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낙하산-6화 (6/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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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데이트

‘아! 열 받아.’

병원에 있는 자신의 방으로 들어와 씻고 침대에 누웠지만 화가 나서 잠이 오지 않는 김환근이다.

‘아무리 낙하산이지만 면전에서 낙하산이라고 하면 듣는 낙하산 기분 나쁘다.’

더구나 상대가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꼬맹이라 남자 체면에 싸우기도 뭐하다.

‘때려 칠까?’

하는 일 없이 일주일 동안 빈둥거리는 것이 이렇게 심난할 줄은 생각도 못했다. 모두 열심히 자신의 일을 하는데 자신만 할 일 없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튜토리얼이나 해 볼까?’

김환근은 스스로에 당당해 지기 위해서 튜토리얼을 끝내고 차원전사가 되어 지구를 지키는 영웅이 되는 상상을 해 보았다. 그렇게 되면 낙하산이 아니라 낙하산 할아버지라도 당당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 열심히 하자.’

김환근은 벌떡 일어나서 침대에 발을 얻고는 팔굽혀 펴기를 하였다. 지쳐서 팔이 부들부들 떨릴 때가지 하고는 샤워를 하자 그제야 분노가 풀리고 편안하게 잠을 잘 수 있었다.

* * *

다음날

김환근은 오전에 약국에 갈 생각으로 새벽에 일어난 김환근은 새벽 산악 구보를 하고는 산에 있는 공터에서 검도 도장에서 배운 보법과 내려치기 수련을 하였다. 보법은 앞발이 먼저 나가고 뒤의 발이 따라가는 것, 반대로 뒤로 가는 것, 옆으로 가는 단순한 보법이다. 보법에 맞추어 검을 내리치는 것만 일주일 내내 수련하고 있었다. 수련을 마친 김환근은 돌아와서 샤워를 하고는 지하에 있는 식당에서 아침식사를 하였다. 그리고 체력 단련실에서 근력운동을 하고는 10시쯤에 약국으로 갔다.

‘정말 혼자 일하네.’

김환근은 약국의 창문으로 이현주가 보이자 그냥 가슴이 설렜다. 그리고 촌놈처럼 얼굴이 붉어졌다. 강원도 촌에서 태어났으니 촌놈인 것은 맞다.

‘아! 창피하게.’

김환근은 화장실로 들어가서 찬물로 세수를 하고는 마음을 진정시켰다.

똑똑!

화장실에서 나온 김환근은 심호흡을 크게 하고는 문을 두드렸다.

“네.”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세요.”

‘목소리도 천사네 천사야.’

김환근의 귀에는 목소리도 천사의 목소리처럼 들렸다.

“하하! 도와주러 왔습니다.”

“감사합니다.”

김환근은 이때부터 단순 반복 작업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길게 기차처럼 늘어선 칸에 약사가 주는 약을 하나씩 넣었다. 그리고 약봉지에 넣은 후에 기계로 약봉지를 눌러서 붙이면 되는 일이었다. 약사는 일일이 처방전을 확인하고 이름을 적은 후에 큰 봉투에 넣어서 정리를 하였다.

“무슨 약이 이렇게 많습니까?”

일은 해도 해도 끝이 없었다.

“시설에 있는 환자서 수천 명이에요. 일주일씩 처방이 내려오기도 하고, 이 환자들은 2주치 처방입니다.”

이번 주 목요일까지 하면 되는 일이지만 이현주는 그런 말을 빼고 사실대로 알려주었다. 출근해서 이수정이 매일 하는 일이다. 그리고 일이 더 많으면 자원봉사자들을 받아서 하기도 하고, 야근을 하면서 해야 한다. 그래서 어린 이수정이 할 일을 줄여주기 위해 주말에도 가끔 이렇게 일을 하는 이현주다.

“아! 그렇군요.”

“커피나 녹차 있는데 어떤 차를 드릴까요?”

이현주는 놀러온 사람에게 일을 시키는 것이 미안해서 차를 준비해 주었다.

“커피요.”

직접 커피를 타 주자 김환근은 감격했다. 김환근은 병원에서 자신이 할 일이 있다는 것이 그냥 좋았다. 그리고 천사 같은 이현주와 함께라서 더 좋았다. 이처럼 사냥하고 천사처럼 고운 마음씨를 이현주를 얼음공주라고 부르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커피를 마시고 말없이 더 열심히 일했다.

“더 없습니까?”

“네.”

더 이상 약국에서 할 일이 없었다.

“어?”

그런데 시계를 보니 벌써 오후 1시다. 병원의 식사 시간은 오전 11시 30분부터 오후 1시까지다. 더구나 주말에는 사람이 없어서 더 일찍 문을 닫는다.

“미안해요. 도와주셨으니 제가 점심 살게요.”

“아닙니다. 실장인 제가 사겠습니다.”

김환근은 잠시 착각을 했다. 데이트 신청으로 알아들은 것이다.

“일단 나갈까요?”

“예.”

이현주는 약국 문을 닫고는 걸어서 어제 술을 먹었던 카페로 갔다. 그런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등산객들이 가득 차 있어서 빈자리가 없었다.

“차타고 갑시다.”

“차 있으세요.”

“병원차입니다. 그러니 차가 필요하면 언제든지 불러주십시오.”

“정말요?”

면허증이 없는 이현주는 자동차가 없었다. 때문에 가끔 밖에 볼 일이 있을 때는 택시를 부르거나 시내버스를 이용해야 했다.

“그럼요.”

병원으로 다시 올라온 김환근은 옆 자리에 이현주를 태우고는 홍천에 있는 식당으로 향했다. 김환근은 회식을 했던 식당으로 가서 갈비탕을 얻어먹었다.

“오후에 일 있으십니까?”

“없어요.”

“점심은 얻어먹었으니 차는 제가 사겠습니다.”

“네.”

이현주는 주말 오후에 기숙사 방에 있는 것보다는 낫겠다 싶어서 승낙했다.

“수타사쪽으로 가면 커피 전문점이 있습니다. 그쪽으로 갈까요?”

“네.”

오전에 열심히 일한 보람이 있었다. 김환근은 이현주를 태우고는 가까운 관광지로 향했다. 수타사 가는 길에 있는 계곡 가에 있는 커피 전문점으로 갔다.

“분위기 좋네요.”

“하하! 다행입니다. 뭐 드시겠습니까?”

“녹차 라떼요.”

“네.”

김환근은 녹차라떼와 아이스라떼라는 커피를 시켰다.

“수정이는 일 잘합니까?”

“어려서 그런지 불만이 많아요. 그래서 많이 챙겨주고 있어요.”

이수정은 5시만 되면 칼 퇴근이다. 그러면 약사인 이현주는 혼자 야근을 하면서 처방전대로 약을 다 지어놓아야 한다. 보통 시설에 있는 환자들의 약은 담당자가 오전에 가지러 온다. 그래도 일이 끝나지 않으면 담당자가 와서 도와주기도 한다고 했다.

“일이 많으면 언제든지 불러 주십시오.”

“바쁘지 않으세요?”

“복지관리실장이 하는 일이 직원들의 불편한 점을 해소하는 역할입니다. 약국에 일이 많으면 직원을 하나 더 뽑도록 병원장에게 조언을 하기 전에 직접 체험을 하면서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아. 네.”

김환근은 일을 핑계로 약국에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다는 것을 말하다보니 깨달았다. 그래도 이수정이 있을 때는 가고 싶지 않아서 오늘처럼 주말이나 야근을 할 때에 도와주겠다고 하였다.

“수타사에 가 보았습니까?”

“아니요.”

“여기까지 왔는데 수타사나 보고 갈까요?”

“여기 와 보셨나 봐요?”

“네. 제가 약초 캐러 강원도에 있는 대부분의 산을 다 다녀서 웬만한 산을 잘 압니다.”

“약초도 캐세요?”

“아버지가 심마니라 어려서부터 아버지에게 약초를 캐는 법을 배웠습니다.”

“수타사 근처에도 약초가 있나요?”

“그럼요. 하지만 허가를 받지 않으면 캐지 못합니다.”

“한번 보고 싶어요.”

“그럼, 갈까요?”

“네.”

두 사람은 커피 전문점에서 나와 차를 타고 수타사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는 수타사로 향했다. 주차장 앞에는 길을 따라 음식점과 매점들이 들어서 있었다. 수타사로 들어서니 많은 등산객들과 관광객들이 있었다. 오른쪽은 소나무 숲이고, 왼쪽으로는 시원한 계곡이다.

“저기 보이는 것이 참빗살나무입니다. 어린잎을 따서 비빔밥을 해 먹으면 좋습니다.”

“저것을 먹을 수 있어요?”

“지금은 먹을 수 없습니다.”

“네.”

김환근은 수타사로 올라가면서 길가에 있는 야생 약초들을 설명해 주었다. 이현주는 사진을 찍으면서 설명을 들었고, 김환근도 약초를 찍는 척하면서 이현주를 찍었다. 그러다 둘이 같이 사진도 찍으면서 수타사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수타사에서 나와 공작산수타사생태숲으로 가서 사진을 찍으면서 구경을 하였다. 그리고 아는 약초가 보이면 설명해 주었다.

“오늘 즐거웠어요.”

“저도 재미있었습니다.”

주차장으로 내려오니 벌서 저녁 5시 40분이었다.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돌아다녔더니 이현주는 다리가 아픈 모양이었다.

“저녁 식사하고 들어갈까요?”

“좋죠.”

하루 사이에 친해진 것인지 이현주가 먼저 식사 제안을 하였다. 병원 밥보다는 밖에서 먹는 것이 훨씬 맛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커피 사셨으니 저녁은 제가 살게요.”

“그럼, 들어가는 길에 카페에서 술 한 잔 하고 들어갈까요? 술은 제가 사겠습니다.”

더 오래 같이 있고 싶어서 핑계를 대는 김환근이다.

“호호! 네.”

얼음공주가 오늘은 잘도 웃는다.

“면 좋아하십니까?”

“네.”

“그럼, 저녁은 가볍게 막국수로 할까요?”

땀을 흘렸더니 시원한 냉면이나 막국수가 먹고 싶은 김환근이다.

“좋아요.”

두 사람은 수타산 주차장 앞에 있는 막국수 집으로 들어갔다. 등산을 하고 나온 사람들이 막국수와 파전에 막걸리를 마시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두 사람은 막국수 2개를 시켜서 가볍게 먹고는 차를 타고 병원으로 향했다.

“드라이브나 할까요?”

저녁을 먹자마자 바로 술을 먹기에는 부담스러웠기에 드라이브를 제안한 김환근이다.

“네.”

김환근은 병원에서 가까운 비발디파크 쪽으로 드라이브를 갔다. 차를 타고 주변 경관을 구경하면서 1시간 정도 돌아다니다가 병원으로 돌아와서 주차장에 차를 대고는 걸어서 카페로 향했다. 밤이 되자 등산객들은 모두 돌아갔기에 카페는 한산했다.

“어서 오세요. 실장님!”

주인아주머니가 반갑게 맞이했다. 단골이 될 것임을 직감한 것이 틀림없었다. 그리고 마른안주를 서비스로 가져왔다.

“고맙습니다. 과일 안주하고 오백 두 잔 주세요.”

“네.”

생맥주 두 잔을 시켜서 같이 마시기 시작했다.

“내일은 뭐 하십니까?”

“특별한 일 없어요.”

“그럼, 춘천 가서 영화나 한 편 보고 올까요?”

“네.”

이현주는 오늘 하루 즐거웠기에 거절하지 뭐해서 승낙을 하였다. 오늘 김환근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내일도 약국에서 일을 할 생각이지만 일을 다 했기에 내일은 할 일이 없었다.

‘예쓰!’

김환근은 속으로 환호했다.

두 사람은 병원 일이나 약초 등에 대해서 대화를 하면서 밤 11시까지 술을 마시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밤 11시면 칼 같이 일어나는군.’

김환근은 이현주에 대해서 어느 정도 이해를 하였다. 술을 마셔도 자세가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었고, 밤 11시가 되면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고 바로 일어났다. 그것은 둘이 있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다음날 김환근은 새벽에 일어나 운동을 하고는 오전 11시에 만나서 차를 차고 춘천으로 가서 닭갈비를 먹은 후에 영화를 보고 가평 쪽으로 드라이브를 하였다. 그리고 남이섬에 들려서 돌아다니고는 청평에 있는 카페에서 식사를 하고는 밤에 병원으로 돌아왔다. 밤이 늦었기에 카페에 가지는 않았다.

* * *

보름 후

주말에 급속도로 이현주와 가까워진 김환근은 식사 때에 의사들뿐 아니라 이현주와도 같이 앉아서 식사를 하였다. 그리고 화요일에는 야근을 하는 약국에 가서 일을 도와주었다. 그때 의사인 박정수도 같이 와서 일을 도왔다. 주말에 다시 데이트를 기대했지만 이현주가 홍천에 있는 약국에 아는 선배의 부탁으로 약국을 도와주러 간다고 했다. 퇴근을 하는 병원장의 차를 타고 갔기에 데려다 주지도 못했다. 같은 층의 휴게실에서 모이다보니 의사들하고는 무척 친해졌다.

‘오랜만에 집무실에나 가 볼까?’

점심 식사 후에 커피 생각이 났다. 그리고 자신의 집무실에 커피가 있다는 것이 생각나서 사무실을 통하지 않고 복도를 통해서 자신의 집무실로 향했다.

‘어? 낙하산!’

집무실 문손잡이를 잡는 순간 안에서 여직원들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낙하산이라고 말하는 이수정의 목소리가 들렸다.

“낙하산 주제에 약사 언니 예쁜 것을 알아가지고 매일 들이댄다니까?”

이수정은 간호사와 여직원들과 어울리면서 김환근이 별 볼일 없는 지방대학교 출신인 낙하산이라는 것을 소문내고 다녔다.

“정말?”

“그래. 우연히 이 이사님이 교통사고 난 것을 차에서 꺼내주었데. 그 은혜를 갚기 위해 이 이사님이 취직 시켜 준거래.”

“어머! 재수 없다. 선행 한 번 한 것 가지고 평생 거머리처럼 이 이사님에게 붙어서 피를 빨아먹겠다는 거잖아.”

“도둑놈이네.”

“맞아. 도둑놈처럼 생겼잖아.”

“혹시 변태는 아냐?”

“호호호!”

여직원들은 모여서 커피를 마시면서 김환근을 씹고 있었다. 김환근의 집무실이지만 그가 한번도 오지 않자 자연스럽게 여직원들 휴게소처럼 되어 있었다. 사무실 여직원이 매일 청소를 해야 한다는 핑계로 출입하다가 이제는 점심시간에 모여서 떠드는 여직원들 아지트가 되어 있었다.

‘으득!’

얼굴이 붉어진 김환근은 속으로 이를 갈았다. 생각 같아서 당장 들어가서 내 집무실에 나가라고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다.

‘참자. 임금님이라도 뒤에서는 욕한다고 하잖아.’

화가 나도 참는 것은 여직원의 말대로 자신은 실력도 없이 백으로 들어온 낙하산이 맞기 때문이었다.

띠링!

김환근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위층으로 향했다.

띠링!

3층에서 문이 열리더니 의국장인 김민수가 탔다.

“실장님!”

“어!”

반갑게 인사하던 김민수는 김환근의 표정이 좋지 않자 조용히 있었다. 김환근은 7층에서 내려서는 바로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스르릉!

김환근은 방으로 들어오자 며칠 전에 들어온 방검복과 검을 인벤토리에서 꺼내서 검 집에서 꺼내 보았다. 그리고는 헝겊으로 검을 닦으면서 마음을 가다듬었다. 김환근은 인벤토리의 기능 중에서 좋은 점을 하나 발견했다. 커다란 배낭이나 상자에 물건을 넣으면 아무리 많이 넣어도 하나로 취급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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