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낙하산-20화 (20/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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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박무현 중령

다음날

김환근은 전화를 하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휴게실에서 당직 의사와 함께 수다를 떨면서 야식으로 라면을 먹고는 방으로 돌아와서 그냥 잠을 잤다. 보통은 밤에 반공호 공사를 하러 가서 일을 한 후에 평행차원으로 가서 보름을 수련하거나 정찰을 하면서 보냈다. 하지만 하루에 한 번 가도 15일 이상 일하다가 오는 것이다. 때문에 이제는 주말에는 평행차원으로 가지 않고 그냥 쉬기로 했다. 현실에서는 사람을 만나서 일하는 평범하고 소소한 일상이 김환근에게는 소중한 휴식과 같았다.

띠리링!

늦잠을 자서 아침식사를 인벤토리에 있는 즉석 식품을 꺼내서 방에서 때우고 침대에서 빈둥 거리는 김환근이다. 그런 때에 스마트 폰으로 전화가 와서 확인해 보니 이현주의 전화번호였다.

“나다.”

이제는 자연스럽게 말을 놓고 지내는 사이다.

<네. 실장님.>

“오빠라고 하라니까?”

<피.>

아직도 넘어온 것은 아니라고 하듯이 밀당을 한다. 김환근 입장에서는 410년이 넘는 세월을 보낸 것이지만 이현주 입장에서는 아직 3달뿐이 되지 않았다.

“왜?”

삐졌다는 듯이 말을 하였다.

<오늘 뭐 하세요?>

김환근의 입장에서는 1년에 한 번, 십년에 한 번, 심한 경우는 100년에 한번 만난 만나서 데이트를 한 것이지만 이현주 입장에서는 거의 매일이다. 어떤 경우는 아침에 같이 병원 식당에서 식사하고, 약국에 중간에 세 번이나 찾아와서 차를 마시거나 일을 도와 준 후에 점심 식사는 나가서 하고, 오후에도 약국에 찾아오고는 저녁 식사를 한 후에는 밤에 나가서 술도 마셨다. 하지만 이현주가 잠을 자는 밤에는 왔다가 바로 평행차원으로 가니 100년에 가까운 시간을 평행차원의 미래에서 보낸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현주의 입장에서는 하루에 서너 번 이상 약국으로 찾아오니 부담스러울 때도 있었다.

“오늘은 바쁜데.”

<실장님이 바쁘실 때도 있어요?>

“어! 듣는 오빠 상처 받는다.”

<퍽이나요.>

이수정이 그렇게 싫은 내색을 해도 무던하게 오면서 그런 수정의 모습도 반가워하는 철면피가 김환근이다. 이제는 이수정도 제풀에 나가 떨어져서 함께 모이는 술자리에 자주 나오고, 심지어 둘이 나가는 식사 자리에 따라나올 정도다.

“오늘 손님들 오기로 했다. 저녁에 시간 나면 전화할게.”

<저도 바쁘거든요.>

괜히 튕기는 이현주다.

“그럼, 약국에 있겠네.”

<네. 지난주에 쉬어서 일이 밀렸어요.>

“그럼, 데이트가 아니라 일을 도와 달라고 전화한 거야?”

<네. 대신 저녁 사드릴게요.>

“우와! 너 뻔뻔해 졌다.”

<실장님에게 그런 말은 안 어울리거든요.>

이수정은 김환근을 보고 철면피, 뻔뻔 대마왕이라고 소문을 내고 다녔을 정도다. 이제 김환근 앞에서는 농담도 하고 잘 웃지만 뒤에서는 여전히 흉을 보면서 소문을 내는 이수정이다.

“알았다. 가서 일해주다가 손님 오면 나갔다가 올게.”

<정말 손님 와요?>

“그럼, 내가 거짓말 하니?”

<죄송해요. 바쁘시면 안 도와주셔도 돼요.>

약국 일이 바쁘기는 하지만 자원봉사자들의 지원을 받아서 해도 된다.

<괜찮아. 지금 내려갈게. 약국이지?>“아니요. 지금 숙소에요. 10분 있다가 갈게요.>

“그래.”

김환근은 욕실로 가서 얼른 씻고 양치질도 번개처럼 한 후에 새 옷으로 갈아입고는 약국으로 향했다.

띠링!

3층의 병실 입구에서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고대 출신의 의사인 강형민이 들어왔다.

“실장님! 어디 가세요?”

“약국에 간다. 주말 당직이냐?”

“네.”

“올라가는 거 아니냐?”

강형민이 엘리베이터에 들어오자 김환근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저도 약국에 가서 커피나 한 잔 하려고 합니다. 의국에 아무도 없거든요.”

“왜?”

보통 총각인 의사들 한 두 명은 의국에 남아 있다.

“골프 치러 간다고 비발디파크에 갔어요.”

“그래서 심심해서 약국에 놀러간다고?”

“실장님 저도 현주씨에게 마음이 있습니다. 너무 그러지 마십시오.”

“흐흐! 그럼, 우린 연적인가?”

두 사람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대화를 하였다. 그리고 1층에 도착해서 내려서는 약국으로 가지 않고 대화를 하였다.

“저도 경쟁자이니 제발 긴장 좀 하세요.”

젊은 총각 의사들 모두가 이현주를 좋아한다. 하지만 얼음공주로 불리는 이현주의 얼굴에 미소를 짓게 만든 사람은 김환근이 최초다. 그러자 자극을 받은 강형민이 적극적으로 대쉬하기로 마음먹은 모양이다.

“너, 앞으로 술 안 사준다.”

“실장님 그거 반칙입니다.”

“내 데이트 방해하지 말고 커피나 마시고 빨리 꺼져라.”

“그래도 제 마음은 변하지 않습니다.”

띠링!

“너 콜 온 거 같다.”

“으! 이분 오늘 넘기기 어렵겠네.”

문자를 보더니 바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으로 올라가는 강형민이다.

“실장님이 아니라 빨리 오빠란 소리를 들어야 하는데. 400년 넘게 밀당 하는 여자는 네가 처음일 거다.”

김환근은 혼자 중얼거리면서 약국으로 향했다. 이현주는 일할 준비를 마친 후에 커피포트에 물을 끓이고 있었다.

“커피죠?”

“당연하지.”

일하기 전에 잔잔한 음악을 틀어놓고 차를 마시면서 수다를 떨었다. 그 짧은 10분의 커피타임은 금방 지나갔다.

“포장기계 사용하시는 법은 아시죠?”

“그럼, 내가 한두 번 사용 하냐?”

“오늘도 부탁해요.”

약사인 이현주가 약을 제조하기 시작했다. 14칸에서 많게는 30개가 넘는 칸에 약을 하나씩 놓은 작업을 시작했다. 이현주가 약통을 주면 한 알씩 넣는 것이었다. 이제는 소화제나 비타민, 항상제와 근육 이완제, 정신과 약 등등을 크기와 색깔만 보고도 알 수 있다.

띠링!

문자가 와서 보니 병원 도착 5분전이라고 했다.

“현주야. 손님 와서 나가봐야 하겠다.”

“저 혼자 천천히 해도 돼요.”

“형민이가 놀러오면 부려먹어.”

“강 선생님이 당직이세요?”

총각인 당직 의사들도 심심하면 약국으로 와서 차를 마시고 간다.

“그래. 아무튼 나 없다고 바람피우면 안 된다.”

“저, 아직 실장님하고 그런 사이 아니거든요.”

이현주는 얼굴이 붉어지면서 대답했다.

“하하! 그럼, 미래에는 그런 사이가 된다는 거지. 그럼, 나갈다 올게.”

“못됐어.”

김환근은 웃으면서 병원 밖으로 향했다. 잠시 기다리니 승용차 한 대가 병원 주차장에 도착했다.

“김환근씨?”

“네. 김강수 대위님이죠?”

“아직 중위입니다. 그리고 누구 덕분에 대위 달아보지 못하고 제대하게 생겼습니다. 그리고 제 스승님이나 다름없는 박무현 중령이십니다.”

“나도 이제는 민간인이다. 반갑습니다. 박무현이라고 합니다.”

“아! 예. 들어가시죠.”

김환근은 인사를 한 후에 1층에 있는 자신의 집무실로 향했다. 여직원들의 휴게실처럼 사용되지만 자신도 열쇄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주말에는 여직원들이 없으니 처음으로 자신의 집무실을 사용하려는 김환근이다.

철컥!

집무실 안으로 들어가서 소파에 자리를 권하고 차나 음료수를 권하니 모두 주스를 원해서 냉장고를 열어서 오랜지 주스를 꺼내서 내밀었다.

‘내일 여직원들에게 음료수 몇 박스 사다 주어야 하겠네.’

자신의 집무실이지만 이곳에 있는 음료와 간식은 모두 여직원들이 가져다 놓은 것이다.

“목숨을 위협받는 상황은 아니신 것 같습니다.”

“제가 요즘은 병원에서 숨어서 지내고 있습니다. 누가 제 방을 뒤진 흔적도 있었고, 범인은 놀랍게도 병원 CCTV를 피해서 침입한 흔적이 있습니다.”

김환근이 대충 둘러대었다. 전화가 오면 모르는 전화는 무조건 수신거부를 누른다. 그리고 손님이 찾아오면 무조건 없다고 하고 피해 다녔다. 그 후로는 찾아오는 사람은 없지만 자신에 대한 정보가 누설되었다면 납치하려 할 수도 있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이제는 검으로 총알도 쳐낼 정도이지만 이면 세계의 강자들이 개입한다면 어떻게 될지 자신할 수 없었다.

“단순한 경호를 부탁하려 했다면 김 중위를 필요로 하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김 중위를 필요로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박무현 중령이 질문을 하였다. 지금은 예편을 하고 놀고 있지만 김강수를 중위로 부르는 것처럼 그를 중령으로 호칭하는 김강수다.

“저에게 특수한 능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돈은 쉽게 벌 수 있습니다. 그래서 경호회사의 경호원도 믿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믿을 만한 사람을 고용해서 경호회사를 하나 설립해서 저뿐 아니라 제가 하는 회사를 경호하게 하려고 합니다.”

“주식으로 몇 달 말에 몇 1조 원을 버셨다고 들었습니다. 정말이십니까?”

“통장을 보여드릴까요?”

“믿겠습니다. 그런데 경호회사는 못 믿겠다는 분이 김 중위는 믿을 수 있습니까?”

“믿을 수 있는 분이라고 들었습니다.”

미래의 평행차원에서 그의 부하들은 팀장인 김강수 중위를 철저하게 믿고 있었다. 그리고 배신을 해도 그가 철갑탄으로 자신을 저격하지 않는 한 쉽게 대응할 자신이 있었다.

“제가 아는 후배가 경호회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원래는 예편을 하고 그곳에서 일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경영이 어려워져서 놀고 있는 중입니다. 그 경회회사에 투자하셔서 제1주주가 되시면 어떻겠습니까?”

“그냥 인수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김환근은 돈이 많으니 그냥 회사를 사 버릴 생각을 하였다.

“개인사업자는 최고세율이 38%이며, 법인사업자의 경우는 22%가 최고세율입니다. 절세나 여러 가지 면에서 규모가 커지면 법인회사로 가는 것이 유리합니다.”

“단점은 없습니까?”

“개인회사의 경우는 의사결정이 자유롭고 신속하다는 것 이외에는 장점이 거의 없습니다.”

“나라에 충성한다고 생각하고 세금을 많이 낼 생각입니다.”

김환근은 대표이사나 이사회를 열어서 자신이 미래를 준비하는 모든 것을 상의할 생각이 없었다.

“……!”

박무현은 잠시 고민하는 표정이 되었다.

“전화를 해도 될까요?”

“물론입니다.”

박무현은 밖으로 나가서 경호회사를 운영하는 후배와 통화를 하였다. 그리고는 들어와서 경호회사의 사정을 설명했다. 흑원이라는 경호회사인데 특수부대 출신의 장교들이 한 가지 정치적인 사건에 연루되어 무더기로 진급이 불가능해졌다. 서로 친한 선후배들이 모인 일종의 친목모임이 있었는데 군대내 사조직이란 이유로 책임자들이 모두 자진해서 예편을 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모임의 대장격인 박무현 중령은 인수인계 문제로 일 년 정도 더 있다가 예편을 하였다. 이들이 예편을 하고 나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다. 정식으로 예편을 한 것이라면 국가 공기업과 같은 곳에 입사를 할 기회가 있지만 이들은 정치적인 문제로 강제 전역을 당한 것이라 그럴 기회조차 박탈되었다. 다행이라면 퇴직금은 나왔다는 것이다.

이들은 퇴직금을 모아서 흑원이라는 경호회사를 설립했다. 초기 창립자금이 약 20억 원이었다. 박무현도 대출을 받아서 투자를 하였다. 문제는 이들이 경호회사의 경영을 해 본적이 없어서 경호회사 출신의 전문인을 스카우트해서 시작했는데 그가 대표이사를 맡고 나서 특전사 출신보다 경호대학 출신자들을 우대하면서 점점 회사가 투자한 특전사 대원들의 회사가 아닌 그의 개인회사처럼 운영되고 있었다.

1년 후에 박무현이 대표이사가 되기로 약속이 되어 있기에 예편을 하고 가서 인수인계를 하려고 보니 투자금은 사라져 있었고, 빚만 30억이 넘었다. 회사 사무실도 월세라 보증금 2억 원을 제외하면 초기 투자금 20억 원은 월급을 비롯한 시설투자 비용으로 모두 날아갔고, 은행에 갚아야 할 빚이 30억 원이나 된다.

이사회의 이사들이 대부분 투자한 특전사 장교들이라 대표이사직을 빼앗아 올 수 있지만 경호회사의 주요수입원이 되는 일은 모두 현 대표이사의 개인적인 인맥으로 얻어오는 일거리다. 그가 없으면 30명이 넘는 특전사 출신의 경호원들이 모두 실업자가 되고, 이사들은 빚더미에 앉아야 한다. 흑원의 주 수입원은 불법적인 노조와 관련된 일이거나 철거와 관련된 이권문제들이었다. 때문에 경호원들이 용역깡패란 말도 들을 정도였고, 현 대표이사가 고용한 20명의 경호원들은 실제로 깡패출신이라 의심되었다. 경호대학 출신들은 현장일이 아닌 사무직을 차지하고 앉아서 회사를 운영하고 있었다. 그 실상을 알게 된 박무현은 화가 나서 마음을 안정시키기 위해 낚시터를 전전하고 있던 중이었다.

“회사 빚 때문에 대표이사들이 회사에서 사직서를 내지 못하는 모양이군요. 빚 30억 원과 초기 투자비용 20억 원을 드리겠습니다. 그러니 회사를 폐업하고 특전사 출신은 모두 저에게 오십시오. 계약금은 일인당 10억 원에 연봉 2억 원입니다. 새로운 경호회사의 조직 체계는 알아서 운영해도 되지만 김강수 대위님은 제 직속으로 해서 제 명령에만 따라는 특수팀 팀장으로 했으면 합니다.”

“그건 문제가 되지 않지만 돈을 너무 많이 주시는 것 아닙니까?”

“제가 하는 일은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입니다.”

“단순한 경호가 아닌 모양입니다.”

“나라와 세계 평화를 위해서 다시 총을 잡아야 할 가능성이 99%입니다.”

“불법적인 일입니까?”

“그건 여러분이 운영하기 나름입니다. 경호회사에서 출발하지만 총기 소지가 가능한 민간전투회사인 PMC를 설립을 목표로 합니다.”

“국가와 세계 평화를 위한 일 맞습니까?”

경호회사에서 하는 일을 확인해 보니 용역깡패들이 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때문에 돈 문제를 떠나서 절망하고 있던 박무현에게 김환근의 말은 죽어버린 마음을 다시금 불타오르게 하고 있었다.

“물론입니다. 경호회사의 운영을 여러분에게 위임할 것이니 불의한 일을 시키면 저항하십시오. 다만 비밀리에 총기를 이용한 전투훈련이나 사격연습은 불법이라도 불의한 일이 아니니 따라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그 일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겠습니까?”

“지금은 말해도 허황된 소리로 들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7개월 후면 제 말을 믿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제 특수 능력은 그때 알려드리겠습니다. 힌트를 드린다면 제가 돈을 주식으로 쉽게 버는 것도 제 특수 능력과 관계된 것입니다.”

“이런 기회를 놓친다면 바보일 것입니다. 앞으로 충심을 다해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충!”

“충!”

두 사람은 일어서서 거수경례를 하였다.

“이러지 않아도 됩니다.”

“아닙니다. 저희는 비록 예편을 했지만 끝까지 군인으로 살 것입니다. 사장님이 하시는 일이 국가와 세계 평화를 위한 일이 분명하다면 저희의 충심을 막지 말아주십시오.”

일을 하는데 돈보다 중요한 것이 그 일에 대한 자부심과 보람이다. 그것을 위해 목숨을 초개같이 바칠 수 있는 사람들이 특전사 대원들이고 그렇게 훈련 받았다. 그 일을 다시 할 수 있게 해준 김환근은 자신들의 사령관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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