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화 (2/134)
  • 2화

    * * *

    꿈틀.

    굳게 눌러 덮인 눈꺼풀 아래에서 눈알이 움직였다. 그걸 발견한 건 입이 찢어져라 하품을 하며 자리를 지키고 있던 견습 신관 셀린이었다.

    “어? 어어어?”

    쿠당탕!

    넘어지는 소리가 요란했다. 평소에도 경망스러운 행동으로 잦게 벌을 받는 자였다. 오늘 이렇게 시체처럼 누워 있는 ‘통로인’들을 지키는 당번이 된 것 역시 어제 대주교님이 지나가실 복도에 화병의 물을 엎지른 탓이지 않던가.

    아니, 사실 평소라면 그렇다고 한들 견습 신관인 그녀가 무려 통로인을 지키는 당번이 될 수는 없었을 것이다. 화병의 물은 그냥 핑계일 뿐. 셀린에게 당번 일이 돌아오게 된 건 이유가 있었다.

    산 채로 관에 누운 일곱 명의 통로인.

    이들이 이제 더는 쓸모가 없어졌기 때문이었다.

    신황청에서 1,000일 동안 갖은 치성을 드리며 올렸던 소환 기도 의식이 실패로 돌아갔다는 소문이 자자한 요즘이었다.

    ‘신성인’을 좀 더 안정적이고 확실하게 불러오기 위해 통로인이라는 제도를 설립한 700년 전부터 신황청은 단 한 번도 소환을 실패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의식이 끝난 지 일주일이 지났음에도 준비된 통로인 중 그 누구에게서도 반응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준비된 통로인이 강림할 신성인의 마음에 들지 않아 그런 거라는 여론이 서서히 힘을 얻고 있었다.

    규칙대로라면 최말단 지위인 셀린은 통로인의 근처에도 갈 수 없다. 이렇게 지키고 앉아 있는 것조차 부제 이상은 되어야 가능한 일.

    딱 내일까지만 기다려 보고 모조리 제 가문들로 돌려보낸다는 이야기를 엿들은 셀린은 자신에게까지 이런 일이 내려온 이유를 알게 되었다.

    통로인의 관을 지키는 건 신의 사도가 해야 하는 영광된 임무.

    그러나 돌려보내기로 결정이 난 거라면 마지막 밤을 지키고 앉는 것 따위, 귀찮고 잡스러운 일일 뿐이다.

    모든 사제와 부제의 관심은 오로지 ‘새롭게 발탁될 통로인이 누가 될 것이냐’에만 쏠려 있었다.

    그런데 졸음을 참느라 허벅지를 꼬집으며 앉아 있던 자신이 이런 대단한 걸 목격하게 될 줄이야.

    “시, 신성인입니다!”

    온 복도가 울리도록 쩌렁쩌렁 외치며 셀린은 어깨를 으쓱했다. 잠이 단박에 달아난 건 물론이다. 이제 내일이면 다들 저를 부러워할 테지. 신성인의 강림을 직접 보다니! 고작 견습인 내가!

    이걸로 한 10년은 으스댈 생각을 하며 비상종에 매달린 줄을 힘차게 잡아당기자 뎅겅뎅겅 소리가 났다.

    “선택받은 육신은 미친개… ! 아니, 큼! 여, 여름 울타리의 로에르멜에서 바친 딸입니다!”

    그 한 마디에 신황청이 발칵 뒤집혔다.

    * * *

    낯선 천장이었다.

    소설을 읽을 적에는 몰랐다. 눈을 뜬 지 딱 3초 만에 상황을 파악하고 그런 대사를 내뱉을 수 있는 사람은 저와는 달리 대범하고 똑똑한 인물이라는 것을 말이다.

    허나 현실은 저가 읽어 왔던 것들과는 꽤 달랐다.

    무늬나 솔기조차 없어 그냥 천을 잘라 뒤집어씌운 듯한 옷차림으로 처음 깨어났을 때, 그녀는 상황을 곧바로 파악하지 못했다.

    굳이 탓을 하자면 부서진 뗏목에 매달려 바다를 표류하기라도 하는 듯 의식이 몽롱한 게 이유였다.

    팔은 소금물에 절인 옷처럼 축 늘어졌고 두 다리는 이끼라도 껴 버린 듯 굳어 도무지 움직이지를 못했다. 심지어 말조차 쉬이 할 수가 없을 만큼 목구멍이 까끌거리고 아려 오지 않겠는가.

    죽기 직전의 산 사람인지 아니면 이미 죽어 꼼짝도 할 수 없는 몸인지는 모르겠으나 결론은 같았다. 눈꺼풀을 몇 번 깜빡이는 것조차 힘겨운 상태라는 것.

    [괜찮으셔요? 참, 그렇지! 강림 즉시 팔을 주물러드려야 한다고 배웠어요. 몸에 감각이 없으시지요? 원래 그런 거래요. 영혼이랑 육신이 분리되어 그런 거니까 며칠 지나면 괜찮아지실 거예요. 제가 도와드릴게요!]

    대체 뭐라고 하는 걸까.

    호박색 눈동자에 갈색 곱슬머리를 가진 소녀가 흐린 시야에 불쑥 나타났다. 그러더니 잔뜩 흥분해서는 무어라 떠들어대었다.

    강아지 같은 인상이라 해를 끼치진 않을 것 같아 경계심이 들다가도 살짝 누그러진다.

    아니, 경계하고 놀랄 힘마저 없다고 해야 하나.

    다만 마른침을 삼키자 건조한 식도가 찢어지기라도 할 듯 아파 와 그녀는 눈가를 찡그릴 수밖에는 없었다.

    ‘간호사인가? 아니면… 간병인? 아직 열다섯 정도밖에 되어 보이지 않은데.’

    누가 되었든 일단 물을 청해도 될까.

    하지만 말이 통하지 않는데 알아들을 수 있긴 하겠는가.

    혼곤한 머릿속에 이런저런 생각이 떠돌았으나 정작 입술을 가르고 나온 건 무엇도 없었다. 거칠게 내쉰 호흡뿐.

    여긴 대체 어딜까.

    [조금 있으시면 대, 대주교님이 오실 거예요! 황태자 전하께서 머, 먼저 오실지도 몰라요. 마침 와 계셨거든요! 그런데 하필 왜 골라도 이… 몸을 고르셨어요? 저기 다른 예, 예쁜 몸이 많은데…. 아! 그렇다고 못생기셨다는 말은 저, 절대 아니에요! 엄청 미인이세요. 그냥 그 미친개 같은 여자, 크흠! 몸이라서….]

    소녀가 흥미롭다는 듯 조잘대며 무슨 말을 또 건넸다. 생김새로 보아 동유럽의 이름 모를 어느 나라 출신일까 싶었다.

    발음은 영어도, 독일어도, 프랑스어도 아니다. 멍청하게 있지 말고 자기 계발이라도 하라는 등쌀에 떠밀려 억지로 끄적거려 보았던 아랍어와도 달랐다. 그냥 무슨 말을 하는지 아예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단지 소녀의 복장이 어떤 단체에 소속되어 있는 것 같았고, 그래서 곧 어른이 와서 모든 걸 설명해 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기에 그녀는 이상할 정도로 침착할 수 있었다.

    아니면 그저 이 모든 위화감에 대한 회피성 차분함이었을지도.

    그녀는 맥없는 시선으로 아주 낯설기 그지없는 천장화를 훑었다. 무엇인가 웅장한 그림이 그려져 있었으나 눈에 익은 것은 아니었다. 당연히 병원에 그려져 있을 만한 종류의 것 또한 아니었고.

    지금 코에 감도는 향 역시 병원 특유의 소독약 냄새는 아니었다. 그보다는 좀 더 뭉근하고 부드러운, 그러면서도 톡 쏘는 뒷맛이 있는 냄새였지.

    굳이 비유하자면 마사지 샵에서 풍기곤 하는 아로마 향과 엇비슷했다.

    마음을 편하게 만들어 주는 그런 향기.

    ‘침착하게 기억을 더듬어 보자. 일단… 나는 사고를 당한 기억이 없어.’

    마지막으로 기억나는 건 외침이다. 짜증 섞인 울음이었다.

    “다 언니 때문이야! 꺼져 버려, 짜증 나니까!”

    무엇이 그리 서러운지 울면서 저를 밀치던 동생이었다.

    살면서 저 원하는 대로 하지 못한 게 아무것도 없던 아이인지라 세계적인 전염병으로 여행을 다니지 못하게 되자 떼를 쓰는 것이 하루가 멀다 하고 심해지던 와중이었다.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되었더라.’

    그녀 역시 너무도 지쳐 집을 나와 정처 없이 걸었던 것도 같다.

    그러고는?

    “…….”

    멀거니 뜨고 있는 눈이 시려와 몇 번 깜빡거리니 머릿속이 조금 맑아진다. 그러나 여전히 기억이 제대로 나지는 않았다.

    뭔가 번쩍했던 것 같다는 것 외에는.

    ‘우선 여기가 어디인지 물어봐야겠어.’

    왜 자신이 이런 상태로 일어나지도 못하는 건지 또한 알고 싶었다.

    아니, 사실 제일 묻고 싶은 건 이거였다.

    ‘혹시 여긴 안락사를 해 주는 병원인가요?’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로 유명세를 떨치고 계신 모친은 정 없는 분이었다.

    언제나 완벽함을 추구하시는지라 당신 몸에서 난 것이 이리 멍청하고 재능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셨다.

    다행히 연년생으로 태어난 동생 쪽은 모친께서 원하시는 모든 재능을 타고났으나 그런 만큼 그녀에게 돌아오는 눈초리는 싸늘했다.

    한 해가 지날수록 살아 내는 것이 버겁다고 생각하던 와중이었기에 어쩌면 제 발로 안락사를 해 달라며 빌었을지도 몰랐다.

    말이 안 되는 가정이나 가능성을 떠올려 볼 만큼 그녀는 벼랑 끝에 몰려 있었다.

    어쨌든 재능 넘치는 부유한 모친과 동생의 수발을 들기 위해 자신 역시 사는 곳이 스위스이긴 했으니까.

    안락사는 법에 어긋나지 않았다.

    그러나 묻고자 해도 입은 떨어지지 않았고 그녀의 팔을 열심히 주무르는 소녀는 줄곧 제 할 말만을 했다.

    [꾀죄죄한 꼴이로군.]

    그때였다.

    바닥을 울리는 다수의 발자국 소리를 지워내며 나른하면서도 느긋한 음성이 방 안에 툭, 떨어졌다.

    [정신은 차렸나?]

    듣는 순간 배 속이 저릿해지며 다리가 꼬이는 듯한 느낌에 반사적으로 마른침이 식도를 타고 내려갔다.

    목소리가 좋다는 사람들을 숱하게 보았지만 이런 종류의 것은 없었다.

    이다지도 근사하고 우월한 것은.

    [하필 여름 울타리를 골랐다니. 덕분에 골치가 아파졌어.]

    젊은 사내였다.

    유추해 본 바로는 아마도 높은 위치의 인물인 듯했다.

    이름 모를 소녀가 뺨을 발갛게 붉히며 허리를 냅다 숙였기 때문이었다.

    갑자기 남자라니. 험한 일을 당하는 건 아닐까, 그런 걱정이 닥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손가락 끝을 까딱, 움직일 수는 있게 되었지만 여전히 허리에 힘을 주어 앉을 수는 없었기에 그녀는 누워 있는 상태 그대로 불안한 시선만 슬쩍 들어 올려 사내를 살피려 했다.

    “……!”

    그리고 다음 순간.

    그녀는 숨을 멈췄다. 얼굴을 정면으로 본 게 아님에도 그랬다.

    마치 순금을 녹인 듯 아름다운 백금발이 시야에 어른거린다. 그와 대조되는 그을린 피부색과 금빛 속눈썹…….

    입은 건 왕족의 예장 같은 건지는 몰라도 실로 꼭 들어맞았다. 금색 견장을 달고 붉은 띠를 두른, 흰 제복이라니.

    저 사내가 지금 당장 자신은 왕이라고 하여도 그녀는 그렇구나 하고 수긍해야만 할 것 같은 압도적인 분위기였다.

    [허나 걱정할 것 없다. 내 것인 이상 네가 갖춘 모든 꼴의 값어치를 올려 줄 테니.]

    침대 한쪽이 묵직하게 내려갔다. 사내가 누구일지를 자세히 파악하기도 전, 그녀는 제게 뻗어지는 커다란 손에 사색이 되어 움찔하고 말았다.

    그녀는 저보다 크고 거대한 누군가가 다가오는 것을 두려워한다. 긴 세월 몸에 새겨진 학습은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하물며 이렇듯 꼼짝도 하지 못하고 누워 있는 상황이 아닌가. 두렵지 않은 게 더 이상한 일이리라.

    [감히 피하는 건 유쾌하지 않다.]

    그러나 그녀의 반응에 언뜻 멈추었다가 물러가려는 듯하던 손이 턱을 홱 쥐어 당긴 건 불시에 벌어진 일이었다.

    턱을 으스러트리기라도 하려는 듯 강하게 가해지는 악력이 스위치라도 된 것처럼 외면하고 있던 현실을 오소소 일깨웠다.

    모르는 사내. 알 수 없는 곳. 어째서 이러고 있는 건지 납득할 수 없는 처지. 그리고 마지막 하나.

    ‘내 이름은, 뭐였지?’

    지이잉.

    그때, 깨질 듯한 두통이 머릿속을 헤집었다. 움츠러들고 싶었으나 사내는 여전히 그녀를 놓아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동시에 어디선가 향이 더욱 짙어졌다.

    방 전체에서 진동하고 있는 향기와 비슷했지만, 그보다 더욱 무거워 호흡이 가빠왔다.

    마치 중력이 그녀를 잡아끌어 아래로, 아래로 처박는 듯한 느낌.

    세상의 모든 것이 이 사내가 내뿜는 향 아래에 굴복해야 할 것만 같은, 그러한 굴욕적인 기분.

    그녀는 샌달 우드와 바닐라 그리고 진흙. 백골이 수천 구 묻힌 땅에서 날 법한 향을 느꼈다. 그건 정복의 냄새였으며 월계관이었고 동시에…….

    [로에르멜에 연통을 넣어라. 여름 정원에 뿌리 내린 독초가 끝내 꽃을 피웠노라고. 최고의 값을 받고 팔아치우게 됐으니 딸 장사를 아주 잘했다고 전해.]

    [화, 황태자 전하. 정말 그렇게 말씀하시겠습니까… ? 로에르멜 공작이… .]

    [한 치도 어긋남 없게 전하라. 그러지 않으면 네 목을 비틀겠다.]

    마치 고막을 긁어내리는 듯 낮고 엄격한 음성에 그녀는 파르르 떨었다.

    깎아지를 듯한 콧날과 성질머리를 표현하듯 쭉 뻗은 눈썹이 위협적이었다. 음험하거나 사악해 보이지는 않았지만 사람을 짓누를 듯 사납다. 그리고 무엇보다, 저 눈.

    사람을 조각내 뜯어 삼킬 듯한 짐승의 눈동자. 금빛 안광이 번득이는 동공이 그녀의 정신을 억세게 움켜쥐어 꼼짝도 못하게 만들었다.

    심기를 거스르면 안 된다.

    그걸 알려 준 건 본능이었다. 대개 저런 눈깔을 한 자는 위험하다. 그에게서는 거리낄 것 없이 살아온 태가 흘렀다.

    지배하고, 통제하고, 거머쥐는 게 당연한.

    그녀가 가장 싫어하는 부류.

    모든 것을 가지고 태어난, 우월주의자.

    “…….”

    초면의 상대에게 편견을 쌓아 가고 있던 그녀의 머릿속을 깨끗하게 비워 준 건, 사내가 다른 손으로 들어 올린 투명한 물병이었다.

    [마시고 싶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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