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61 30. 조화경(造化境) =========================================================================
‘현주에게나 가 보자.’
심상 수련도 재미는 있지만 현주와 함께 맛 집을 탐방하면서 데이트를 하는 것도 무위도식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재미다. 김환근에게는 이제 심상수련도 노는 무위도식의 일부다.
‘현주 연결.’
〈네. 지금 사냥중입니다.〉
도우미가 시스템으로 연결이 불가능해졌다.
‘아니 힐러가 왜 사냥터에 갔지?’
힐러는 도시 안의 병원에서 근무하거나 요새로 파견되어 부상자를 치유하는 것이 주 임무다. 다른 행성이라면 힐러도 파티를 이루어 후방에서 부상자에게 치유 스킬을 걸어주지만 이 행성에서는 원거리 치유가 불가능하기에 안전한 도시나 전진기지 역할을 하는 요새에서 부상자들을 치료한다.
‘김강수 대위님에게 연락하면 또 잔소리나 할 텐데? 뭐하지? 심심한데 나도 사냥터나 가 볼까? 우미야. 현주가 간 사냥터 정보를 알 수 있을까?’
〈네. 244번 전진기지에서 5분 거리에 있는 거대 풍뎅이 사냥터에 가셨습니다.〉
‘아니. 힐러가 그런 위험한 사냥터에는 왜 가?’
〈요즘 새로운 힐 스킬이 개발되어 원거리 치유가 가능해져서 힐러들도 사냥에 참가하는 추세입니다.〉
김환근이 방에서 뒹굴 거리고 있을 때에 한국 길드는 많은 발전을 하였다. 황제급인 김환근이 세력 확장에 전혀 도움을 주지 않고 스스로 감당하기 힘든 위험이 닥쳤을 때만 도와주겠다고 확실하게 밝혔기 때문에 스스로의 힘으로 발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덕분에 김강수 대위는 용족 행성과 지구를 오고가면서 더욱 바쁘게 일하고 있었다.
‘이 행성에서 원거리 치유가 가능하다고?’
〈기다랗게 늘어나는 채찍을 이용하여 치유 스킬을 시전하는 방법도 있고, 작살처럼 장착되어 있는 바늘을 쏘아서 치유 포션을 주입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대기의 에너지기 불안하기에 빛처럼 치유의 에너지를 쏘아서 부상자를 치유하는 전통적인 치유 스킬이나 치유마법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줄을 통하면 안정적으로 치유의 에너지를 부상자에게 전달할 수 있다. 그리고 주사기를 쏘아서 투입하는 방법은 부상자의 갑옷과 방어능력 때문에 불가능한 경우가 많았다. 즉, 이 방법은 방어능력이 떨어지는 유저에게만 통하는 방법이기에 대부분의 힐러들은 채찍을 이용한 방법을 주로 사용하고 있었다.
‘244 사냥터 오픈.’
김환근은 수수료를 주더라도 도우미 시스템을 이용해서 사냥팀을 물색해 보았다. 사냥 길드로 가면 수수료를 내지 않아도 된다.
〈힐러 구합니다. 레벨 25 탱커와 근접 딜러 3명, 원거리 딜러 2명이 대기하고 있습니다.
레벨 50의 탱커가 레벨 30이상 딜러 5명 구합니다.
힐러가 레벨 30이상 탱커 구합니다. 딜러 5명이 출격 준비 중.
……!〉
244 사냥터는 거대 풍뎅이를 잡는 사냥터로 레벨 30 정도의 유저들이 몰리는 곳이다. 몇 달 사이에 조용한 숲의 도시 서울은 인구 50만 명을 넘어섰다. 그러자 많은 길드들이 몰려오면서 사냥터에는 인간뿐 아니라 오크나 다른 이종족 사냥꾼들도 넘쳐나고 있었다. 레벨 30이 되지 않아도 힐러가 가입한 파티는 사냥을 허가해 주고 있었다.
김환근은 인간들로 이루어진 파티에 가입했다. 길드가 있는 유저들은 길드원들끼리 뭉쳐서 사냥을 하기에 사냥터 게시판에 올라온 글들은 모두 길드가 없는 무소속 자유용병들이 올린 글들이다.
* * *
244 전진요새 광장
조용한 숲의 도시 서울에서 30Km 떨어진 거대 풍뎅이 사냥터에 세워진 전진요새의 광장에 수십 명의 유저들이 끼리끼리 뭉쳐서 파티원들을 찾고 있었다. 요새는 높은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광중의 중심에는 용족 석상 하나만 있었다.
“낙하산님!”
“예. 접니다.”
유저들은 친한 사이가 아니면 닉네임이나 가명을 쓰고 있었다. 김환근은 암호명인 낙하산이란 이름으로 이 파티에 가입했다.
“제주 파티장 천검입니다. 그런데 낙하산님 레벨이 40이라고요?”
천검이 만든 파티의 이름은 제주였다. 제주도 출신들이 뭉쳐서 사냥을 주로 하는데 소수라 길드를 만들지 못하고 자유용병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했다. 천검의 레벨의 31이고 포지션은 탱커였다.
“네. 방패와 검을 쓰는 근접 딜러입니다. 이름은 산으로 불러주십시오.”
“예. 레벨 40이면 산님이 탱커 하셔도 되겠네요?”
“제가 민첩 위주라 힘이 딸립니다.”
“따라오십시오. 파티원들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천검을 따라가니 구석에 5명의 파티원들이 모여 있었다.
“인사해라. 이번에 함께 사냥을 하실 레벨 40의 근접 딜러 산님이다.”
“반갑습니다. 레벨 32 근접 딜러인 조랑말입니다.”
창을 들고 있는 40대 초반의 남자가 인사를 하였다.
“안녕하세요. 레벨 31인 원거리 딜러 달기에요.”
등에 활과 화살통을 메고 있는 30대 초반의 여자가 인사를 하였다.
“안녕하십니까? 레벨 30인 원거리 딜러 장비입니다.”
석궁을 든 20대 남자였다.
“안녕하십니까? 레벨 31인 원거리 딜러 명중입니다.”
석궁을 든 20대 후반의 남자였다.
“안녕하십니까? 레벨 33인 근거리 딜러 필살입니다.”
방패와 단검을 든 30대 초반의 남자였다.
“반갑습니다. 레벨 40의 근거리 딜러인 산이라고 합니다.”
김환근도 파원들과 인사를 하였다. 244 사냥터의 파티원은 7명을 넘을 수 없었다.
“우리는 24번 통로에서 20분 후에 3시간 동안 사냥하도록 배정 받았습니다. 그럼 34번 통로로 가서 대기하도록 하겠습니다.”
244 전진 요새에는 100여개의 통로가 있었다. 이 통로로 가서 문을 열면 밖을 돌아다니던 거대 풍뎅이가 생명체의 냄새를 맡고 달려든다.
스르르!
마법으로 문이 열렸다. 그러자 안에서 거대 풍뎅이의 사체와 레드 스톤을 얻은 유저 7명이 보였다. 이들은 문이 열리자 인벤토리를 열고는 해체 한 거대 풍뎅이 괴물 사체와 레드 스톤을 넣고는 도시로 이동했다.
삐!
“진입합니다.”
푸른 불이 들어오면서 신호가 울리자 제주 파티가 통로로 들어갔다.
스르르!
7명이 모두 진입하자 문이 닫혔다. 여기부터는 마법이 통하지 않는 공간이다.
“모두 힘을 합쳐서 문을 열겠습니다.”
밖으로 나가는 입구는 원형의 홀로 되어 있었다. 그리고 문은 철문으로 되어 있었고, 좁은 계단을 타고 2층으로 올라갈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예.”
파티장의 명령에 따라 김환근은 손잡이가 달린 커다란 원형 바퀴를 돌리기 시작했다.
촤르르르!
그러자 쇠사슬이 감기면서 문이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파티장인 천검은 문 앞에서 괴물이 없는지 확인했다.
철컥!
“명중이는 문 닫을 준비하고 나머지는 자신의 위치에서 사냥 준비하고 대기합니다. 제가 나가서 괴물을 유인해 오겠습니다.”
근거리 딜러들은 통로에서 나와 원형 홀 좌우에 섰다. 그리고 원거리 딜러들은 계단으로 올라가서 2층에 대기했다.
“예. 조심하십시오.”
레벨이 낮은 이들은 전진 요새에 마련된 안전한 사냥터로 괴물을 유인해서 가둔 뒤에 사냥을 한다. 레벨이 높은 이들은 밖으로 나가서 사냥을 한다. 고 레벨의 유저들이 없다면 전진 요새의 문만 열어도 사냥감이 기어들어온다.
휘익!
파티장인 탱커는 밖으로 뛰어나갔다. 거대 풍뎅이의 속도가 그렇게 빠르지는 않기에 이동속도 스킬을 가진 유저라면 누구라도 쉽게 유인할 수 있다.
“준비!”
잠시 후에 파티장이 거대 풍뎅이 괴물을 달고 달려왔다.
휘익!
통로 안으로 들어온 천검이 뒤돌아서서 방패를 내밀었다.
“키이익!”
지능이 없어서 살생의 본능만 남는 거대 풍뎅이 괴물이 통로 안으로 들어왔다. 크기는 소형 트랙터 정도로 자동차보다 훨씬 큰 놈이다. 등껍질이 두꺼워서 마나를 주입한 칼이 아니면 잘 박히지도 않는다.
철컥!
촤르르르!
구구구구쿵!
필살이 걸어 놓았던 쇠사슬을 풀자 바퀴가 돌아가면서 육중한 철문이 단두대의 칼날처럼 내려왔다.
“공격!”
괴물이 갇히자 천검이 소리치면서 달려들었다. 거대 풍뎅이는 불리하면 날아가 버린다. 하지만 좁은 공간에 갇혔기에 날아가지 못한다.
쾅!
게임과 달리 괴물들에게는 어그로 수치가 없어서 탱킹이 불가능하다. 어그로란 사냥감을 화나게 해서 탱커에게만 달려들게 하여 탱커가 사냥감을 막고 있는 동안 딜러들이 공격하는 게임 용어다. 때문에 탱커인 천검은 정면에서 가장 위험한 이빨 공격을 막아내는 동안 안전한 좌우에서 근거리 딜러들이 공격을 하고, 원거리 딜러들은 멀리서 화살이나 암기로 공격을 한다. 어그로 수치는 없지만 게임처럼 괴물 사냥을 하는 것이다.
카카카캉!
김환근은 눈치를 보면서 적당한 힘으로 거대 풍뎅이의 다리 관절을 공격했다. 다른 근거리 딜러들이 그렇게 공격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힘 조절하는 것도 수련이네.’
김환근은 본신의 힘은 그대로 두고 불안전한 대기에 있는 죽음의 기운과 생명의 기운을 끌어오며 검에 담아서 후려쳤다. 사부인 이명산 도인은 생명의 기운인 내단을 축으로 해서 자연의 기운을 끌어다 쓰기에 죽음의 기운이 아닌 생명의 기운만을 이용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죽음의 기운을 사용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생명의 기운과 반발하고 잡아당기는 음양의 속성의 이용해 이화접목의 수법으로 끌어당겼다가 회전시켜 돌려주기도 하고, 흘려버리기도 할 수 있다. 하지만 김환근은 두 개의 축이 되는 음양의 기운인 생명의 기운과 파멸의 기운을 모두 가지고 있기에 죽음의 기운도 흡수해서 모았다가 사용할 수 있었다.
슈슈슈슉!
퍼버버벅!
2층에서 화살로 괴물의 머리를 공격하는 원거리 딜러들이다. 화살이 머리에 박하기는 하지만 완전히 뚫고 들어가지 못했다. 그러자 그들은 뭉툭한 화살을 날려서 박혀 있는 화살을 두드려서 못처럼 밀어 넣고 있었다. 원래는 명중 스킬을 사용하고 있었기에 백발백중이어야 한다. 하지만 이곳은 불안전한 에너지 때문에 화살의 유도 기능이 떨어지고, 괴물이 빙빙 돌면서 움직이기에 열 발 중에 한 발만 맞추어 머리에 박힌 화살을 때려서 안으로 조금씩 밀어 넣고 있었다. 세 딜러가 하나의 화살만 집중적으로 두드리기에 착실하게 안으로 밀어넣고 있었다. 레벨이 높은 괴물이라면 재생력으로 화살을 밖으로 밀어내는 속도가 더 빠르다.
‘레벨 40이라고 했으니 힘을 더 높여볼까?’
슉!
콰직!
김환근은 거대 풍뎅이의 옆에서 대검을 찔러서 다리 관절 하나를 박살냈다. 다리 하나가 끊어지자 빙빙 돌면서 공격을 하던 괴물이 한쪽으로 주저앉았다.
“나이스!”
“역시 레벨 40이다.”
“아자.”
카카카캉!
퍽!
속도가 줄어들어 기동력이 떨어진 괴물을 유저들이 더 적극적으로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괴물의 다리가 하나씩 떨어져나가고 원거리 딜러들의 화살 적중도가 높아져서 더욱 빠르게 화살이 머리로 밀려들어갔다.
“됐다.”
펑!
화살이 괴물의 머리 안으로 완벽하게 들어가자 폭발 스킬을 사용했다. 그러자 화살이 폭발하면서 괴물의 뇌가 산산조각이 났다.
털썩!
“우와! 성공이다.”
“한 시간도 안 걸렸다.”
“산 형님 공격력 장난 아니다.”
“레벨 40도 넘는 것 같다.”
보통 2시간 정도 걸려야 정상이다. 괴물을 잡고 해체까지 하면 한 마리 잡고 다른 파티에게 사냥터를 양보해야 한다.
“괴물 해체는 한 마리 더 잡고 하겠습니다. 마나 부족하신 분은 물약 드시고 사냥 준비해 주십시오.”
“충분합니다.”
김환근이 충분하다고 말하자 모두 힘을 합해서 거대 풍뎅이 사체를 한쪽으로 치우고는 머리 안에서 레드 스톤을 꺼냈다. 그리고는 힘을 합쳐서 문을 열고 탱커가 또 한 마리의 거대 풍뎅이 괴물을 유인해 와서 사냥을 하였다. 김환근이 쉽게 다리 관절을 부수자 기동력이 약해진 거대 풍뎅이 괴물을 쉽게 공격해서 2시간 만에 두 마리를 잡았다. 일행은 관절을 자르고 날개를 자르고 몸통을 갈라서 인벤토리에 들어갈 수 있도록 분해를 하였다. 그리고 통로 안쪽으로 나르기 시작했다.
딸랑! 딸랑!
줄을 잡아당겨 사냥이 끝났음을 알렸다.
스르르!
자동으로 문이 열리자 일행은 거대 풍뎅이 사체를 밖으로 옮겨서 인벤토리를 열어서 담기 시작했다.
“정산은 도시에 있는 사냥 길드로 가서 하겠습니다. 모두 사냥 길드에서 봅시다.”
“예.”
일행은 모두 용족 석상 앞으로 이동해서 수수료를 내고는 공간이동을 하였다. 그리고 수수료를 아끼기 위해 차원상점이 아닌 사냥꾼 길드에서 운영하는 상점으로 가서 직접 사체와 레드 스톤을 판매했다. 그리고 점수를 합산한 후에 모두가 약속한 대로 배분을 하였다.
“다음에 또 같이 사냥합시다.”
“예.”
실명이라면 나중에 도우미 시스템으로 연락이 가능하지만 닉네임이나 별명이기에 연락할 방법이 없었다. 은근슬쩍 같이 한잔하자고 했지만 김환근은 거절하고는 번 돈을 들고 집으로 향했다.
‘현주는 사냥이 끝났나?’
이현주는 레벨이 높기에 전진기지에 있는 시설을 이용한 사냥이 아니라 밖으로 나가서 필드 사냥을 한다.
〈아직 연락이 되지 않습니다.〉
아직 사냥이 끝나지 않은 모양이었다.
‘닉네임을 산으로 바꾸고 필드 사냥을 가 볼까? 현주하고 사냥하면 좋을 텐데? 현주하고 단 둘이 사냥이나 할까?’
김환근은 괴물 사냥도 이제는 무위도식하는 놀이의 일종이다. 이왕이면 더 재미있게 놀기 위해 이현주와의 사냥을 생각했다. 이현주는 한국 길드 소속이라 길드원들과 같이 사냥을 한다. 김환근이 낙하산이라는 암호명을 말하면 길드원들은 대환영을 하고, 김강수 대위를 비롯한 정예들이 모두 나와서 몰이사냥을 할 가능성이 컸다. 그러면 놀이가 아닌 노동이 된다. 그렇다고 신분을 감추면 길드 사냥에 끼일 방법이 없다. 그렇다면 높은 레벨이라고 신고한 후에 이현주와 단둘이 사냥을 하는 방법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