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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자들 쇄도-87화 (87/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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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라를 알아온지 꽤 긴 시간이 지났지만 타이라가 카메라 앞이나 카메라 밖에서 그런 식으로 행동하는 것을 본 적이 없었기에 그들은 그것이 타이라의 계획된 행동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드디어 행동을 개시하려는 모양이군.”

그것은 신호와도 같았다.

축제의 클라이막스를 알리며 올라가 터지는 폭죽과도 같았다.

그것을 계기로 주가가 다시 일제히 요동쳤다.

월스트리트는 패닉에서 빠져나오는 듯하다가 곧바로 다른 공황사태에 직면했다.

폭락하던 주가는 폭등했고 폭등했던 주가는 폭락했다.

고작 몇 분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어떻게 빨간 색 화살표와 파란 색 화살표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색깔과 방향만 뒤집힐 수 있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코메디나 동화가 아닌 현실에서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는 건지,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이 없었다.

결국에는 준도 일어서서 서성거렸다.

이런 변수에도 준비가 되어 있었다는 듯이 의연하게 굴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포트폴리오를 수정하지 않으면 결코 만회할 기회도 얻지 못하고 추락하게 될 거라고 말하는 엠디 군단에게 준은 손실액을 말해보라고 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 이사회 (FRB)의장이 은행휴업을 선언하며 광풍으로부터 시장을 진정시키려고 애썼지만 이미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안고 여기저기 나가떨어진 투자자들이 속출했다.

그 날 하루에만 전국에서 수 만 발의 총성이 울려퍼졌을 것이다.

자살 광풍이라고 해도 좋을만한 사태였다.

잘못된 결정을 내린 소액 투자자들이 먼저 총을 집어 들어 입에 물거나 관자놀이를 겨누었다.

그들은 버틸 여력이 없는 사람들이었고 대책이라는 것을 세우는 것도 불가능했다.

시장의 흐름을 면밀히 분석하고 그 흐름에 올라타서 엄청난 수익을 거뒀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은 갑자기 방향을 바꾸고 허리케인처럼 돌진하는 바람 위에서 미친 사람처럼 동요하다가 스스로 게임에서 내려왔다.

그들은 죽음으로 몬 것은 시장이었다고 많은 사람들이 말했다.

기선가 지명, 사이크의 일행도 그 말을 믿고 싶었다.

너무 많은 죽음에 자신들의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시인하는 것이 너무도 힘들었다.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 만약에 그들이 나서지 않았다면 다른 쪽에 서 있던 사람들이 똑같은 결정을 내리게 됐을 거라는 사실이 크게 위로가 되지는 못했다.

이건 미친 짓이야, 라고 기선은 짧게 말을 한 뒤 오랜 침묵을 지켰다.

***

“야.”

히나타의 지명이 정인의 지명을 불렀다.

정인의 지명은 그 녀석이 자기를 왜 부르는지 알 것 같았다.

“너도야? 아버지랑 연락이 안 돼?”

정인의 지명이 곧바로 그렇게 묻자 히나타의 지명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너도 그런 거야?”

“언제 마지막으로 통화했는데?”

“어제였나?”

“무슨 얘길 했는데? 아버지 목소리는 어떤 것 같았어?”

“다른 때랑 다른 건 없었는데. 오히려 좀 들뜬 것 같았고.”

“들떠?”

두 지명이 머리를 맞댔지만 답이 떠오르지는 않았다.

그때 히나타의 지명이 스마트폰을 꺼냈다.

“아, 아버지다. 이틀 정도 연락이 되지 않아도 걱정말라고 하시네. 무슨 일이 있으신가?”

“그래? 여행이라도 가시려는 건가?”

“설마. 이런 때에?”

“하긴. 그렇지.”

그때 정인의 지명이 가진 스마트폰도 울렸다.

“어잉?” 정인의 지명은 곧 안심하는 표정을 지으며 또다른 저에게 문자를 보여주었다.

[좋은 여자를 만났다. 기회를 놓치면 안 될 것 같아. 일박이일로 여행을 가볼까 생각중인데 같이 있는 동안에 너랑 연락을 하는 모습을 자꾸 보이고 싶지는 않아서. 가족을 너무 챙기는 남자는 매력 없지 않겠어?]

“아아, 그런 거였어?”

두 지명은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후인이 발신번호를 조작해서 보낸 문자라는 생각 같은 것은 전혀 할 수가 없었다.

“그럼. 이젠 우리가 나설 차롄가?”

소명이 주위의 사람들을 바라보며말했다.

“항이 형한테는 언제 말할 건데?”

진한이 물었다.

모두가 그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일제히 소명을 바라보았다.

“형이 그곳에 가서 서림 누나를 처음 만나게 된다고 생각해 봐. 충격이 어떻겠는지?”

진한이 덧붙여 말했다.

“오빠는 이길 거야. 왜냐면 이겨야 하니까. 거기에서 허비할 시간이 없다는 걸 알 거야. 서림 언니가 이전처럼 비인간적인 상황에 갇혀 있는 거라면 얘기가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언니도 스스로 꾸미고 준비하고 우리를 기다릴 수 있어. 항이 오빠가 미리 그 사실을 안다고 생각해 봐. 걸음이라도 제대로 걸을 수 있겠어?”

소명이 하도 단호하게 말을 해서 모두들 그 말에 설득을 당했다.

하긴 생각할수록 소명의 말이 맞을 것 같기도 했다.

“준 맥브라이언은. 죽이는 거야. 다른 방법은 없는 것 같아.”

소명이 말했다.

사람들이 뭔가에 정신이 팔려 있는 사이에 소매치기라도 하는 것처럼 어물쩡, 아주 중요한 얘기를 해 버린 것이다.

“……!”

연우가 물었다.

“연결고리를 이번에 끊지 않으면 안 돼. 연결고리를 끊을 수 있을 때 끊는 거지. 서림 언니를 구출하고 준 맥브라이언을 죽이는 거다. 제단 아래의 실험체에 대해서는……. 그 사람들도 죽이는 게 맞다고 생각하지만 거기에 대해서는 다른 의견이 있으면 귀 기울여 주기는 하겠어.”

소명은 한 사람 한 사람의 눈을 바라보았다.

누구 하나 다른 의견을 쉽게 제시하는 사람이 없었다.

“좋아. 희영. 준 맥브라이언이 어디에 있는지 찾아줘.”

소명이 말했다.

“희영이 누나가, 누가 어디에 있는지 찾아내 달라고 한다고 그 장면을 보여줄 수 있는 건 아니지 않아요?”

지명이 말했다.

하지만 누구도 지명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희영이 보이는 환시를 보면서 아미가 그 장소가 어디에 있는지를 알려주었다.

“준이 일상적으로 머무는 공간이에요. 옆에 있는 사람들은……. 못 보던 사람들인데. 아마 칸트의 뒤를 잇는 사람들인가 봐요.”

아미가 채영과 사요를 보고 말했다.

“동양인들이네? 한국 사람들일까?”

선우 형이 말하자 히나타가 고개를 저었다.

“여자는 일본 사람 같은데요?”

“그런가?” 그러고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했다.

채영에 대해서는, 그의 백발만 보고 저렇게 나이 많은 사람이 제 한 몸이나 제대로 가눌 수 있을까? 하는 생각들이 지배적이었다가 그가 겨우 20대 초반으로나 보이는 얼굴을 했다는 것을 알고 모두들 놀랐다.

“칸트 대신에 저 사람들을 곁에 뒀다면 저 사람들도 칸트같은 절대병기라고 봐야 할 거예요.”

아미가 말했다.

칸트라는 발음이, 아미의 입에서 나올 때는 참 아련하고 애절하게 들리는 것 같았다.

“뒤쪽에 남자 하나가 더 있어.”

진한이 가리키는 쪽을 보니 크레이그가 가구처럼 서서 준을 보좌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아미도 크레이그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었다.

“그래봤자 겨우 셋이네. 준 맥브라이언까지 넷.”

소명이 말했다.

소명은 진한과 지강은을 바라보면서 미리 맞춰두었던 계획을 세분화했다.

“히나타. 히나타가 우리 뒤를 봐 줘. 우리가 놓치는 사람들을 히나타가 처리해 줘.”

소명의 말에 히나타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선우 형이랑 시영이는 우리가 제지당하지 않고 들어갈 수 있도록 모든 경계를 무력화시키는 일을 맡아주고.”

“이런 얘기는 항 형이랑 같이 해야 되는 거 아니에요?”

선우 형이 말했다.

“우선 여기에서 서림 언니를 구출하는 방안에 대해서까지 한 번 쭉 훑어야 하니까. 그 다음에 오빠가 있는 자리에서 한 번 더 할 거야.”

“아, 네에.”

“연우는, 우리가 서림 언니를 만난 후에 항 오빠와 서림 언니를 챙겨줘. 몸으로 막고 싸우라는 게 아니라 두 사람이 정신을 차리고 그곳을 빠져나올 수 있도록 북돋아 주라는 거야.”

“네. 그 정도는 할 수 있어요.”

연우가 자신있게 말했다.

“정인이는. 할 수 있는대로, 우리가 꼭 해치워야 되는 사람과 지나쳐야 할 사람을 알려주면 좋겠어. 전력을 낭비하고 싶지도 않지만, 무엇보다 쓸데없는 살육은 피하고 싶거든.”

정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이크랑 지명인 같이 가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 기선이도. 아, 기선이는 같이 가야 되겠구나. 우리 강화제.”

“강화제요?”

기선이 말하며 웃었다.

“저희가 가지 않아도 되겠어요?”

지명이 말했다.

“너희는 다른 쪽으로 우리 핵심 전력이니까 스스로의 안전을 도모하는 게 너희가 해야 할 일이야. 알았지?”

지명과 사이크는 별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타이라를 만나. 그렇게 해서 준 맥브라이언과 붉은 번개의 틈의 숨통을 확 조여버려. 더 이상 회생이 불가능할 정도로 확실히 밟아놔 버리라고.”

“그건 잘 되고 있어요.”

사이크가 말했다.

“백 미터 아래의 지하 구덩이로 떨어지면서 아무 것도 손에 잡지 못하게 만들어버려. 우리를 건들기로 결정했던 게 얼마나 멍청한 짓이었던 건지 알게 해 주자고.”

“이미 지옥을 맛보고 있을 거예요.”

지명이 말했다.

“그럼. 거의 다 된 거지? 질문 있어?”

“서림이 누나가 우리를 알아볼 수 있을까요?”

시영이 물었다.

“그건 희영이가 이미 설명해뒀어. 지금부터는 각자 맡은 일을 실수없이 하기만 하면 돼.”

“저, 준에 대해서 알아야 할 게 있어요.”

아미가 말했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준은 자유자재로 최면을 걸어요. 그리고 여기에 있던 사람들은 준의 최면에 걸려서 오랫동안 조종당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잖아요. 얼마든지 다시 걸릴 수도 있어요.”

아미의 말에 모두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집중하세요. 자신에게. 그리고 준에게 동조하지 마세요. 준의 명령에 따르지 마세요. 준이 의도하는 행동을 하지 말고 지금 가능한 한 모든 것을 머릿속에 정하는 게 좋아요.”

“그래. 그래야겠지.”

“칸트가 해 줬던 말 중에 준이 사람들에게 들리지 않는 말도 들을 수 있고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다는 말이 있었어요. 투시를 하는 것까지는 아니겠지만 사람한테 허락된 시력과 청력을 가뿐하게 뛰어넘는 능력을 갖고 있다는 뜻인 것 같았어요.”

“긴장을 확실히 해야겠군.”

선우 형이 말했다.

“저 사람들에 대해서 알 수 있는 방법 없을까? 준 맥브라이언의 곁에 있는 사람들. 어떤 식으로 싸우는지.”

소명은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고 말한 듯했지만 정인이 다가왔다.

“볼 수 있을 것 같아?”

소명이 물었다.

“시도는……, 해 볼게요. 크게 기대하지는 마세요.”

“그래.”

정인은 제 능력이 어떤 식으로 나타는지 알지 못했기에 어딘가에 집중을 한다거나 힘을 불어 넣으려고 애쓰지는 않았다.

그러는 중에 여러 가지의 영상들이 정인의 머릿속으로 전달이 되었다.

지하실에 감금되어 있다가 죽은 시체들과 스너프 필름, 그리고 채영의 기억이 45분을 넘지 못한다는 것까지 정인은 알게 되었다.

그의 팔에 준이 글씨를 새겨 넣은 것과 그를 바라보는 사요의 눈빛까지.

정인은 곧 채영에 대해 모든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왜 그래?”

지명이 물었다.

“이 사람은 우리의 적이 아니에요. 우리랑 싸우려는 생각도 없고 어쩌다가 준 맥브라이언한테 붙잡힌 것 뿐이에요. 그의 강요에 의해서 싸우게 되겠지만 이 사람을 죽이는 건 옳지 않은 것 같아요. 우리가 공격을 당하게 되면 옳다느니 옳지 않다느니 말하긴 어렵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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