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60 30. 조화경(造化境) =========================================================================
30. 조화경(造化境)
“성공이군. 더 버틸 수 있으냐?”
“응.”
붉은 눈동자로 몸에서 무시무시한 기운을 뿜어내면서 사부에게 반말로 대답하는 김환근이다. 그의 대답과 달리 위태로워 보이는 모습이다. 그랜드 마스터인 베아트 공작을 제거하면서 생각보다 많은 파멸의 기운을 사용한 그다. 이명산 도인이 내단의 힘으로 조율하지 않았다면 베타 공작의 몸에서 나온 블루 스톤까지 파멸의 기운으로 흡수했을 것이다.
“블루 스톤을 모두 먹고 조금만 더 버텨라.”
“……!”
이번에는 대답도 없이 고개만 끄덕이는 김환근이다. 이명산 도인이 가지고 있던 블루 스톤을 주자 그제야 탐욕스럽게 블루 스톤을 모두 삼켰다. 그 기운이 모두 파멸의 기운으로 흡수되면 더 위험하지만 흡수되는 동안의 시간을 벌 수 있을 것이다.
“조금만 참아라.”
스슥!
허공에서 폭발을 일으키던 결계가 사라지자 이명산 도인은 축지 경공술을 전개해서 베아트 공작의 친위대를 막고 있는 유저들 틈으로 들어갔다.
번쩍!
콰과과과쾅!
이명산 도인은 천지검법을 사용해서 유저들을 위험해서 구해주면서 근위 기사단의 목을 자르기 시작했다. 유저들은 모든 방어 스킬을 사용해서 버티면서 시간을 끌고 있었다. 승기를 잡자 헤론 공작이 친위대인 근위 기사단을 거느리고 달려와서 도와주지 않았다면 유저들 반 이상이 전사했을 것이다. 헤론 공작은 이명산 도인과 김환근이 보여주는 무위를 보자 놀라서 달려왔다. 나중에 그들의 검이 자신을 향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보통이라면 용병들이 많이 죽어야 돈이 적게 든다. 사망 위로금보다 승전 보너스와 전공 포상비가 더 크기 때문이다.
서걱!
퍽!
헤론 공작과 이명산 도인은 베아트 공작의 친위대인 기사들의 머리를 경쟁 하듯이 박살내면서 그들의 몸에서 나오는 블루 스톤과 레드 스톤을 확보했다.
“와아!”
“이겼다.”
잠시 후에 헤론 평야에서 승리의 함성이 울려 퍼졌다. 베아트 대공이 보이지 않자 전쟁용병들과 병사들이 항복을 하기 시작했고, 지휘부인 기사단은 전원 전사했다.
“베타트 공작은 어떻게 되었나?”
“우리가 잡았다.”
헤론 공작의 질문에 이명산 도인이 대답했다.
“가져와라.”
“예.”
헤론 공작의 명령에 기사 하나가 커다란 가죽 주머니를 가져왔다.
“약속대로 이 전장에서 나온 블루 스톤들이다.”
승전 보너스와 전공 포상으로 이 전투에서 얻은 모든 블루 스톤을 요구했던 한국 길드다. 그 약속대로 헤론 공작은 블루 스톤을 모두 건네주었다.
“그럼, 우리는 가 보겠다.”
“수고했다.”
의뢰서에 서명을 한 후에 이명산 도인은 유저들과 함께 전장을 떠났다. 헤론 공작은 불안한 표정으로 전장에서 멀어지는 이명산 도인과 김환근을 바라보았다.
“여기가 좋겠다.”
전장에서 멀어진 이명산 도인은 따라오는 김환근의 상태를 보다가 김강수 대위에게 말했다. 계획대로라면 20km 더 가야 한다. 그곳에 땅을 파고 숨겨놓은 기계 육체가 있기 때문이다.
“정지! 모두 경계 태세로 전환하라.”
김강수 대위의 명령에 유저들은 이명산 도인과 김환근만 남기고는 모두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리고 김강수 대위를 비롯한 발이 빠른 유저들은 기계 육체를 가져오기 위해 달려갔다.
“이것들을 먹으면서 명상으로 내 내단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거나.”
이명산 도인의 말에 김환근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가죽 주머니를 받아서 그 안에 있는 블루 스톤을 꺼내서 하나씩 먹기 시작했다.
‘최대한 빠르게 블루스톤을 나의 내단으로 만들어야 한다.’
이명산 도인은 바닥에 앉아서 베아트 대공의 몸에서 나온 블루 스톤을 삼키고는 그것을 자신의 내단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양심신공처럼 마음을 두 개로 나누고, 내단도 두 개로 나눈 후에 자신의 모든 기억과 경험을 새로 만든 블루 스톤 내단에 스킬로 저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단에 있는 천지신공과 천지조화술과 같은 중요한 스킬들을 새 내단으로 이전하는 작업을 하였다.
스슥!
시간이 지나자 김강수 대위가 관을 들고 왔다. 그리고 기계 육체가 들어있는 관의 뚜껑을 열었다. 그리고는 대법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자리를 피해 주었다. 다만 김강수 대위는 그 자리에서 대기했다. 이명산 도인을 도와주기 위해서다.
‘이 대법이 실패하면 사상 최악의 괴물이 탄생하겠군.’
이명산 도인은 떨리는 마음으로 두 개의 내단을 자신의 몸에서 꺼냈다. 우선은 새 내단을 기계 육체의 입에 넣은 후에 영혼이체술을 전개했다.
푸스스!
잠시 후에 이명산 도인의 육체가 먼지가 되어 부셔졌고, 커다란 내단만 남았다. 김강수 대위는 관 안에 있는 기계 육체를 한 번 보고는 바닥에 떨어진 커다란 내단을 집어 김환근에게 가져다주었다. 김환근은 탐욕스런 붉은 눈동자로 내단을 받았다.
스슥!
김강수 대위는 관의 뚜껑을 닫고는 그 자리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크윽!”
김환근은 먼지로 부셔진 사부의 육체를 보고는 입술을 악물더니 내단을 바로 삼키고는 천지신공을 운기하기 시작했다.
후우우우웅!
김환근의 몸에서 거대한 두 개의 기운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내단의 기운과 파멸의 기운이었다. 붉은 기운과 상서로운 푸른 기운이 몸에서 뿜어져 나와 허공에서 싸우는 것처럼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마치 붉은 용과 푸른 용이 서로를 잡아먹기 위해 싸우는 모습을 연상케 하였다.
푸른 용이 점점 커지자 붉은 용은 살아남기 위해 대기에 있는 파멸의 기운을 흡수하면서 덩치를 키우기 시작했다. 푸른 용은 쥐를 가지고 노는 고양이처럼 붉은 용이 커지기를 기다리면서 압박을 하였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기 시작했다.
번쩍!
츠즈즈즈!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마침내 붉은 용의 기운이 자신과 대등할 정도로 커지자 푸른 용은 붉은 용을 집어 삼켰다.
후우우우웅!
김환근의 몸이 허공으로 떠오르면서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두 개의 기운이 태극의 원리로 빙글빙글 돌면서 하나가 되기 시작했다. 하나가 된 투명한 기운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붉고 푸른 두 개의 기운이 하나가 되자 빛으로 변해서 김환근의 머리로 파고들었다. 그리고 빛이 사라지자 김환근의 몸이 땅으로 내려앉았다. 그의 몸에서는 한 줌의 기운도 흘러나오지 않고 있었다. 모든 마나가 사라진 일반인처럼 보였다.
“……!”
잠시 후에 김환근은 눈을 떴다.
‘바다보다 더 넓은 대우주가 되었구나.’
김환근은 인간을 소우주로 표현하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자신의 몸은 모든 에너지를 다 포용할 수 있는 바다보다 더 넓은 대우주가 되어 있었다. 자신의 몸 안에는 마나를 담은 마나홀도 없었고, 레드 스톤과 블루 스톤이 생기는 중단전과 상단전도 사라져 있었다. 상중하 세 단전뿐 아니라 몸 자체가 하나의 단전으로 통합되어 있었다. 단전이 없는 무극지체와 같은 신체로 변해 있었다.
스슥!
김환근이 눈을 뜨자 멀리서 지켜보단 김강수 대위가 달려왔다.
“실장님! 괜찮으십니까?”
김강수 대위가 불안한 표정으로 물었다.
“예! 덕분입니다. 고맙습니다.”
“아!”
김환근의 말투에 김강수 대위의 안색이 환하게 밝아졌다.
“사부님은 어떻습니까?”
“이미 깨어나셔서 명상에 들어가셨습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습니까?”
“보름이 지났습니다.”
“제가 그렇게 오래 있었습니까?”
김환근은 잠깐 눈을 감았다 뜬 기운인데 벌써 보름이 지났다는 말에 놀라서 반문했다.
“예. 다른 대원들이 지원을 나왔기에 큰 문제는 없었습니다.”
“사부님에게 가 볼까요?”
“예. 실장님.”
스슥!
두 사람은 이동하여 10Km 정도 달려가자 커다란 군용 천막이 보였고, 그 안에 기계 인간이 바닥에 앉아 명상을 하고 있었다.
“성공했구나.”
이명산 도인은 김환근이 들어오자 눈을 뜨고는 환한 표정으로 반겼다.
“사부님 덕분입니다. 그런데 명상을 그만 두셔도 됩니까?”
“허허! 이제 평생을 두고 해야 할 일이 되었다. 너는 어떠냐?”
역대 천지문주들이 얻은 심득과 경험들은 모두 김환근이 가져갔다. 이명산 도인은 그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자신이 일생동안 경험한 지식과 기억만을 스킬로 만들어 가져왔다. 이제 천지문주는 이명산 도인이 아니라 김환근이다. 그렇지만 이명산 도인은 걱정하지 않았다. 자신이 수백 년 동안 참오하여 깨달은 심득을 두고 역대 천지문주들이 얻은 심득을 참오 한다고 해서 더 높은 경지로 올라가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자신의 것 하나에 집중하는 것이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모두 잊었습니다.”
바다보다 넓은 무한한 우주 공간에 모든 스킬과 기운을 담았다는 뜻이다. 무한한 대자연을 품 안에 간직하고 있으니 이제는 그 어떤 파멸의 기운도 조화와 균형을 깨지 못할 것이다.
“이제부터 찾아야 하겠구나.”
모든 것을 다 담을 수 있지만 그것에서 필요한 것을 꺼내 쓰는 것은 수련이 필요하다.
“예. 그런데 불편하시지 않습니까?”
“괜찮다. 오히려 감각을 조율할 수 있는 센서를 마나로 조정할 수 있어서 술도 취할 수 있고, 맛없는 음식도 맛있게 먹을 수 있겠더구나. 시간이 있으면 센서와 마나를 대신할 수 있는 초감각 스킬을 활용할 방법을 찾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심검의 경지를 초월해야 할 것 같구나. 아무튼 도전할 것이 너무 많아서 오히려 기분이 좋다.”
조화경에 도달한 김환근은 사람의 몸에서 나오는 기운을 보고는 그것이 거짓인지 참인지 알아낼 수 있을 정도다. 때문에 사부의 말이 자신을 위로하기 위한 거짓이 아니란 것을 알기에 그의 얼굴에도 환한 미소가 어렸다.
“정말 다행입니다.”
“드워프 기술도 배워서 이 딱딱한 몸도 개조 좀 해야 하겠다.”
“하하하!”
사부의 농담에 진심이 섞여 있음을 안 김환근이 웃음을 터뜨렸다.
“녀석, 보기 좋구나.”
제자가 심마의 영역에서 벗어난 것을 보자 절로 미소가 어리는 이명산 도인이다. 너무 급하게 강해지만 그 부작용이 생기기 마련이다. 다행이 자신의 제자는 심마에서 벗어나 조화경에 들었으니 앞으로는 그 어떤 심마에도 빠지지 않을 것이다.
“사부님 덕분입니다.”
“그래.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이냐?”
“무위도식이 좋지 않겠습니까?”
무위도식이란 일하지 않고 빈둥빈둥 놀고먹는다는 뜻이다.
“허허! 네가 진정 도에 이르렀구나.”
“안됩니다.”
듣고 있던 김강수 대위가 깜짝 놀라서 끼어들었다. 한국 길드의 실질적인 수장이 김환근이다. 그가 귀족급을 넘어서 황제급에 도달했다. 이제부터 세력을 키우고 무한히 성장할 수 있는 무한 동력을 얻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런 무한 동력이 태업을 하겠다고 하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무위도식을 해도 내 사람들은 지키겠습니다.”
역대 천지문주들은 세상을 초월한 힘을 가지고 있었기에 홀로 유유자적하면서 삶을 즐기면서 무위도식을 한 자들이 많았다. 절대무력을 가지고 있으니 왕이나 황제의 권력이 부럽지 않고, 되어 보았자 일만 많아진다. 왕 앞에 나서서 무력시위를 하면 자신을 신처럼 떠받들기에 세상을 정복한다거나 권력과 부를 추구하는 것 자체가 시시한 것이다. 축지 경공술로 세상을 떠돌아다니면서 좋은 음식과 절경을 구경하면서 삶을 즐기는 것을 목표로 한 자들이 대부분의 천지문주다. 그런 천지문주들의 심득과 경험이 담긴 내단을 소화했기에 그들의 사상이 김환근에게도 그대로 전달되었다. 이명산 도인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것이지만 김강수 대위의 입장에서는 청천벽력이다.
“평화는 힘이 있어야 지켜지는 것입니다.”
“힘은 충분합니다.”
“개인의 힘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세력을 말하는 것입니다.”
“급격한 팽창은 부작용이 따르게 마련입니다. 세력을 키우는 것은 김 대위님의 몫입니다. 김 대위님이 감당하기 힘든 적이 나타날 때만 돕도록 하겠습니다.”
김환근은 황제급인 드래곤들이 떠난 이유도 자신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절대무력을 가지고 있으니 세력을 만드는 것도 귀찮았을 것이다. 다만 강한 힘에는 그에 맞은 책임이 따르는 법이니 자신들의 힘이 필요할 때만 개입하기 위해 떠나서 미지를 여행하면서 삶을 즐기고 있을 것 같았다.
‘나도 언젠가는 우주전함을 만들어서 우주여행이나 해야 하겠다. 그 전에는 힘을 감추고 무위도식이나 하자.’
역대 천지문주들의 사상에 영향을 받은 김환근은 무위도식을 삶의 지표로 삼았다. 낙하산다운 생각이었다.
* * *
몇 달 후
이명산 도인은 베아트 대공과의 싸움 때에 얻은 부상이 심해져서 죽었다고 소문이 났다. 그리고 사부의 죽음에 충격을 받은 김환근은 어디론가 사라졌다고 소문이 났다. 기계 육체를 얻은 이명산 도인은 찰스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다. 김환근도 도술로 체형과 얼굴 모습을 바꾸고는 아버지 집에서 빈둥거리고 있었다.
“이놈아! 제발 밖에 나가서 일 좀 해라.”
한국 길드 소속의 유저인 김환근의 아버지는 약초술사로 활동하고 있었다. 괴물 사냥터로 가서 약초들을 채집해서 그 약초들을 이용해서 새로운 포션과 약을 만드는 것이 그의 일이었다. 처음에는 아들이 집으로 오자 반갑게 맞이했지만 한 달이 지나고 몇 달이 지나도 방에서 빈둥거리자 결국 폭발하고 말았다.
“네.”
김환근은 집에서 빈둥거리면서도 명상을 통해서 심상 수련을 하였다. 상상 속에서 역대 천지문주와 가상의 대련을 하거나 싸우는 심상 수련이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눈에는 침대와 소파에서 빈둥거리면서 공상이나 하는 것으로 비쳐졌다. 김환근은 심상수련이 재미가 없었다면 며칠 만에 포기했을 것이다. 하지만 상상 속에서 온갖 방법으로 전투를 하는 것은 영화를 보는 것보다 재미있었다. 더구나 역대 천지문주들은 괴짜들이 많아서 기발한 방법으로 공격과 방어를 했기에 게임보다 재미있었다. 더구나 상상 속에서는 자신의 모든 힘을 발휘해 도시가 파괴되어 수십만 명의 사람들이 죽는 것을 상관하지 않고 싸울 수 있으니 더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