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롤로그 (1/30)
  • 프롤로그

    “이리 와요, 로즈니아. 날 도와주겠다고 약속했잖아요.”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남자가 나를 향해 손을 뻗으며 말했다.

    흐린 등잔불이 밝히고 있을 뿐인 어둠 속에서도 그의 미모는 바래지 않고 선명했다.

    부드러운 백금발은 하얗게 윤을 내며 반짝였고, 선명한 에메랄드빛 눈동자는 마치 보석 같았다. 남자는 천상에 피어난 꽃처럼 아름다웠다.

    이 남자에게 반해선 절대 안 된다는 것을 알지만, 내 심장은 속절없이 두근거렸다.

    난 그를 힐끔거리며 소심하게 한 발자국 다가갔다. 그러자 애타는 듯한 한숨 소리가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로즈, 더 가까이 와요. 그래야 접촉할 수 있죠.”

    “……이번엔 손만 잡으면 안 될까요?”

    머뭇거리다 부탁하자, 그가 잘생긴 입매를 살짝 끌어 올리며 물었다.

    “나랑 손만 잡고 싶어요? 정말로?”

    ……아니요, 그럴 리가요. 공작님처럼 아름다운 사람과 어떻게 손만 잡고 싶을 수가 있겠어요?

    ‘하지만, 당신과 여기서 더 가까워지는 건 곤란하단 말이에요……!’

    당신은 이 세계의 주인공이고, 나는 악역 마탑주의 여동생이니까!

    그 말을 차마 입으로 꺼낼 수는 없어, 나는 그저 고개만 가로저을 뿐이었다.

    그 반응을 어떻게 해석한 것인지, 그가 안도한 듯 웃으며 이야기했다.

    “그렇군요. 다행이에요, 나만 로즈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서.”

    “……네?”

    내가 잘못 들었나? 누가 누굴 좋아한다고?

    눈을 크게 뜬 채 쳐다보자, 그가 의아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했다.

    “설마 아직도 모르고 있었어요? 내 마음?”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목소리로 그가 물었다. 나는 어안이 벙벙한 채로 그를 응시할 뿐이었다. 그럼 설마, 그 말들이 다 진심이었어?

    ‘아, 너무 좋아요…….’

    ‘로즈니아, 좋아해요…….’

    지난 며칠, 우리가 나눴던 숱한 밤. 그 시간 동안 나에게 속삭였던 말들이 전부……?

    ‘그냥 분위기에 취해 한 말인 줄 알았는데……?’

    “……무슨 착각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하룻밤 관계로 끝낼 사이에 좋아한다는 말을 함부로 하지 않아요.”

    그가 답답하다는 듯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나는 멍하니 눈을 깜박거리다가, 정신을 차리고 살그머니 물어보았다.

    “그럼요……?”

    “그럼?”

    “그러니까, 우리가 이러다 말 관계……가 아니라는 뜻인가요?”

    “……이러다 말 관계?”

    갑자기 그의 분위기가 한겨울처럼 싸늘해졌다.

    닿아 오는 한기에 나도 모르게 주춤거리며 물러나자, 그는 또 한숨을 쉬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날 향해 천천히 다가오며 그가 또박또박 말했다.

    “우리 관계는, 로즈.”

    “네…….”

    “한번 시작한 이상, 되돌릴 수 없어요.”

    “그 말은…….”

    어느샌가 내 앞에 다다른 그가 비딱한 미소를 지으며 내 팔을 잡고 홱 끌어당겼다.

    바로 그의 품 안에 떨어지게 된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올려다보았다.

    달빛처럼 온화한 플래티넘 블론드, 최상급 에메랄드처럼 맑고 선명한 눈동자.

    신의 현신인 듯 아름다운 남자가, 무척 사랑스럽다는 듯이 나를 내려다보며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로즈, 당신은 앞으로도 계속 날 안아 줘요.”

    “…….”

    “나는 오직 당신에게만 안길 거예요.”

    천천히 고개를 숙인 그가 내 뺨에 살며시 입을 맞췄다. 옆으로 옮겨 간 그의 입술이 귓가에 닿자, 따뜻한 숨결이 귓바퀴를 간질이며 스며들었다.

    “그러니, 당신은 앞으로도 계속 나에게만 키스해 주고…….”

    “아, 저기, 흣…….”

    “나를 만져요, 원하는 만큼.”

    이내 마주쳐 오는 그의 신록빛 눈이 황홀한 감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나는 홀린 듯 그를 바라보다가, 아주 자그마한 목소리로,

    “네…….”

    하고 대답해 버렸다.

    원하는 답을 들었다는 듯, 그는 무척 기뻐하며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고개를 숙인 그가 나에게 입을 맞추었다. 한 꺼풀씩, 옷이 벗겨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드러나는 살결마다 그의 입술이 내려앉았고 그때마다 난 움찔 몸을 떨었다. 그의 손이 내 어깨와 등을 지나 허리를, 좀 더 깊고 은밀한 곳까지 능숙하게 어루만졌다.

    나는 터져 나오려는 신음을 꾹 참으며,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생각했다.

    그건 내가 이 소설, 《공작님의 유일한 반려》에 빙의한 지 20년째 되던 해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