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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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소영이 서도헌의 병실에 찾아온 때는 사건으로부터 1주일 정도 지난 주말의 오후였다.

사건 전에 카페에서 요란하게 사랑싸움을 한 탓에 관계를 들켜 버린 의준 입장에서는 동생과 애인이 공식적으로 처음 대면하는 자리였기에 긴장할 수밖에 없었지만, 소영은 다른 일로 긴장한 상태였다.

“그 메시지 제가 보냈어요.”

인사를 나눈 직후, 소영은 도헌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뭐?”

되물은 사람은 의준이었다. 병상 발치에 서서 도헌을 마주 보고 있던 소영은 병상 옆에 있던 의준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오빠 휴대 전화로 내가 보냈어. 아빠 장례식 날, 전무님에게.”

이어서 소영은 시선을 살짝 내렸다.

“…그때는 전무님인 줄 몰랐지만.”

“…….”

의준은 눈을 깜박였다. 느릿하게 스며들던 영문 모를 말이 갑자기 기억을 자극했다.

‘헤어져. 연락하지 마.’

뒤통수를 망치로 얻어맞은 듯한 충격이 전신으로 퍼져 나갔다. 의준은 믿어지지 않는 듯한 표정으로 소영을 응시했다.

“…형에게 헤어지자는 메시지를 보낸 사람이, …너라고?”

소영은 의준을 바라보았다. 굳어진 의준의 표정을 본 소영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째서… 아니, 왜…. …잠깐만, 이거… 농담이야? 아니면….”

“의준아, 진정해.”

도헌이 의준의 손을 잡았다. 도헌은 침착하게 소영을 바라보았다.

“왜 그랬습니까?”

소영은 깍듯한 존댓말에 놀라 그를 바라보았다. 도헌은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

“그런 메시지를 나에게 보낼 정도였으면 이미 나와 오빠 사이를 알고 있었다는 의미죠? …우리 사이를 반대했습니까?”

“…아니요.”

“그러면 왜?”

소영은 입술을 깨물었다. 짧은 정적의 끝에 그녀는 내뱉듯이 외쳤다.

“오빠가 엄마랑 저를 버릴 것 같았으니까요!”

“…뭐?”

의준의 얼굴에 충격이 어렸다. 도헌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그게 대체 무슨 소리야? 내가 왜 엄마랑 널 버려?”

“전무님이 오빠한테 같이 떠나자고 했어!”

“……?!”

의준은 말문이 막혔다. 그가 기억하는 한 도헌은 그런 제안을 한 적이 없었다.

“야, 네가 뭔가 오해를 한 모양인데….”

“잠깐만, 의준아.”

도헌은 의준의 말을 가로막으며 소영을 바라보았다.

“내가 의준이에게 보낸 메시지를 읽었군요?”

“…….”

소영은 눈을 감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너 없이 떠날 생각을 하니 마음이 답답해.’

‘네가 나에게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느끼고 있어.’

‘의준아, 같이 떠나고 싶다.’

‘너하고 같이 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벌써 보고 싶어. 만나고 싶다.’

‘같이 있고 싶은 마음이 나만의 욕심이 아니기를.’

“…그런 메시지, 본 적 없는데.”

기억력만은 자신 있었던 의준이 한껏 달아오른 얼굴로 중얼거렸다. 5년 전 메시지를 토시 하나 빠뜨리지 않고 정확히 읊었음에도 표정 하나 바뀌지 않은 채, 도헌이 대답했다.

“네가 답하지 않았던 그날 보냈던 메시지였어. …네 손에 휴대 전화가 없을 때 도달했나 보군.”

“…….”

의준은 소영을 바라보았다.

“장례 업체 아주머니가 테이블 아래에서 발견했다고… 나에게 휴대 전화를 줬어. 오빠 거라는 걸 알아서 가져다주려고 가지고 있었고.”

의준은 장례 절차 문제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고, 어머니는 몇 차례나 실신했다. 소영도 조문객을 맞거나 심부름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 사이에 휴대 전화는 소영의 주머니 안에서 계속 울렸다.

“잠깐 편의점에 다녀오려고 나갔다가 오빠 휴대 전화를 가지고 있다는 걸 깨달았어. 그런데 메시지랑 부재중 통화가 너무 많아서… 나도 모르게….”

장례식 문제로 친구들이나 소식 끊긴 친척들이 연락했을까 싶어서 확인했었다. 하지만 메시지도 부재중 전화도 모두 한 명에게 온 것이었다.

그날 소영은 의준에게 남자 친구가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가 몇 시간 후에 해외로 떠날 예정이라는 사실도.

“오빠에게 같이 가고 싶다고 말하기에, 오빠가… 떠날 생각인 줄 알았어.”

부친은 교통사고로 사망하기 전에 거액의 빚을 남겼다. 상속을 포기해도 빚이 전부 사라지지는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게다가 이후 생활도 문제였다. 어머니는 전업주부였고 소영은 고등학생이었다.

“오빠가 가 버리면, 나랑 엄마는 빚쟁이들에게 시달리다 죽을 것 같아서 무서웠어.”

메시지를 보낸 상대에게 답장을 발송했다. 딱 한마디. 그리고 휴대 전화 전원을 꺼 버렸다.

두려움에 정지된 사고가 되살아나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부친을 추모 공원에 안치한 후에야, 소영은 자신이 했던 일을 떠올리고 당황했다.

“오빠에게 뭐라고 변명해야 할지 몰라서….”

“그래서 입을 다물었어?”

의준이 물었다.

“물어봤으면 될 텐데, 멋대로 오해해 놓고 그런… 어떻게.”

“…미안해.”

“미안하다고 해결될 문제가….”

울컥해서 대꾸하던 의준은 말을 멈췄다. 무슨 말을 내뱉어야 옳을까. 돌이킬 수 없는 일이라고? 용서할 수 없다고?

의준의 시선이 도헌에게로 향했다. 도헌은 이 일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형은… 소영이에게 화가 났을까?’

의준의 얼굴에 불안감이 스쳐 지나갔다. 도헌은 그런 의준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이 입을 열었다.

“의준아.”

“네.”

얼떨결에 의준이 대답했다. 도헌은 차분하게 말했다.

“동생이 울고 있어.”

“네? …엇.”

의준은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소영의 눈물 젖은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미안해, 오빠. 나는….”

“…….”

“그때 일로 오빠가… 이제 와서 고생할 줄은 생각도 못 하고….”

의준은 저도 모르게 그녀를 향해 다가갔다. 소영은 고개를 숙였다.

“미안해.”

바닥에 눈물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의준의 표정이 누그러졌다.

“…울긴 왜 울어, 뭐 잘했다고.”

소영이 어깨를 움츠렸다. 의준은 한숨을 내쉰 후에 소영을 끌어안았다.

“됐어.”

“…윽….”

“아, 울지 말라니까 왜 더 울어. 진짜….”

“…흐윽… 윽….”

소영은 의준의 옷깃을 움켜쥔 채 오열하기 시작했다. 의준은 그녀의 머리를 어루만졌다.

“괜찮아.”

차마 다 지난 일이라고도, 그러니 용서하겠다고도 말할 수 없었다. 그러기엔 의준과 도헌 사이에 너무 많은 상처가 남았다. 지금 시점에 의준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뒤늦게나마 양심의 가책에 따라 진실을 고백한 동생을 안아 주는 것뿐이었다.

‘그런 거였구나.’

의준은 도헌을 바라보았다. 도헌은 담담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별것 아닌 일로… 도헌이 형과 나는 헤어졌구나.’

묻어 두려던 의문의 답은 생각보다 허무했고 슬펐다. 의준은 길게 한숨을 내쉬며 소영의 등을 토닥였다.

***

해가 서쪽으로 완전히 기울고 하늘이 짙은 남색으로 변해 갈 무렵 의준은 병원을 나섰다. 병원 앞의 택시 정류장까지 소영을 바래다주기 위해서였다.

“밥 안 먹고 가도 괜찮아?”

“친구랑 먹기로 해서 괜찮아.”

소영은 이렇게 대답한 후에 훌쩍하고 코를 들이마셨다. 그 바람에 또다시 눈물이 고였다.

“아… 왜 이래. 진짜.”

민망하게 중얼거리며 눈가를 거칠게 문지르던 소영에게 의준은 손수건을 내밀었다.

“문지르지 말고, 이걸로 닦아.”

“웬 손수건이야?”

“도헌이 형 건데 빌렸어.”

“…….”

소영은 잠자코 손수건을 받아 눈가에 댔다.

“…좋은 분이더라.”

“누구? 아, 도헌이 형?”

“응.”

소영이 말을 이었다.

“나 때문에 고생했는데 화도 안 내고… 내 변명도 끝까지 잘 들어 줬어. …어른스럽더라.”

“어른스러운 게 아니라 어른이지.”

의준은 웃었다.

“늘 그렇게 점잖은 사람은 아니야. 유치할 때도 있고 화도 잘 내거든.”

“오빠 앞에서는 그러나 보네?”

소영의 질문에 의준은 슬쩍 얼굴을 붉혔다.

“어, 뭐… 내 앞에서는 좀 더 감정적이기는 하지.”

“예전에도 그랬어?”

“예전?”

“…처음 사귈 때.”

“아, 글쎄. 예전에는 어땠더라?”

의준은 머리를 긁적였다.

“…예전엔 이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아. 늘 웃는 사람이었거든. 상냥하고, 점잖고.”

마치 소영을 비롯한 다른 사람들 앞에서 보이던 모습과 같은.

“좀 변한 것도 같네. 아니, 지금 모습이 원래 모습인데 이제야 보게 되었는지도.”

어쩌면 한번 헤어졌다 만난 덕분에 본래의 모습을 드러내기 쉬워졌을지도 모르겠다. 의준은 미소를 지었다.

“어떤 모습도 형이니까 다 좋기는 해도.”

“…으.”

소영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녀의 표정을 본 의준의 얼굴이 달아올랐다.

“아, 아니야! 염장을 지르려던 게 아니고!”

“아무 말 안 했거든. 그러지 마, 미안하던 마음이 가실 것 같으니까.”

“뭐? 야, 너무 빠르잖아.”

“그러니까 하지 말라고.”

평소처럼 티격태격하는 사이에 택시 정류장에 도착했다. 소영을 인도에 세워 두고 도로를 기웃거리며 택시가 지나가나 살피던 의준의 귀에 소영의 질문이 날아들었다.

“오빠.”

“웅?”

“이제 화 풀렸어?”

“화는 아까 다 냈어.”

“…응.”

소영은 작게 중얼거렸다. 개운하지 않은 표정이었다. 죄책감 때문이리라.

사과를 받아들일지 말지는 받은 사람의 몫이듯, 죄책감을 감내하는 일은 저지른 사람의 몫이었다.

‘괜한 위로는 독이 될 상황이지만….’

의준은 입을 열었다.

“소영아.”

“응?”

소영이 그를 바라보았다. 의준은 때마침 멀리서 나타난 택시를 향해 손을 흔들며 말을 이었다.

“내가 엄마랑 너를 아낀다는 거 알지?”

“…….”

“난 우리 가족이 행복해지기를 바라. 나 한 사람이 아니라 가족 전부가.”

부친은 유언을 남기지 못했다. 하지만 가족이 행복해져야 한다는 말은 생전 부친의 입버릇이었고 의준에게는 삶의 지표와도 같았다.

“아버지 돌아가신 뒤로 오늘까지 가족을 위해 살면서 나는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어. 아마 과거로 다시 돌아가도… 마찬가지일 거야.”

택시가 멈췄다. 의준은 소영을 향해 웃어 보였다.

“마음이 힘들어도 그 사실은 꼭 명심해라. 나를 위해서.”

“…….”

소영은 눈을 크게 떴다. 미간에 살포시 주름이 잡히더니 눈가에 다시 눈물이 맺혔다. 의준이 보기 전에 손수건으로 눈가를 꾹 누르며 소영은 택시에 올랐다.

“이걸로 친구랑 저녁 먹어. 도착하면 전화하고.”

의준은 소영에게 5만 원 지폐를 쥐여 준 후에 문을 닫았다.

택시가 떠나갔다.

소영을 배웅하고 병실로 돌아왔을 때 도헌은 통화 중이었다. 눈짓으로 왔냐는 인사를 대신한 후에 도헌은 휴대 전화에 대고 이렇게 말했다.

“---알았어. 조심하고.”

통화를 마치기를 기다렸다가 의준은 입을 열었다.

“누구예요? 영제 형?”

도헌은 그렇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를 부산으로 내려보내 치료하기로 했대. 저녁에 출발한다고.”

“영제 형도 내려가세요?”

“영제는 남을 거야. 처리할 일이 있어서.”

“그러시구나.”

도헌은 의준의 표정을 보고 눈썹을 위로 올렸다.

“왜 그래?”

“뭐가요.”

“표정이 어둡잖아.”

“그래요?”

의준은 아무 일도 없다고 대답하려다가 말을 멈췄다. 뒤늦게 해야 할 말을 하지 않았음을 깨달아서였다.

“형, 미안해요.”

“……?”

도헌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아까 소영이가 말한 일요. …메시지. 미안해요.”

“동생이 한 일을 왜 네가 사과해?”

“그 일로 형이 상처받았잖아요.”

그제야 상황을 이해한 도헌은 쓴웃음을 지었다.

“상처받기는 피차 마찬가지 아니었어?”

“…….”

“아니지, 그 일로 널 멋대로 오해한 내가 너에게 심한 짓을 했으니 네가 오히려 더 상처를 받았지.”

“어? 아니에요.”

의준은 당황했다.

“그건 지난 일이잖아요. 사과도 받았으니까. 이제 괜찮아요.”

“나도 마찬가지야.”

도헌이 부드럽게 대꾸했다.

“그래도….”

“난 괜찮아.”

도헌은 의준에게 손을 내밀었다. 의준이 다가가서 손을 잡자 그는 말을 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난 오히려 안심했어.”

“뭘요?”

“그 메시지가 네 진심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어서.”

“…아직도 의심하고 있었어요?”

의준은 쓴웃음을 지었다. 도헌은 고개를 저었다.

“의심하고 아니고의 문제는 아니야.”

“……?”

그 메시지는 5년간 도헌의 심장에 깊이 박혀 있었다. 너무 깊이 박혀서 보이지 않았지만 잊을 만하면 밤잠을 이루지 못할 만큼 강한 통증을 유발했다. 아무리 마음을 무장해도 이미 박힌 쐐기는 뽑아낼 수 없었다. 그렇게 말이 주는 고통은 분노의 원천으로 변했다.

“그토록 고통스럽던 쐐기가 드디어 빠져 버린 기분이 들어.”

“…….”

의준의 표정에 슬픔이 어렸다. 도헌은 미소를 지으며 그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동생 덕분에 기분이 후련해졌다면 이상하게 들릴까?”

“덕분이라기엔 이상하죠. …그 쐐기를 만든 사람도 걘데.”

용서했다고 해서 사실이 없어지지는 않았다. 이미 지난 일이었고 어쩔 수 없었지만 그렇다고 소영을 완전히 용서할 마음은 들지 않았다.

“형보다 제가 마음이 좁은가 봐요.”

의준은 도헌의 가슴에 툭 하고 머리를 기댔다. 도헌은 그의 머리에 입을 맞추었다.

“나도 다른 일에 있어서는 그다지 관대한 편이 못 돼. 너와 관련된 일이니까 넘어가는 거지.”

의준은 고개를 들었다.

“그래도… 화나지 않아요?”

“…화나지.”

도헌은 피식 웃었다.

“네 동생이 아니라 나에게 화가 나.”

“…왜요?”

“그런 말도 안 되는 메시지를 믿고 널 쉽게 놓아 버렸으니까.”

“자책하는 거예요? 형 잘못이 아닌데.”

“알아.”

도헌은 웃었다.

“자책이 아니라 후회야. 그래 봤자 지난 일을 돌이킬 수 없지만.”

의준은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도헌은 그의 얼굴을 한 손으로 감쌌다. 숨결이 닿을 만큼 가까이에서 의준의 얼굴을 다정하게 응시하던 도헌이 입을 열었다.

“동생의 고백을 들으면서 무슨 생각을 했는지 말해 줄까?”

“…네.”

“그 메시지를 보낸 사람이 네가 아니었다니 다행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이미 밝힌 사실에 이어 도헌은 이렇게 덧붙였다.

“앞으로 어떤 말을 듣더라도 널 함부로 놓으면 안 되겠다.”

“……!”

의준의 눈이 커졌다. 도헌은 그의 입술에 자기 입술을 부드럽게 밀착했다.

“괜찮아, 의준아.”

입술 사이로 도헌이 속삭였다.

“지난 일도 앞으로 일어날 일도 상관없어. 어떤 것도 나를 네게서 떼어 놓지는 못해.”

도헌의 눈빛은 진지했다. 의준의 눈이 가늘어졌다. 이 병실에 처음 들어왔던 날 도헌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다시는 널 떠나지 않을 거야.”

그래, 그 말이었다. 의준은 웃었다.

“그랬죠, 참.”

이어서 그는 도헌을 똑바로 바라보며 속삭였다.

“사랑해요.”

“나도.”

속삭임이 부드러운 입맞춤이 되었다. 다정한 온기를 교환한 후 도헌은 한숨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게 안타깝군.”

도헌은 몸을 지탱하느라 침대를 짚었던 의준의 손을 잡아 자신의 몸으로 가져갔다. 그가 흥분한 것을 알 수 있었다.

“갑자기 뭐예요.”

의준은 얼굴을 붉혔다.

“빨리 너와 같이 눕고 싶어.”

“퇴원할 때까지는 참아요.”

의준은 이렇게 속삭이며 천천히 움직였고, 그의 움직임에 도헌은 움찔하고 몸을 떨었다.

“의준아.”

“집에 가서 실컷 해요. 우리 침대에서, 밤새도록.”

도헌이 눈썹을 위로 올렸다. 의준은 웃었다.

“사랑을 행동으로 표현하고 싶은 사람이 형만이라고 생각한 건 아니죠?”

“…….”

도헌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이윽고 그가 입을 열었다.

“내일까지 나아야겠군.”

“그래 주면 좋죠.”

장난스럽게 대화를 주고받은 후에 그들은 마주 보고 웃었다. 석양을 등진 두 사람의 그림자가 병실에 길게 드리워졌다. 그 그림자는 오랫동안 떨어지지 않았다.

***

서도헌은 2주 후에 퇴원했다. 오래 입원이 필요한 증상이 아니었지만 ‘절대 안정’ 및 ‘철저한 휴식’이 필요한 부상의 특성을 고려해 내려진 조치였다.

완치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에 회사도 재택근무로 전환되었다. 최소 한 달에서 두 달, 도헌은 집에서 업무를 처리할 예정이었다. 외근은 금지. 내근도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대표 이사를 비롯한 임원들은 아들뻘 나이인 서도헌 전무의 쾌유를 비는 의미에서 기꺼이 업무를 부담해 주었다. 덕분에 의준을 비롯한 비서진은 큰 시름을 덜었다. 일단 일을 떠넘기거나 오래 조정할 필요가 없어서 새로 일정을 짜는 데 덜 스트레스를 받았기 때문이다.

“대표님께서 오늘 내로 새 일정 최종본을 검토하고 결재하기로 하셨습니다. 그러면 일단 일정 조정은 끝나고요.”

퇴원해서 집으로 향하는 길에 김하나와 연락한 의준은 이렇게 보고했다. 도헌은 고개를 끄덕였다.

“잘됐군, 그러면 내일부터 업무를….”

“아니요, 업무는 내주부터고요.”

의준은 도헌의 말을 가로막았다.

“퇴원했지만 이번 주까지는 요양 기간이에요. 아까도 말씀드렸을 텐데요.”

“…메일 확인 정도는 요양하면서도 할 수 있으니까.”

“메일 확인도 일이죠. 어쨌든 노트북이나 태블릿을 켜면 업무로 간주하라는 대표님 명이 계셨습니다. 절, 대, 로, 안 됩니다.”

“…….”

도헌이 눈살을 찌푸렸다. 의준은 짐짓 모르는 척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하실 말씀이라도?”

“잠깐 사이에 내 비서가 꽤 강압적으로 변했다 싶은데. 이래서야 누가 상사이고 부하인지 모를 노릇이군.”

“무례하게 느껴지셨다면 죄송합니다. 하지만, 이번 재택근무에 한해서 대표님으로부터 전무님의 건강 관리와 과로 방지를 부탁한다는 말씀을 들은 상황이라서요.”

의준은 도헌을 향해 씩 웃었다.

“---따라서 한 달 동안은 상하역전을 즐겨 주셨으면 합니다.”

“흐음.”

도헌은 무심하게 중얼거렸다.

“나쁘지는 않군. 상하역전은 싫어하지 않아.”

“그러세요?”

의준은 의외라는 투로 되물었다.

“위치를 바꾸는 행위는 정체된 관계에 신선한 자극을 주거든. 그리고 새로 시작된 관계에도….”

도헌은 의준의 허벅지에 손을 얹었다.

“…인상적인 첫 경험으로 남을 테고.”

도헌의 손이 부드럽게 움직였다.

“혀… 아니, 전무님!”

뒤늦게 ‘상하역전’이라는 단어에 도헌이 다른 의미를 담았음을 눈치챈 의준의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하하하. 도헌이 웃었다. 드문 웃음소리를 머금은 채 차는 집을 향해 달려갔다.

***

열기와 떨림을 공유하며 한 정점을 향해 치달은 직후, 하나였던 몸은 자연스럽게 다시 두 사람이 되었다. 도헌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여운을 음미하는 의준을 바라보았다.

“너무 빤히 보지 마요, 민망하니까.”

부드럽고 그윽한 시선을 견디다 못한 의준이 입을 열었다. 도헌은 대답 대신 미소를 지었다. 그 반응에 더욱 민망해진 의준은 한숨을 내쉬었다.

“매일 보던 얼굴이잖아요. 그렇게 계속 본다고 달라지지도 않는데.”

“그렇지 않아.”

도헌은 그의 이마를 어루만지며 대꾸했다.

“넌 늘 다른 얼굴이야. 잠깐 시선을 떼는 것조차 아쉬울 정도로 다양한 표정을 보여 주지. 지금도….”

송골송골 배어난 땀을 손가락으로 부드럽게 씻어 내면서 그는 말을 이었다.

“최고로 아름다운 표정을 짓고 있는걸.”

손가락에 이어 이마에 입술이 닿았다. 작은 입맞춤 소리와 부드러움 감촉에 저절로 눈이 가늘어졌다.

“형도 참. 이런 얼굴에 아름답다는 소리를 하면 사람들이 비웃어요.”

“아름다운 사람을 아름답다고 하는데 왜 비웃는다는 거지?”

도헌은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의준은 민망해져서 그의 어깨를 가볍게 쳤다.

“어휴, 그만해요. 비웃음을 사기 전에 민망해서 죽겠어.”

“농담 아니야.”

도헌이 대꾸했다. 의준은 웃었다.

“알았어요. 뭐, 형에게 그렇게 보이면 나야 좋죠. 형 눈에 덮인 콩깍지가 평생 안 떨어지길 빌어야겠네요.”

“평생?”

도헌은 의준을 끌어안으며 되물었다.

“왜요, 부족해요?”

“아니.”

웃음을 머금은 도헌의 숨결이 머리카락을 스쳤다. 충분해. 속삭임이 부드럽게 스며들었다. 의준은 고개를 들었다. 시선이 마주치자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서로 얼굴을 가까이했다.

부드러운 입맞춤 직후 도헌이 입을 열었다.

“나에게 평생을 맡겨 줘서 고마워.”

“고마울 게 뭐 있어요. 대신 저도 형의 평생을 가지는데.”

의준이 대답했다.

“그리고 이럴 땐 고맙다보다 다른 말이 듣고 싶어요.”

“사랑해?”

대뜸 튀어나온 대답에 의준은 웃었다.

“의문문으로 말하면 소용없잖아요.”

“미안.”

다시 입술을 마주했다. 입술 사이로 달콤한 고백이 흘러들었다.

“사랑해.”

도헌의 가늘어진 연한 회색 눈동자에는 감정이 듬뿍 어려 있었다. 등을 어루만지는 손길에도, 마주한 몸에서도 느껴졌다.

‘형은 정말 나를 사랑해.’

당연하고 간단한 사실에 가슴이 뿌듯해졌다.

“저도요.”

의준은 도헌의 입술에 대고 속삭였다.

“저도 사랑해요, 형.”

도헌의 입술이 부드럽게 위로 끌려 올라가는 감촉이 느껴졌다. 이어서 마주한 몸 사이로 위로 일어나면 안 되는 부위의 변화도 전해졌다. 의준의 얼굴이 붉어졌다.

“…형.”

“미안.”

“널 너무 사랑해서 그래.”

“윽….”

그의 몸이 닿아오자 몸이 슬며시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의준은 필사적으로 충동을 억누르며 그를 밀어냈다.

“의사가 무리하지 말라고 했잖아요.”

“한 번밖에 안 했어. 전혀 무리가 아니었고.”

“원래는 한 번도 무리거든요.”

의준은 몸을 일으켰다.

“아무리 회복 속도가 경이적으로 빨라도, 완치되지 않은 상태는 환자고요. 환자는 안정해야죠.”

“…….”

“뭐예요, 그 표정은. 할 말 있어요?”

“있어. 아주 많이. 하지만 안 할래.”

도헌은 이렇게 말한 후에 의준을 향해 손을 뻗었다.

“당황해서 붉어진 네 얼굴이 사랑스러우니까 용서하지.”

“뭐라는 거야, 진짜!”

“오… 몸도 빨개졌어.”

“그만 놀려요!”

“하하하. …윽.”

웃던 도중에 도헌이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그가 옆구리에 손을 대자 의준의 표정이 굳어졌다.

“괜찮아요?! 아파요?”

“…아니, 괜찮아. 좀 심하게 웃었나 봐.”

도헌은 이렇게 말한 후에 자세를 바로 했다.

“웃었더니 목이 마르군. 물 가져올게. 너도 마실 거지?”

“아, 제가 갈게요.”

의준이 먼저 일어섰다. 그는 바닥에 떨어진 잠옷 바지를 서둘러 걸친 후에 도헌에게 손짓했다.

“누워 있어요. 금방 가져올 테니까. 탄산수? 생수?”

“생수 부탁해.”

“네.”

방을 나서던 의준의 뒤로 고마워라는 도헌의 말이 따라붙었다. 의준은 웃었다.

주방 냉장고를 열자 마지막으로 남은 생수 한 병이 눈에 들어왔다.

“어, 미리 넣어 둬야겠네. 팬트리에 생수 여분이 있던가?”

의준은 꺼낸 생수를 조리대 위에 두고 주방 옆에 붙은 팬트리로 향했다. 비닐 포장된 생수를 찾아 주방으로 가지고 돌아온 그는 생수를 냉장고에 차곡차곡 집어넣기 시작했다.

“…먹을 것도 없네. 장도 봐야겠다.”

도헌이 입원한 사이 의준은 거의 집에 머물지 못했다. 평일에는 회사에 갔다가 저녁에 퇴근해서 도헌의 병실에 머물렀고 주말에는 어머니 병실에 갔다. 도헌은 간병 통합 서비스를 받았기에 병수발을 들 필요는 없었지만 곁에 있고 싶었다.

그럴 수 있었던 데는 여동생 소영의 덕이 컸다. 그녀는 주중에는 자기가 어머니 병실에 매일 들르겠다고 자청했다.

‘길어 봤자 한 달이잖아. 어차피 난 다음 달 말에는 해외에 가야 하니까… 엄마 실컷 보고 가면 좋고.’

소영은 도헌과 의준의 관계에 호의적이었다. 어쩌면 5년 전에 자기가 저질렀던 잘못에 대한 사과의 연장선일지도 모르겠다.

의준으로서는 고마운 마음 반 착잡한 마음 반이었다. 여동생에게 남자 친구가 있다는 사실을 들킨 것만으로도 부끄러웠는데 그와의 과거까지 낱낱이 까발려졌으니 말이다. 하지만 소영은 그런 의준을 기분 나빠했다.

‘연애 좀 들켰다고 얼굴을 붉히고 부끄러워하고… 제발 안 그러면 안 돼? 토할 것 같단 말야.’

이어서 소영은 이렇게 덧붙였다.

‘상우 오빠한테는 말하고 나한테는 비밀로 했다니 좀 화났어.’

김상우는 도헌이 퇴원하기 이틀 전에 병실에 찾아왔다. 서영제가 반강제로 끌고 왔다고 해야 옳았지만 말이다.

‘큰일 없어서 다행이야. 걱정했어.’

병상에 누워 있던 도헌을 무시하고 의준에게 우선 이렇게 말한 후에 그는 곁눈질로 도헌을 보았다.

‘…전무님도 살아 계셔서 다행입니다.’

‘이 새끼, 이거 말하는 꼬라지 봐라.’

서영제가 상우의 등짝을 철썩하고 치던 모습이 기억에 생생했다. 상우는 나고 자라며 평생 누군가에게 맞거나 타박을 들어 본 적이 없었다. 그렇기에 영제의 태도에 화를 낼 법도 했지만 그는 눈살만 살짝 찌푸렸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오늘 찾아온 이유는 이놈이 의준이를 포기하기로 해서야.’

의준은 놀라서 상우를 바라보았다. 상우는 고개를 끄덕인 후에 입을 열었다.

‘지금까지 미안했어. …앞으로는 친구로 남을게. 너만 괜찮다면.’

‘물론이지!’

의준은 상우의 손을 덥석 잡았다. 친구를 잃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기뻐서였다. 하지만 도헌은 그런 상우를 불만스럽게 노려보았다.

‘김상우 씨가 의준이에게 저질렀던 짓 중에는 범죄도 있습니다. …피해자 본인은 관대하게 눈감을 생각인지 몰라도 저는 그러기 어렵군요.’

‘제삼자인 전무님께서 왜 참견하냐고는 묻지 않겠습니다. 전부 제 잘못이니까.’

상우는 말을 이었다.

‘맹세도 약속도 결국 말이니까, 어기려면 어길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러면 의준이하고 두 번 다시 만나지 못하게 될 거라고…’

‘내가 엄포 놨으니까 믿어라.’

영제가 불쑥 끼어들었고 상우는 그를 슬쩍 흘겨본 후에 말을 이었다.

‘…그럴 바엔 친구로 남기로 결정한 겁니다.’

의준을 향한 상우의 시선에는 애틋함이 어려 있었다. 의준은 마주 잡은 손에 힘을 주며 미소를 지었다.

‘마음을 굳혀 주어서 고마워, 상우야.’

‘천만에.’

심기 불편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지켜보던 도헌의 옆으로 다가온 영제가 입을 열었다.

‘김상우가 다시 의준이에게 허튼짓하면 저놈 거길 물어뜯어 버릴 테니까 걱정하지 마라.’

‘…그냥 자른다고 말하면 안 되는 건가?’

‘더 그럴싸하지 않나?’

영제는 낄낄거렸다.

병문안을 마치고 돌아가기 전에 영제는 배웅하던 의준에게 이렇게 말했다.

‘조카 병간호 맡기고 가서 미안하네.’

영제는 병문안을 마친 후 부산으로 내려갈 예정이라고 했다. 서울에서 해결한 ‘일련의 사건’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서였다. 상우도 머리를 식힐 겸 그를 따라가기로 했다.

‘도헌이 다 나으면 부산에 놀러 온나. 행님이 좋은 데로만 쫙 모실 테니까.’

일이 시작될 때 나타났던 영제는 그렇게 일을 마무리한 후에 떠나갔다. 이제 정말로 한 시름 놓아도 될 때일까.

몇 달 사이에 겪었던 일들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던 그때였다.

“무슨 생각 해?”

질문과 함께 등에 따스한 체온이 닿았다. 의준은 고개를 돌렸다.

“도헌이 형. …누워 있지 왜 나왔어요?”

“10분이 지나도 올 생각을 안 하기에 데리러 왔어.”

도헌은 의준을 뒤에서 끌어안은 채 목덜미에 입을 맞추었다. 의준은 깜짝 놀라서 시계를 바라보았다.

“엇, 죄송해요. 냉장고에 물이 떨어졌기에 채우고 들어가려다가 잠깐 다른 생각 좀 하느라….”

“무슨 생각?”

“이런저런 생각이요.”

의준은 이렇게 대답한 후에 거실로 시선을 향했다. 넓은 창 너머로 반짝이는 야경이 보였다.

“몇 달 사이에 참 많은 일을 겪었다 싶어요.”

“안 해도 될 고생을 많이 했다 싶지?”

“꼭 그렇지만도 않아요.”

의준은 웃었다.

“빈말로라도 고생 안 했다고는 못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모두 잘 풀렸으니까요.”

“우리가 함께 있는 현재로 오는 여정이었다?”

“맞아요, 그런 느낌이에요.”

의준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쑥스럽게 덧붙였다.

“함께한 여정이라니 낭만적이네요.”

“지나고 나면 뭐든 추억이지. 널 고생시킨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왜 또 그래요, 다 지난 일인데.”

의준은 이렇게 말한 후에 다시 야경으로 시선을 향했다.

“생전에 아버지가 입버릇처럼 하시던 말이 있었어요.”

‘다 잘될 거다.’

가난한 집에서 나고 자라 자수성가한 의준의 부친은 긍정의 화신이었다. 회사에서도 집에서도 그는 늘 다 잘될 거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때로는 종교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어느 종교의 경전 구절을 인용할 때도 있었다.

구하라, 그러면 얻을 것이다.

사업이 기울고 결국 파산해서 가족이 길바닥에 나앉게 생겼을 때도 그의 믿음은 흐트러지지 않았다. 급한 자금을 융통하려고 차를 달렸던, 사고로 차가 뒤집히기 직전까지도 그는 믿었을 것이다. 다 잘될 것이라고. 곧 모든 것이 좋아질 것이라고.

부친을 원망했었다. 너무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었다. 그럼에도 가족을 두고 도망치지 않고 빚을 갚았던 이유는 단순했다.

“저도 모르게 아버지 말씀을 믿고 있었나 봐요.”

언젠가는 잘되리라. 힘들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헤쳐 나가면 언젠가는. 분명히 편해질 날이 오리라고 말이다.

“그렇게 버틴 끝에 형과 다시 만났으니 믿기를 잘했어요.”

“나야 영광이지만 힘든 여정의 보상치고는 너무 조촐하지 않을까?”

“저한테는 괜찮은 대가인데요?”

의준은 웃으며 거실을 향해 한 팔을 뻗었다.

“한강 야경이 내려다보이는 집에서 헐벗은 미남하고 포옹하고 있잖아요.”

“30분 전까지는 포옹 이상의 것도 했고?”

“아, 형….”

“하하, 미안.”

의준이 얼굴을 붉히며 눈살을 찌푸리자 도헌은 전혀 미안하지 않은 표정으로 사과했다.

“너는 나를 어떤 종착점처럼 말했지만, 나에게 너는 시작점이야.”

“그래요? 어떤 시작점인데요?”

호기심 어린 의준의 눈동자를 응시하며 도헌은 말을 이었다.

“널 처음 만나고 나서야 나도 누군가를 사랑하고 그 사람과 미래를 꿈꿀 수 있는 평범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지.”

“…….”

그렇기에 의준을 잃고 절망했다. 다른 일에 한해서는 지나칠 만큼 이성적이었던 그가 메시지의 진위 여부를 확인할 생각조차 못 한 채 깊은 상처를 입었다.

“넌 나에게 새로운 세상의 시작이었어.”

도헌은 의준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속삭였다.

의준은 얼굴을 붉혔다. 당황해서 눈을 깜박이다가 시선을 돌리는 그가 사랑스러워서 도헌은 웃고 말았다.

달콤한 복수의 끝에 행복이 시작되었다.

[달콤한 복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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