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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가의 여우 황녀님 (7)화 (7/123)
  • 07.

    ***

    하인리시온은 그녀의 장례식이 진행될 때까지도 에리스텔라가 정말 죽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와의 관계나 그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와는 별개의 문제였다.

    그가 아는 에리스텔라는 강했다. 결코 이렇게 허무하게 죽을 리 없었다.

    그렇기에 그는 에리스텔라가 살아 있다면…… 어쩌면 자신의 장례식이 치러지는 곳에 보란 듯이 나타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찾았었다.

    그리고 그날, 성당 앞에서 에리스텔라 대신 여우가 그의 앞에 나타났다.

    사실, 하인리시온은 여우를 처음 본 순간부터 의심하고 있었다.

    하얀 여우. 길거리에 흔하게 돌아다닐 수 있는 동물이 아니었다. 길 위의 생활에 지친 동물이 주인을 찾은 것이라고 여기기에 하얀 여우는 그 정체가 의심스러웠다.

    게다가 여우의 눈동자.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그 신비로운 금안은 결코 평범한 동물의 것이 아니었다.

    하인리시온만큼은 못 알아볼 수가 없었다.

    어린 날에 그가 황녀궁에서 만났던 여우를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으니까.

    그 어린 여우의 눈동자 역시 금빛이었다. 그는 이미 확신하고 있었다.

    어린 날에 보았던 그 여우라고.

    여우를 달라는 그의 간절한 부탁을 황녀가 거절했을 때, 어린 하인리시온은 자신에게는 주지 않고 여우를 다른 곳으로 보내 버린 게 아닐까 생각하며 속상해하고는 했었다.

    하지만, 한참이 지나서 하인리시온은 그날 이후로 여우를 몇 번 더 본 적이 있었다. 생각해 보면 이상한 타이밍이었다.

    에리스텔라와 함께 있다가도 그녀가 어딘가로 사라지고 나면 여우가 나타나고는 했다. 게다가 여우는 마치 사람의 말을 전부 알아듣는 것 같았다.

    그리고 여우를 마지막으로 본 날에 알아차렸다. 황녀의 금안과 여우의 금안이 같다는 것을.

    여우를 보며 그 사실을 무심코 내뱉은 이후로, 하인리시온은 여우를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그때부터, 하인리시온은 그 여우가 어쩌면 황녀일지도 모른다고 오래전부터 의심하고 있었다.

    에리스텔라는 땀이 삐질삐질 나오는 것 같다.

    이미 분위기는 하인리시온이 그녀를 심문하듯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뭔가 문제가 생긴 것 같은데.”

    뜨끔. 에리스텔라가 놀라 제자리에서 흠칫 떨었다.

    그걸 놓치지 않은 하인리시온이 속내까지 전부 탈탈 털어 낼 것 같은 날카로운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 문제가 여우인 척 연기까지 하면서 나를 찾아온 것과 이어지겠지?”

    하인리시온이 스스로에게 묻듯이 중얼거렸다.

    “나한테 원하는 게 있다는 건데…….”

    에리스텔라를 바라보는 하인리시온의 시선이 의심하듯 가느스름했다.

    그 시선을 받을 때마다 그녀의 심장이 쿵 하고 떨어졌다. 심장이 벌렁벌렁하고 입안은 바짝바짝 말랐다.

    하인리시온의 고개가 옆으로 기울어지더니 의미심장하게 입을 열었다.

    “대마법사이신 황녀 전하에게는 없지만 나에게는 있는 게 뭘까. 아, 혹시 그건가. 가문이 오래도록 연구해 오던 마법사 자료 같은 것들.”

    혼자서 그렇게 척척 다 알아낼 거면 나한테 묻기는 왜 물어!

    에리스텔라의 눈가에 억울한 눈물 한 방울이 맺혔다.

    하지만 하인리시온은 원성을 가득 담은 눈빛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현재 상황에 대한 조각을 맞추는 데 전념했다.

    “그럼 그중에…… 흑마법이겠군.”

    ‘……!’

    대체 어떻게 거기까지 아는 거지.

    에리스텔라는 숨길 수 없을 만큼 눈이 휘둥그레졌다.

    “프루투 영지에서 수색할 때 흑마법의 흔적을 발견한 적이 있었지.”

    하인리시온이 확신을 가진 채 말을 이었다.

    “흔적만 남아 있어서 정확히 무슨 목적으로 사용된 건지까지는 알아내지 못했었는데, 여기에 쓰였던 건가.”

    에리스텔라가 부정하지 않고 시선을 아래로 내리깔았다. 그의 생각이 맞다는 소심한 반응이었다. 그걸 확인한 하인리시온의 집요하던 표정이 살짝 풀어지며 조금은 가볍게 입을 열었다.

    “흑마법에 관한 정보가 있을 만한 곳이 별로 없으니까. 너는 내 저택을 노린 거고.”

    에리스텔라의 눈이 번쩍 뜨였다!

    ‘노리다니. 아 다르고 어 다른 법인데, 표현이 너무하잖아!’

    에리스텔라는 항변하고 싶었지만 무리였다. 표현이 조금 다를 뿐이지 틀린 말은 아니었으니까.

    그녀의 반응에 자신의 예상이 전부 맞다는 사실을 확인한 하인리시온이 느른하게 입꼬리를 늘리며 입을 열었다.

    “그래서 지금 은근슬쩍 내 집에 들어앉겠다는 속셈인가 본데. 누구 맘대로?”

    역시. 그냥 넘어가 주지 않는구나.

    눈앞이 캄캄했다.

    이런 상황을 아예 생각해 보지 않은 건 아니었다.

    정체를 들키게 될 경우에는, 어떤 방법으로 그를 설득할지. 나름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생각해 놓기는 했었다. 하지만 갑자기 이런 상황에 맞닥뜨리고 보니, 막막했다.

    ‘도저히 나를 내쫓을 수 없을 만한 이유를 만들어 내야 하는데…… 미치겠다.’

    하인리시온의 집요한 눈빛이 그녀를 계속 따라다니고 있어서 털이 쭈뼛쭈뼛 곤두서고 뒤통수가 따끔거릴 지경이었다.

    “여우야.”

    ‘……!’

    하인리시온이 가볍게 흥얼거렸다.

    “여우야.”

    감미로운 목소리가 그녀를 압박했다.

    “뭐 하니.”

    장난치듯 흥얼거리던 하인리시온의 표정이 돌연 단호해졌다.

    “내가 종이랑 펜을 가져다줄 테니까 직접 적을래?”

    “…….”

    그녀에게서 답을 듣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이거 위험해.

    어떻게 그의 시야에서 빠져나갈지 고민에 빠졌을 때였다.

    똑똑.

    그녀를 구원하는 소리가 들렸다.

    에리스텔라가 펄쩍 뛰며 어서 들여보내야 하지 않겠냐고 신호를 보냈다. 하지만 하인리시온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였다.

    ‘왜 나만 보고 있는 거야!’

    미치겠네, 진짜!

    시위라도 하고 싶은 충동이 들 때였다.

    똑똑. 똑똑.

    참지 못하고 연이어 두드리는 문.

    “전하. 잠시 들어가겠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어딘가 조급해하는 목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로웬이 들어왔다.

    그제야 하인리시온은 에리스텔라에게서 시선을 떼고 돌아섰다.

    ‘후…… 살았다.’

    살다가 로웬이 이렇게 반가울 줄이야.

    역시 사람은 오래 살고 봐야 한다니까.

    로웬의 등장에 에리스텔라의 얼굴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그녀는 로웬이 하인리시온의 신경을 다른 곳으로 돌려 주기를 바라며 눈을 빛냈다.

    좋아. 이대로 하인리시온을 데리고 나가 주면 더 좋지!

    그런데 그녀의 응원을 받은 건 로웬이 아니라 하인리시온인가 보다.

    하인리시온이 갑자기 고개를 돌리더니 가느스름한 눈매로 에리스텔라를 지그시 쳐다봤다. 물론, 그녀는 빠른 순발력으로 아무것도 모른다는 얼굴로 딴청을 부렸지만.

    하지만 로웬이 하인리시온과 에리스텔라 사이의 미묘한 기류를 눈치채기에는 지금 당장 그가 가져온 문제가 먼저였다.

    “전하. 다소 급한 문제가 생겼습니다.”

    보고하는 로웬의 얼굴이 심각해 보였다.

    방금까지 로웬의 등장에 안도하며 좋아하던 에리스텔라도 걱정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걱정은 잠시 에리스텔라가 빠르게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었다.

    그녀에게 지금 가장 중요한 건 일단 시간을 버는 일이었다.

    여기서 더 몰렸으면 빠져나가지 못했을 거야. 그러면 하인리시온이 나를 받아 줄 리 없지.

    하인리시온에게 문제가 생긴 동안 에리스텔라는 자신을 거둘 수밖에 없는 이유를 만들어야 했다.

    여우의 작은 머리가 바쁘게 움직였다.

    “전하. 하벨링 후작가에서 찾아왔습니다.”

    로웬의 보고를 듣자마자 하인리시온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에리스텔라는 하인리시온의 작은 변화도 재빠르게 눈치챘다. 그의 표정에는 벌써부터 피곤하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공자님도 함께입니다.”

    로웬의 얼굴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하벨링 후작가의 소공자. 레이튼 하벨링.

    그는 하인리시온의 조카였다.

    정확히는 하인리시온의 이복형이 데릴사위가 되어 결혼한 올리비아 하벨링 후작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1년 전에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레이튼이 유일한 후계자였다.

    문제는 열다섯 살이 되지 않은 후계자는 가문을 이을 수 없다는 점이었다.

    다만 다른 후계자가 없다면 후계자가 열다섯이 될 때까지 후견인이 그를 보필하는 제도가 있었다.

    레이튼과 함께 온 패트릭은 현재 레이튼의 후견인이었다.

    에리스텔라가 흘깃 하인리시온을 바라봤다.

    “일단 만나야겠지.”

    하인리시온이 몸을 일으켰다.

    그가 걸음을 옮기기 전에 에리스텔라를 돌아봤다. 잠시 고민하는 것 같았지만 그녀를 데리고 갈 생각은 없는 듯 그대로 응접실로 향했다.

    에리스텔라는 조용히 뒤로 물러났다. 무슨 일인지 궁금하기는 하지만 지금은 하인리시온의 눈에 최대한 띄지 않는 게 더 중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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