나 여깄어!’

    에리스텔라가 하인리시온의 품 안으로 폴짝 뛰어 올라갔다.

    “역시 여기 있었구나.”

    하인리시온이 천연덕스럽게 찾고 있던 여우를 반가워했다.

    에리스텔라 역시 지지 않고 하인리시온의 품에 머리를 비비며 주인을 만나 기뻐하는 여우 행세를 했다.

    “……거기 있네요?”

    아주르디 백작이 넋이 나간 얼굴로 하인리시온과 여우를 번갈아 바라봤다.

    두 사람은 여우가 같은 공간에 있었던 걸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방금 자신들의 모습을 여우가 전부 봤다는 사실에 눈동자가 떨렸다.

    하지만 그래봤자 사람이 아닌 여우일 뿐이었다.

    ‘하. 괜히 긴장했네. 동물이 봐 봤자 뭘 안다고.’

    아주르디 백작 부부의 긴장이 풀리며 자신감을 찾았다.

    물론, 하인리시온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겨우 찾았던 자신감이 순식간에 사라지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럼 이제 알려 주시죠.”

    “네? 뭐, 뭘 말씀하시는 건지…….”

    “어째서 여기 계시는 겁니까?”

    하인리시온이 정중하게 물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제대로 된 대답을 하지 못한다면 각오해야 한다는 것쯤은 아주르디 백작 부부에게 충분히 전해졌다.

    에리스텔라가 수신호를 보냈다.

    의심. 위험. 수상.

    위급상황을 대비한 수신호 중 하나였다.

    하인리시온의 서늘한 시선이 아주르디 백작을 향했다.

    방금까지 당황해하던 아주르디 백작은 어느새 표정을 갈무리하며 뻔뻔하게 입을 열었다.

    “저희는 아직 황녀 전하께서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습니다. 혹여나, 여기서 뭔가 황녀 전하를 찾을 수 있는 단서가 있지 않을까 싶어서 와 본 겁니다.”

    “그럼 정식으로 요청하면 될 일 아닌가.”

    “이미 장례까지 치렀습니다. 그런데 저희가 계속 찾겠다고 하는 것은 폐하의 뜻을 거스르는 일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몰래 숨어서 하는 수밖에 없었음을 이해해 주십시오.”

    아주르디 백작 부부가 척척 말을 맞춰 나갔다.

    에리스텔라가 보기에는 가증스럽게도 잘 꾸며낸 말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그대로 믿을 것 같았다.

    ‘내가 여기 있는데, 거짓말은!’

    다만, 그렇기에 에리스텔라의 불쾌함은 더욱 높아졌지만 말이다.

    ‘설마 저 허무맹랑한 말을 믿는 거 아니겠지?’

    에리스텔라가 못 믿겠다는 얼굴로 하인리시온을 쳐다봤다.

    “그렇습니까.”

    ‘시온!’

    하인리시온의 담담한 대답에 에리스텔라가 버럭 외쳤다. 누군가에게 목소리가 닿지 않아 이토록 답답한 적은 처음이었다.

    이대로 믿는다면 절대 가만두지 않겠다고 씩씩거리며 노려볼 때였다.

    “저, 저희는 이만 연회장으로 돌아가 봐야겠습니다.”

    아주르디 백작 부부가 이 틈에 얼른 자리를 떠나려고 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아래 떨어져 있던 귀걸이를 만졌다.

    여기까지 왔는데 놓고 갈 수는 없어서 가져가려고 하는 것이었다.

    그 모습을 포착한 에리스텔라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에리스텔라는 바로 이 순간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주르디 백작 부부가 에리스텔라의 귀걸이를 손에 꽉 쥐는 순간을.

    강력한 마력을 지닌 물건이 흑마법과 잘 융화되는 데에는 한 가지 전제조건이 필요했다. 바로, 죽은 마법사의 물건이라는 것.

    하지만 황녀 에리스텔라는 죽지 않았다. 비록 여우의 모습을 하고 있을지언정 살아 있었다.

    그러니 그들이 기대하는 반응은 나타나지 않았다.

    역으로—

    에리스텔라의 물건을 건드리는 순간 부작용이 발생할 것이다.

    “아주르디 백작.”

    하인리시온이 그들을 부르며 붙잡았다.

    에리스텔라의 시선은 백작 부부가 잡고 있는 물건을 향해 있었다.

    “황녀를 찾고 있다는 얘기를 좀 더 자세히 듣고 싶은데. 그동안 알아본 것들에 대해서 알려 주시겠습니까.”

    하인리시온이 일부러 대화를 이어 나갔다.

    “애석하게도 아직은 별다른 진전이 없습니다. 혹, 뭔가 알게 되는 게 생기면 곧바로 알려 드리겠습니다.”

    “그렇습니까. 그럼 혹 지금 가져가는 물건도 그 이유 때문입니까.”

    “에? 마, 맞습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요. 하하…….”

    “제가 좀 봐도 될까요?”

    하인리시온의 관심에 아주르디 백작 부부가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황녀의 마력이 담겨 있다는 것을 숨기기 위해 귀걸이에 자신들의 마력을 넣고 있었다.

    “정 그러시다면…… 이, 이게 뭐야……?”

    갑자기 아주르디 백작과 백작 부인의 몸이 고장이라도 난 것처럼 순서대로 경직되었다.

    몸의 이상을 눈치챈 듯 눈가에 경련이 일었다.

    통제가 되지 않고 멋대로 떨리는 팔. 자세히 보면 손톱 끝부터 조금씩 썩은 것처럼 어두운 색으로 변해 가고 있었다.

    그 모습에 에리스텔라의 눈매가 가느스름해졌다.

    역시나.

    ‘흑마력에 반응이 일어났어.’

    귀걸이에서 거부 반응이 일어났다.

    아주르디 백작 부부가 흑마법과 연루되어 있다는 확실한 증거였다.

    하인리시온 역시 그들의 상태를 보자마자 알아차린 것 같았다.

    그의 표정이 단번에 살벌해졌다.

    패닉에 빠져 있던 아주르디 백작 부부 역시 서서히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차리는 것 같았다.

    그들이 충격받은 얼굴로 비명을 질렀다.

    “이, 이럴 리가 없는데…… 설마……! 황녀가 아직 살아 있는 건가!”

    “말도 안 돼!”

    백작 부부의 얼굴이 경악으로 가득 차 새파래졌다.

    방금까지 황녀의 죽음을 믿지 않는다고 말하던 것과는 너무나 상반된 반응이었다.

    그들의 눈동자가 천천히 굴러 하인리시온을 확인했다. 조금도 놀라지 않은 평온한 상태의 모습에 깨달았다.

    그들은 또 다른 충격에 빠졌다.

    “황녀가 죽지 않은 걸 알고 있었습니까?”

    “…….”

    “지금 황녀는 어디에 있습니까?”

    어쭈. 바로 말이 짧아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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