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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자들 쇄도-85화 (85/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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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걱정은 하지 마세요. 저희는 여럿이고 소명이 누나랑 히나타도 있잖아요. 장항 형도 있고요.”

“그래. 걱정하지 않을 테니까 무사히 돌아오기만 해.”

“네. 아버지도 너무 외롭게 지내시지만 말고 사람들이랑도 어울리고 누군가 같이 있을 사람을 찾아보세요. 혼자 계실 거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안 놓여요.”

“나야 뭐.”

“아직 젊으시잖아요.”

“그렇다고 내 자식들이 위험한 곳에 가 있는데 지금 연애질이나 하고 다니라는 거냐?”

“네.”

“뭐?”

선 사장이 웃었다.

“저는 아버지가 저를 위해서 아버지를 희생하는 거, 절대로 고마워하지 않을 거예요. 아버지가 행복해 하시면 좋겠어요.”

“그래. 그렇게 살 거니까 걱정하지 말아라.”

“정말요. 저는 제도 아저씨가 죽는 걸 봤잖아요. 죽음은 순식간에 찾아와요. 눈을 감는 순간에 위로받을 수 있는 좋은 기억 하나도 아버지한테는 없는 것 같아서 속이 상해요.”

“나한테 그런 기억이 없다고 누가 그러는데?”

“고작 저에 대한 기억이나 떠올리려고 뒤적거리시겠죠. 그런 건 싫어요, 아버지. 아버지는 지금보다 훨씬 더 행복해지셔야 돼요.”

“알았다는데도 오늘따라 잔소리가 길어지네.”

“그러게요.”

지명이 웃었다.

그 전화 때문이었을까.

선 사장은 스마트폰에서 번호 하나를 찾아냈다.

이후인.

운전 미숙으로 주차를 제대로 하지 못해 곤혹스러워하던 그녀를 도와준 일로 갑자기 사이가 가까워졌다.

오랫동안 고등학교 교사였다가 지금은 쉬면서 여행도 하고 사진도 찍으면서 자유롭게 살고 있다는 그녀는 선 사장과 세 살 차이밖에 나지 않았다.

이국적인 매력이 물씬 풍기는 여성이었다.

긴 유학생활 때문인지 성격도 자유분방했다.

아직 미혼이라고 했다.

지명이 복잡한 일에 휘말려 미국으로 가지만 않았다면 진도가 나갔어도 벌써 나갔을 텐데 지명 때문에 자체적으로 근신을 하는 중이었다.

하지만 지명의 당부도 있었겠다.

한 번 연락을 해 봐?

선 사장은 번호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렇게 보고 있으면 신통력이라도 발휘가 돼서 저절로 전화가 걸릴 거라고 믿는 건지.

그런데 갑자기 그 번호가 떴다.

선 사장은 무슨 일인가 하다가 후인이 전화를 걸었다는 것을 깨닫고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빨리 받으시네요. 뭐예요? 전화가 올까봐 전화기만 보고 있었던 사람처럼.”

후인이 웃으며 말했다.

“아, 꼭 그런 건 아니었고…….”

선 사장이 진땀을 빼며 우물쭈물하자 후인은 그런 선 사장이 귀엽다는 듯 높은 웃음 소리를 굴렸다.

“뭐하고 계셨어요?”

“솔직히 말하자면.”

선 사장은 책상 위에 걸터 앉으며 눈을 내리깔았다.

“후인씨한테 데이트 신청을 할까 하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어, 정말요? 그럼 우리 생각이 통한 거네요?”

“그런 건가요?”

“저도 그 생각을 했거든요. 선 사장님이 먼저 전화를 하실 일은 없을 것 같아서 이번에도 제가 먼저 용기를 내기로 했죠.”

“미안해서 어쩌죠?”

“저녁 식사 하셨어요? 하셨어도 안 했다고 하세요. 오늘은 선 사장님이랑 같이 하고 싶어서 저는 안 했단 말이에요.”

“그런 생각이었다면 점심에라도 말하지 그랬어요?”

선 사장이 말했다.

“나는 우리 마음이 통하기를 바랐거든요.”

“마음이 통했나봐요. 저녁은 아직이고 굉장히 배가 고픕니다. 후인씨를 데리러 가죠.”

“좋아요.”

쟁반에 굴리는 구슬 같은 웃음소리라는 표현을 처음에 쓴 사람은 대닥한 직관을 가졌던 거라고 선 사장은 생각하고 있었다.

딱 그 표현이 어울리는 웃음소리였다.

“음, 지금 출발하면.”

그가 시계를 보더니 말을 이었다.

“삼십 분 후면 만날 수 있을 거예요.”

“준비하고 기다릴게요.”

후인이 전화를 끊은 후에도 선 사장은 한동안 귀에서 스마트폰을 떼지 못했다.

그의 마음에 비로소 봄이 찾아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호텔에서 두 사람은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다.

후인의 마음이 어떤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선 사장은 자신의 마음을 보일 수 있었다고 생각하며 다행으로 여겼다.

후인은 교양을 갖췄으면서도 한없이 솔직하고 매력적으로 굴었다.

선 사장은 후인의 몸을 떼내고 일어서야 할 때 고통마저 느꼈다.

“곧 다시 만나요. 그때는 이렇게 잠깐만 같이 있다가 놔 주지는 않을 겁니다.”

선 사장이 말했다.

“마음 속에 신경 쓰이는 일이 있나봐요.”

후인이 말했다.

“자세한 걸 얘기할 수는 없지만 며칠 내로 해결될 일이에요. 곧 다시 연락할게요. 그때는 각오하는 게 좋을 거예요.”

“그럴게요.”

후인이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선 사장은 집으로 돌아왔고 지명의 전화를 기다렸다.

지명은 두 번이나 전화를 걸었다.

각각의 지명이 한 번씩 전화를 했지만 선 사장 입장에서는 두 번이 꼬박꼬박 오는 것과 다름 없었다.

“나는 너희 두 사람이 모두 걱정되지만 너희들이 사이좋게 지내기를 바라는 마음도 커. 제발 같이 있다가 목소리를 같이 들려주면 안 되겠니?”

선 사장이 간곡하게 부탁했지만 두 놈은 똑같이, 아마 그럴 일은 없을 거라고 말했다.

‘누구 아들인데. 그 놈들 고집도 똑같지!’

선 사장은 이내 포기를 해 버렸다.

나쁜 일이 생기지는 않을 거라고 선 사장도 믿었다.

그리고 그는 잠자리에 들었다.

언제까지나 자식 걱정을 내려놓을 수 없는 아버지인 동시에 그 날은 자기가 다시 남자가 됐다는 기분을 만끽할 수 있었다.

후인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전화는 연결되지 않았다.

이제 씻으러 들어갈 거라는 말을 하면서 통화를 마쳤던 것을 떠올리고 선 사장은 스마트폰을 협탁 위에 올려 놓았다.

후인과의 만남 때문이었는지 지명에 대한 걱정 때문이었는지 쉽게 잠을 이룰 수가 없어서 약을 한 알 삼켰다.

졸리고 피곤한데도 잠이 들지 못하는 상황이 지속됐다.

어느 때는 얕게 든 잠에서 자기도 모르게 내던져지는 것처럼 깨기도 했다.

잠에서 깨고서야 자기가 막 잠에 들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으아, 피곤한데 왜 이리 잠이 안 와.”

쉽게 잠들지 못하는 사람답게 요란하게 뒤척였다.

그리고 그때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움직임을 멈추고 귀를 기울였다.

분명히 무슨 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그는 쓸데없이 위험을 무릅쓰는 사람이 아니었다.

잰걸음으로 걸어가서 방문을 이중 삼중으로 단단히 걸어잠갔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바람인지 침입자인지는 궁금하지도 않았다.

바람이든 사람이든 그저 조용히 사라져주기만 바랐다.

그는 지명에게 전화를 걸고 싶었다.

어느덧 새벽 두 시를 넘어가는 시각이었다.

스마트폰은 손에 들었지만 지명이 지금 어떤 상황인지 확신할 수 없다는 생각에 다시 협탁에 내려놓았다.

그럴 것 같지 않기는 했지만 지명이 누군가로부터 몸을 숨기는 상황에 놓였을 수도 있지 않겠냐는 생각이 들었다.

지명을 곤란하게 할 수는 없다는 생각에 선 사장은 혼자서 공포와 맞섰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무언가가 바닥에 떨어져 산산히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이래도 나오지 않겠냐고 위협을 하는 것 같았다.

이제 바람일 가능성은 거의 사라졌다고 봐야했다.

그렇다면?

선 사장이 한 번도 키워본 적 없는 개나 고양이?

재주 좋게 그것들이 집에 들어와서 탁자 위에서 날뛰고 돌아다닌다는 말인가?

분명히 누군가 들어와 있었다.

하지만 방 안에서 나가지만 않는다면 안전을 도모할 수 있을 거라고 선 사장은 생각했다.

그런 식으로 불길한 소리가 몇 번 더 들려왔다.

사르락 거리는 소리, 테이블 보를 건드는 것 같은 소리, 다른 방 문을 여는 소리.

그리고 마침내 선 사장이 있는 방 문 손잡이가 움직이려 했다.

달각거리기만 할 뿐 열리지는 않았지만 그 소리는 한동안 집요하게 들려왔다.

문을 열라는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달각거리는 소리에 계속 귀를 기울이고 있다가는 그대로 홀려서 문을 열어주게 될 것만 같았다.

선 사장은 두 손으로 귀를 막았다.

창 밖에 하얀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지명이 떠난 날부터 선 사장이 머물고 있던 그곳은 24층이었다.

이러다가는 실체도 없는 것에 당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이미 이성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이상한 죽음을 몇 번이나 목격하지 않았는가.

이해할 수 없는 광경을 목격하고 심장마비로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 선 사장은, 차라리 아무 것도 보지 말자고 마음 먹었다.

그는 두 손으로는 귀를 꼭 막은 채 두 눈을 꾹 감아버렸다.

이렇게 하면 24층 창문에 귀신이 붙어 있다고 해도 심장마비로 사망할 일은 없을 거라며 속으로 혼자 통쾌해하기까지 있다.

그러다가 스르르 잠이 들었다.

어찌나 잘 잤는지, 해가 꽤 부지런을 떨어 중천까지 올라가 있었을 때 눈을 떴다.

“으갸갸갸갸갸갸!!”

그는 요란하게 기지개를 켰다.

아침이 되고 나니 새벽에 있었던 일들이 별 것 아닌 것처럼 여겨졌다.

지명에게서는 전화가 걸려오지 않았다.

이제 본격적으로 바빠진 모양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선 사장은 방문을 열었다.

밖에는 어떤 변화도 보이지 않았다.

바닥에 떨어져 깨졌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들도 말짱했다.

‘신경과민이거나 약의 부작용이야.’

선 사장은 그렇게 자신을 이해시켰다.

그는 벤치에 누웠다.

옆에 다른 사람이 있을 때가 아니면 무리하게 바벨을 들 생각을 하지 말라고 지명이 잔소리를 했던 게 기억났다.

후인을 만나면서 몸에 신경이 쓰이기는 했다.

선 사장은 부담이 되지 않을 만큼 무게를 조절하고 다시 벤치에 누웠다.

그는 가볍게 몇 번 바벨을 들어올렸다.

아무도 없어야 할 공간.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아야 할 공간에서 또각거리는 발걸음 소리가 들렸을 때 선 사장은 서둘러 바벨을 내리고 몸을 일으키려 했다.

하지만 그가 침입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너무 늦어 있었다.

“조금만 더 버텨봐요. 아주 멋져 보이는데요?”

그의 눈에 후인의 모습이 들어왔다.

그는 후인이 내리누르는 바벨을 밀어내려고 애썼지만 결국 버티지 못했다.

바벨의 중량감이 목을 파고 들었다.

머리에 온통 피가 몰려 얼굴이 꼭 달구어진 빨간 석탄처럼 보였다.

후인은 숨을 거둔 선 사장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그곳을 빠져나갔다.

테이블 아래에는 어젯밤에 떨어져 깨졌던 유리의 조각이 밀려 들어가 있었다.

사람들은 성난 월스트리트를 진정시키고 싶어했다.

그 실체없는 괴물의 화를 가라앉히고 싶어서 전전긍긍했다.

모두가 이것이 어디에서 불어온 바람인지 알아내고 싶어 우왕좌왕했다.

하지만 누구도 진실의 실체를 알아내지 못했다.

엄청나게 큰 힘이 정확한 궤도를 그리면서 나아가고 있는데 그 발자취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메시지를 해독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저 투기세력, 투기세력.

그런 말로 낮추어 말할 뿐이었다.

“좋아. 아주 바람직하지.”

준 맥브라이언은 CNBC를 끄면서 말했다.

머리가 무거웠다.

몇 시간 동안 일에만 매달렸다.

이제는 조금 휴식을 취해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크레이그가 환한 얼굴을 하고 들어왔다.

“즐거운 소식이라도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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